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47)
러스트 [RUST]-1047
작전의 목표는 간단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퍼진 식육 식물을 뿌리까지 뽑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엑소슈트와 노심 아머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군체를 형성한 식육 식물이 일종의 생체 EMP 필드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땅 위에 있는 가지와 이파리를 전부 친다고 해도 땅속 깊숙하게 박힌 뿌리를 뽑으려면 생체 EMP에 영향을 받지 않는 병력이 필요했다.
나루즈와 희연이 지휘하는 U+부대, 그간 변이 괴수 사냥을 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은 능력자 부대까지 총동원하기로 한 마루였다.
[우리가 식육 밀림을 공격하면 인도네시아군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테러할 텐데?]“작전 시작 직전. 인도네시아군 지휘부를 내가 습격한다.”
머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토벌 작전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사실상 주요 전력을 총동원하는 것인지라, 한국에서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던 김 양과 친위대.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 선단 전체가 이번 작전에 소집됐다.
[한국 정부에서 우리 빠진다니까 난리던데?]“싱크홀 괴물이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다며?”
[응. 그런데 식물과 싱크홀 괴물이 연결된 것 같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에 있는 식육 식물이 한국에 있는 싱크홀 괴물과 연결해서 이쪽 밀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네.]“그럼 흡혈귀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규슈에 있던 점조직 놈들. 한국으로 망명하겠다며 들어온 그놈들이 무슨 생각인지 확인할 기회가 될 터.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망명한 것이 아니라면, 싱크홀 괴물이 올라올 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국 정부에 경고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괜찮겠나? 흡혈귀 놈들이라서 한국 정부에 끈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놈들이 알면 속을 숨기지 않겠어?”
[그래도 알려주는 게 맞지. 쓸데없는 희생이 생기는 것보다는 낫잖아?]“알아서 해라.”
마음대로 하라는 마루의 대답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어차피 병신 짓거리하는 애들은 뭘 해도 하기 마련인데? 차라리 작정하고 미끼 던지는 게 낫지 않겠음? 그리고 요즘 우리에게 보따리 맡겨둔 것처럼 그래서. 솔직히 좀 싫던데.]몇 개월간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김 양이 불만을 드러냈다.
“그건 무슨 소리야?”
[지금도 그렇잖음. 한국에서 병력 빼서 작전한다니까 자기들이 왜 난리임? 우리 없었으면 망할 건가? 그리고 비행 선단으로 방어선 지켜줬으면 됐지. 저번에도 시가전에 참여해달라는 둥. 그랬잖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야? 우리 전력이 강해 보이니까 그런 거지] [그걸 왜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종말의 시대. 어쩌면 제일 잘 적응하고 있는 건 김 양일지 몰랐다.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전부 당연한 건 없었다.
질서? 기존의 질서 아닌가? 종말이면 종말 다운 질서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세상 망가지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 [까놓고 내 말이 틀렸음? 우리가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하는 무슨 사명이 있음? 아니면 인류를 수호하는 지구 방위군이어야 할 뭔가가 있음? 그럼 방위비를 내던가.]싱크홀 괴물과 드잡이질하느라 한국에 박혀 있던 김 양은 조금 그런 기분이었다.
“보따리 내놓으라고 했다는 건 무슨 소리야?”
[우리 보급은 강원도 생산 공장에서 조달하고 있었잖음? 그것도 같이 작전 뛴 날엔 한국군 애들 보내서 그냥 슬쩍 날로 먹으려고 하고···. 좀 짜증 났음.] [······.] [먹는 거로 갑질하는 거 싫어서 그냥 먹이긴 했는데. 그랬더니 슬쩍, 방어선에 핵 수류탄이랑 코일 건도 필요하다고 징징거렸음. 위에서 정식으로 요청한 것도 아니고 애들 시켜서.]밥 먹을 때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작업하는데 옆에서 안 쓰는 장비 없느냐고 기웃거리고 있으면 그것처럼 참···. 그런 게 없었다.
[솔직히 한국군 애들은 무슨 죄임? 위에서 시키니까 그런 건데. 같이 싸우고 얼굴도 대충 아는 마당에 먹을 거랑 소모 장비 가지고 칼같이 끊기도 그렇고. 친위대 애들도 절반 이상이 한국 출신이라 말도 잘 통하는데. 일일이 따지는 것도 그렇고.]신성 왕국에서 병력이 모자랐을 때, 한국군과 예비역을 대거 받아들였다. 식인귀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을 해방한 대가로 병력 확충을 했던 것.
대가라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인적 자원을 빼간 건 빼간 것인지라, 한국의 편의를 많이 봐준 것도 사실이었다.
변이 괴수 토벌, 중국 무장 난민 사태, 일본 난민 자치권 요구 폭동 사건을 비롯해 최근에는 싱크홀 괴물 침공까지.
신성 왕국은 군사 동맹을 맺지 않았음에도 나름 성실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물론 대가를 받고 했다고는 하지만, 대가를 떠나서 신성 왕국이 돕지 않았다면 한국 자체가 위험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그래서?”
[아니. 그간 서로 등 맞대고 대고 싸운 한국도 그런데, 말레이시아랑 싱가포르는 어떻겠음? 지금 하는 꼴을 보면 더 할 것 같은데.]“그러니까 이번 작전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위험하니까 미리 뿌리 뽑자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굳이 우리가 그럴 필요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솔직히 한국 보면 나라가 망하니 마니 하는데도 엉뚱한데 돈 쓰고 있고. 한국 정부도 살만하다 싶었는지 다음 선거 준비한다고 엉뚱한 짓거리하는 걸 보면 ‘굳이 우리가?’ 하는 생각이 드는 김 양이었다.
앞으로 ‘스페이스 콜로니?’ 그런 거 만들어서 우주로 진출하고 지구에는 자원채취용 거점 요새 만들어서 주변만 쓸어 버리면 되는데 ‘굳이 인도네시아가 똥 싼 걸 치워야 하나?’ 하는 생각.
‘틀린 생각은 아니지 않나?’
마루가 하자고 하니까 하겠기는 하는데, 한국이 하는 꼴을 봐도 그렇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짓거리를 봐도 답이 없지 않은가?
[지금도 보면 그렇지 않음? 말레이시아랑 싱가포르는 일단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머리부터 박고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님?]그런데 본국에 테러 위협 있으니까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며? 인류의 미래나 안전한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바다 건너 벌어지는 일이니,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몇 년은 우리랑 상관없는 일 아닌가?
‘어차피 몇 년이면 요새화도 될 거고 우주 진출도 충분히 가능한 시간인데?’
지금도 개미 일꾼과 쥐 기술자들이 신성 왕국 거점 도시들을 요새화하고 있었다. 수천만 마리의 개미와 쥐떼가 합심해서 공사하는 현장은 말 그대로 어마 무시했다.
대지진 여파로 완전히 무너졌던 디트로이트는 순식간에 폐허가 해체된 뒤, 도시가 통째로 재건에 들어갔고.
북부 거점 도시인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은 날이 풀리고 한 달 반 만에 성벽과 벙커가 생기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김 양의 의견은 간단했다.
[동남아 애들 가운데 단 한 나라라도 감사하다고 한 애들 있었음? 식인귀 정부 몰아내 줬지, 싱크홀 사태도 경고해주고 약점도 알려줬지. 인도네시아가 미친 짓거리 하는 것도 막아줬는데 손 떼라고 하는 것 보면 좀···.]솔직히 한국도 그렇고 제국도 마음에 들지 않는 김 양이었다. 그나마 손톱에 낀 때만큼 한국이 낫기는 했어도 도긴개긴.
지금까지야 한국과 제국에서 기초 부품, 자원 수급하는 게 효과 좋았으니 상부상조한다는 셈 쳤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지간한 단순 가공은 쥐도 할 수 있었다. 단순 노동은 개미가 할 수 있었고. 기초 부품 생산은 쥐를 통해 할 수 있었고 광산은 개미가 파면 그만이었다.
경제는 헌터 경제가 자리 잡혔으니 딱히 국가 간 무역도 필요 없었다. 기술의 발달도 마찬가지. 겨울 동안 수상 도시에서는 전에 개발했던 여러 신기술을 현실에 맞춰 재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신형 방어막을 시작으로 장갑, 초소형 노심, 특수 배터리, 인공지능 탑재 안드로이드 등. 한국이나 제국 없이도 알아서 잘 굴러갈 토대가 쌓였다.
이제 신성 왕국은 자급자족 가능했다. 그러니 다 손 떼고, 우주 진출과 자원 지대에 거점 요새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김 양의 주장이었다.
딱히 쉬고 싶거나 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응.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PD가 김 양의 의견에 반대했다.
[싱크홀 괴물과 식육 식물은 인류의 위협입니다. 식인귀와 흡혈귀도 마찬가지지요.]식인귀와 흡혈귀는 토벌하면서 싱크홀 괴물과 식육 식물은 그냥 둔다는 것만큼 모순적인 결정은 없었다.
식인귀와 흡혈귀와는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를지언정 언어가 통했고. 정신파 대응 장치나, 간이 검사지를 이용해 대비할 수 있었지만, 싱크홀 괴물과 식육 식물은 그마저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들이 인간을 먹고 더 강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을 먹고 신수가 된 코끼리 괴물이 있는데, 싱크홀 괴물을 두려워하게 된 사람들이 싱크홀을 섬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식육 식물을 섬겨 식육 식물이 신성을 갖게 된다면 말입니다.] [행정부장의 이야기에 나도 동의해.]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쳤던 곳이 태국이었다. 신수 코끼리와 정신계 능력을 각성한 식인귀 왕족을 축출했었다.
만약 그때 치지 않고 해를 넘겼거나 몇 년 뒤에 쳤다면? 신앙을 먹은 코끼리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신앙을 먹은 식인귀 왕과 왕족은 어떻게 됐을까?
거대 세력을 이뤄 한국을 노리고 신성 왕국을 노렸다면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었다. 마찬가지 이야기라는 PD와 기순의 생각이었다.
싱크홀을 폐쇄하는 것이나 식육 식물을 뿌리 뽑는 것도 그랬다.
당장이야 싱크홀과 식육 식물 영역권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이익이겠지만, 길게 따져보면 신성 왕국이 안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
[무엇보다 이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득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무슨 소리? 군대 돌리고 굴리는 거 전부 돈인데. 무슨 이득?] [식인귀 정부, 괴물이 장악한 정부를 없애면서 어떤 소문이 났습니까?]죽음의 신, 학살의 신, 파괴의 군주 등. 흉흉한 이명이란 이명은 다 붙었다. 그리고 그 흉흉한 이명이 마루의 신성을 강화했다는 PD의 주장이었다.
신수를 죽이고 식인귀, 능력자 정부를 쓸어버렸으니 더 강해졌겠지. 그래서 이번에도 인도네시아군을 쉽게 쓸어버릴 수 있었고.
‘아니냐?’ 하는 기순의 가느다란 시선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마루였다.
[인도네시아군을 격퇴하신 것도 그렇고 이번 작전도 그렇습니다. 최대한 영상을 모아 동남아시아와 한국, 제국에까지 방송하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생체 EMP와 화산재 먼지 때문에 힘들다면 전용 카메라를 만들어서라도 방송했어야 한다고 봐.]PD와 기순은 지금 상황이 자연스럽게 신성을 키울 기회라고 주장했지만, 김 양이 반발했다.
[그거 어차피 우주로 가면 다 필요 없는 것 아님? 아니면 우주에 올라가서도 지구에서 무슨 일 생기면 내려가서 똥 치우고 그렇게 살자는 건가?] [신성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겁니다. 신성으로 더 강해지셨기 때문에 두 번의 전술핵 공격에서도 소천하지 않으셨던 겁니다.]PD의 눈빛이 엄해졌다. 전술핵에도 마루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신앙, 신성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김 양은 입을 다물었다.
[······.]하긴 그랬다. 그간 꾸준히 강해지지 않았다면 그냥 미사일도 아니고 근거리에서 전술핵이 터졌는데 살아남긴 힘들었을 테니까.
[영상이 흐릿하겠지만, 보정을 해서라도 인도네시아군과의 교전을 방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교전도 그렇고 이번 작전 시에도 자료를 만들어 영상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한국 무장 난민 사태 때 토벌 상황을 생방송 해서 네 능력이 알려졌으니, 그 정도 선에서 방송하는 건 신앙 수급에 좋을 것 같아.] [그렇습니다. 당시 방송으로 많은 일본 난민들과 중국 난민이 홀리교에 귀의했습니다.] [흐으응-]김 양이 콧소리를 냈다. 불편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고 하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톤이었다.
마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PD와 기순의 주장은 간단했다. 어차피 식육 식물을 뿌리 뽑고 싱크홀 괴물을 퇴치할 것이라면 제대로 신앙을 얻어 보자는 이야기였다. 엄한 것들이 신성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한국에서 능력을 드러냈을 때 결정했었다. 신앙이건 신성이건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이기로. 그러니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렇게 하지.”
[그럼 싱가포르 교전부터 방송하는 게 좋겠다. 우리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식육 밀림 뿌리 뽑는데 엉뚱한 소리 나오지 않도록.]싱가포르에서 벌어졌던 인도네시아군의 만행과 마루의 활약이 동남아 전역을 시작으로 한국과 제국에 송출됐다.
민간인을 학살하는 모습. 그 시체를 먹고 자라는 식육 식물. 빌딩을 통째로 우그러뜨려 인도네시아군을 섬멸하고 자폭하는 특수부대를 정리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이 방송됐다.
그리고
촤리리리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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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능력이 더 강해졌다.
음-
[어때?]“강해졌네.”
한국에서 무장 난민 정리한 방송에서는 이렇게까지 아니었는데.
[그거야 한국 이야기잖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면 바로 옆 동네 이야기고. 돈 좀 있으면 싱가포르에 친인척 살고 있을 텐데. 파급력이 다르지.]확실히 종말 사태 직전 7억에 육박하는 인구가 있던 지역다웠다.
지금이야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 4억에서 많게는 5억은 남았을 터. 이들의 마음이 움직이자, 신앙이 들어오는 양이 달랐다.
그리고
(구원자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응?
마루의 뇌리에 무언가 간질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