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34)
러스트 [RUST]-1034
PD의 2회차 방송은 1회차 방송처럼 많은 논란을 낳았다. 가장 큰 논란은 1회차에서 언급됐던 내용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덴 브라운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고?)
(덴 브라운이 죽을 짓을 한 건 맞잖아.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고 했으니까.)
(황제가 신성 왕국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잖아.)
(핵전쟁 준비하라고 했다면서?)
(핵전쟁 준비한다고 한 건 군부랑 의회가 그런 거지.)
(방송 똑바로 본 건 맞냐? 황제도 핵 준비하라고 했다잖아.)
(애새끼들 보소? 황제? 황제 폐하를 그냥 황제?)
(언제부터 황제 폐하? 지랄하네.)
(황제 폐하 만세! 제국이여 영원 하라! 승리 만세! 존나게 외치더니 이렇게 입쓱닦?)
(이길 때는 우리 황제, 지면 느그 황제?)
(솔직히 가만히 있는 신성 왕국 국왕 죽이려고 했으면 그건 문제 맞지.)
(가만히 있기는 신성 왕국 백정이 동남아시아에서 한 짓 몰라? 학살하고 다닌 거?)
(오죽하면 황제 폐하께서 사이코패스 새끼를 죽이려고 했겠냐?)
(신성 왕국이 도와준 덕에 우리가 도움받은 건 쏙 빼고 대놓고 백정? 사이코패스? 와 진짜 인성 뭐냐?)
(그러게 황제가 오죽했으면 바른 생활 덴 브라운이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을까.)
(그렇다고 사람을 암살? 그것도 제국 시민이 세운 황제 폐하를? 제정신이냐?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생각이고?)
(덴 브라운이 보통 사람이야? 제국을 건국했고 초대 총통이었다고.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기 손 더럽힐 수 있는 사람이지.)
(염병들 하네. 총통은 얼어 죽을 총통. 총통에 있으면서 한 업적이 뉴욕 시 날린 거냐?)
덴 브라운 시절 뉴욕 시는 수난의 도시였다. 식인귀, 바퀴벌레, 쥐떼에 개미까지. 어떤 혼돈의 평행세계 도시처럼 마지막엔 수소폭탄까지 먹었다.
(뉴욕 *박은 거 전부 덴 브라운 시절이쥬. 그렇쥬?)
(해상도시도 덴 브라운 총통 시절 건설한 거다. 덴 총통 아니었으면 해상도시 누가 밀어붙였겠냐?)
(그래서 뒷구멍 열었쥬? 그래서 신성 왕국 씹새들이 해상도시 방어시스템 뚫고 공격하고 그런거쥬?)
(야. 그만 때려라. 뒷구멍 없었으면 우리 황제 폐하 추모식 때 들어오지 못하셨어.)
레온 보나드 황제에 대한 믿음과 덴 브라운 총리를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이 충돌했다. 제국을 건국한 자는 덴 브라운이었으며, 그 제국에 승리를 가져오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으며 더욱 강하게 한 자는 레온 보나드 황제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덴 브라운 총리은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고, 레온 보나드 황제는 총리를 사형시켰다.’는 것이 신성 왕국의 방송이었다.
SNS와 포탈 전부 제국 군부와 의회에 사실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생방송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게시판이 불탔는데, 방송이 끝난 뒤에는 더 심해질 게 분명했다.
제국 군부와 의회는 재빨리 긴급 방송을 내보냈다. 신성 왕국의 방송은 고도의 심리전이며, 그들의 방송은 제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술책이라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신성 왕국이 제국의 영토 안에서 제국군을 기습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제국군이 신성 왕국을 기습하려 이동했다고요? 그래서 제국군이 신성 왕국 영토를 1인치라도 넘어갔답니까?)
(제국군은 엄연히 제국 내에서 작전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국 영토를 침범해 공격한 것은 신성 왕국이고요.)
(신성 왕국은 잔혹한 나라입니다. 이번 습격에 변이 짐승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포악한 쥐떼가 제국군을 공격했단 말입니다.)
(쥐떼에 습격받은 제국군은 시체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 쥐떼를 조종하는 게 신성 왕국입니다.)
(신성 왕국의 까마귀가 제국 시민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눈알을 파먹는 영상이 제보됐습니다. 제보 영상을 보시고···.)
PD의 2회차 방송이 끝나자마자, 제국 의회와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들 방송을 내보냈다. 사실과 조작을 적절히 섞은 방송이었다.
들판을 뒤덮은 쥐떼가 평화롭게 이동 중인 제국군을 덮치는 영상이나, 한적한 소도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폭탄을 떨구고 혼비백산 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젊은 엄마의 눈알을 쪼는 영상이었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병신 같은 내용이었다. 쥐떼가 들판을 뒤덮을 정도였다면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 때문에 영상 녹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지금은 겨울의 끄트머리라고 해도 영하 10~20도는 우습게 나오는 날씨였다. 그런 날씨에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완벽한 구도로 촬영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끔찍하고 자극적이었다. 제국군을 덮치는 식인 쥐떼, 아이와 엄마를 사냥하는 까마귀떼.
(내 이럴 줄 알았다.)
(황제 폐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네.)
(신성 왕국과 전쟁을! 피의 복수를!)
(이래도 신성 왕국과 대화해야 한다고?)
(누가 개돼지 아니랄까 봐. 바로 선동되는 거 보소.)
(영하 20도에 애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놀죠?)
(정글짐 올라가는 데 실화냐? 애 왼쪽 손 봐라. 장갑 없지? 영하 20도에 장갑도 안 끼고 놀죠?)
(장갑 이야기하니까 바로 영상 고쳤네. 여기 원본 영상.)
(장갑이 중요하냐? 신성 왕국이 변이 괴물로 제국군을 공격했는데?)
(30만이 넘는 제국군은 기습해서 죽였다!)
(중요한 건 신성 왕국이 제국군을 선제공격했다는 거다. 진주만처럼!)
(시발. 신성 왕국이 점령한 지역에 있던 도시와 마을은 어떻게 된 거야?)
(쥐랑 까마귀 밥이 됐겠지.)
(어제 댓글에 부모님이랑 연락 끊겼다고 한 사람 있었는데. 어떡하냐?)
제국 군부와 의회의 반격 방송이 제대로 먹혔다.
조작된 영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도, 제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30만이 넘는 제국군이 몰살됐다는 것이었고, 신성 왕국이 점령한 지역과 통신이 끊겼다는 점이었다.
‧
제국의 SNS와 포탈 반응에 기순은 실눈을 꾹 감았다.
명분이 중요한 이유가 이래서였다. 전멸시킬 수 있더라도 살려 줄 수 있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이유도 그랬고.
어떻게 생각하면 고작 30만이었다. 5천에서 6천만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한 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30만 제국군의 가족과 친인척을 합하면 수백만이 넘을 터.
그 많은 제국 사람들이 신성 왕국을 원수로 생각할 것이다. 꼭 전멸시켰어야만 하나? 마루가 제국 군부와 의회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나면? 문제가 해결될까?
‘동남아시아 각국 권력자들을 처분했을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었다. 제국은 총기 자유화 국가에다 지역 방위군을 비롯해 아직도 30만이 넘는 병력이 있으니까.
[죽여 할 놈을 죽이지 않는 게 문제지, 죽여서 문제는 아님.]김 양은 기순의 반응에 약간 의구심을 가졌다.
[제국군 선제공격한 거? 그래서 30만 몰살할 거? 그게 뭐가 문제? 제국군이 자리 잡고 우리 공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임?] [그게 아니라. 최소한 우리가 이겼으면 나머지는 포로로 잡았어야 하고, 도시나 마을을 점령했으면 민간인을 살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거 살려서 뭐하게? 쥐떼가 방독면 쓰고 인간 군인처럼 총화기로 무장해서 싸우고, 자폭하는 거 소문내고? 아니면 신성 왕국 쥐떼가 사람 잡아먹었다는 거 알리라고?] [극단적으로 가면 끝없이 극단적이 되는 거다. 우리는 지금 인간적인 선을 넘으려고 하고 있어.] [인간적인 선은 저쪽에서 먼저 넘었음. 벼룩도 낯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짓을 하고도 하는 소릴 보셈. 그리고 죽은 자가 착한 이유는 말이 없기 때문임.] [···결과는 수백만 명이 넘는 원수가 생겼다. 그럼 그 수백만 명도 다 죽여야 한다는 소리냐? 언제까지 그럴 건데? 전부 다 죽일 때까지?]기순의 탄식에 김 양의 눈초리가 변했다.
[왜 그럼? 혹시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럼? 기순이 양심이 돼야 할 필요는 없음. 그거 안 해도 괜찮음.]갑작스러운 김 양의 발언에 기순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야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잖아. 거기서야 난리가 난다고 해도 신성 왕국까지 바로 영향을 끼칠 순 없지만, 제국은 달라. 제국에 싱크홀이 생기면? 코너에 몰린 제국이 정말 핵으로 자폭한다면? 우리를 위해서라도 극단적으로 가지 않는 게 좋아.]기순의 말에 김 양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는 말이라는 긍정이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그걸 결정하는 건 왕님이 할 일이지. 우리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음? 그리고 난 제국이 멸망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함. 응.]제국 년들 SNS랑 포탈에서 지랄하는 걸 보면 웃기지도 않았다. 종말이 닥친 뒤, 그나마 나라 인프라 제대로 돌아가고 사람 꼴처럼 사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식인귀 정부에다 임신 공장 돌린 도시락 신세였던 한국을 제외하면 신성 왕국과 제국 정도만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인권을 보호하고 어느 수준 이상의 치안과 인프라까지 지킨 나라는 신성 왕국과 제국 단 두 곳이었다.
세계를 다 뒤집어 보면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유럽과 동남아를 돌아본 결과 인권, 치안, 인프라 셋을 전부 유지한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도 제국 년들 하는 짓은 배부른 짓거리였다. 불간섭 불개입하면서 그냥 둔 이유도 엮이지 않으려고 그런 건데, 풀어주자마자 한 짓이 뭔가?
잘 있던 덴 아재 총통에서 끌어내리고 대통령제니 영웅 암살이니 발작하더니, 또 자기들끼리 지랄해서 황제 세우고.
그렇게 레온 보나드 황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쟁만 밤낮으로 하다가 뭘 잘못 먹었는지, 마루 왕님을 암살하고 신성 왕국을 기습 공격하려고 했다.
이게 사람 새끼들이 할 짓인가? 근데 제국 년들은 모여서 한다는 짓이 그랬다. 김 양의 지독한 독설에 기순이 한 숨을 내쉬었다.
[제국이 망하면 식인귀 흡혈귀가 강해져. 왕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이번 신수 코끼리를 생각해봐라. 그리고 레온 보나드 황제가 용병으로 고용한 흡혈귀 여자를 생각해보고.]마루가 전술핵 자폭에서 살아남았듯, 그 여자 흡혈귀도 살아남았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 흡혈귀가 그 여자 하나뿐일까?
당장 알려진 백작급 고위 흡혈귀가 두 자릿수였다. 제국이 망해서 그 사람들이 변이 괴수와 흡혈귀, 식인귀의 도시락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말했는데도 또 말해야 하나? 그런 기순의 표정에 김 양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사람이 제국에만 있음? 강해지려는 놈들은 뭔 짓을 해서든 강해지려고 할 거 아님? 그리고 자기들끼리 견제하는 애들이 누구 하나 툭 튀어나오게 그냥 둘 것 같음? 솔직히 나는 그럼. 제국 애들 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신기함.] [그래서 왕님이 제국 군부와 의회를 쓸어버리는 데 찬성한다는 소린가?] [당연하잖음. 기회를 안 준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줬음에도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PD가 단호한 목소리로 김 양의 의견을 옹호했다.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렸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진리를 외면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련과 심판입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마루를 설득하려고 했던 기순은 두 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김 양과 PD는 마루의 응징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이었고. 후드와 나주연, 간호사는 중립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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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었다 가지 않고?]사태가 진정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기순이 휴식을 권했지만, 마루는 도착하자마자 장비를 챙겼다.
“하려고 했으면 빨리하는 게 좋아.”
제국 전체가 PD의 방송과 대응 방송으로 정신이 없을 때를 노리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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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도시의 경비는 삼엄했다.
신성 왕국의 심리전 방송에 대응했던 것이 제대로 먹혔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로 쪼개진 여론이 하나로 합쳐진 건 아니었다.
“성공입니다. 강경하게 대응하자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급하게 만든 방송인데 다행이군요.”
제일 중요한 건 핵전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지하겠다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었다. 진주만을 언급한 언론플레이가 제대로 약빨 받은 것.
“그래서 그 흡혈귀의 제안은 어떻게 할까요?”
“정신파 대응 장치가 있으니 상관없지 않나요?”
레온 보나드 황제가 생전 용병으로 고용한 흡혈귀가 정산으로 받고 싶다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해상도시에 자신과 일행이 들어가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거주권이었다.
흡혈귀 특유의 지배력과 정신파, 매력을 생각하면 무조건 반대해야 하는 게 맞았으나, 정신파 대응 장비가 곳곳에 있는 해상도시라면 나쁘지 않았다.
“중앙 통제실 보안을 강화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신성 왕국의 해킹으로도 중앙 통제실 보안을 전부 뚫을 순 없으니까요.”
보안의 최대 약점은 인간이었다. 변이 고양이를 한 마리 때문에 엉망이 됐던 것도, 외부 생명체를 데리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삼중으로 보안을 재구축했고, 흡혈귀가 아니라 흡혈귀 조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뚫기 힘든 보안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술핵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흡혈귀입니다. 그 여자와 일행이 해상도시에 거점을 마련하면 해상도시의 방어도 자연스럽게 강해질 겁니다.”
“그렇겠지요.”
황제가 진 빚을 갚는 것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거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흡혈귀 여자가 요구한 두 번째는 안정적인 혈액 공급이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상도시 거주민에게만 3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헌혈하라고 해도 넘치고 남습니다.”
“혈액 공급이야 큰 문제도 아니죠. 오히려 그것으로 빚을 지울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모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혈액 공급 안건이 통과됐음을 알립니다.”
식인귀는 아무래도 생 인육을 먹어야 하니 조금 꺼림칙했지만, 피는 달랐다. 그냥 눈 딱 감고 마시면 그만 아닌가? 배부르게 먹을 필요도 없었고 팩으로 한 팩 정도.
흡혈귀가 된다면? 어지간한 식인귀보다 강해졌고, 신체 능력 각성자보다도 강해졌다. 고작 피만 좀 마실 수 있다면.
흡혈귀는 능력에 따라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잘못하면 노예처럼 부려질 위험이 있지만, 그것도 대비하면 그만.
“안정적인 혈액 공급이 가능한 이점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신인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신인류가 되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자는 투표가 시작됐다.
[지랄하네···.]가만히 투표현황을 지켜보던 일렁이는 공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새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