RUST RAW novel - Chapter (1020)
러스트 [RUST]-1020
“에에? 전시태세요?”
회의실 한쪽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간호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김 양과 후드, 나주연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일단 바로 비상경계 태세 시작하겠음.”
[최고등급 정보 통제와 통신 보안 시작하겠습니다.] [전시 물자 비상 생산 시작하겠어요.]“에- 또- 그러니까 누구랑 싸우는 거죠?”
“헛소리 그만하고 너는 본국으로 돌아가. 가서 까마귀랑 까치, 늑대, 쥐새끼들이랑 개미까지 모조리 전쟁 준비하라고 해.”
김 양의 말에 간호사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싱크홀 괴물이랑 싸우는 거면, 애들 보고 그냥 죽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동물들의 무기는 이빨과 발톱이었다. 그러니까 근접전을 해야 한다는 건데 불사의 괴물이 달고 있는 고름과 진물, 체액에 닿으면 바로 감염되고 침식될 게 분명했다.
“싱크홀 괴물만 적이라면 전시태세 갖추라고 하지 않았을 것임. 모르겠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라.”
“···알겠어요.”
간호사를 신성 왕국으로 쫓아낸 김 양이 친위대를 소집했다.
“싱크홀 괴물뿐만 아니라, 정체불명의 적과 교전이 벌어질 수 있다. 모두 대응 장비 챙기고 출동 대기 상태로.”
“옛!”
김 양의 생각은 그랬다. 한국에 쳐들어온 싱크홀 괴물이라면 신성 왕국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분명히 뭔가 있음.’
‘전시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할 정도의 뭔가가.
흐응-
그게 뭘까?
단순하게 그린 순이 공격받아 실종됐다고 전시태세를 갖추라고 할 마루는 아닌데.
‘설마···. 미제가 또 발동 걸었나?’
미 제국주의자들이라는 명칭에 쏙 들어맞게 제국으로 개명한 년이, 제 버릇 못 버리고 또 시작한 건가? 그걸 우리 최고 존엄이 알아채고 빠른 대응 가는 거고?
어쩐지 그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남부 연맹 밀었을 때도 전시태세 발령은 내리지 않았다. 개미 제국 밟았을 때도 그랬고.
흐응-
김 양의 시선이 싱크홀 괴물이 느릿하게 잠식하고 있는 도시를 향했다.
‧
‧
‧
제국.
해상도시 총리실.
[신성 왕국 사절단 지금 떠났습니다.]“쯧- 무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루 묵고 가라는 이야기를 거절하고 나간 기순이 떠오른 덴 브라운이었다.
[신성 왕국 비행선 기동이 이상합니다. 급속 고도 상승. 가속합니다.]급하게 출발하더니, 마치 긴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
‘뭐지?’
덴 브라운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공격받는 것도 아닌데 급상승과 급가속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
혹시 뭔가 사고를 쳤거나, 뭘 훔쳐서 도망치는 건가?
“사절단이 따로 문제를 일으킨 게 있나?”
[없습니다.]“해킹 피해는?”
[확인된 피해는 없습니다.]뉴욕에 있었을 때 한 번 털렸던 걸 나중에 알아챘기에 이번에는 겹겹이 대응하고 있었다. 해상도시로 데려오지 않고 보스턴에서 회담한 것도 보안의 일환이었다.
“꼼꼼하게 확인하도록 해. 혹시라도 해킹 장비가 설치됐을 수 있으니, 잠시라도 거쳐 갔던 곳은 철저하게 살피고.”
[네.]버리고 간 쓰레기, 화장실에서 싼 똥까지 확인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특이점에 도달한 신성 왕국이 어떤 장비를 만들고 숨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국토안보국 시절 정보전 때, 중국 측 스파이가 똥 속에 GPS 달린 USB를 숨겨 유출했던 일이 떠오른 덴 브라운이었다.
“전자전 능력자 지원 요청은 어떻게 됐나?”
[해당 능력자가 현재, 군사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군사 작전?
“작전도 중요하지만, 보안도 중요하다고 전해. 해킹 흔적이 있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되니까 잠시만이라도 보내달라고 해봐.”
[곧 작전이 끝나면 바로 보내겠다고 합니다.]무엇이든 흔적이 남았다면 바로 역추적해서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설령 해킹에 당한다고 하더라도 중요 정보가 넘어가지 않게 대비하고 있었다.
이제 전자전 능력자가 오면 해킹 여부를 확인하는 건 금방이었다. 해킹 역추적도 충분했고. 그렇게 화면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던 붉은 점이 갑자기 사라졌다.
[신성 왕국 비행선. 소실.]“무슨 일인가?”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이유는?”
[연산 결과. 스텔스 장치를 가동해 레이더를 피한 것 같습니다.]“갑자기 스텔스 장치를 가동해? 무슨 생각이지? 완전히 놓친 건가?”
[광학 탐지기도 놓쳤습니다.] [신성 왕국 비행선에 광학 은신 모듈이 설치된 것 같습니다.]스텔스에 광학 은신 모듈까지 동원했다는 이야기.
정말 뭔가 켕기는 짓을 한 건가?
덴 브라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길 무렵, 긴급 보고가 이어졌다.
[신성 왕국 국경을 감시하던 성층권 비행선과 신호가 끊겼습니다!] [정찰 비행선 실종 확인!] [격추됐을 가능성 큽니다.]신성 왕국 비행선이 스텔스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 왕국 방면을 감시하던 성층권 비행선과 신호가 끊겼다? 심지어 격추됐을 확률이 있다고?
맙소사.
그렇지 않아도 레온 보나드 황제가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니 어쩌니 하는 판국에. 제국의 성층권 비행선이 격추됐을지 모른다고?
“당장 해당 구역으로 수색대 급파해.”
[알겠습니다.]해당 구역을 확인하던 덴 브라운이 명령을 추가했다.
“지역 소방관과 해당 지역 경찰까지 전부 동원하도록.”
[예? 옛.]지역 방위군을 동원하고 싶었지만, 군을 동원하는 건 레온 보나드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황제 폐하께 현재 상황 올리고 방위군을 동원해 달라고 요청해.”
[알겠습니다.]예전이었다면 주지사가 주 방위군을 동원할 수 있었는데, 황제와 권력을 반분하면서 군권에 대한 걸 모두 황제가 가져가 생긴 지연이었다.
‘음?’
순간 덴 브라운의 시선이 지도를 향했다. 신성 왕국 사절단이 탄 비행선의 비행 기록. 그리고 성층권 비행선이 감시하는 공역이 겹쳐있었다.
성층권 비행선의 감시 영역이 움직였다.
하필 그에 맞춰 신성 왕국 비행선이 고속으로 이동했고.
아니 반대인가?
신성 왕국 비행선이 스텔스 상태로 고속 이동하자, 감시 비행선이 움직였다?
감시 비행선이 신성 왕국의 스텔스 기동을 알아챌 수 있나?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고 광학 은신 기능까지 있는데?
알아챌 수 없다면 어째서 저 방향으로 움직였지? 김기순이 탄 신성 왕국 비행선이 고속으로 기동한 것처럼, 성층권 정찰 위성도 거의 전속력으로 움직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
덴 브라운의 직감이 경고하기 시작했다.
성층권 비행선을 관리하는 건 공군과 공군 정보부 그러니까 레온 보나드 황제가 장악한 군부 휘하였다.
[지역 방위군이 동원되어 수색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소방관과 경찰을 돌려보내라는 황제 폐하의 말씀이십니다.]덴 브라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미 방위군이 동원되어 있었어?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걸 짐작하고 있었다?
황제가 요구했던 것이 떠올랐다. 신성 왕국 외교관이 온다면 억류하라는 명령. 버나드 그린이 억류됐을 때 벌어진 사건과 지금 제국의 성층권 비행선이 격추되면서 생길 사건이 겹쳐졌다.
설마 덴 브라운 자신이 억류 요청을 거절했을 때를 대비해 신성 왕국 비행선을···. 그렇다면 위험했다.
“소방관과 경찰에게 계속 수색하라고 해.”
[네? 황제 폐하께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만에 하나 신성 왕국 비행선과 성층권 비행선이 교전해 추락했다면, 그냥 두는 건 위험했다.
“비행선이 추락했다면, 대규모 화재 위험이 있어.”
[지역 방위군이 소방관과 경찰들의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방위군이 진입을 막았다고?”
[네.]확실했다.
레온 보나드 황제가 일을 쳤다.
[신성 왕국에서 전시태세가 선포됐습니다.] [신성 왕국 예비대 긴급 소집 확인.] [북부 도시에서 헌터들 무장 확인.] [군용 무기가 신성 왕국 사냥꾼들에 지급되고 있습니다.]신성 왕국이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는 보고였다.
‘외교 채널을 사용하지도 않고 바로?’
아-
그 외교를 담당하던 게 김기순이었다.
신성 왕국 블라디마루 칼린은 김기순과의 연락이 끊기자마자 행동을 시작했고.
벌떡 일어선 덴 브라운이 외쳤다.
“당장! 황제 폐하에게 연결해! 빨리!”
김기순이 죽었다면, 블라디마루 칼린은 보복할 것이다. 죽지 않고 인질로 잡혔어도 마찬가지. 여동생이 사실상 인질이 됐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블라디마루 칼린이었다.
지금 황제는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을 흔들어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을 기회를 노리겠다는 건데.
블라디마루 칼린은 흔들리는 게 아니라, 황제를 죽이고 제국을 남부 연맹처럼 찢어 버리려고 할 것이다. 이대로는 공멸이었다.
[현재 통신 보안 중이라, 연락 불가능합니다.]“통신 보안? 황제 폐하께서 직접 작전에 참여하셨단 말인가?”
[예.]털썩-
이미 시작됐다고?
덴 브라운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이미 시작한 황제의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과 황제를 치워버리는 것뿐이었다.
신성에 빠져 대국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황제를 제거하는 것.
아니면, 황제의 계획이 성공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둘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건, 제국이 온전할 가능성은 없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레온 보나드 황제를 죽인다면? 그걸로 끝날까?
반대로 레온 보나드 황제의 작전이 성공해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는다면?
어느 쪽이건 제국은 끝장이었다.
‘신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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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다다다당–
총성과 함께 사방으로 튀는 탄흔.
나루즈 하나가 잠망경처럼 생긴 장비로 주변을 훑더니 수신호를 보냈다.
[정면에 적!]주먹을 쥐었던 손가락 넷을 편 나루즈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가면 뒈진단다.] [개 같은 능력- 생체 EMP나 마찬가지잖아.] [EMP보다 더럽지, 자기네는 전자장비 쓰면서 우리만 못 쓰게 만드는 거니까.]전자전 능력이라고 해서 재밍 정도를 생각했다가, 아주 학을 떼는 나루즈였다.
[아- 2시 방향에도 적 발견했다.] [나도 느꼈어.]U+ 클론과 비슷하게 나루즈끼리도 링크되곤 했다. 물론 U+는 수직적인 구조로 통제하는 개체가 있었지만, 나루즈는 수평적인 관계인지라 수직적 통제력이나 강제력은 없었다.
U+ 클론의 경우 지휘 개체인 희연을 무력화시키면 그걸로 끝이었지만, 나루즈는 지휘 개체가 당해도 다른 나루즈가 견장을 차면 그만인지라 부대 단위 전투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다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빠른 결정이 날 때는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시간을 잡아먹었다.
지금처럼.
[돌파하자.] [함정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 무조건 돌파해야 해.] [실패하면 그린 순도 그렇고 우리도 전부 뒈지는 데?]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뒈져.] [저 새끼들 생포할 생각 없잖아.]항복하라고 해놓고 바로 총질하는 것을 보면, 항복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방향. 비행선이 비상착륙한 곳에서 작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놈들이 트랩 건드렸어!] [지금이다!] [O.K.]EMP에 제국군 장비가 먹통이 된 순간을 노려 나루즈의 역습이 시작됐다.
“막아- 놓치면 안 돼!”
“포병대. 포병대에 좌표 넣어!”
“화기 중대 전진!”
나루즈 클론 특유의 링크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작한 반격에, 제국군 지역 방위대의 포위망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같이 첨단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일반 제국군이 나루즈를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연약한 여자처럼 보이는 나루즈 하나하나가 사실은 강화 인간, 강화 클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투두두둑-
노심 아머 아니더라도 나루즈가 기본으로 입고 있는 특수 전투복의 방탄 성능은 막강했다. 제국군의 총질을 몇 방 맞고 파고든 나루즈에 제국군 진형이 무너졌다.
“포병 지원 위치. 현재 위치로.”
“······.”
파고든 마루즈에 진형이 무너진 제국군은 순식간에 학살됐다. 몰이 사냥당하듯 시달렸던 나루즈의 손속은 잔인했다.
그리고 그렇게 제국군의 명줄을 끊고 있던 나루즈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20mm 박격포탄을 시작으로 155mm 자주포의 포격까지 이어졌다.
[길 열었으면 그만하고 가자.] [그린 순 그만 때리고 뛰라고.]비상 착륙 때 깊은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기순이었다. 급속 치료제로 상처를 치료했지만, 의식을 잃은 채였다.
짝- 짝-
따귀를 때려도 의식이 없는 기순.
[이거 계속 의식불명으로 있는 거 아니야?] [그만 때리고 가자.]나루즈 넷이 간이 침상에 누워있는 기순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최단거리로 가는 건 위험해.]놈들 비행선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쪽에는 분명 매복이 있을 거야.] [우회할까? 어느 쪽으로?]나루즈가 복작복작 이야기하는 가운데 기순이 깨어났다.
“으- 여- 여긴-”
[오- 우리 지금 도망치는 중이야.]나루즈의 설명이 끝날 무렵. 하늘에서 반가운 지원군이 도착했다.
까악! 까악! (항공지원 왔다!)
까아-까아악! (우매한 인간들아! 우리가 왔다!)
까마귀 폭력단이 나루즈를 추적하는 제국 방위대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구기 시작했다.
“그만- 멈춰- 그렇게 대놓고 폭격하면 어쩌려고?”
힘겹게 일어선 기순이 폭격 중지를 요청했다.
까아아악? (무슨 개소리니?)
뭐라 대답하려던 기순의 눈동자에 비친 하늘은 검은색이었다.
하늘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까아아악
까악
까아아아
수십만이 넘는 까마귀 떼가 제국 방향으로 날아가는 광경.
아-
스르륵 무릎이 풀린 기순이 주저앉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