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26)
러스트 [RUST]-1026
레온 보나드 황제를 향한 권총이 마치 기관총이라도 된 것처럼 불을 뿜었다.
투다다다닥-
고작 1초 남짓한 시간에 쏟아진 총탄.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보이지 않는 역장에 휘어져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덴 브라운인가?”
레온 보나드의 중얼거림은 총성에 파묻혔다. 10m도 안쪽의 근거리에서 쏟아지는 총격이 전부 빗나가는 상황.
총알이 벗겨지듯 빗나감에도 방아쇠를 당기는 자들의 눈빛은 변함없었다. 미친 황제를 죽여야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 가득한 눈빛에 레온 보나드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중늙은이도 신앙을 얻었나?’
아니, 이건···.
덴 브라운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지?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면 진작 암살했을 수 있었다. 병사들이야 그렇다손 치지만, 참모진 중에 섞여 있던 자들은 언제든 암살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당장 전술핵이 터지는 순간을 노렸다면 더 확률이 높았겠지.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블라디마루 칼린을 치자는 계획도 마찬가지, 분명 이들은 분명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했다. 그런데 왜?
덴 브라운 쪽에 심어 놓은 끈의 보고로는 최근 동향이 덴 브라운에게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분명 덴 브라운을 버리고 이쪽으로 갈아탔던 자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랬던 자들이 어째서?
‘정신계 능력인가?’
아니야. 정신계 능력을 썼다면 진작 썼었겠지. 레온 보나드의 시선이 탄창을 갈아끼고 다시 방아쇠를 당겨대는 암살자들을 향했다.
신념이 담긴 눈빛이 있었다.
미친 황제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정의라고 믿고 있는 눈빛.
웅우우우우웅-
특수탄이 레온 보나드 황제의 능력을 파고들었다. 완전히 뚫지 못해 핏- 얼굴과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총탄.
[블라디마루 칼린의 비행선이 고도를 낮추고 있다고 하는데- 도와줄까?]“······.”
[이건 빚이 아니라. 서비스.]콰득- 콰득-
콰드드드득-
다섯 명의 암살자가 단숨에 피 빨린 껍데기만 남았다.
“어디야? 고도 낮춘 곳이?”
[화산 근처. 까마귀 정찰대를 보냈어.]레온 보나드가 정신을 집중했다. 옅게 퍼지는 능력이 마치 레이더처럼 작동했다.
‘내려온다.’
감각에 들어온 비행선과 사방으로 흩어지는 까마귀 떼. 순식간에 3차원 입체적으로 주변 지형과 비행선의 구조. 조금 전 급상승 급가속했던 정보가 뒤섞였다.
“지금. 화산 폭파하라고 해.”
[화산 폭파.]쿠르르르릉-
폭발에 의한 대규모 분출.
화산탄과 화산 암괴가 사방으로 튀었다.
갑작스럽게 폭증한 정보에 뇌가 익어버릴 것 같은 고통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닦은 레온 보나드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흐읍-
낮은 신음을 삼킨 그의 머릿속에 펼쳐진 광경.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에 필사적으로 회피 기동하는 흰색 비행선이 있었다. 화산탄과 화산 암괴를 보호막으로 버티고 고도를 높이려 했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화산쇄설물 때문에 실패하는 모습.
고도를 낮춰 밀림 사이를 고속 돌파하려고 하는 장면에 레온 보나드가 외쳤다.
“와투 가쟈(Watu Gajah)- D5를 중심으로 12시 방향.”
속사포 랩 하듯 순식간에 세부 좌표를 부른 레온 보나드의 발사 명령을 간신히 따라 읊은 빨간 여자가 답했다.
[—발사!]백색의 우아한 비행선 근처에 쏟아지는 20발이 넘는 200mm 탄두. 최고 고도에서 내려꽂히는 특수탄에 레온 보나드의 능력이 개입했다.
먼 거리라 아주 미약한 힘이지만, 탄두의 방향을 미세 조종하기에는 충분한 힘. 본래대로라면 전부 빗나갔어야 할 탄도가 휘어지며, 화산 폭발 여파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백색 비행선을 덮쳤다.
포격 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는 듯했다. 한 방, 두 방, 셋, 넷···. 그리고 다섯 방째 방어막이 깨진 비행선이 휘청거렸다. 엔진에 타격을 입었는지 비척거리는 모습.
“지금!”
코피를 줄줄 흘리며 레온 보나드 황제가 마지막 좌표를 불렀다.
[발사!]20발이 넘는 특수탄이 상처 입은 비행선을 찍어눌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몸을 비틀며 직격을 피하는 비행선. 하지만 엔진이 하나씩 꺼지며 결국 속도를 잃었다.
‘죽어라- 이제- 그만 죽어-’
핏- 코피가 터진 것도 모자라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귀에서까지 피가 나오기 시작한 레온 보나드의 머릿속에 너덜너덜하게 변한 비행선이 불시착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감각으로 비슷하게 알 수 있었지, 이렇게 뚜렷한 느낌은 없었는데.
환영인가? 환각?
[이건 빚으로 하죠.]지켜보던 빨간 여자가 진정제와 수면제를 섞었다.
“주- 주-”
‘죽은 걸 확인해야 해.’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푸쉿-
목덜미가 따끔한 느낌과 함께 레온 보나드의 의식이 가라앉았다.
‧
[방어막 파괴.] [적 탄도 연산 불가능.]보조 인공지능으로 탄도 궤적을 연산해 회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화산 폭발로 쏟아지는 화쇄류를 회피하는 것도 미치겠는데, 거기에 집중포격이라니. 놈들 전술핵에 쓸려버린 게 아닌가?
“포격 위치는?”
[탄도가 휘어서 역산 불가능합니다.]화산 폭발로 그렇지 않아도 센서가 엉망인데, 화산까지 폭발하면서 포탄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1번 엔진 고장.] [5번 엔진 기능 상실.] [2번 엔진 고장.] [6번 엔진 화재.]순식간에 줄어드는 속도.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동시에 더욱 집중되는 포격. 좌우 옆으로 온몸을 비틀어 직격을 피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흰 대리석처럼 고아했던 비행선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터진 넝마로 변했다. 비행선이었기에 지금까지 버텼지, 일반 비행기 구조였으면 진작 끝났을 상황.
쯧-
마루는 재빨리 지도부터 확인했다.
“구명선 준비해.”
[탈출선 준비 완료했습니다.]“나는 바로 놈들을 들이칠 테니. 벙커 만들고 버텨.”
[비상 벙커 전개. 비상 시설 구축. 거점 방어 모드로 지키겠습니다.]마루가 핵 전지 오토바이에 앉았다. 높은 경고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는 해치, 짙은 화산재와 먼지가 열린 해치로 밀고 들어왔다.
푸훅- 후-
스읍- 후-
뉴클립스를 오토바이 옆에 끼운 마루가 엑셀을 당겼다.
기이이이잉-
마루가 나가고 나서도 수백 미터를 더 밀고 나간 비행선이 그대로 벙커를 전개했다.
쾅- 쾅- 쾅!
추락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반원으로 볼록 올라온 벙커 위로 제국군의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포격 속에서 슬쩍 빠져나온 비상 탈출선이 초저공으로 날아 장소를 피했다.
[적 포격 회피.] [안전지역 확인합니다.] [화쇄류. 직격을 피할 언덕 확인.] [레이저 벌목 시작.] [거점 제작 개시.] [거점 방어시스템 구축.]비상착륙한 비행선을 담은 벙커 인근, 또 하나의 동그란 구조체가 순식간에 건설됐다.
위이이이잉-
비상 거점을 뒤로한 채, 마루가 탄 오토바이가 우박처럼 떨어지는 화산쇄설물을 뚫고 내달렸다.
파각-
오토바이 발판에서 치솟은 검은 넝쿨이 화산석을 쳐냈다.
파각- 파가각-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시속 50km~60km의 속도를 유지하는 마루. 죽음의 영역을 좁게 펼치고 그림자 쥐를 내보내, 시각을 대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사용하면서 죽음의 소모를 최대한 줄였지만, 죽음의 정원을 펼치고 걷는 과정에서 생기는 소모는 필연적이었다.
그림자 쥐도 마찬가지. 죽음의 정원 밖으로 멀리 나가려면 죽음을 넉넉하게 채워 넣어야 했는데, 최소한으로 사용하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사라졌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죽음이 소모됐지만, 마루는 걱정하지 않았다. 죽음의 정원과 그림자 쥐로 근처에 있는 생명을 수확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걸.’
분명히 동물이나 곤충이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화산이 터졌다고 해도 땅속에는 쥐가 있는 게 정상 아닌가? 개구리나 뱀이라도? 그게 아니라면 벌레라도 있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쯧-
‘수색 영역을 줄여야 하나? 영역을 줄이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멀리서 울려 퍼지는 포성(砲聲).
놈들의 포대가 살아있고, 탄도의 궤적이 변했다면 레온 보나드 황제가 근처에 있다는 뜻.
‘어차피 화산이 터졌으니 놈도 당장 탈출할 순 없어.’
비행선으로 도망칠 수 없을 때 잡아야 했다.
‘화산 폭발로 발을 묶겠다고 했으니, 놈들도 당해봐야지.’
자신의 발을 묶었다면 황제와 제국군의 발은 멀쩡할까?
화산 폭파로 제국군 자주포도 발이 묶였겠지. 발이 묶인 놈들을 찾기만 하면 끝.
‘근처에만 있어라. 근처에만.’
검게 피어난 죽음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가 짙은 먼지 안갯속으로 파고들었다.
‧
까악! (찾았다!)
까아악! (싱크홀이다!)
까악깍! (자주포와 벙커가 있다!)
찾았으니 돌아가자.
그렇게 까마귀 정찰대가 돌아온 곳에는 있어야 할 비행선이 없었다.
이거 어쩌지?
정화통 시간이 부족해.
정화통 남을 거로 화산지대 밖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
주변을 살펴보니 포탄 구덩이가 곳곳에 보였다.
그러니까 제국군의 공격을 받아 떠났거나 추락했을 수도 있다는 뜻.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가만히 있다 추락하라고?
공격받아서 도망친 걸 수 있지.
여기서 기다리자고?
정화통 시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까마귀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까악! 까악! (그만! 수색한다.)
지휘를 맡은 까마귀가 결정을 내렸다. 비행선이 폭발했다고 해도 보급 상자까지 전부 날아가진 않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마루의 비행선을 찾기 위해 떠나려는 찰나, 다른 곳을 정찰했던 까마귀들이 돌아왔다.
까아악! (큰일이군!)
까아악. (우리도 자주포와 제국군을 찾았어.)
까악까아악 (저쪽은 다 죽고 몇 명 없더라.)
까아악-깍깍- (그냥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 먹는 인간도 있더라.)
정찰, 수색은 성공이었다.
다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을 뿐.
까아악! (전부 같이 간다.)
정화통 때문에 질식해 죽는 건 사양이었다.
후드득-
몸을 털자 우수수 떨어지는 화산재와 먼지.
조금이라도 깃털을 가볍게 한 까마귀 무리가 비행선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정화통이 완전히 막히기 전, 임시 거점을 찾는 데 성공한 까마귀 정찰대를 보조 인공지능이 반겼다.
[잘했습니다. 현재 폐하께서는 직접 적을 잡으러 가셨습니다.]그러니까 너희들이 찾은 정보 왕님에게 전달하러 나가렴.
[위치를 알았으니 공습하면 유리할 겁니다. 갈 때 핵 수류탄으로 무장합니다.]보조 인공지능이 마루가 있을 곳으로 예측되는 지역을 브리핑했다. ‘갈 때 핵 수류탄.’이라고 가볍게 명령하는 보조 인공지능을 보며, 까마귀들이 서로 바라봤다.
지금 막 돌아왔는데 또 나가라고?
이거 그냥 없애버릴까?
“······.”
“······.”
‘이번에 새로 잡은 신성 코끼리의 고기 육포라거나.’ 그런 것 말이죠.
보조 인공지능의 말에 까마귀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르르- 몸을 먼지와 화산재를 털어내고 깃을 다듬었다.
까아악! 까아아아악! (자- 특식이다! 놈들은 제공권이 없으니 금방 끝나는 일이야!)
지휘 까마귀가 사기를 끌어 올렸다.
까아악! (특식이다!)
까아아! (빨리 끝내자고!)
비상식량으로 체력을 보충한 까마귀들이 왕님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
뿌득-
비트에 숨어있던 제국군이 죽음의 넝쿨에 휘감겼다. 순식간에 생기가 빠지는 병사의 눈에 보인 장면은 마찬가지로 넝쿨에 감겨 거름으로 변하는 제국군의 모습이었다.
비명도 없었다. 반항도 없었다.
그저 뼈가 부러지고 비틀리는 소리와 마지막 숨소리뿐.
순식간에 비료 창고로 변해버린 비트를 돌아본 마루가 정화통을 교체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지만, 비트만 잡았지 놈들의 자주포 부대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심기가 불편해진 마루였다.
‘흡수하는 것보다 소모되는 게 너무 많아. 넝쿨을 쓰지 말고 직접 손을 써야 하나?’
다행인 것은 제국군도 통신이 끊겼다는 점이었다.
첫 비트를 밀고 다음 비트를 공격했을 때, 분명 경계 태세가 강화됐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첫 비트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전술핵 폭격으로 통신기가 고장 났고, 텔레파시 능력자가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고민하는 마루의 귓가에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응?’
가시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저공 비행하는 까마귀가 화산재와 먼지를 뚫고 마루를 발견했다.
까아아악! (여기다! 왕님이다!)
화답하는 것처럼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까마귀 소리.
까아악! (자주포 부대의 위치와 놈들의 거점을 찾았습니다!)
마루를 발견한 까마귀가 제국군의 상황을 설명했다. 완전히 전멸에 가까운 곳도 있고, 제법 많이 살아남은 부대도 있다는 정보.
“싱크홀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까악! (그렇습니다!)
“붉은색 장막으로 보호되는 곳이 있고?”
깍! 까아악 (넷! 피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피로 만든 붉은 장막이라.
흡혈귀와 거래한 건가?
떠오르는 건 흡혈귀였다. 전술핵이나 핵 수류탄의 화력을 막으려면 고위급 흡혈귀가 있다는 이야기.
시작은 화산 폭발이었고.
싱크홀에 흡혈귀까지?
불길한 미소를 지은 마루가 모여든 까마귀에게 명령을 내렸다.
‧
정신을 잃었던 레온 보나드는 차가운 느낌에 눈을 떴다. 뻑뻑하게 굳은 피딱지가 눈곱처럼 떨어지며 뿌옇던 시야가 점점 돌아왔다.
“놈은 죽었나?”
[아니.]언제나 여유로웠던 빨간 여자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우리 애들 동시에 신호가 끊겼어.]“······.”
비상사태를 대비해 놓은 식인귀와 흡혈귀들이 전부 동시에 신호가 끊겼다고?
[핵 수류탄 폭격이야.]“뭐?”
블라디마루 칼린의 비행선을 격추했는데? 또 다른 비행선이 왔다는 건가?
[그리고. 싱크홀 괴물이 이쪽으로 몰려왔어.]‘우린 포위됐어.’
빨간 여자의 말에 레온 보나드가 능력을 사용했다. 3차원 입체 레이더같이 주변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사방이 불사의 괴물로 가득 차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