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40)
러스트 [RUST]-1040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겉으로는 그냥 그런 사이였다.
본격적으로 종말이 시작되기 전, 하나의 중국이 남중국해를 통째로 먹겠다며 깽판을 칠 때는 근처 나라들이 합심해 중국을 견제하자고 했었지만, 사실은 좀 복잡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남중국해 연안 국가들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한 걸음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를 중심으로 퍼진 자유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는 세력이 인도네시아라는 강한 심증이 있기도 했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필리핀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지 않았다며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럼 필리핀 이슬람 반군에 들어가는 무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슬람의 본산 중동에서 총알 배송 택배로 보냈을까? 당연히 필리핀은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좋아할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였다. 이슬람의 비율이 85%~87% 기독교가 11%~12%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를 합해 3%~4%가량.
온건한 이슬람이며 종교 갈등, 민족 갈등이 없다고 선전하는 인도네시아지만, 사실 수니파 무장단체들이 테러, 방화를 일으켜도 실제 경찰 조서에는 단순 강도, 방화 사건으로 기록되기 일수인 나라.
[회사에서는 그냥 인도네시아가 인도네시아 했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었음.]말로 정리하기 힘든 나라가 인도네시아였다는 김 양의 증언이 이어졌다. 중국이 중국 했듯, 베트남은 베트남하고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한다는 이야기.
[베트남도 달러로 출금하는 거 막았었음. 베트남에 다시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대충 대기업 말고는 좋다고 들어갔다가 망하고 공장 설비 거저 뜯기고 나가는 애들 많았음.]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잘 나간다며 언론에서 선전했었는데 공장 설비 날로 뜯기는 회사들이 있었다고?
[중국도 그랬는데, 베트남이라고 안 그랬겠음? 힘없는 애들은 그냥 당하는 것임. 그래서 날로 회사 날린 사람이 갈 곳 없고 진짜 억울해서 같이 죽고 싶다 할 정도면 회사에 의뢰하고 그랬었음.]불법에는 불법. 폭력에는 폭력. 테러에는 테러. 깽판에는 깽판으로 음지에서 해결했던 것이 월드 그룹이었다. 나중에는 자기들도 악이 됐지만.
[인도네시아도 비슷했음. 그나마 베트남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다 그렇지 않음? 중국이 깽판 치니까 베트남으로 가고, 베트남이 지랄하니까 인도네시아로 넘어갔는데, 인도네시아는 착했겠음?]발전소 공사 발주하면 절반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도로 공사, 인근 마을에 송전 배전 공사까지 덤으로 요구하는 건 다반사.
김 양이 기억하는 황당한 사건은, 한국 기업에 수주해 공사진행이 80%~90%가 됐는데, 계약 취소하고 10%~20% 남은 걸 일본 건설사에 돌려, 일본 건설사가 공사한 것으로 바꾼 일이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자 한국 기업에 책임 묻겠다고 발작한 것이었다.
[지랄 같은 동네임. 그 동네.] [누군지 모르지만, 동네 이름 예술로 지었음.]어디든 지랄 같은 놈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녀가 회사에서 경험한 바로는 이름값 제대로 하는 동네였다.
인도차이나.
그러니까 인도에 차이나까지 합친 동네라는 뜻.
그저 예술이었다.
인도차이나에 속한 나라들 사이에서 불꽃놀이가 터지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언제나 쿠데타, 반군, 테러가 있었습니다. 국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아는 이야기였을 뿐이었겠지만 말입니다.]후드가 씁쓸하게 말했다.
[김 양이야 음지에서 일했으니 나쁜 것만 봐서 그렇지, 한국 기업이 들어가서 성공한 사례도 많아.]기순의 말에 김 양이 삐뚜름하게 답했다.
[그래서 잠수함 기술이고 전투기 기술이고 날로 먹힘? 먹히고 찍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졌었고?] [우리가? 언제?] [그랬잖음.] [그건···. 우리 이야기가 아니지.]김 양의 전진에 기순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래서 왜 그러는 거냐? 왜 갑자기 인도네시아가 나오고 인도차이나가 등장하는 건데?”
[그 동네 패싸움 시작했다고 책임감 가질 필요 없다고 해주고 싶었음.]김 양이 곁에서 지켜본바. 마루는 책임감이 강했다.
하긴. 그랬으니 망한 집안 살려보겠다고 도축장에 와서 밤낮으로 굴렀지.
처음 만남이 살 떨려서 그렇지. 같은 편이 되고는 신뢰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마루였다. 회사에서도 통수 치는 게 일상이었는데, 마루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끝까지 같이 갔다.
능력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대부분 앞장섰다. 사실 능력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 갈아 넣을 수 있는 위치 아닌가? 왕이잖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책임감이 아니면 뭔가? 효율이고 나발이고 왕이 밑에 애들 갈아 넣으려면 충분히 갈아 넣을 수 있음에도 지금처럼 자기가 직접 발로 뛰는 게 일반적일까?
아니었다.
회장은 사장에게 짬 때리고 사장은 전무, 이사에게 짬 때리고 부장, 과장, 대리로 이어지는 짬의 흐름. 그게 김 양이 경험한 세상 돌아가는 이치였다.
하지만 마루는 달랐다. 굴리기도 많이 굴렸지만, 그 자신이 앞장서서 굴렀다.
그렇기에 한국과 점조직 하는 짓을 지켜본다고 하면서도 동남아시아를 먼저 가는 건. 어쩌면 일반인이 전쟁에 휘말렸다고 생각해서 일지 몰랐다.
당장 서울 탈출 때도 그랬고 디트로이트 도시 장악했을 때도 일반인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을 보면 그랬다.
‘흐응- 물렁하다니까.’
능력 없는 놈이 그러면 지랄이지만, 마루는 어쨌든 이제까지 압도적인 결과를 낸 마루 아닌가?
그렇다고 상대방을 착취한 것도 아니었다. 덴 브라운과의 관계만 봐도 그랬다. 덴 브라운이 많이 퍼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마루도 그의 편의를 봐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동남아 싱크홀 폐쇄를 위해 기존 정권 뒤엎은 일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다.
[걔들 언제고 사고 칠 애들이었고 불놀이 크게 할 놈들이었음. 지금도 보면 인도네시아가 필리핀으로 가는 곡물 수송선 중간에 빼돌린 거 보면 알잖음. 지금이야 둘로 쪼개져서 싸우지만 조금 있으면 서로 통수 치느라 개판 될 게 뻔함.]사태 발생 전에 하나의 중국 막는다며 공동 전선을 펼칠 것처럼 하더니, 중국 자본 들어가니까 바로 꼬리 내린 애들 나와서 깨진 것만 봐도 뻔하지 않나?
그러니까 우리 왕님은 책임 없음.
언제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통수치고 그랬을 애들임.
김 양의 당당한 주장에 기순이 고개를 저었다.
“인도네시아부터 가봐야겠다. 불시착한 전용기도 있고 비상 거점도 있으니까. 그거 회수하고 치우기도 할 겸.”
[그거 처리하려면 애들도 필요하고 비행선도 필요하지 않음?]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 가운데 한 척을 냉큼 빼서 지원하는 김 양의 모습에 마루는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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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달 사이,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심각하게 변해있었다.
화산 활동이 활발한 인도네시아였지만, 화산 대부분이 적당한 수준에서 김빠지듯 분출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화산 활동이 변해버렸다. 마치 대재난이 터졌을 당시 일본처럼.
여기저기 동시에 분출한 화산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싱크홀이 우후죽순 늘어났겠지.
싱크홀에서 기어 나오는 괴물을 잡겠다고 핵을 쓴다면 도쿄와 같은 거대 싱크홀이 뚫려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둔다면 작은 싱크홀들이 곰팡이처럼 사방에 퍼질 테고. 애초에 싱크홀이 발견되자마자 막아버렸으면 될 일을 정치적, 군사적으로 써보겠다고 하다 지랄 났으니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까?
마루는 레온 보나드와 제국군이 함정을 팠던 므라피 화산 영역으로 들어갔다. 화산재와 먼지가 무슨 결계처럼 비행선을 거부하는 느낌.
‘결계라고?’
문득 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영역···?’
화산 폭발이 단순히 인간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을 넘어선 무엇이라면?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한 화산 폭발이 사실은 적극적인 공격이라거나, 침식의 일환이었다면?
논리적 도약을 넘어 비약 같은 생각이었지만, 여러 차례 화산 분출 영역을 오고 간 마루였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우연이건 필연이건. 그게 어떻든 간에 결과만 떨어져 존재할 순 없었다.
화산 폭발이라는 결과만 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인류의 인프라가 완전히 먹통이 됐다. 전기, 상하수도, 도로, 철도를 비롯한 모든 게 무너지고 일반인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
땅과 물, 공기가 통째로 산성화되고 오염된다. 대형화산 하나만 터져도 그런데 그런 화산들이 줄줄이 터지고 심지어 분화가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화산재와 먼지가 제대로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그랬다. 일본만 하더라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인도네시아도 일본처럼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열대지방 특유의 소나기가 지나가고 폭풍우가 몰아쳤음에도 화산재와 먼지는 걷히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뒤덮이는 섬은 분명 죽어가고 있었다. 죽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화산재와 먼지가 쌓였으면서도 살아있는 식물이 있었다. 밀림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죽은 곳도 많았지만, 분명 살아남은 식물과 밀림이 있다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건가?
‘변이를 일으킨 식물이라고 해도 광합성을 할 수 없는 환경인데.’
흙이 산성화됐고 물도 오염됐다. 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인데 살아남았다?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 익숙한 모습이지, 그 속은 전혀 다르게 변했을지도 모를 일.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보아하니, 규슈에서 도망친 놈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신형 전용기가 불시착한 기체 근처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김 양이 보내준 블랙 드레이크급 대형 비행선은 화산재와 먼지를 피해 높은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거점 보안 유지 중이었습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국왕 폐하.]비상 거점을 만들고 방어하고 있던 보조 인공지능이 마루의 귀환을 반겼다. 어쩐지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환영이었다.
“그간 별일 없었나?”
[인도네시아 특수부대와 필리핀 특수부대가 접근했지만 격퇴했습니다.]벌써 3개월이 넘게 지났으니, 제국군이 움직이면서 입을 막아 놓은 게 퍼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인도네시아가 특수부대가 움직이자, 필리핀도 움직였겠지.
그리고 두 나라의 특수부대들은 파괴되고 남은 제국의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을 테고. 아마도 서로 북베트남의 테러부대인 것처럼 위장해 치고받았을 터. 실로 김 양의 예상대로였다.
[현재까지 화산재와 먼지의 특성을 간이 분석표로 분석한 결과입니다.]마루의 곁을 지켰던 보조 인공지능이라 그런지, 연산력이 부족함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정밀 분석은 곤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자기적 성질과 산성 성질이 강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그렇군.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화산재와 먼지가 전자기적 성질로 통신과 전기공급에 악영향을 주는데, 므라피 화산은 그 정도가 심했다.
땅과 물의 산성 오염도 마찬가지, 일반적인 화산보다 오염도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강해진다면 단순한 산성화를 넘어서 위험할 정도였다.
마루는 즉시 비상 거점을 해체하고 불시착한 기체도 해체해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행선으로 옮겼다.
[폐하. 제가 계속 모시고 싶습니다.]불시착한 전용기 보조 인공지능은 다시 마루를 모시고 싶다고 간청했다.
[무슨 소립니까? 기체를 잃었으면 새로운 기체가 배정될 때까지 대기하십시오.]현재 신형 전용기에 배치된 보조 인공지능이 반발했지만, 몇 년간 마루 전용기를 안전하게 운항한 공로에 불시착한 기체와 비상 거점을 지킨 공로를 생각해 달라는 소원을 거절하는 건 형평에 맞지 않았다.
“공에는 합당한 상이 있어야지.”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공을 세운 건 공을 세운 것이었으니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인공지능이 공을 세우면 칩이나 저장장치를 업그레이드한다거나 연산력 할당을 높이는 쪽이었는데, 마루를 보조했던 인공지능은 달랐다.
[업그레이드를 포기한다니. 알겠습니다. 제가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발했던 신형 전용기 보조 인공지능도 예전 인공지능이 공을 세웠다는 것을 인정하고 물러섰다는 점이었다.
“인도네시아 신정부가 어디 있지? 새로 수도 이전한다는 보르네오 섬에 있나?”
[확인 결과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에 있습니다.]“거기로 가지.”
[알겠습니다.]보조 역할을 정리한 마루의 전용기가 인도네시아의 중심 섬인 자바(Java, Jawa)로 향했다.
[이상 현상이 발견됐습니다.]그간 곁에서 보조한 짬이 있는 인공지능이 특이 사항을 확인하고 보고했다.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 군데군데 보이는 식물들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마치 식충 식물이 벌레를 잡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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