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27)
러스트 [RUST]-1027
마루는 바글바글 모여든 싱크홀 괴물을 붉은 장막이 있는 곳까지 유인했다.
죽음의 정원으로 감싸서 죽이는 방법 있었지만, 상대는 레온 보나드. 흡혈귀까지 데려온 것을 보면 어떤 카드가 남아있을지 몰랐다.
정찰 까마귀의 말대로라면 흩어진 제국군에도 식인귀나 흡혈귀로 보이는 자들이 하나둘씩 섞여 있다고 하니, 지배력을 통한 정보 전달 가능성도 있는지라 조심하는 게 맞았다.
‘폭격으로 동시에 치는 게 맞아.’
삑- 삐-
점멸하는 시계가 공습 개시 시간을 알렸다. 멀리 여러 곳에서 동시에 시작된 폭음이 공습 성공을 축하하는 듯했다.
팍- 한쪽 팔을 잃은 제국군이 온 힘을 짜내 붉은 장막 위로 달려갔다. 일렁이는 붉은 장막을 보호막 능력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몸을 밀어 넣는 제국군.
“놈입니다! 놈이 왔습니다.!”
보호막 능력자의 능력이라면 같은 편을 막을 리 없었으니. 블라디마루 칼린이 몰이 사냥을 하듯 제국군을 몰고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그렇게 붉은 장막에 닿는 순간, 피가 통째로 빨리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억-
덧없는 비명과 함께 쭈글쭈글하게 쪼그라든 생명이 꺼지는 모습에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라도 장막이 열리면 바로 뛰어들 생각이었는데.
쯧-
한쪽 팔이 잘린 부상병이지만, 지혈은 확실했다. 생명력이 강한 능력자를 빨아먹는 힘을 볼 때, 붉은 장막은 확실히 고위급 흡혈귀의 고유 능력이 맞았다.
‘······.’
까마귀 정찰대가 정찰한 게 맞았다. 다른 부대에는 레온 보나드 황제로 보이는 인물이 없었고. 부대 내부를 정찰할 수 없었던 곳은 붉은 장막이 펼쳐진 여기 한 곳뿐.
‘레온 보나드와 고위급 흡혈귀가 손을 잡았다면, 어째서 부상병을 흡수했지?’
앞선 희생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마루가 몰아온 제국군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붉은 장막을 향해 뛰었다.
“다 왔다!”
“조금만 더!”
“폐하 놈입니다!”
“놈이···. 블라디마루 칼린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억!
엎어지면서 다리가 접질렸는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병사가 살려달라며 소리 질렀다.
“도와줘! 살려줘!”
그리고 그 뒤를 달려드는 불사의 괴물. 쩔뚝이는 병사를 구하려고 몇 명이 몸을 돌렸지만, 장교가 악문 소리로 만류했다.
“늦었어···.”
“······.”
“······.”
끄아아아아-
절뚝이던 병사 피고름이 질질 흐르는 싱크홀 괴물에 잡히자,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희생자의 전신을 파고드는 감염. 감염과 동시에 이뤄지는 침식. 생살을 찢는 듯한 비명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 고통에 몸부림치던 소리가 어느새 생명을 탐하는 소리로 변해버렸다.
아으어어어어어-
어지간한 질병에 내성 있는 능력자임에도 3~4초 남짓한 시간에 변해버리는 모습에 도망치던 제국군이 치를 떨었다.
“빌어먹을···.”
“거기 서서 뭘 하고 있어! 빨리 들어가!”
붉은 장막 근처에 멈춰선 병사들을 향해 장교가 버럭 했다.
“색이 이상합니다.”
“이거 붉은색입니다.”
“빨리 들어가!”
“그냥 장막이야!”
“우리가 들어가면 열겠지.”
“그냥 뛰어!”
제국군이 싱크홀 괴물을 피해 붉은 장막으로 뛰어들었다. 마루는 나무 위에서 붉은 장막이 열리는 순간을 노렸다.
‘이번에는 열겠지, 한두 명도 아니고.’
하지만 붉은 장막은 열리지 않았다. 제국군이 붉은 장막에 닿자, 그대로 피의 창이 솟아나 제국군을 꿰뚫었다.
끄악-
어윽!
순식간에 뾰족한 피의 창이 솟아나 부상병들을 쑤셨다. 그건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대부분 능력을 각성한 제국군이었지만, 근거리에서 찌른 피의 창을 피한 자는 없었다.
으아아악!
끄아아아-
한 번 찔리면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빈 껍데기로 변해버리는 모습. 몸통이 아니라 팔다리에 스치듯 박혀도 똑같았다. 장막이 열리면 그 틈을 타 돌입하려고 했던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아챘나? 그렇다고 해도 흡혈귀 먹이로 던져줄 줄이야.’
이곳에 있던 제국군은 대부분 능력을 각성한 병사들이었다. 그러니 소중한 전력일 텐데 수십 명이나 하는 병력을 전부 죽이다니.
‘그것도 그렇지만, 흡혈귀의 능력도 위험하군.’
제일 단순한 신체 능력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보다 몇 배는 강했다. 그런 병사가 볼펜보다 가느다란 피의 창에 살짝 찔렸다고 바로 무력화되다니.
‘마비나 경직인가?’
어쨌거나 흡혈귀의 능력에 스쳐도 위험하다는 걸 알았으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알게 된 또 하나.
‘레온 보나드 황제가 지휘한 전장에서는 의미 없이 희생되는 병사가 없다더니···.’
반대로 생각해 의미가 있다면, 병력 손실에 거리낌 없는 타입이라는 건가?
한쪽의 포대가 전멸하더라도 남은 포대만으로도 작전할 수 있게 함정을 설계한 것을 봐도 그렇고.
비트를 배치한 방식과 흡혈귀가 피의 장막을 이용해 부상병을 흡수하는 데도 따로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랬다.
쯧-
이렇게 흡혈귀 도시락이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몇 명만 남기고 전부 수확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마루였다.
‘아니지. 아니야.’
그렇게까지 가는 건-
후-
마루는 호흡을 골랐다.
인간을 단순한 신앙 셔틀이나 죽음의 밥으로 생각한다면 놈들과 다를 바가 뭐란 말인가?
죽여야 한다면 죽인다.
이미 십만 단위로 무장 난민을 죽였다. 그러니 죽여야 할 상황에서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죽이는 이유가 흡혈귀 놈들과 같게 되는 건 아니었다.
‘기분이 더럽네.’
흡혈귀 놈들과 엮이면 이래저래 기분이 더러웠다.
퉷-
수십 명에 달하는 제국군을 흡수한 붉은 장막은 더 진한 색으로 변해있었다. 그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기 시작한 싱크홀 괴물.
미친 듯이 달려들 줄 알았던 불사의 괴물들은 동료가 넉넉하게 모이기 전까지 달려들지 않았다.
‘확실히···. 이것들 반응이 조금 변했군.’
맨 처음 봤을 때는 아무런 지능도 없이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움직임에 목적이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은 단순한지라 정교한 전술, 전략적인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기다림이나 포위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건 확실히 주의해야 했다.
수백이 수천으로, 수천에서 순식간에 만 단위의 싱크홀 괴물이 붉은 장막을 둘러쌌다. 죽음을 모르는 불사의 괴물이 이 정도로 많다면 마루도 쉽지 않은 숫자였다.
‘어떻게 할 거냐?’
이대로 계속 늘어나는 불사의 괴물을 두고 볼 건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싱크홀로 돌아가는 특성을 이용해서?
‘싱크홀 괴물이 공격하지 않고 포위했던 것을 얌전히 풀고 돌아간다는 걸 전제로 한 방법인데 그렇게 돌아갈 꼴이 아니었다.
그우워어어어-
그아아아아아-
인간과 동물, 곤충이 변한 불사의 괴물이 파도처럼 붉은 장막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
붉은 장막 건너, 제국군 병사들이 도망쳐오는 게 느껴졌다.
[있잖아. 어떻게 할까? 한 번 열면 다시 펼치는 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제국군 뒤를 추격하는 싱크홀 괴물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무엇.
그 기운은 분명 이질적이었다. 흡혈귀도 능력자도 아닌 무엇. 레온 보나드는 본능적으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
[?]“놈이 근처에 있다.”
[그럼?]함정 부대와 동시에 연락이 끊겼다면.
‘까마귀군. 까마귀 폭격으로 동시에 공습했어.’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위치 정보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싱크홀 괴물이 이쪽으로 몰려든 이유는 하나였다.
“놈이 우리 병사를 이용해 싱크홀 괴물을 유인했다. 그리고···.”
[그렇구나. 그 괴물이 근처에 있다면 우리가 장막을 열 때를 노리려고 하겠네? 그럼 어떻게 할까?]빨갛게 미소 짓는 여자가 레온 보나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그러니까 먹어도 괜찮지?’ 하는 미소 속에 숨겨진 동류를 보는 듯한 눈빛.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게 너의 본성이라는 듯한 여자의 눈빛에 레온 보나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 남은 애들 때문에 그래? 장막 밖에서 생긴 일은 모르는데.]“······.”
[우리가 하는 소리도 못 듣고.]“······.”
[그럼 알아서 할게.]“······.”
잠시 뒤, 레온 보나드의 머릿속에 있던 수십 명의 반응이 사라지곤 붉은 장막이 더욱 진해졌다.
[어떻게 할 거야? 지금이라면 포위를 뚫고 가는 건 가능한데. 밖에 그게 있다며?]“놈도 싱크홀 괴물을 감당할 힘이 없어.”
[어떻게 알아?]“힘이 넉넉했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았겠지.”
그런가? 하며 장막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결정 빨리해. 알겠지만 싱크홀 괴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 도망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는 게 좋아.]레온 보나드는 갈등했다.
여기서 이대로 도주한다면, 블라디마루 칼린을 이렇게 놓친다면 또 기회가 있을까? 기회가 생긴다고 한들 실행할 수 없었다. 대부분 능력자로 이뤄진 최정예군단이 전멸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제국에 남겨둔 정예병도 전멸한 상황. 이 소식이 퍼지면 신앙을 모일 수 있을까? 신성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걸 떠나서 지금 이대로라면 신성 왕국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제국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덴 브라운과는 끝났고. 남은 방법은 전략핵으로 신성 왕국을 협박하는 것밖에 없었다. 같이 죽자는 협박. 아니면 전략핵으로 선제 타격해 공멸로 끌고 가는 방법뿐.
하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을 여기서 잡는다면?
놈을 잡을 수만 있다면 막판 터치다운 역전이었다.
[역전? 있잖아. 그게 지금 가능하다고 생각해?]밖에 싱크홀 괴물이 만 단위로 쌓이고 있는데?
“이 보호막. 근거리에서 전술핵이 터져도 버틸 수 있나?”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터진 여파는 거뜬하게 막았었다. 레온 보나드의 질문에 빨갛게 웃는 여자.
[위력이 강한 건 힘들고. 아까 터진 것과 비슷한 위력이라면···.]“결론만.”
잠시 뭔가를 가늠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남은 애들 전부 흡수한다면,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어.]“······.”
이곳에 있는 전부를 제물로 바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레온 보나드가 새파란 눈동자로 밖을 돌아봤다.
흡혈귀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병사들을 전투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황제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모습들.
불사의 괴물이 포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혼란스러움은 없었다.
근거리에서 터진 전술핵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기에.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고 했던 악종들도 전부 죽었기에.
병사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황제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겠다는 듯 바라보던 레온 보나드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탈출한다고 해도 병사들 가운데 몇 명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 많은 희생을 뒤로하고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이곳에서 죽은 병사들의 희생은 무엇이 되겠는가?
블라디마루 칼린을 잡을 수 있다면, 신성 왕국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터. 이후 신성 왕국의 유산을 흡수하는 것으로 모든 손해를 만회할 수 있었다.
‘놈을 죽이면 놈이 가진 신앙과 신성도 내 것이 된다.’
죽음의 신마저 죽인 전쟁의 신, 승리의 신. 그리고 대제국의 영원한 황제.
“블라디마루 칼린. 놈을 이곳에서 죽인다.”
레온 보나드의 대답과 동시에 여자의 붉게 빛나는 동공이 전투 준비를 마친 제국군을 향했다.
콰득- 콰드드득-
핏물에 잠긴 것처럼 사방에 피 냄새가 진동했다.
‧
싱크홀 괴물이 붉은 장막에 닿자, 고기에 염산을 뿌린 것처럼 소리가 끓어올랐다.
치이이익-
그우으워어어억-
강산 특유의 냄새와 산에 타는 단백질 냄새가 뒤섞이며 허연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아아아아아아-
치이이익-
마루는 장막이 뚫리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갑자기 두꺼워진 장막. 붉은 비단처럼 일렁이던 장막이 갑자기 변했다.
‘두께가 변했어?’
두께만 변한 게 아니었다. 널찍하게 펼쳐졌던 장막이 그 범위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마치 풍선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확 줄어드는 장막.
장막이 줄어들면서 제국군 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이 벙커와 바리케이드, 참호와 자주포. 지대공 미사일 포대와 지대지 미사일 포대까지 전부.
‘?’
마루는 강한 위화감이 들었다.
장막을 거두고 싱크홀 괴물과 싸우려고 했다면, 당연히 제국군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제국군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루의 시야에 들어온 건. 참호와 바리케이드 뒤에 있는 전투복 더미. 바닥을 구르고 있는 텅 빈 헬멧과 엑소슈트였다.
‘텅 비었다고?’
그럼 사람은?
두근–
붉은 장막이 점점 더 짙어지고 두꺼워지고 있었다.
송송 맺히는 식은땀.
두근두근두근—
경고하는 듯 뛰는 심장.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마루가 반응했다.
촤릭-
발에서 피어난 넝쿨이 투석기처럼 마루를 던졌다.
부우우웅-
쇄애애액-
그리고 번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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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태양이 대지를 불태우며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