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41)
러스트 [RUST]-1041
식물에 얽힌 사람들은 이미 시체상태였다. 높은 온도와 습도를 따져보면, 사망한 지 최소한 이틀 이상 지났지 싶었다.
“식물 샘플부터 확보해.”
[채집용 드론 하강합니다.]식물을 향해 하강하던 드론이 순간적으로 통제를 잃고 추락하려다, 안전장치가 작동하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 확인. 긴급 대응 장치 작동으로 권역에서 벗어납니다.]핵폭발로 발생하는 EMP나 EMP 폭탄은 강하지만 순간적인 폭발이었다. 잠시 번쩍하고 EMP 폭풍이 몰아치는 방식이라면.
생체 EMP는 변이된 생명체가 밀집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강해지고, 뭉쳐있는 동안 계속해서 생긴다는 특징이 있었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인간의 EMP 무기는 액티브 스킬로 강하지만 순간적이고, 변이 괴물들이 모여 만든 EMP는 패시브 스킬이나 오라 같이 지속적인 성질이라고 할까?
동물일 경우 밀집하거나 이동에 따라서 생체 EMP의 강도가 유동적으로 변했지만, 지금은 식물이었다. 한곳에 뭉쳐 군집을 이룬 상태.
식물이 유동적으로 밀도를 변환시킬 수는 없을 테니, 동물이나 곤충처럼 순간적으로 밀도를 높여 강한 생체 EMP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일정 영역에 항시 발동하는 생체 EMP 필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
스위스에서 식물이 뿜어낸 생체 EMP 필드를 경험한 적 있었으니 이상할 건 없었지만, 당시와 지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생체 EMP였다는 것과 그 변이된 나무는 굳이 인간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식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대응을 봐야겠군. 우선 의사소통 가능한지 확인해봐.”
[드론 한계 거리에서 접촉 시작합니다.]생체 EMP 필드 밖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접근해 다양한 언어로 접촉을 시작했다.
[언어에 반응 없습니다.] [정신파로 신호 발신합니다.]스위스에 있던 식물은 인간의 언어도 이해했고 정신파로 대응했었다. 하지만 이곳의 식물은 달랐다.
[정신파에 반응 없습니다.]“무시하는 건가?”
[확실하지 않습니다.]“확실하지 않다면 확실한 방법을 써야겠지. 공격해서 확인해봐.”
[대응 반응 확인하겠습니다.] [저강도 공격부터 시작합니다.]기본 무장인 25mm 기관포부터 시작하는 보조 인공지능이었다.
신성 왕국 병기 특유의 낮고 굵은 총성과 함께 밀림을 긁고 지나가는 포탄들. 일반탄, 소이탄, 철갑탄에 괴수용 특수탄이 번갈아가며 밀림의 반응을 확인했다.
반응 실험 결과 밀림 전체가 변이 식물이 된 건 아니었다. 일부 식물이 변이를 일으켰고, 줄기와 잎만 움직일 수 있지, 중심이 되는 대나 뿌리를 움직이진 못했다.
보조 인공지능은 네이팜탄과 백린탄, 독가스탄까지 다양한 화기와 다양한 탄을 사용해 변이 식물의 반응을 실험했다.
[식물에서 정신파 확인됐습니다.]스위스 때도 그랬지만, 뇌가 없는 식물에서 정신파가 발생했다는 건 역시 신기한 일이었다.
[정신파 패턴 분석 완료 고통. 분노와 유사한 패턴입니다.]“아프니까 화가 난다는 건가? 상관없다. 약점이 있는지 확인해봐.”
[약점 파악을 위한 공격. 계속합니다.] [밀림 방향으로 분노. 고통 정신파가 퍼집니다.]이것 봐라? 분명히 극히 일부분만 줄기와 잎을 움직일 수 있는 변이 식물이었는데, 정신파를 밀림으로 퍼뜨린다고?
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정신파를 퍼뜨렸을까? 아니겠지.
그렇다는 건···. 일반 식물처럼 보이는 식물 가운데도 정신파로 소통할 수 있는 놈들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정신파를 이용해 의사소통한다거나, 무언가 행동을 유도한다는 이야기였다. 식인 식물처럼 사람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있던 얌전한 식물들도 반응할 수 있다는 뜻.
[생체 EMP 필드 확장됩니다.]마루의 예상대로 밀림이 식인 식물의 고통에 반응했다. 순식간에 넓어지는 생체 EMP 필드. 생체 EMP 필드를 확장할 수 있다는 건,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
고통스러우니까 생체 EMP 필드를 확장했다는 소린,
“생체 EMP를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안다’는 소리겠군.”
인간의 장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저렇게 잡아먹힌 사람들이겠고.
[네이팜 불꽃에는 약하지만, 화산재가 엉겨 붙은 피막이 형성된 부분에서는 화염 내성이 확인됐습니다.]“화산재와 먼지가 엉겨 붙은 부위라···.”
그거 싱크홀 괴물과 비슷한 느낌인데. 생체 EMP 필드가 넓어지면서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보내 샘플 채취가 어려워진 만큼 여기까지가 실험 한계였다.
생체 EMP 필드기 때문에 엑소슈트나 노심 아머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방탄복과 전투복에 의지해 식인 식물의 샘플을 채취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마루는 직접 내려가 샘플을 채취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사람 맛을 본 식인 식물 밀림으로 내려가 힘을 뺄 이윤 없었다.
“약점 파악했으면, 가던 길 가자.”
[고도 상승합니다. 화산재, 먼지 구역을 벗어났습니다.] [성층권 정찰 비행선과 지리정보 연동 성공. 도착지점 확인. 운항 시작합니다.]‧
하늘 아래는 화산재와 먼지가 뒤섞인 짙은 회색의 구름으로 뒤덮여있었다. 중간중간 번쩍이는 번개와 이어진 천둥이 대기를 흔들고 지나갔다.
인도네시아 신정부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필리핀으로 가는 곡물 수송선을 중간에 강탈하지 않나. 같은 편이라면서 필리핀 반군을 대놓고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수도로 이전하기 위해 방어선을 설정하려고 한다고 해도 정도가 지나쳐.’
베트남 내전에서 남베트남과 동맹을 맺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일단 같은 편이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신정부가 하는 짓은 같은 동맹을 공격하는 짓이었다.
몇 번 당한 필리핀도 이제는 북베트남 특수부대로 위장한 부대를 침투시켜 인도네시아에 보복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고.
자료를 확인하던 마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식인귀나 흡혈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신정부가 시작부터 오염됐군.’
인도네시아 신정부가 식인귀나 흡혈귀 추종자거나, 관련된 놈들이라면 지금 상황이 전부 해석됐다.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특수부대도 대부분 능력자일 터. 필리핀을 자극해 필리핀 특수부대를 끌어들여 꿀꺽 해버리기 위해서겠지.
그런데 중간에서 식인 식물이 식인귀, 인도네시아 특수부대, 필리핀 테러부대 할 거 없이 전부 먹어버린 상황인 거고.
인도네시아 신정부를 장악한 식인귀, 흡혈귀들이 강해지려고 수작을 부렸는데 그 과실을 식인 식물이 중간에 가로챘다고 봐야 했다.
‘비전투 손실도 식물 때문이라고 봐야겠군.’
소대, 중대 단위를 먹어치운 밀림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병력을 베트남 내전 밀림으로 파병하는 건. 병사들을 식인 식물에 먹이로 던져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분 더럽게.’
싱크홀 폐쇄 문제로 식인귀 정권을 밀었더니, 새로 뽑은 신정권도 식인귀 정권이라는 소린데. 여러모로 기분이 잡친 마루였다.
[신정부가 있는 수라바야(Surabaya]에 도착했습니다.]수몰된 자카르타 다음의 도시, 인도네시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가 수라바야였다.
“신정부 청사가 있는 곳부터 확인하고. 놈들이 모일 때를 확인해봐.”
[알겠습니다.]보조 인공지능과 디아나가 인도네시아 신정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건 예상외로 시간이 걸렸다. 전자전 능력자가 중간에서 해킹을 무력화했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병력이 보르네오(Borneo, 인도네시아어 Kalimantan) 섬과 수마트라(Sumatra) 섬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보급물자 이동을 확인한 결과 말레이시아를 공격하고 필리핀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갑자기?”
같은 편의 통수를 친다고? 말레이시아의 수도는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였다. 수마트라 섬과 가까이 있다손 치지만, 말레이반도 방향으로는 대규모 항구가 없었다.
“배는? 수마트라 섬 근처에 상륙선이라거나 그런 배가 결집했나?”
[현재까지 확인된 바 없습니다.]병력을 아무리 많이 모은다 하더라도 수송할 배가 없으면 의미 없었다.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같은 편이기도 하거니와 바다를 건너올 것도 아닌데 신경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수마트라에 있는 인도네시아 병력은 둘로 나뉘어 대기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하나는 쿠알라룸푸르가 마주 보이는 곳.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싱가포르(Singapore) 남서부 인근이었다.
싱가포르 인근에 배치된 인도네시아군 앞에는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군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신정부 애들 모이는 건? 아직도 일정 안 잡혔어?”
[전자전 능력자가 시청과 주요 건물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습니다. 도청과 해킹이 어렵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도 답답했는지 톤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어쩔 수 없지. 놈들이 한자리에 최대한 많이 모였을 때 내려갈 테니까. 출입 확인해서 제일 많이 모였을 때 알려줘.”
[알겠습니다.]그렇게 대기한 채 며칠이 지났다. 베트남 내전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졌고 북부와 남부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라오스, 태국 전선도 같이 불이 붙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도 공격받았다며 호들갑이었지만, 실상은 인도네시아 특수부대가 같은 편인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쑤시고 다닌 것이었다.
성층권 정찰 비행선과 해킹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마루는 혀를 내둘렀다.
“미친놈들이군. 정말.”
필리핀은 워낙 당한 게 있어서인지 재빨리 대응했지만, 말레이시아는 졸지에 두들겨 맞고는 갑작스러운 테러 공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테러범은 인도네시아라고 전해줬지만, 인도네시아의 강력한 부인과 오히려 필리핀이 범인이라는 역 주장에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남베트남은 그렇지 않아도 똥을 쌀 지경인데, 동맹 맺고 도와주겠다는 놈들이 자기들끼리 병신 짓을 하는 것을 보니 아득할 따름이었다.
제국이 발을 뺀 여파라고 생각한 남베트남은 제국에 애원했지만, 신성 왕국과 휴전 아닌 휴전 중인 데다, 내부 상황이 복잡한 제국은 남베트남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렇게 소모전으로 가면 분열된 남베트남 동맹이 밀릴 것이라 예측되는 때, 이변이 발생했다. 열대성 폭우가 쏟아진 어느 날 밤. 싱가포르 앞바다에 있는 섬들이 녹색 다리로 연결된 것이었다.
[화산재와 먼지 구역이 퍼지고 있습니다.]정체불명의 녹색 다리가 생긴 당일 밤. 수마트라 섬에서 제일 큰 화산인 시나붕(Sinabung) 화산이 격한 분출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잔잔한 분화를 계속하던 화산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대규모 분화를 시작한 것. 삽시간에 수마트라 북부를 뒤덮은 화산재와 먼지가 대기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군대 위를 덮었다.
[대기 중인 있던 인도네시아 군대 위치를 놓쳤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의 보고와
[수마트라 남부에 주둔했던 인도네시아 군대. 폭우를 틈타 이동 확인. 정체불명의 다리를 건너 싱가포르로 진격하고 있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의 보고가 동시에 올라왔다.
[정찰 드론 녹색 다리 근처에서 통제 불능. 통신 두절. 생체 EMP로 확인됐습니다.] [정체불명의 다리. 식물이 엮인 구조체로 확인.] [인도네시아 전역 화산 활동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화산재와 먼지 영역 확산. 지표 상황 관측 불가.]삐-삐-삐-
삐이이이—
갑작스러운 경고음. 싱크홀에서 싱크홀 괴물이 나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순식간에 지워지는 모니터 화면. 그간 여러 곳에 설치했던 CCTV가 먹통으로 변하고 있었다.
“입출 자료 올려.”
마루가 신정부 요인이 모인 시청 출입 자료를 확인했다. 신정부 인사가 모였을 때 한 번에 처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상황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전자전 능력자의 방해 때문에 처음 몇 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사로 들어간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들어가면 나오지 않았다?’
신정부 인사가 몇 명인지 모르지만, 열흘 넘게 들어간 사람이 나오지 않았는데. 마루가 들어간 사람들의 명단을 살피자, 인공지능 디아나도 다시 정보를 확인했는지 이상한 점을 찾았다.
[최근 30일 동안 청사로 들어간 식자재가 없습니다.]보조 인공지능도 자료를 확인했다.
[주변 식당에서 배달시키던 것도 32일 전부터 끊겼습니다.]인도네시아를 장악한 신정부 식인귀들이 자기들이 강해지기 위해 필리핀을 건드렸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필리핀이 대응하는 부대를 보내면 그걸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그런데 만약. 신정부를 장악한 게 식인귀나 흡혈귀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지금 내려간다.”
리퍼 슈트를 입은 마루가 시청으로 진입했다.
‧
‧
‧
시청엔 인적이 없었다.
스르륵-
창밖은 어둠.
이따금 번쩍이는 천둥 번개와 쏟아지는 빗소리가 텅 빈 홀을 가득 채웠다.
발걸음 소리 하나 없이 그림자처럼 이동하던 마루가 중앙회의실 문고리를 살짝 돌렸다. 끼릭- 잠기지 않은 문이 밀리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열렸다.
!
거대한 회의실은 작은 밀림으로 변해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에서 돋아난 식물들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 녹색으로 가득한 둥지 속에서 양분으로 변해 녹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끼리릭- 끼리릭-
다이얼을 돌리는 손가락을 파고든 뿌리.
그리고 온 얼굴을 덮은 이파리 사이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