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22)
러스트 [RUST]-1022
‘황제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하필 화산 인근이라.’
흔적이 남거나 말거나 대놓고 해킹했음에도 찾지 못했던 황제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하필 화산 인근?
이게 우연일까?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해킹으로 이쪽이 제국 황제의 위치를 찾고 있다는 흔적이 남겨졌다. 그러자 바로 황제의 흔적이 나왔다? 이제까지 찾지 못했던 흔적이 갑자기?
‘웃기는 것들이네.’
마루는 냉정했다. 기순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루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어차피 늦었다면 복수하겠다는 다짐이 있었을 뿐.
그건 인질극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였다. 인질범에 끌려다니면 미래가 더 위험해지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질극을 벌인 놈들에게 몇 배, 몇십 배로 갚아줄 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한 원칙은 바꿀 수 없었다. 설령 인질이 된 대상이 기순이라고 하더라도.
다행스럽게 기순이 죽었다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으니. 공격적 대응을 멈출 수도 있었지만, 마루는 그러지 않았다.
‘건드렸다는 건. 건드려 볼 만하다고 판단해서다.’
신성 왕국을 공격할 수 있는 세력은 크게 셋이었다.
제일 처음 떠올린 것은 신세계를 좋아하는 세력. 기순이 자기 멋대로 휴전 협정 맺은 놈들. 식인귀나 흡혈귀로 이뤄졌으며 점조직처럼 각기 세력이 이합 집산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이것들일 가능성은 적었다. 그들은 기술적인 문제로 기순을 공격할 수 없었으니까.
기순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형급 비행선이 필요했다. 그런 비행선을 띄우는 순간. 신성 왕국에 걸리거나, 제국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설령 놈들이 대형급 비행선을 따로 건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기순이 실종된 지역은 신성 왕국과 제국이 국경을 마주한 근방이었다.
‘우리 쪽 영공을 지나가거나, 제국 영공을 통과했다는 건데. 그건 불가능하지.’
그곳까지 들키지 않고 갔다고 하더라도 교전이 벌어지면 반드시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신성 왕국이 교전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위치상 제국은 알 수 있어야 했다. 자국 영토, 영공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분명 알 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기순이 사라지고 제국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는 건. 신세계 놈들이 공격한 것이 아니거나. 제국이 기순의 실종과 연결됐다는 의미.
그건 갈가리 찢어진 채 분열된 남부 연맹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연맹이 신성 왕국에 복수하기 위해 기순을 공격했다고 한들.
신성 왕국과 제국의 감시를 동시에 피할 순 없었다. 그러니 의심 대상을 지워보면 기순을 공격한 건 제국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레온 보나드 황제가 한 걸까?’
제국이 신성 왕국 외교관인 기순을 공격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소거법을 사용해 보면 제국이 공격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덴 브라운은 그걸 알고도 침묵한 걸까? 아니면 모르고 있던 걸까?’
물론 전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랬다. 그리고 마루는 그게 가설인지 정황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성 왕국과 제국을 이간질하려는 자들이 기순을 공격했다고 하기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장에는 군대만 있던 게 아니었다. 소방수와 경찰까지 인근에 있었다.
그렇기에 마루는 까마귀 부대에 내린 공격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아니면? 어쩌라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순이 탄 비행선이 제국 영토에서 공격받은 건 변함 없었다. 기순이 살았건, 죽었건, 공격받은 건 어디 책임?
누가 무엇으로 책임져야 하지?
누군가는 뚜렷한 증거도 없으면서 까마귀 부대로 폭격 명령을 내린 것은, 폭거이자 미친 짓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신성 왕국의 왕은 마루였다.
마루가 공격을 결정했으면 그대로 따르는 게 신성 왕국이었고 신성 왕국의 행동 방침이었다.
[김기순이 긴급회선으로 통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덴 브라운 총리가 긴급회선으로 통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까마귀 군단의 폭격이 성공하자, 덴 아재와 기순이 미친 듯이 통신 요청을 했다.
“전시태세는?”
[현재 헌터들의 무장교체가 이뤄졌고. 분대, 소대 규모로 방어 태세에 들어갔습니다.]“능력 각성한 헌터와 방위군을 공격 부대로 한다. 제국군은 어떻지?”
[제국군 지역 방위대로 보이는 군단이 세 곳에서 집결. 동시에 세 방향을 목표로 기동하고 있습니다.]북부 몬트리올 방면, 북서부 버펄로 방면 그리고 클리블랜드 방면이었다. 이렇게 빨리 대응하다니···.
아니.
이건 대응이 아니었다.
미리 준비된 작전이었다.
‘부대를 셋으로 나눠 동시 진격이라.’
지금 제국군 주력은 남서부 4개 주의 치안을 유지하고, 잔당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추가로 오하이오, 켄터키, 테네시 3개 주를 공략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걸 그냥 두고 지역 방위군으로 편성한 3개 군단을 신성 왕국 방향으로 전개한다고? 마루가 지도를 살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군의 운용. 동시에 7곳에 군을 운용하면서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고 거기에 신성 왕국 방향으로 3개의 군단을 보낸다고?
애초에 베트남 내전 참전도 정신 나간 짓으로 보였다. 당장 7곳에 군대를 쓰면서 베트남 참전이라니···.
‘아니. 처음부터 속이려고 한 것이었나?’
제국군이 남부로 확장하고 있기에, 베트남 파병이 제한적으로 이뤄진다고 믿도록 유도한 것이었다면?
제국군이 북미에서 계속 싸우고 있으니, 신성 왕국과 마찰을 빚을 리 없다고 방심하게 한 것이었다면?
그래서 지금 제국의 주력부대가 오하이오, 켄터키, 테네시를 공략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이 계획된 기만전술이라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면 기만전술이었다.
“현재 신성 왕국 쪽으로 전진하고 있는 방위군의 무기를 확인해봐. 자주포 중심으로”
[클리블랜드 방면으로 이동 중인 적 자주포 확인 실패. 전자전 능력자가 있습니다.] [몬트리올 방면으로 이동 중인 적 확인. 155mm 자주포 36문 200mm 자주포 12문, 400mm 자주포 4문 확인.] [버펄로 방면 적. 155mm 자주포 38문 200mm 자주포 10문, 400mm 자주포 8문 확인.]“그럼 오하이오, 켄터키, 테네시를 공략하는 제국군 편성에 200mm, 400mm 자주포는 얼마나 있지?”
[해킹 결과. 3개 주를 공략하고 있는 부대에는 제국의 신형 자주포 부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레온 보나드가 지휘하는 숙련 부대의 핵심 화력은 200mm, 400mm 자주포. 그게 없다는 소리는 오하이오, 켄터키, 테네시 3개 주를 공략하고 있다는 숙련 부대가 사실은, 숙련 부대가 아니라는 뜻.
긴급 소집해 신성 왕국을 공략한다고 전진하고 있는 방위군이라는 군대는 뭘까? 레온 보나드 황제가 지휘하는 정예 부대라는 의미겠지.
‘정예 부대와 지역 방위군을 바꿔치기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덴 브라운 총리가 긴급회선으로 통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통신이 안 된다면 핵 반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연결할까요?]핵 반격이라. 그걸 무서워할 시기는 지났다. 수상 도시를 만들고 북부 거점 도시를 만들면서 디트로이트는 사실 껍데기만 남았다.
그 껍데기마저도 블라디 아크 타워 하나의 지분이 전부인 상황. 디트로이트에 핵 공격을 가한다고 한들 방어는 충분했고. 설령 제국의 핵 공격이 성공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다.
[김기순이 긴급회선으로 통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국과 전면전을 하면 이익을 보는 건 남부 연맹과 신세계 질서 세력일 뿐이라고, 폭격을 중지해 달라고 합니다. 연결할까요?]“아니. 공격부터. 까마귀 부대는?”
[1차 공습 성공 후.] [비행선에서 재무장 완료. 출격 대기 중.]“바로 출격해.”
[까마귀 폭격부대 2차 공습 시작합니다.]“쥐 부대는?”
[제국 방어군과 교전한 전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전장 정리가 끝나면, 3방향으로 접근하는 제국군을 공격하라고 해.”
[명령 내렸습니다.]개미는 겨울이라서 기동이 힘들었다.
“기순과 연결해. 덴 브라운도 같이.”
[화상 통화 연결합니다.]통신이 연결되는 것과 동시에 기순과 덴 브라운이 동시에 외쳤다.
[전면전 할 생각이야?] [지금 뭐하는 겁니까? 기습 공격이라니!]소리친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삼자대면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제국은 신성 왕국의 외교관이 탄 비행선을 공격했다. 그리고 외교관을 사살하려는 목적이었는지, 생포하려는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군대를 동원해서 포위한 뒤 공격했고.”
비행선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군대를 동원해 공격한 것은 명백히 의도된 행위로 제국은 선전포고 없이 신성 왕국을 선제공격한 것으로 보겠다는 마루의 이야기에 덴 브라운이 반박했다.
[그건. 신성 왕국 버나드 그린이 탄 비행선이 우리 레이더에서 사라진 탓이오. 갑작스럽게 도망치듯 속도를 높이고 스텔스 상태에 들어갔으니 어떻게 됐겠소?] [······.]기순은 덴 브라운의 말에 할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덴 브라운의 감정이 어떻다느니, 황제와 총리 사이의 알력이 있는 게 분명해서 긴급하게 피할 수밖에 없었다느니.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면전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황제와 덴 브라운의 생각이 다르다는 게 확인된 이상.
둘이 합심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았다. 제국을 사랑하는 덴 브라운은 이번 사건을 통해 황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멈추는 게, 효과적이었다. 다른 놈들 좋은 일 시켜줄 일도 아니었고.
[국경을 감시 비행선이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정체불명의 스텔스 기체가 제국 영공에서 추락했으니 수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그래. 그럽시다. 그랬다고 칩시다. 그래서?’ 하는 마루의 눈빛. 무심한 눈빛이었다.
덴 브라운은 마루의 표정을 보곤 자기도 모르게 말을 삼켰다. 기순도 마찬가지였다.
[······.] [······.]잠시간의 적막 끝에 마루가 입을 열었다.
“제국은 황제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덴 브라운은 포기해도, 황제를 버릴 수 없는 게 지금의 제국이었다. 병사들은 황제의 충성을 맹세했고 제국 시민은 황제에 열광했다.
황제가 신성 왕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한다면? 제국은 신성 왕국과 기꺼이 싸울 것이다. 그게 지금 제국에서 황제의 위상이었다.
[특사를 공격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실수···.]“실수라. 실수인지 아닌지 알아봅시다. 황제가 공격을 명령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 보면 되겠지요.”
사이코메트리 에리카로 확인해 보면 그만이라는 말에 덴 브라운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정신계 능력자가 있는 세상에서 거짓말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덴 브라운이 있는 화면에서 급한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부대가 2차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인근에 있던 군수공장이 파괴됐고 보급 창고가 무너졌습니다!’
덴 브라운의 다급했던 눈빛이 변했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빛.
[일방적인 공격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핵 반격을 할 수밖에 없소.]“제국이 핵을 쓴다면 우리도 핵을 쓰면 될 뿐. 그렇게 핵을 쓰고 싶으면 씁시다.”
마치 딴 나라 이야기를 하는 듯한 마루의 태도에 덴 브라운이 질려버렸다.
[미쳤군. 둘 다 미친 작자들이었어.]레온 보나드 황제도 블라디마루 칼린도 제정신이 아닌 새끼들이었다. 제국을 위해서, 아니 인류를 위해서 없어져야 할 놈들이었다.
팟-
덴 브라운의 화면이 끊겼다.
[화상 통신 끊겼습니다. 다시 연결할까요?]“됐어. 그냥 둬.”
마루의 시선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기순으로 향했다.
“제국은 선택했다. 전쟁과 황제를. 우리가 공격을 멈춘다고 황제도 멈출까? 제국 정예 부대 셋이 우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덴 아재가 전쟁을 원하지 않고, 네가 전쟁을 멈추고 싶어도 이미 시작된 전쟁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황제를 잡아야겠지. 그럼 황제는 어디에 있을까?
인도네시아 화산에 남긴 흔적 근처?
아니면 지금 신성 왕국 방향으로 흩어져 전진하는 정예 부대 속?
‘그럼 얼마나 준비했나 볼까?’
마루가 전용 비행선을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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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보나드는 신성 왕국이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해킹했다는 것을 보고받곤 바로 작전을 시작했다.
“싱크홀은?”
[언제든 활성화할 수 있게 준비가 끝났습니다.]“주변에 있는 생물들은?”
[인근을 깨끗하게 비웠습니다.]‘블라디마루 칼린. 놈은 분명 이곳으로 온다.’
꼭꼭 숨었다면 오히려 경계했겠지만, 대놓고 흔적을 남겼으니 분명 확인하러 오겠지.
‘이제까지 놈의 행동 방식을 보면 확실해. 분명히 놈은 직접 확인하러 온다.’
레온 보나드는 긴장감 속에서도 어쩐지 희열을 느꼈다.
능력이 강해지는 선명한 감각.
목숨을 불태우는 믿음과 신앙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제국이여 영원 하라!’
승리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은 신앙을 낳고, 신앙은 황제의 신성을 만드는 순환이 시작됐다.
전쟁으로.
그래.
전쟁이다.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탐지 능력자의 보고입니다. 스텔스 상태의 비행선이 고속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몇 척이지?”
인도네시아 므라피(Merapi) 화산. 흔적을 남긴 그곳을 향해 고속으로 접근하는 비행선이 있다는 보고였다.
[한 척입니다.]“놈이다.”
블라디마루 칼린. 그가 왔다.
레온 보나드의 새파란 눈동자가 빛났다.
“전원 위치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