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3)
러스트 [RUST]-103
낮게 울리는 소리가 촉수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 소리를 찢어버린 칼날이 앞을 열었다. 잘리는 촉수들 사이로 군데군데 펼쳐진 지뢰 같은 살덩이들. 바닥에 깔린 촉수와 살덩이를 피해 내딛는 마루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세 개의 머리에서 각기 외치는 소리.
서버실 천장이 진동판이 된 것처럼 울리며 페인트 가루, 시멘트 가루가 우박처럼 떨어졌다. 발걸음 소리와 가루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이며 화음을 만들었다.
툭-
타닥-
타다닥-
마루가 점차 다가가자, 세 개의 입이 쉴 새 없이 무언가 중얼거렸다. 주문과도 같았고 저주와도 비슷했으며, 어쩌면 애원일지 몰랐다.
듣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다. 마루에게는 오직 잘라야 할 것만 보였다.
더 빨리.
더 가볍게.
2m, 3m, 5m 좌측 옆으로, 대각선으로. 우측 대각선으로 지그재그로 뛰던 마루가 한걸음에 9m를 날아올랐다.
중력을 거부하듯 떠오른 끝에 보이는 건, 기괴하게 변한 머리통 셋.
찢기고 끊어지고 잘리는 소리가 한 번의 칼질로 압축됐다.
►►►►►►!!!
후둑 떨어지는 머리통 셋을 공중에서 발로 차 날려버린 마루가, 그대로 칼날을 수직으로 내려그었다.
도끼질하듯 위에서 아래로 쭉 썰어버린 칼질에 꿈틀거리며 변형되던 몸통이 수직으로 절단됐다.
“안 돼!!!”
경호원이 하반신을 감싼 살덩이를 뜯어내려고 몸부림쳤지만, 점차 회색으로 변해가는 살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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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걸 좋아함?’
김 양이 투덜거리며 퓨즈를 교체했다. 사이즈를 하나로 통일하든지, 왜 이렇게 규격이 다른지 모를 일이었다.
‘레버를 돌려서 수동으로 시작하고.’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열심히 돌린 레버 안쪽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빨간 불이 들어왔다.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추고 비상 소각 버튼을 누르자, 경고음과 함께 빨간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본 시설은 잠시 뒤, 비상 소각 절차에 들어갑니다. 모든 실험을 중지···]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본 시설은 잠시 뒤, 비상 소각 절차에··· 중요한 자료를 잊지 않도록···] [···보안 요원의 통제에 따라 대피하시기 바랍니다.]‘이 아저씨는 왜 안 일어나는 거야.’
찰싹- 찰싹- 쫘아아악!
질질 끌고 다녀도 잠에서 깨지 않아, 따귀를 때렸는데도 헬기 조종사는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뒤집어 까보고, 코에 손을 대보니 죽은 것도 아니고 뭔가 뇌에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마취?”
아 진짜 시간도 없는데, 김 양이 통제실에 있는 구급함을 뒤졌다. 간이 수술 도구가 있으니까 수술 관련 약품도 있겠지.
‘있다.’
헬기 조종사에게 마취회복제를 꽂아 넣고 핸드카트에 짐짝처럼 구겨 실었다. CCTV 화면에 보이는 복도 상황.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자, 미친 듯 발광하는 쥐 떼들이 보였다.
환기 시스템과 공기 정화 장치를 정지시킨 김 양이 방독 마스크를 쓰고 최루탄을 던졌다. 최루가스가 맹렬하게 터져 나오자, 쥐들은 가스가 뿜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시 뒤, CCTV 화면이 최루가스로 뿌옇게 변한 복도를 비췄다. 가스가 독했는지 쥐 몇 마리가 배를 드러내고 뻣뻣하게 굳은 모습이 보였다. 복도 어디에도 쥐 떼는 없었다.
‘10분이면 충분.’
김 양은 헬기 조종사가 실린 핸드카트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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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읍-
방독면을 쓴 마루가 복도 한쪽에 굴러다니는 최루탄을 집어 들었다. 마루는 가스가 거의 다 빠진 최루탄을 몸에다 비빈 뒤, 실험실로 향했다.
넓고 긴 복도를 최루탄 하나로 어떻게 하기는 힘들었지만, 쥐들의 예민한 후각은 최루가스를 견디지 못했는지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김 양에게 15분 잡으라고 했는데 벌써 7분이나 지났다. 남은 시간은 8분 남짓.
쯧-
계속해서 재생하던 살덩이들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수월하게 끝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그게 변할 시간을 주지 않고 썰어댔다는 것.
다카이치 제약 금속 상자에 있던 검은 것은 썰리면 날붙이에 내성이 생기면서 재생했다. 그와는 달리, 붉은 약으로 인해 생긴 변이체는 썰면 써는 대로 기괴한 변형을 일으키며 재생했다.
하지만 변이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했고 재생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자르고 또 자르자, 결국엔 에너지가 고갈되어 변이가 서서히 멈췄고 재생도 느려졌다.
진짜가 아닌 대역이 확실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처절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왼쪽 복도 마지막 끝에 있는 실험실까지 오는 동안, 쥐 떼가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열쇠를 넣고 돌리자 실험실 문이 열렸다.
다카이치 제약에서 봤던 광경과 비슷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대체 왜들 이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냥 평범하게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돈과 권력을 넘치게 가지다 보면 젊음과 영생이 그렇게 절실해지나? 어쩌면 지금은 젊어서 늙은이들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지 몰랐다.
수 천억대 부자가 자기 재산과 20대의 젊음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다는 인터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뭔가 아이러니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어 부와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데, 부와 권력을 가진 늙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팔아서 젊음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니.
‘좆 같네.’
그래. 부자들이 자신들의 병을 고치고 회춘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를 급속치료제에 목을 맨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럼, 전투자극제. 전술 마약은 뭔데? 야마츠키 신약에서 주로 연구한 것은 전술 마약, 전투자극제, 중화제 관련 약물이었다. 이게 왜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고, 필요하다고 해도 꼭 이래야만 하나? 싶었다.
AI가 발달하고 슈퍼컴퓨터도 발전해서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충분히 기초 연구를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식의 실험이 꼭 필요했을까?
“씨발. 좆까라 그래.”
퉷-
바닥에 침을 뱉은 마루가 뒤쪽 창고로 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안쪽 냉장고에 익숙한 것들이 보였다. 중화제와 버서커 폴이라 부르는 전술 마약, 그리고 그 붉은색 약이 있었다.
케이스에 중화제와 버서커 폴을 모조리 쓸어 담은 마루가 붉은색 약을 한 번 노려보고는 복도를 내달렸다.
남은 시간은 고작 3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간당간당했다.
도난 병원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간호사가 찔려 죽었던 사건 이후, 엘리베이터 문이라든지 일반적인 문이든지 어떤 문이든, 문이 열리기 전 긴장하는 마루였다.
딱히 강하게 느껴지는 살기가 없었지만, 별다른 살기 없이 그냥 찔러댄 일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띵동-
[문이 열립니다.]흔들흔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진동. 마루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흔들리더니 문이 강제로 닫혀 버렸다. 뭉그적댔다가는 엘리베이터 문을 따고 나왔어야 할 판이었다.
찰싹- 찰싹- 쫘아아악-
닥터 헬기 쪽에서 들리는 찰진 소리. 김 양이 헬기 조종사의 싸대기를 올려붙이는 소리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뭐하냐?”
“어. 마취 풀리는 약을 줬는데··· 일어나지 않아서, 잠 깨우려고···.”
아니. 때려도 작작 때려야지. 사람 얼굴을 호빵으로 만들면 어쩌라고. 마루의 얼굴에 피로감이 피어올랐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야마츠키 신약 본사 건물이 살짝 흔들리는 느낌. 불로 오래 태우는 게 아니라 화끈하게 터뜨려버리는 쪽인가?
“이리 나와봐.”
“동공 반사 봤고 호흡이랑 맥박 확인했는데···. 이상, 분명히 없는데, 계속 쳐 잠.”
“알았으니까 옆으로 비켜봐.”
마루가 가방에서 중화제를 하나 꺼냈다. 단순히 마취제가 아니라 마약성 제재의 부작용 때문에 늘어진 거면 중화제가 직방이었다.
“아까 올 때 보니까 저쪽에 편의점이 몰려 있더라, 먹을 거 좀 찾아봐. 없으면 도수 높은 술 종류라도 가져오고.”
고개를 끄덕한 김 양이 스르륵 은신 로브 안쪽으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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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헬기 조종사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으··· 무···물···.”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기침을 요란하게 해대는 조종사였다. 기침 소리가 여기저기 무너지고 기울어진 빌딩 사이로 메아리쳤다.
“아저씨 어지간하면 입 막고 기침해요. 여기저기 소문낼 일 있어요?”
으··· 쿨럭! 콜록! 카아아악- 퉤에엑!
얼씨구. 헬기 조종사라서 행복한 건가? 자기 없으면 헬기 타고 가지 못하니까 배짱? 아? CCTV 못 봤지, 고양이 소리가 나니까 그냥 미친 듯이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향해 발광하는 거.
“아저씨 내 말 안 들려요? 적당히 가리고 조용히 하시라고요.”
부카각-
마루가 반쯤 해체된 월드 헬기에 칼을 꽂아 옆구리를 갈라 버리자, 언제 기침했냐는 듯 조용해지는 조종사였다.
“······.”
“······.”
적막이 헬기 조종사와 마루 사이에 내려앉았다.
“크-흐-흠. 사. 사장님은 어디에···? 크-”
“편히 쉬고 계시 답니다.”
“어디에 계십니···.”
“먼저 가셨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 그렇습니까.”
뭔가 불안한 듯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는 조종사. 마루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냥 자전거 타고 갈까?’
김 양이 간 방향에서 작게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툭- 툭-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일렁이는 공간에서 김 양의 머리가 쏙 삐져나왔다.
“원숭이. 미친 원숭이들이 오고 있음.”
“원숭이? 도쿄 시내에 웬 원숭이?”
저 멀리, 옆으로 기울어진 전신주 위로 원숭이 한 마리가 올라왔다. 그 뒤로 또 한 마리 이어서 두 마리. 점점 늘어나는 원숭이들.
끼익
끼약 끽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백여 마리는 될 법한 숫자로 불어나고 있었다. 공터 바닥에 탄 흔적과 냄새 때문인지 달려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일지 몰랐다.
“아- 씨발. 아저씨 바로 헬기 띄워요. 원숭이한테 먹히고 싶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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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서버실.
마루가 떠난 방향을 노려보던 경호원이 끌어안고 있던 머리통을 가만히 내려놨다. 꿈틀거리며 재생하려고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크으읏
하얗게 석회화된 살덩이에 싸인 다리를 빼냈다, 여기저기 옷이 부식된 흔적 아래로 정강이뼈가 드러나도록 살이 녹은 자국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전술화가 두꺼워서 그런지 발목은 멀쩡했다.
급속치료제를 품에서 꺼낸 경호원이 정강이와 녹아내린 곳에 한 방울씩 치료제를 떨어뜨리자 하얗게 거품이 일며 상처가 재생됐다.
으득.
그놈은 알았을까? 알고 있었을까? 붉은 약이 농축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약이라는 걸. 아니. 그건 아닐 거다. 불길하다고 그랬으니까. 이성적으로는 이해했음에도, 분노와 증오가 갈 곳이 없었다.
광학 은신 로브를 뺏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곁에서 은신해 호위했다면, 허무하게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찢어지지 않고 같이 움직였다면, 인간 백정 놈이 같이 왔었다면. 하다 못 해, 김 양이라도 같이 왔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경호원이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한쪽 구석에 놓인 가방을 둘러맸다. 다카이치 제약 서버실에서 챙긴 저장장치, 그리고 이곳에서 챙긴 저장장치. 이걸 가져가야 했다.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본 시설은 잠시 뒤, 비상 소각 절차에 들어갑니다.] [모든 실험을 중지하고 중요한 자료를 소실하지 않도록 백업을···]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서버실 밖으로 나가자, 팔다리가 잘린 배신자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케이블 타이로 묶인 배신자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애원했다.
“살려줘!”
“잘못했습니다. 제발.”
“본사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 말씀드릴 테니까.”
아우성치는 벌레들. 너희들. 네놈들 때문에.
“네놈들한테는 총알도 아깝다.”
빌어먹을 것들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 타 죽어라. 타 죽는 게 제일 큰 고통이라며.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소리를 뒤로, 안구와 손이 담긴 통을 소중히 끌어안은 경호원이 비밀 통로 저편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