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36)
러스트 [RUST]-1036
그것은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사람의 머리가 달린 살덩어리, 여기저기 녹아내려 형태가 뭉개진 것을 뺀다면 마루는 비슷한 걸 본 적 있었다.
일본 비밀 연구소에서 직접 죽였던 그 여자.
‘심 회장 대역.’
핏빛 앰풀에 기형적으로 변했던 그것과 굉장히 유사했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도 머리가 약점이겠지.
촤르륵-
흘러내린 고깃덩이가 뭉쳐 촉수처럼 변해 주변을 휩쓸었다. 초식동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던 자들이 갑자기 나타난 포식자에게 휩쓸리는 모습.
“으아아아악! 살려줘!”
“쏴! 쏘라고!”
마루의 보이지 않는 공격이 멈추자, 생존자들은 거대한 괴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목표가 명확하니 공격의 집중도가 달랐고 화력도 그만큼 강해졌다.
다양한 능력이 뒤섞여 살이 녹아 흐르는 괴물을 두들겨 댔지만,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맷집이 좋은 괴물이었다.
“촉수가 머리를 막았다.”
“머리가 약점이다!”
“머리를 노려!”
300명이 넘었던 숫자가 이제는 20명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마루의 칼춤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뜻.
크우워어어어어–
촤르르륵-
“피해!”
“반대로!”
녹아내린 신체를 그물처럼 펼치기도 하고 촉수처럼 쏘기도 했지만 은신한 마루의 공격에서도 버틴 자들을 잡긴 쉽지 않았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녹아내린 괴물이 죽인 건 초반에 몇 명이었을 뿐. 하릴없이 5분 넘게 지나갔다.
후두두둑-
괴물의 신체 일부가 괴사한 것처럼 무너져내렸다. 약점인 머리를 맞지 않았음에도 움푹 파인 살덩이. 공격을 받아도 순식간에 재생됐던 괴물의 몸뚱이에 움푹움푹 흔적이 남기 시작했다.
“재생력이 사라졌다!”
“재생력이 약해졌어!”
“괴사한다. 녹아 붙은 살덩이가 괴사하고 있어!”
“시간 끌어!”
“조금만 더 있으면 방위군이 온다!”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원거리 공격으로 시간을 끌기 시작하는 생존자들. 능력과 총격에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괴물이 다시 소리 질렀다.
■ ■■ ■■ ■■ ■■ ■■ ■■ ■■ ■–
강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생존자들의 눈빛엔 공포가 없었다.
“이놈 힘이 빠졌어.”
“급하게 가지 말자고.”
“이대로만 가면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을 돌아보며 혹시 모를 마루의 급습에 대비하는 사람들. 마루는 그 모습을 보곤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저 괴물이 생긴 이유가 뭘까?
일본 비밀 실험실에서 있던 핏빛 앰풀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 앰풀을 쓴 놈이 있어야 했다.
‘놈은 뭘 원하는 걸까?’
적이 원하는 것을 알려면 결과를 보면 됐다. ‘다 이긴 싸움에서 갑자기 적과 화해를 권유하는 자가 배신자.’인 것처럼.
다 죽여 놓은 군부 장성과 의회 의원이 20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괴물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결과는 명료했다. 몇 분만 더 있었다면 제국 군부와 의회를 몰살시킬 수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괴물의 등장으로 그들의 죽음이 미뤄진 것.
‘조금만 더 있으면 방위군이 몰려올 테고. 괴물이 저절로 괴사하는 것을 보면 시간을 끌려고 한 것 같군.’
그리고 놈의 결과를 뒤집는 건 간단했다.
쿠워어어어어어어—-
살덩이의 외침이 충격파를 만들지 못했다. 몇 분 사이에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모습. 겉을 감싸고 있던 질퍽한 살덩어리들이 떨어진 속에는 핏줄과 근육, 근막으로 뒤덮인 사내의 상체가 있었다.
“저게 본체다!”
“저게 중심이야!”
살아남은 장군과 의원이 집요하게 본체와 본체의 머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마루가 잠근 문짝에서 충격음이 들렸다.
[방위군입니다.]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이거 잠금장치가 완전히 망가졌어.] [플라스마 커터로 잘라.]능력을 사용해 너덜거리는 괴수를 뒤로 밀친 생존자들의 눈동자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됐어. 구조대다.”
“조금만 더 버텨. 방위군이 왔다.”
“긴장 풀지 마. 조금만 더 버티면–”
서거걱-
두 사람이 동시에 상/하체로 분리됐다. 이어진 공격. 머리가 잘리고 옆에 있던 생존자 둘이 사선으로 절단되는 것과 동시에 잠시 흔들렸던 공간이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에 집중력이 잠시 흔들린 사이에 괴물이 촉수를 쏘아 보냈다. 잠시 한 눈판 틈을 파고든 촉수가 세 사람을 단숨에 꿰었다.
크억-
억-
끄아아악-
꿀렁- 촉수에서 돋아난 나무뿌리 같은 혈관이 생존자의 몸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체액이 빨려 빼빼 마른 미라처럼 변한 세 사람.
능력자 셋을 빨아먹은 괴물의 재생력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본체가 드러났던 가슴에 녹아내린 살덩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작 눈 깜박할 사이에 8명이 죽어 나가자, 남은 생존자들이 발작했다. 괴물이 나와 도망친 줄 알았던 보이지 않는 암살자가 아직도 그들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신에 칼!”
“블라디마–!”
살아남은 장군 하나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모가지가 날아갔다.
“신ㅅ—.”
입을 벌리기가 무섭게 반으로 쪼개는 사람. 두 사람은 15m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을 죽이고 1초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람이 죽었다.
순간 가속 능력자나, 순간 이동 능력자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이 범인이라면 그는 대체 무슨 능력자인 거지?
은신과 칼질이라면 신성 왕국 그 새끼가 맞는 것 같은데, 그게 능력자를 손바닥 뒤집듯 죽일 정도로 무서운 놈이었다고?
머리가 돌아가는 의원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이려고 했다면 놈의 고유 능력인 검은 정원이나 넝쿨을 풀면 그만 아닌가?
순식간에 죽일 수 있고, 거름만 남게 되니 흔적을 지우기도 편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면 굳이 이렇게 피를 볼 이유가 없었다.
“흡혈귀 새끼들이 배신한 건가?”
“그럴 이유 없어.”
흡혈귀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연히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는 흡혈귀들이 이런 짓을 할 리 없었다. 그럼 누가 은신 장비로 무장하고 이렇게 칼질하는 거지?
“우릴 모두 죽여서 신성 왕국과 싸우게 하려는 것 같다.”
“저 괴물은!”
“남부 연맹인가?”
“우리가 받아주기로 한 흡혈귀 세력이 남부 연맹에서 쫓겨난 것들인가?”
마치 그 추론이 옳다는 것처럼 또 한 사람이 토막 났다.
서거거걱–
“빌어먹을 흩어져!”
“조금만 더 버텨!”
그 조금을 버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처럼 피와 고기를 흡수한 살덩이 괴물이 다시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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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충격파가 터지고 잠시 경직된 사이에 두 사람이 또 죽었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10분이면 뚫을 수 있습니다!]“버텨라!”
“우리가 살아야 이 상황을 알릴 수 있어!”
마루는 괴물의 촉수를 슬쩍 피한 뒤, 옆으로 돌아가는 의원을 상/하로 분리했다. 생존자들이 보기엔 괴물이 발작하면서 허공에 촉수를 찌르고 휘젓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괴물은 분명 마루를 노리고 있었다.
‘신성 왕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놈을 죽였더니, 남부 연맹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잠긴 문짝이 플라스마 커터로 잘리고 있는 걸 힐끗 본 마루가 피식 웃었다.
치지지직-
잘리는 속도로 볼 때 10분이 아니라 2~3분 안짝에 뚫고 들어올 기세였다. 그러니까 일부러 10분이라고 말한 것.
‘남부 연맹이라고 한 놈도 죽이긴 했는데.’
전부 음흉한 놈들인지라, 마루라는 것을 짐작하고 남부 연맹을 언급했을 수도 있었다. 흡혈귀 이야기를 한 것도 그쪽으로 떠넘기려고 했을 수도 있었고.
쯧-
‘몇 명 살려두려고 했더니.’
마루가 죽인 시체를 꿀렁이며 빨아먹은 괴물이 무너진 육신을 재생했다. 싱싱한 시체를 흡수했음에도 조금씩 빨라지는 붕괴속도. 확실히 괴물은 시한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괜찮겠군.’
마루는 시간을 끌겠다고 발악하는 생존자들을 차갑게 바라봤다. 살려줘 봐야 흡혈귀가 될 놈들이기도 하거니와, 떠넘기기에 상황이 좋았다.
‧
파직-
플라스마 커터의 불꽃이 꺼지며 두툼한 문짝이 쪼개졌다.
[진입!] [진입!]방위군 소속 특수부대가 대회의장 안으로 밀고 들어섰다. 제국의 신형 엑소슈트로 무장한 특수부대였다.
[좌/우로 산개.] [산개!]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참상이었다. 제대로 된 시체도 없었다. 질척거리는 살덩이와 핏줄이 그대로 드러난 생체 조직이 널브러진 바닥.
쿠어쿠어-
쿠어어어억-
실시간으로 괴사하는 몸뚱이를 힘겹게 유지하던 살덩이 괴물이, 새로 들어온 신선한 육체를 보곤 둔중한 몸을 일으켰다.
[사격개시!] [화염 공격 시작] [화염 공격이다. 알파팀 사선에서 비켜!]화염방사기를 든 엑소슈트가 불을 내뿜었다. 붉은색 불꽃이 아니라 백색에 가까운 불꽃. 능력으로 강화된 불꽃이 괴물을 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덩이 괴물도 만만치 않았다. 무너지는 육신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라면 신선한 피와 고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불이 붙은 채, 폭발적으로 달려드는 살덩이. 특수부대는 재빨리 간이 바리케이드를 펼쳤다. 직선으로 달려오던 괴물이 바리케이드에 걸려 허우적댔다.
으워어어억- 으워으워어억-
활활 타는 살점이 몸부림칠 때마다 파편처럼 흩어지나 싶더니, 살점이 떨어져 나간 틈에서 창처럼 삐죽 쏘아지는 촉수.
바리케이드 뒤에서 총질하던 특수부대원 하나가 촉수에 맞았다. 둔탁한 충격에 뒤로 튕겼던 대원이 팔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괜찮아. 이거 충격만 조금···. 억-]괴물은 촉수를 뚫기 위해 쏜 게 아니었다. 고무줄처럼 끌어당기기 위해 썼던 것. 촉수에 맞은 대원이 살덩이 괴물에게 끌려 들어갔다.
불이 붙은 괴물은 딸려온 엑소슈트를 움켜쥐곤 헬멧 부분을 잡곤 병뚜껑 열 듯 뽀드득-돌려 뽑았다.
척수 일부분이 딸려 뽑힌 목을 빨아 먹은 괴물이, 게딱지를 벗기듯 엑소슈트를 벗겨내곤 허겁지겁 안을 파먹는 모습에 특수부대원들이 분노했다.
[머리에 집중사격!] [살덩이가 벌어진 곳을 쏴!]끄워어어어어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괴물을 향해, 25mm 총탄이 틀어박혔다. 한발 한발이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특수탄이었다. 순식간에 넝마로 변한 살덩이 괴물이었지만, 숨통을 끊기엔 부족했다.
두들겨 맞던 괴물이 다시 사방으로 촉수를 뽑아냈지만, 전술 방패로 막고 널브러진 의자와 책상을 엄폐물 삼아 피하는 병사들.
[화염방사기 쏘고 빠져!] [천천히 깎아낸다.] [앞으로 가지 마!] [거리 유지해. 거리.]특수부대원들은 괴물의 숨통을 끊겠다고 접근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계속 쏘고 태우기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레온 보나드 황제의 교리는 제국군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원거리 공격. 접근전을 회피하고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의 힘을 빼놓는 것. 특수부대도 그 교리를 따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수천 발이 넘는 탄환과 세 통에 달하는 화염 방사액을 쏟아부은 결과 살덩이 괴물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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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찍어온 교전 영상을 보던 김 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거 살덩이 괴물 일본에서 죽인 그거 비슷한 거 아님?]검은 괴물. 촉수 공격해서 나중에 불 지르고 건물 무너뜨렸던 거. 그거.
“그것과는 좀 다르지.”
일단 색깔도 다르고. 검은 괴물은 촉수를 쏘는 속도 자체가 훨씬 빨랐다. 불에는 약했지만, 피부도 총격에 강했고.
“검은 괴물보다는 잠식된 심 회장 대역에 더 가깝지 않나?”
머리가 약점인 듯한 것도 그렇고. 마루가 보기엔 정체불명의 검은 괴물보다는 핏빛 앰풀에 오염된 심 회장 대역이 더 가깝지 않나 싶었다.
나주연이 조심스럽게 반론했다.
[그쪽과도 좀 달라요. 그쪽이었다면 김 실장님처럼 증식했을 테니까요.]핏빛 앰풀에 오염된 개체라면 김 실장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영상 속 괴물은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요.]“그런가?”
다르다는 나주연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저걸 누가 왜 풀었느냐는 점이었다.
마루는 저 괴물을 푼 자가 제국 군부와 의원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추측했다. 다시 말해, 마루를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
[재생능력이 좋기는 하지만 시한부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공격력도 낮은 걸 보면 완성된 생체병기는 아닌 듯하다.]기순이 애매하다는 듯 실눈을 떴다. 나주연이 이어서 말했다.
[어쩌면 애초에 생체병기로 만들어진 게 아닐지도 몰라요.]“생체병기가 아니면?”
[증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어요.]“증식?”
그러니까 고기를 늘리기 위해서 만든 개체라고? 식인귀들 먹이를 위해서? 마루의 의문에 기순이 답했다.
기순의 살짝 커졌던 실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초기에는 비말 감염으로 동료를 늘렸지만,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서 감염력이 순식간에 약해졌다.
그 뒤에는 체액으로 감염됐고 나중에는 체액 가운데도, 식인귀의 뇌나 심장같이 특수한 부위를 먹어야만 식인귀가 될 수 있었다.
흡혈귀가 되는 건 더 어려웠다. 그래서 남부 연맹에서는 식인귀나 흡혈귀가 되는 건 선택 받은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자 살덩이 괴물은 번식을 위해 만든 개체라는 거냐?”
[영상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제국 군부와 의회가 흡혈귀 되자고 투표까지 했다며. 그 많은 인원을 단번에 흡혈귀로 만들려면 엄청난 숫자의 흡혈귀가 장기를 잘라내야 할 테니까.]식인귀와 흡혈귀들이 번식할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 아니면 생체병기의 실증실험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당장 마루가 죽이는 걸 막기 위한 버림 패일 수도 있었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살덩이 괴물 덕에 흔적이 지워졌으니. 지켜보다 보면 살덩이 괴물을 푼 놈들이 꼬리를 드러낼 터. 마루의 시선이 김 양이 떠오른 모니터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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