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38)
러스트 [RUST]-1038
신성 왕국. 수상 도시.
마루는 김 양이 보낸 긴급 보고를 받고 회의를 소집했다.
“한국으로 놈들이 망명을 신청했다고 해.”
일본 규슈와 교토, 홋카이도에 숨어있던 세력 가운데 규슈에 숨어있던 세력이 한국으로 넘어온 것.
한 번 식인귀 정권을 경험했던 한국이었기에, 식인귀나 흡혈귀에 대한 적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국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확인했다면 그런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알면서도 놈은 신성 왕국의 이름을 방패로 삼아 한국으로 건너간 것이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있다.] [우리랑 휴전한 거니까. 한국은 상관없지 않음?]
그냥 손을 떼자는 김 양에게 기순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손을 떼면 놈들은 기술을 가지고 한국과 협상하려고 할 거야.]대재난이 발생하기 전부터 암약하던 점조직이었다. 일본의 비밀 실험실이라거나 중국의 바이러스 연구소나 미국의 제약회사와도 자료를 주고받은 조직이 한국 정부와 거래하게 둔다는 건 위험했다.
[그렇습니다. 식인귀 정권을 거쳤기에 식인귀나 흡혈귀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상류층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상류층? 그딴 거 전부 한 번 쓸어버렸잖음.]식인귀 정권 시절 정치인, 경제인, 언론, 군부, 예술, 문화, 의료, 법조계 등 상류층이라 할법한 사람들이 식인귀가 되어 장기 집권을 꿈꿨었다.
강제 징집을 통한 수탈 경제와 임신 혜택을 이용한 영유아 판매를 통해 세계 제1의 식인귀 국가로 도약하려는 원대한 계획은 마루와 신성 왕국에 의해 뿌리 뽑히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식인귀는 없어도 식인귀가 가졌던 욕망은 그대로 남는 법이었다. 욕망은 욕망과 싸운 자에게 더욱 깊게 스며들기 마련이었다.
[권력에의 욕구, 상승에의 욕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기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욕구의 화신이 김 양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특식에의 욕구도 그렇지만 위대한 옆자리에 대한 갈망.
지금이야 비공식적으로 그녀를 인정하고 있기에 발동되지 않을 뿐, 누군가 옆자리를 노린다면 다시 불타오를 게 분명했다.
[그럼 그 조직이 한국을 오염시킨다는 소리네?] [오염이라고 하긴 그렇지. 가지고 있던 욕망을 자극하는 거니까.]김 양과 기순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주연이 끼어들었다.
[북미지역으로 데려오는 것은 어떨까요?]“이쪽으로?”
나주연의 이야기에 김 양이 눈을 반짝였다. 북미로 데려오면서 중간에 ‘슥삭’해도 되고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꿀꺽’하면 되는 일이었다.
언제부터 식인귀, 흡혈귀 사정 봐줬다고. 반대였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놈들도 분명 그랬을 거다. 응.
[밴쿠버(Vancouver) 아래, 시애틀(Seattle)이 비어 있으니까요.]시애틀은 제국과 남부연합 그리고 신성 왕국이 엮이면서 한 번 싹 쓸고 간 도시였다. 전쟁의 화마가 헤집었다고 해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제법 남아있었고, 떼어가지 못한 설비도 조금은 남아있었다.
“시애틀에 자리를 주고 기술을 가져오자? 놈들이 쉽게 넘겨주지 않을 텐데?”
[일단 자리를 잡고 시설을 복구하기만 하면 정보를 빼 오는 건 가능하니까요.]나주연이 후드를 보며 말했다. 이쪽은 해킹 전문가와 그를 보조하는 인공지능 사만다가 있었다. 거기에 후드가 정보원으로 조련한 쥐떼가 있었고.
[흐응- 괜찮은 거 같음.] [한국 정부도 그들의 기술을 탐낼 텐데? 망명 신청도 한국에 했고.]“한국에 망명한 이유가 뭐겠어. 날로 먹을 수 있나 간을 보는 거지.”
마루의 입꼬리가 사납게 치솟았다. 놈들은 구축함을 비롯해 대형 선박 여러 척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전력이라면 필리핀, 인도네시아로 내려가 한 자리 차지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동남아시아는 전쟁에 휩싸인 상태. 식인귀고 흡혈귀고 전력만 된다면 얼씨구나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육과 혈액 확보가 수월해진 동남아를 가지 않고 한국으로 왔다? 심지어 한국은 식인귀 정권에 데인 적이 있어서 적대감이 상당할 텐데도?
자신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
‘한국에서 뭔 짓을 하려는 건지 가보면 알겠네.’
두 달 정도 쉬기도 했고 한국에 남아있는 싱크홀 괴물들도 직접 볼 겸. 겸사겸사 가보기로 한 마루였다.
[놈들끼리 통신 가능하다는 거 잊지 마라.]갑자기 칼질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 기순이 조언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마루를 죽이려고 했던 사건 당시, 흡혈귀 용병이 정신파를 이용해 장거리 통신을 한 정황이 있었다.
지금 규슈 조직도 고위급 흡혈귀가 중심인 만큼, 놈들끼리 연락하고 있을지 몰랐다. 섣불리 칼질했다가 휴전 맺은 점조직 전부와 개싸움 할 상황은 피하자는 기순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마루였다.
“봐서.”
마루의 대답에 기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제국은 혼란에 빠졌다.
제국 군부와 의회가 통째로 날아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사건 현장을 수습하면서 속기로 기록된 회의록이 유출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신 게 사실이었어.’
‘그 방송이 진짜였단 말이야?’
‘30만 명이 넘는 제국군 사망도?’
‘개새끼들. 포로가 없다는 게 말이 돼?’
‘그 방송이 사실이라면 덴 브라운 총리도 죽었다는 소리잖아.’
‘군부와 의회가 전멸했어. 이것도 신성 왕국의 짓인가?’
‘그건 아니라고 하던데? 괴물이 죽였다고 하더라.’
‘괴물? 무슨 괴물?’
현장에서 작전 중인 장성들과 본토에 일이 있어 회의에 빠졌던 의원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보를 알아야 어떻게 할지 방침을 정할 수 있지요.”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신성 왕국이 이번 테러의 범인입니까?”
방위군 특수부대가 대회의실에 진입해 촬영한 영상이 상영됐다.
‘쿠어어어어어어—-’
거대한 살덩이가 재생되고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괴물이군요.”
“생체병기로 추정됩니다.”
“저게 어떻게 해상도시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대회의실에까지 침입한 겁니까?”
생체공학에 조예가 있는 의원이 말했다.
“급속 변이를 이용한 생체병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저렇게 변한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싱크홀 괴물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겁니다. 싱크홀 괴물에 감염된 사람은 순식간에 침식되고 변이를 일으켜 싱크홀 괴물이 됩니다. 그걸 이용한 급속 침식, 변이를 이용해 생체병기를 만들었다면. 저런 괴물이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고 치지요. 그럼 저 괴물이 대회의실에서 생긴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설마 회의가 열릴 것을 알고 미리 감염시켰다는 건 아니겠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누가 무엇 때문에 생체병기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신성 왕국이 그랬다고 하기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럴 이유가 있건 없건 신성 왕국이 주적인 상황 아닙니까? 놈들이 생체병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하지요.”
“동의합니다. 일단 여론을 환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합니다. 여론 환기가 목적이면 사실만 발표해도 충분합니다. 정체불명의 생체병기가 대회의실을 급습. 군부 장성과 의회 의원들을 학살했다. 이 정도만 해도 알아서 살이 붙을 텐데 굳이 신성 왕국을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성 왕국이 아닐 경우, 우리는 또 신뢰를 잃게 됩니다. 당장 신성 왕국의 그 방송 때문에 어떻게 됐습니까?”
[있잖아. 그거 쉽게 결정하면 후회할 거 같은데.]“누구냐?”
경비가 삼엄해졌음에도 뚫고 들어온 여자의 목소리에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비상벨이 울리고 흉흉해진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은 여자가 속기 자료를 손짓하며 말했다.
[저기. 나오는 협력자 있지? 죽은 황제를 도왔던 신인류 용병. 그게 나야.]“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대가를 받으러 왔어.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너희 전임자들은 우리에게 대가를 주고, 우리와 함께할 건지 투표를 했었고.]“마지막으로 묻겠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여자가 미소 지었다.
“너희가 원하는 게 그것뿐인가? 해상도시에 거주 공간을 내어주고 혈액 공급을 해주는 것.”
[황제를 도왔던 대가는 그것으로 충분해.]“그럼. 대가만 충분하다면 신성 왕국과의 전쟁을 도울 수 있나?”
[지금은 곤란한걸. 우리도 피해가 커서.]“내일까지 대답해주지.”
이틀 후, 제국에서는 정체불명 세력의 테러로 대회의장이 공격받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생체병기로 추정되는 것이 대회의장을 급습. 군부와 의원 다수가 사망 실종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방위군 특수부대의 전술 카메라로 녹화된 짧은 영상과 함께 발표된 내용에 제국은 다시 한 번 끓어올랐다.
‘저거 봤냐? 저런 걸 할 새끼들이 누가 있겠어.’
‘신성 왕국이 실험체를 푼 거다.’
‘병신아 신성 왕국이면 저기서 그럴 시간에 까마귀로 폭격했겠다.’
‘해상도시 방공망은 ㅈ으로 보냐?’
‘방공망이고 방어시스템이고 해상도시 운항시스템 처맞고 주저앉아 놓고는.’
‘솔직히 신성 왕국이면 저딴 걸 꾸역꾸역 넣을 필요가 없지.’
신성 왕국 말고도 제국을 공격할 적이라면? 찢어진 남부 연맹의 식인귀, 흡혈귀밖에 없었다. 제국의 여론은 마루의 예상처럼 흘러갔다.
다만, 새로 구성된 제국 지도부는 여자 흡혈귀와의 거래를 통해 핏빛 진실에 도달했다.
“은신 모듈을 이용하고 흉기는 칼이라.”
“공교롭게도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이 먼저 떠오르는 건. 저 혼자뿐입니까?”
“그자가 유명해서 먼저 떠올랐을 뿐. 상위 능력자나 식인귀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하긴 강한 능력자나 고위급 식인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신체 능력자만 하더라도 은신 장비에 칼 한 자루 있으면 대량 학살이 가능했다.
“이간질일 가능성도 있다?”
“그 여자도 고위급 흡혈귀입니다. 감각이 예민한 흡혈귀란 말이죠.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블라디마루 칼린과 만난 적이 있음에도 단정 짓지 못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었다.
“신성 왕국은 어떻습니까?”
“그 자리에서 진격을 멈췄습니다.”
“대화 요청은 어떻게 됐습니까?”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현재 위치에서 그대로 있겠다고 합니다.”
“휴전 정전 협상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다는 건가? 대화도 거부하고?”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뭔가?”
“서거하신 황제 폐하께서 신성 왕국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신성 왕국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달랐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부담을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신성 왕국이 더 진격하거나 확전할 생각은 없는 것 같군요.”
“일단 시간을 끕시다. 우리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넘칩니다.”
제국과 신성 왕국의 전선은 그대로 유지된 채 시간이 흘렀다.
‧
길디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스쳐 지나가자, 날씨는 바로 여름으로 변했다.
6월 중순이 지날 무렵 기온은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평년 기온이라면 20도 전후였어야 할 기온이 몇 년부터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점점 길어지고 혹독해지는 겨울과 그에 대한 반작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여름. 서부지역 황야에서는 45도를 넘어 50에 육박하게 올랐다.
더 위험한 것은 겨울에 내린 눈이 녹아 사라지고 나면, 가뭄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쏟아지는 폭우. 하루에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정신 나간 기후.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가며 대지를 두들겨대자, 토사가 쓸려가고 깎이는 건 다반사였다. 산사태를 비롯해 도로가 유실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위험한 건 건물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영하 5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평균 연교차가 100도라는 미친 기후가 몇 년을 이어진 결과였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도 버티기 힘든 기후변화에 목구조 주택이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신성 왕국에서는 진작부터 건물 유지 보수, 외장 공사를 통해 어느 정도 버텼지만 다른 곳은 아니었다.
당장 제국만 하더라도 목조 주택은 갑작스러운 강풍과 폭우, 우박에 박살 났고. 허리케인이라도 한 번 스쳐 지나가면 그대로 초토화됐다.
남부지역은 더 심했다. 초대형 토네이도가 쓸고 가버린 곳은 융단 폭격당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비닐하우스와 간이 건물로 만든 스마트 팜(Smart Farm)은 자연의 폭력을 버틸 수 없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 옥수수와 콩도 마찬가지였다.
유전자 조작의 목적이 특정 회사의 제초제와 몇몇 질병에 저항성을 갖게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는 오히려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다시 고온에도 생육 가능한 유전자 조작 작물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원하는 조작이 어려워졌다.
“변이 바이러스의 RNA가 영향을 줍니다.”
“이대로는 어렵습니다.”
“해상도시의 스마트 팜과 연구실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해상도시 설비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작물을 해상도시로 가져가자는 말입니까? 원본 종자들이 전부 오염될 겁니다.”
“변이 바이러스와 GMO가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미 위험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식물들이 이상했다. 예전부터 영하 50~60도에도 얼어 죽지 않고, 50도가 넘는 고온에도 타죽지 않는 식물들이 나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