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28)
러스트 [RUST]-1028
붉은 장막이 점점 더 두꺼워졌다.
“음?”
레온 보나드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위치 정보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능력이 약해진다?’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피의 장막이 두꺼워지면서 외부를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래서는 놈이 접근하는 걸 확인한 뒤 터뜨릴 수 없어.’
‘···그렇다면 위력을 높이는 수밖에.’
최소 10킬로톤에서 최대 340킬로톤까지 위력을 조정할 수 있는 B-61 핵폭탄의 개량형. 해외 미군이 제국에 귀의하면서 가져온 핵폭탄이었다.
“위력을 좀 강하게 터뜨려야겠는데. 버틸 수 있겠나?”
[어느 정도로?]레온 보나드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핵폭발 범위가 떠올랐다.
“100에서 120킬로톤 정도.”
[있잖아. 그게 어느 정도 위력인지 모르겠어. 아까 터진 것과 비교해서 말해줘.]신성 왕국이 터뜨린 전술핵은 30에서 40킬로톤 정도였다. 그러니 3~4배라고 해야겠지만, 레온 보나드는 그 이상을 말했다.
“5배 이상.”
[미쳤어? 정말이야?]“놈을 확실히 잡으려면 핵폭발 시 발생하는 열구(熱球) 범위에 넣거나 가깝게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어.”
죽이려면 확실히 해야 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은 분명 신앙을 받아먹고 있었다. 놈의 능력이 어디까지 강화됐는지 모르겠지만, 핵폭발이라면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피의 장막이 확실히 막아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340킬로톤을 꽉 채워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너지가 생각보다 넉넉해서 2배? 3배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그렇지 않아도 제법 강한 능력자들까지 흡수해서 그 이상을 버틸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이었다면 만 단위를 흡수해도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장막의 두께를 균일하게 하지 않고, 폭발 방향으로 두껍게 한다면?”
[버틸 수야 있겠지만, 일반적이 폭발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그 열구인가? 그 반경 안에 들어가는 건데. 얇은 부분이 버틸 수 없을 텐데.]빨간 여자의 말대로였다. 레온 보나드는 심호흡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
점점 더 두꺼워지던 장막이 어느 순간부터 더 두꺼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충격에 상쇄되기 시작한 것.
“밖의 상황은 어떻지?”
[좋지 않아. 싱크홀 괴물이 장막을 공격하기 시작했어.]싱크홀 괴물의 피고름이 닿으면 강산을 뿌린 것처럼 장막이 손상됐다. 거기에 생명력으로 만들어진 장막을 감염시키고 침식하려는 힘까지. 싱크홀 괴물의 압박은 예상보다 더 강했다.
설명을 들은 레온 보나드는 현실과 타협했다. 전술핵의 위력을 조절한 그가 타이머를 세팅한 뒤 빨간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풍선이 꺼지는 것처럼 훅 줄어드는 장막. 붉은 장막이 줄어들면서 범위 안에 있던 장비들이 장막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싹 달라붙었던 불사의 괴물은 갑자기 밀어붙이던 장막이 쑥 뒤로 후퇴하자, 그대로 엎어져 다른 괴물에게 짓밟혔다.
쓰러지고 밟히고 꺾이는 도중에도 범위를 줄여가며 더욱 짙어지고 단단해지는 장막. 이제는 장막이라기보다 장벽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붉고 단단해 보이는 반구형 돔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폭발.
한계까지 쥐어짠 장막을 녹일 듯, 조그만 태양이 지표에서 떠올랐다. 한계까지 조절한 전술핵이었지만, 거의 100킬로톤에 육박하는 전술핵의 위력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진 핵폭탄의 5~6배가량의 위력.
만 단위가 넘는 불사의 괴물들이 장막을 포위한 채 바글바글 몰려있던 탓에, 핵폭발의 중심부에 모여있었다.
아무리 열에 강한 싱크홀 괴물이더라도 근거리에서 터진 핵폭발의 열기를 버틸 순 없었다. 그대로 기화됐고 바닥의 얼룩으로 변했다.
치이이이익-
피의 장막이 줄어들고 줄어들면서 열기와 충격을 상쇄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피. 기화되는 혈액. 검게 변해 떨어지는 피딱지 가루.
끔찍한 핵폭발 끝에 레온 보나드의 머릿속에 위치 정보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의 장막이 거의 벗겨졌기 때문이었다.
‘놈은?’
레온 보나드는 얼룩덜룩 얼룩진 머릿속에서 이질적인 무엇을 찾았다. 핵폭발 전에 그것이 있던 위치엔 아무것도 없었다.
‘······.’
주변을 살펴도 없었다.
분명 이질적인 놈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하- 이겼다.’
있는 것이라고는 싱크홀 괴물의 흔적뿐.
[있잖아. 이제 더 버틸 수 없어.]“잠깐만 더 버텨.”
레온 보나드는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에 날아간 부품을 교체한 엑소슈트를 장비했다.
“밖은 호흡하기 힘들 거다. 너도 챙겨입어.”
[이건 빚이 아니다?]“알았다. 이번 빚은 꼭 갚지.”
[좋아. 빚은 2개야?]처음 신성 왕국 전술핵이 떨어졌을 때 한 번.
그리고 조금 전 핵 터뜨린 거 한 번. 그래서 두 번.
“그렇게 하지. 그리고 본국에 전달해 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
[줄줄이 길게는 못해. 에너지가 부족해서.]“황제 암살 기도로 덴 브라운 사형시키도록.”
블라디마루 칼린을 처리한 이상 덴 브라운을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게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덴 브라운은 죽이는 게 맞았다.
‘저쪽에서 대놓고 이빨을 드러냈으니, 시간 끌 필요 없겠지.’
[전달했어. 이젠 힘들어.]“오케이. 그럼 가지.”
여자가 능력을 풀자, 얇게 버티던 피가 흘러내리며 열기에 타버린 장막이 무너졌다.
푸스스슥-
사방은 불바다. 녹아버린 흙과 모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 거대하게 피어오른 버섯구름이 보였다.
어쩐지 비현실적인 광경.
이렇게 코앞에서 핵이 터졌는데도 살아남다니.
레온 보나드의 차가운 표정이 잠시 풀렸다.
그 잠시 풀어진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
바글바글 몰려들기 시작하는 싱크홀 괴물은 그렇다고 치고. 무언가 고속으로 접근하는 게 있었다.
시속 120km~130km 사이의 속도로 날아오는 물체.
모양은 원형.
날개도 없고 따로 가속 능력도 없었다. 마치 돌멩이를 던진 것 같은 궤적.
‘이 애매한 건 뭐지?’
머리 위를 지나쳐 날아가는 궤적인지라 더 그랬다.
[있잖아. 저기 뭔가 다가오는데?] [머리 위로 지나가는 궤적이다.철컥-
레온 보나드가 엑소슈트의 무장을 점검했다.
여자도 엑소슈트의 탄창을 확인하곤 날아오는 물체를 겨눴다.
핵폭발로 화산재와 먼지가 사라졌던 하늘이 서서히 다시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공간 속으로 검은색으로 동그란 구체가 야구공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설마···.]점점 가까워질수록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레온 보나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감각.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분명 핵을 터트리기 전에 느꼈던 그 감각.
이 느낌은 그것. 그놈이 뿜어내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쏴!]레온 보나드의 엑소슈트가 검은 구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여자도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향해 발포했다.
[뭐야? 뭔데 그런데?] [아니야! 있을 수 없어!]HUD(Head-Up Display)에 확대된 검은 구체는 뭔가 이상한 구조였다. 울퉁불퉁한 표면은 돌돌 동그랗게 말린 실타래 같았다.
‘실타래?’
저거 실타래가 아니라- 넝쿨 아니야?
넝쿨? 검은 넝쿨?
[저기 있잖아. 저거 그거 아니지?] [쏴!]날아오던 구체가 촤악- 공중에서 거미줄처럼 펼쳐졌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것이 급감속하면서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팍-
특수탄이 넝쿨 잎을 두들겨 댔지만, 속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레온 보나드가 능력을 발휘해 낙하 위치를 비트는 순간. 넝쿨이 검은 입자로 사라지며 그 괴물이 보였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죽어!]레온 보나드의 절규를 타고 내려오는 검은 죽음. 붉은 여자가 반사적으로 피의 창을 만들려 했지만, 달궈진 땅에 피가 흘러내리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검은색 벼락이 내리꽂혔다.
[으아아악- 쏴!]레온 보나드 특유의 능력으로 궤도가 비틀어져, 옆에 떨어진 마루가 그대로 뉴클립스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검은색 반원으로 잔상을 남긴 검격이 일렁이는 공간에 비틀려 위로 살짝 떠올랐다. 그 비틀린 틈을 파고든 붉은 창을 검은 넝쿨이 막아섰다.
퓨슈슉-
파다닥-
핏물로 만들어진 창에서 가지가 찌르듯 솟아났고, 검은 넝쿨은 솟아난 붉은 가지를 휘감아 비틀었다. 팽팽한 대치의 순간.
[붙잡고 있어!]레온 보나드가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하늘로 쏜 미사일이 급격히 방향을 바꿔 탑 어택 형식으로 마루의 머리통을 노린 것.
마루의 발밑에서 추가로 펼쳐진 넝쿨이 머리 위를 막으려 하자, 가지처럼 뻗어난 붉은 가지가 꿀렁- 뱀처럼 변해 검은 가지를 휘감아 내렸다.
길이 열렸다.
괴물 새끼를 잡을 길이.
[죽어라!]이제 좀 죽어!
수직으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능력으로 급가속시킨 레온 보나드의 동공에 비친 검은 실선.
▬▬▬▬▬▬▬▬▬▬▬▬▬▬▬▬—-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그어진 실선이 미사일을 쪼갰다. 수직으로 그어진 궤적에 있는 모든 것이 절단됐다.
피로 만들어진 창과 가지. 뱀까지 그대로 토막 나는 비현실적인 광경. 심지어 검은 넝쿨까지 쪼개져 검은 입자로 변해 사라졌다.
빨간 여자는 언제 엑소슈트의 팔뚝을 뜯어냈는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앞으로 내밀어 피의 방패를 만들며 외쳤다.
[저거 죽었다며!] [FUCK——-!]핵이 터졌는데 살아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레온 보나드의 파란 눈동자가 괴물을 바라봤다.
치이이이익-
무언가 익어가는 소리.
바닥에 떨어진 핏물이 증발하는 소리.
그래 놈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깨진 방어구 사이로 보이는 화상 흔적.
그나마 헬멧은 멀쩡한지, 숨을 쉬고 있었지만 거친 숨소리가 선명했다.
스으으—후으으읍-
후으읍- 크흐으으-
천식 환자 비슷한 거친 숨소리. 빌어먹을 괴물 놈도 한계가 분명했다.
[숨소리 들었지?] [들었어.]숨소리도 그렇지만 놈의 능력도 한계. 놈의 능력이 정상이었다면 끔찍한 정원을 펼쳐서 한 번에 덮쳤겠지. 그러지 못하고 방어만 한다는 건.
(틈을 노려!)
레온 보나드가 보안 통신으로 전환해 여자에게 말했다.
이제 넝쿨이건 뭐건 소모 시키기만 하면 기회가 온다.
투다다다다닥!
그리고
팅- 티딩- 팅-
총알이 튕겼다.
빠르게 휘두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총알이 튕겼다.
이 무슨-
저벅-
한 걸음 다가서는 마루.
후으으읍- 하아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다시 한 걸음.
저벅-
‘미친! 총알을 튕겼다고? 이 거리에서?’
투다다다다닥-
팅- 티디디딩- 팅-
저벅-
쓰으으읍- 하아아아-
그건 공포였다.
저벅-
[으아아아아아- 죽어—]총질과 비명으로 이목을 끈 레온 보나드. 처절한 저항에 집중이 쏠리는 순간, 붉은 뱀이 마루의 등을 노렸다.
촤륵- 단검을 휘감은 넝쿨 하나가 뱀의 머리를 쪼개자, 두 마리로 변해 그대로 등판을 노렸던 피의 뱀이 갑자기 쪼그라들었다.
콰드드득-
넝쿨 잎사귀가 파리지옥처럼 뱀의 머리를 짓누른 채, 생명력을 뽑기 시작했다.
빨간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생명력을 뽑는다고? 이런 정보는 없었잖아.
닿으면 죽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생명력을 갈취해서 죽이는 거였어?
‘그럼 그게···.’
신성 왕국 블라디마루 칼린이 왕이 되리라 생각한 자들이 있었다. 불완전한 신인류를 온전하게 해줄 존재. 인류를 생존으로 이끌고 신세계를 열 존재라고 믿는 자들.
치이이익-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대지는 피를 뿌리기엔 너무 악조건이었고.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접근하는 건 위험했다.
‘도망쳐야 해.’
접근하면 생명력을 빨린다. 첫 교전에서 생명력을 빨지 않았던 건 함정이었겠지, 지금처럼 위기가 없었다면 끝까지 아닌 척하다가 한 번에 끝냈으리라.
여자는 주춤주춤 뒷걸음질하며 총을 쏴대는 레온 보나드 황제를 바라봤다.
(도망쳐야 해.)
(지금. 지금이 기회야.)
[으아아아! 오지 마.] [죽이라고!](있잖아.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실망은 빌어먹을···. 이번이 기회라고. 지금 저놈을 잡지 못해서 저 괴물이 회복하면?)
레온 보나드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놈이 놓아 줄 것 같아. 도망칠 수 없어! 벗어날 수 없다고! 괴물 자식. 자기 몸이 저 지경이 되고도 우릴 잡으러 온 걸 보면 몰라!)
(핵 이야기- 해.)
여자의 말에 레온 보나드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블라디마루 칼린 멈춰! 전략핵이 대기 중이다.] [덴 브라운은 처형됐어. 이제 제국에서 핵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여기서 우릴 죽이면 핵전쟁이야! 공멸이라고!]저벅저벅 다가서던 마루의 발걸음이 멈췄다.
우뚝-
스으읍- 후으으–
그리고 이어진 긴 호흡의 끝.
마루의 시선이 레온 보나드를 향했다.
목을 치려고 했더니 궤도가 왜곡되면서 머리 위로 헛방이 갔다. 그렇다면···.
힘을 그러모은 종아리와 허벅지가 일순 수축했다가 팽창했다.
팍-
단 한 순간을 위해 힘을 모으며 천천히 걸었다. 느릿한 발걸음에 눈이 익은 레온 보나드와 여자는 마루의 모습을 놓쳤다. HUD의 센서가 경고를 울리는 것과 마루의 칼질이 동시에 이뤄졌다.
13m~14m를 한걸음에 내딛는 순보를 파악한 레온 보나드가 능력으로 궤도를 바꾸려고 했지만, 단 한 걸음을 완전히 비틀기엔 너무 가까웠다.
[핵 전—–]궤도가 틀어지는 칼질.
옆으로 밀려나는 발걸음.
그리고 기어이 검은 실선을 만든 뉴클립스.
▬▬▬▬▬▬▬▬▬▬▬▬▬▬▬▬—
허리 어림을 긋고 지나간 칼질이 어긋나며 레온 보나드의 두 다리를 절단했다. 두 다리가 잘리며 쓰러지는 상체를 향해 다시 사선으로 그어지는 검격.
[안 돼!]마치 그렇게 되리라 예상한 것처럼 수평 베기와 사선 베기가 한 동작처럼 이어졌다.
▬▬▬▬▬▬▬▬▬▬▬▬▬▬▬▬—
붉은 창이 가로막았지만, 붉은 창과 함께 통째로 잘리는 레온 보나드의 상체. 황제 전용 엑소슈트의 특수 장갑도 고위급 흡혈귀의 권능으로 만든 피의 창도 마루의 칼질을 막지 못했다.
서걱-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