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33)
러스트 [RUST]-1033
제국 군부와 의회는 절박했다.
군부와 의회는 신성 왕국의 방송을 내심 믿지 않았다. 적국을 흔들기 위해 심리전, 조작 방송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젠 핵전쟁을 하자고 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다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핵전쟁 운운했던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어이없군요. 놈들의 방송 내용이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제국 시민이 넘어갈 줄이야.”
“적국의 방송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는 제국 시민이었다. 그들은 신성 왕국 방송에 너무 쉽게 흔들렸다. 신성 왕국 방송이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을 위해 덮어주거나 무시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SNS와 포탈을 일시 폐쇄합시다.”
“미쳤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겁니다.”
“무대응보다 나쁜 방법입니다. 그냥 둡시다.”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일 겁니다.”
모든 방송 채널을 해킹했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통신을 해킹할 수 있다는 의미. 통신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과 포탈, SNS도 해킹할 수 있겠지.
어쩌면 지금 올라오는 모든 내용이 해킹을 통해 거짓으로 올린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제국 군부와 의회는 그래서 SNS와 포탈에 올라온 제국 시민의 글을 믿지 않았다.
영상이 거짓이고 댓글도 조작이라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 시민이 직접 올린 글조차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면 여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신성 왕국은 모든 채널을 해킹해 방송을 내보낸 것만으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도부와 일반 시민 사이를 불신으로 갈라버렸다.
“놈들이 거기까지 갔겠습니까?”
“우리라면 그런 방법을 안 썼겠습니까?”
제국에 신성 왕국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다면 전자전을 이용한 심리전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 상황을 보라. 이 얼마나 효과적인 공격능력인가.
“전자전 능력자만 있었다면···.”
“이미 끝난 이야길 하면 뭐합니까.”
이대로 가면 민병대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휴전합시다. 그게 어렵다면 항복이라도 합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우리가 뭔 잘못이 있습니까?”
하지만 한 의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뭐요?”
“우리 황제 폐하께서 신성 왕국 국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건 저쪽의 일방적이 주장 아닙니까?”
한 사람이 반발하자, 동조하는 자들이 생겼다.
“그렇습니다. 놈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신 황제 폐하를 암살하고 역으로 우리에게 뒤집어씌웠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동의합니다. 놈들이 해킹해서 공개한 증거를 어떻게 믿습니까?”
“그래요. 전부 인공지능을 이용한 거짓 영상과 녹취록인지 어떻게 압니까?”
신성 왕국의 기술력을 이용한 조작된 영상과 녹취록이라면? 시작부터 제국을 흔들기 위한 작전이라는 이야기였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합시다. 신성 왕국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답니까?”
“이렇게 복잡하게 방송하고 이유를 대고 그럴 이유가 없어요. 객관적으로 저쪽이 진심으로 제국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한 달이면 제국은 멸망합니다.”
“해상도시의 방어시스템을 뚫고 항행설비만 정밀 타격했습니다. 저들이 진심으로 공격했다면 해상도시가 위험할 수 있었어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수습하자는 쪽과 절대 그럴 수 없다. 신성 왕국의 농간이라는 쪽이 대립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군단이 전멸한 장소입니다. 신성 왕국의 쥐떼와 까마귀가 우리 영토를 먼저 침범한 것이 사실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신성 왕국을 공략하라고 명령하셨는지 확실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군부에서는 이번 작전을 알고 있었습니까?”
군부는 할 말이 없었다. 황제 직속 군단이 비밀리에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한 장군이 숙고 끝에 답했다.
“확실한 건 우리 군단은 신성 왕국 영토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 보십시오. 신성 왕국 놈들이 거짓말하는 겁니다.”
신성 왕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제국이 정예 부대를 몰래 움직였다?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인가?
제국 군대가 제국 영토를 이동한 게 문제인가?
결론만 따지자면, 제국 군대가 신성 왕국을 공격했는가?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하려고 이동 중이었다고 치자.
그래서 실제로 공격했는가?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성 왕국은 국경을 넘어, 제국 군단을 공격했다.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놈들은 교묘하게 선후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놈들은 30만이 넘는 제국군을 학살했음에도 마치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선동하고 있어요.”
“신성 왕국의 선제공격이 확실한데 이대로 휴전이요? 심지어 휴전도 아니고 항복이요? 절대 안 됩니다.”
“놈들은 방송을 통해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국경은 넘은 것도 신성 왕국이었고. 제국 영토에서 이동하고 있는 제국군을 선제공격한 것도 신성 왕국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를 이용해 제국의 임시수도였던 보스턴 인근을 폭격한 것도 신성 왕국이고.
그런데 놈들의 방송은 그게 전부 제국 탓이라고 조작하고 있었다.
“놈들의 방송이 끝나면 바로 대응 방송합시다.”
“클론 계획은 어떻게 할까요?”
연락이 끊긴 황제, 황제의 명령으로 처형한 덴 브라운. 일단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황제의 대역이건 총리의 대역이건 대역이 필요했다.
생사가 불분명한 황제의 클론을 뽑자는 사람은 없었으니, 비밀리에 처형한 총리의 클론을 뽑아 사태를 진정시키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총리가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나 총리를 처형했다고 하는 내용이나, 클론을 뽑아 반박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클론을 제작하면 완성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아무리 빨라도 40일에서 45일 정도는 걸릴 겁니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분하지만 휴전하는 것으로 하지요.”
“해상도시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상, 전략핵을 이용한 작전은 위험합니다.”
자폭할 생각은 없었다. 같이 죽겠다고 협박해 전략적인 이득을 보려고 했을 뿐. 설령 핵전쟁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고 안전하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것이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할 건 아니었다.
“이런 불경한!”
“황제 폐하께서 놈들에게 당하셨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복수를 해야지 뭐요?”
“우리가 광신도입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복수를 꼭 자폭으로 해야 하는 겁니까?
“이길 방법을 찾고 나서 하는 게 진정한 복수 아닙니까?”
“복수에 방법을 찾자? 그게 복수입니까? 그건 복수가 아니죠.”
“죽음에는 죽음으로. 복수는 간단한 겁니다.”
“놈들이 30만에 달하는 제국군을 죽였으니 우리는 그 이상으로 갚아줘야 하는 겁니다.”
“지금 상황은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30만 병력이 몰살됐는데 그냥 넘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는데 그냥 휴전한다? 복수하겠다고 해서 내전이 터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복수를 포기하는 순간 민병대가 들고일어날 겁니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병력의 절반을 잃은 우리가 신성 왕국과 지금 상태로 싸우면 전멸입니다. 놈들이 발사장치를 해킹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수동으로 발사한다고 해도 놈들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서거한 황제를 따라 죽는 건 의미 없다는 주장과 제국을 통째로 불태워서라도 신성 왕국에 복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기 시작했다.
“우선 동남아시아로 떠난 조사단의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합시다.”
“그렇게 하기로 하죠.”
동남아시아로 진상 조사하러 출발한 조사단이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다는 증거를 가져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수를 주장하는 자들도 30만이 넘는 정예 병력을 잃고, 보급 창고와 군수공장이 날아간 지금 신성 왕국과 싸우는 건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복수론자들은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죽음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
“······.”
복수보다 우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자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상도시의 운한 능력이 파괴됐다. 핵을 터트리고 빠지는 방법은 쓸 수 없게 된 것.
휴전 조건은 어떻게 될까? 신성 왕국에서 모든 핵을 폐기하는 걸 조건으로 한다면? 차라리 항복하는 건 어떨까? 항복해서 5천5백만이 넘는 인구를 먹여 살리게 떠넘긴다면?
“······.”
“······.”
[다들 생각이 복잡하네.]“······?”
“······!”
[있잖아. 내가 황제에게 받을 빚이 있는데.]일급 보안 태세를 갖춘 대회의실 한쪽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군부와 의회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우선 정산부터 하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넌 누구냐?”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경비병. 경비병은?”
각성한 능력자인 군부 장성 몇 명이 기세를 피워올렸다.
[진정해. 난. 황제의 목숨을 2번이나 살려준 은인이라고.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무릎 꿇고 엎드려.”
“두 손 머리 위로 올리고 깍지 껴.”
[여기 받아. 일단 이거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휙-
여자가 던진 USB를 낚아챈 장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날아오는 USB에 시선이 쏠린 그 짧은 순간, 여자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USB에 있는 영상엔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진 일이 전부 담겨있었다. 황제의 작전과 블라디마루 칼린과의 교전 그리고 황제의 마지막까지.
USB에 따르면 신성 왕국이 공개한 시신이 진짜 황제의 시신이었다. 신성 왕국이 말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었다.
“······.”
“······.”
“이번 영상과는 상관없이 제국의 영토 내에서 이동 중인 3개 군단을 신성 왕국이 공격한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30만 장병을 학살한 건 신성 왕국입니다.”
“지금 이 자료는 어떻게 믿죠?”
“영상 파일이 제국군 암호화 파일이고 해킹이나 조작의 흔적이 없습니다.”
“신성 왕국이 해킹했다면 흔적이 남았을 텐데, 그런 것이 없으니. 전술 카메라 영상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맞습니다.”
“영상 속 여자의 목소리와 조금 전 USB를 넘기고 사라진 여자의 목소리가 일치합니다.”
문제는 영상 속에 나온 여자는 고위급 흡혈귀라는 것이었다. 신성 왕국의 전술핵과 제국의 전술핵을 연속으로 막을 정도로 강력한 흡혈귀. 그리고 그런 흡혈귀와 그 무리를 황제 폐하께서 용병으로 썼다는 점이었다.
레온 보나드 황제와 덴 브라운 총리가 공통으로 했던 정책은 식인귀와 흡혈귀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황제 폐하가 흡혈귀와 손을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
“황제 폐하의 목숨을 2번이나 살린 자입니다. 영상에 나온 전투력이 사실이라면 그 흡혈귀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일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순순히 정보를 주고 기다리겠다고 한 건.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존재라는 것이겠죠.”
“식인귀와 흡혈귀를 배제한 이유를 잊었습니까? 놈들을 허용하는 순간, 일반인들은 놈들의 정신파와 매료에 오염될 겁니다.”
“신성 왕국의 더러운 방송에 홀랑 넘어가는 사람들인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내전이에요.”
“동의합니다. 차라리 정신파와 매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건 어떨까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정신파와 매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식인귀와 흡혈귀가 되자는 말입니까? 미쳤습니까?”
“미친 게 아니죠. 자폭해서라도 복수해야 한다면서요? 핵을 터뜨려서 엄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동반 자살하는 건 괜찮고. 복수를 위해 흡혈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까?”
논쟁이 격해지는 동안 PD의 방송은 계속됐다.
[그렇습니다. 덴 브라운은 제국을 건국한 사람이었습니다. 미합중국을 사랑했으며, 제국을 사랑한 사람이었지요.]SNS와 포탈에 글이 쏟아졌다.
(총통이었으면서 권력 남용을 하지 않았지.)
(그러면 뭐해? 저 새끼 때문에 신성 왕국이 큰 거 아니야?)
(맞음. 초기에 잡을 수 있었던 거. 키워준 게 저 양반.)
(신성 왕국에 퍼준 사람 아님?)
(그러니까 좋은 이야기만 하잖아.)
[그는 식인귀 세력이 정치권력을 찬탈하는 것을 막았고, 이후에도 식인귀를 색출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했습니다.](와 이걸 이렇게 세탁하나?)
(세탁이 아니라 사실이지. 덴 브라운 없었으면 능력자 중심으로 돌아갔을걸.)
(식인귀고 흡혈귀가 이웃집에 살았겠지. 넌 이웃집 도시락이고)
(투표권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잘한 건 맞음.)
[식인귀와 흡혈귀를 색출하는 게 어째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인가? 그 질문에 우리는 식인귀와 흡혈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칭 신인류라고 하는 식인귀와 흡혈귀는 지배력이라 불리는 정신파 능력이 있습니다. 포식자 특유의 ‘아우라’라나 ‘매력’이 있지요. 강한 식인귀나 고위급 흡혈귀일수록 그런 능력이 강합니다. 일반인들은 저절로 그들에게 이끌릴 정도로 말입니다.](그러니까 개돼지들이 끌리는 대로 투표해서 식인귀나 흡혈귀가 당선된다는 소리네?)
(유권자를 너무 무시한 거 아니야?)
(황제 폐하 만세.)
(흡혈귀가 왜 문제? 흡혈귀와 사랑한다고 해서 걔들이 너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흡혈귀랑 사랑할 수도 있는 거지. 흡혈귀를 차별하는 건 인종차별임.)
(이런 게 잘도 제대로 투표하겠다.)
(┗텍사스 주에서 제일 큰 도시가 어디지?)
(┗남부 촌에서 제일 큰 도시가 어딘지 알아서 뭐하게?)
(┗봤냐? 이게 클래스라는 거다.)
‧
PD의 방송과 제국 사람들의 반응을 보던 기순의 눈초리가 더욱 가늘어졌다.
[이거 좋지 않은데?]“왜?”
[덴 아재를 언급한 이유는 알겠는데, 그러면 황제에 관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황제가 죽었다는 방송을 봤음에도, 그걸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 많이 있었다. 그리고 덴 브라운에 대한 방송은 황제를 믿는 사람들의 결집을 유도할 촉매가 될 수 있었고.
“PD도 알고 있겠지.”
[제국 군부와 의회가 끝까지 엇나가면 어떻게 할 거냐?]“하던 대로 해야지 뭐.”
이미 출발한 마루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