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5)
러스트 [RUST]-105
마루와 기순이 대놓고 말하고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제 가나 보다.’ ‘간다고 하더니, 진짜 가네.’ 그런 눈빛을 한 번씩 보낼 뿐, 의료진과 연구원들은 검은 봉지에 담겨있는 바퀴벌레와 알집에만 관심을 가졌다.
‘바퀴벌레가 이렇게 갑자기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험체일까요?’
‘다카이치 제약에서 바퀴벌레로 실험할 게 뭐가 있습니까?’
‘실험할 주제야 많지요. 바퀴벌레에 대한 최근 논문 못 보셨습니까?’
‘봤지요. 독 내성에 관한 연구가 참 특이하더군요. 독 내성 유전자의 발현이라니···’
‘그것보다는 탈피하면서 잘린 다리와 상처까지 재생하는 부분이 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지.’
몇 명씩 뭉쳐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모습. 경호원과 샬롯 아재들도 모여서 뭔가 이야기했다. 기순이 그 모습을 보곤 말했다.
“경호원이랑 샬롯 아재들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병실로 가자. 아저씨도 같이 내려가죠.”
헬기 조종사가 마루에게 붙잡혀 내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양이 커다란 가방을 꺼내 먹을 것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열심히 먹을 것을 챙기고 있는 김 양에게 경호원이 다가섰다.
“광학 은신 장비.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사람 말 대롭니다.”
경호원이 앞뒤 자르고 대놓고 말하자, 김 양도 딱 그 말만 하고 하던 대로 먹을 걸 챙겼다. 그 모습을 본 경호원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동생 일이라서 그러니, 좀 자세히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양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눈을 깜박였다. 상납받았다고 하긴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받았다고 하기도 그렇고.
“다카이치 제약에··· 뭔 괴물이 있었습니다.”
“바퀴벌레 말고요?”
경호원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김 양도 같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막 재생되고 촉수가 나오고 그러는 검은색 괴물인데···. 그 괴물도 괴물이었지만, 월드에서 최 전무가 왔어요.”
“월드의 최 전무···.”
“사장님이 다쳐서, 그쪽 동생이 바짝 붙어서 경호해야 했고 그럼 장비를 그냥 둘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받아서 검은 괴물이랑 월드 최 전무랑 교전할 때 썼어요. 사장님하고 동생분은 먼저 대피했었고요.”
“그럼··· 그 사람은 아까 왜 이렇게 말하지 않은 거죠?”
김 양이 몰라서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인간이 세세하게 말해주고 설명해주고 그럴 인간으로 보였어요?”
“······.”
그냥 조용하게 편히 쉬게 해주면 해줬지, 조곤조곤 설명하고 그럴 인간은 아니었다. 김 양의 표정에 경호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으로 그렇게 됐는지 확실히 모르시는 거죠?”
“네. 일단 저도 그렇고 그 인간도 최 전무랑 괴물이랑 교전하는데 정신이 없었거든요. 사장님이랑 동생분은 먼저 대피했고요. 그 뒤로 전 자폭하는 거. 아? 비상 소각 장치 작동시키느라 따로 움직여서 뒤에 일은 몰라요.”
“어디서 싸운 겁니까?”
“어··· 그러니까 야마츠키 신약에서 싸웠어요.”
“괴물은 다카이치 제약에 있었다면서요?”
“월드 쪽에서 다카이치 제약에 들렸다가, 그쪽 헬기에 붙어서 온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월드에서 그 괴물을 조종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고요. 다카이치 제약에 들렀다가 야마츠키 신약으로 바로 온 것을 생각해 보면, 최 전무가 사장님 움직이는 동선을 알고 있었던 건 확실하지 싶어요.”
“동선이 드러났다?”
“네. 그렇게 겹치는 건 이상하잖아요.”
김 양이 넙죽넙죽 대답했다.
“그리고 제 생각인데 야마츠키 신약으로 먼저 대피한 사장님이랑 동생분은 그쪽에 있던 배신자들에게 당한 것 같아요. 그 인간이 저한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래서 야마츠키 신약에 있던 생존자들을 안 데려왔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경호원이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을 꾹 쥐었다. 말아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월드의 최 전무 확실합니까?”
“그 인간이 새로 가져온 칼이요. 그거 최 전무가 쓰던 칼입니다. 아까 막 그랬을 때 봤죠? 최 전무가 칼잡이라는 거 알잖아요. 좋은 칼 쓰는 거.”
“배신자가 있었다는 거 확실합니까?”
“네. 다시 말하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사장님 동선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월드에서 바로 올 수 있겠어요? 뭣보다 마루 그 사람이 좀 그렇기는 해도, 멀쩡한 사람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고, 구할 수 있는 사람 그냥 버리고 그럴 인간은 또 아니거든요. 아시겠지만.”
너도 백정이 살려준 거잖음? 사장도 그렇고. 김 양이 순둥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인사한 경호원이 샬롯 아저씨들 모인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곤 김 양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백정이 알아서 하길 바라다가는 난리가 나겠다···. 알아듣게 잘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대충 이 정도면 잘 넘긴 거 같았고, 사실이니까 말 맞추고 어쩌고 할 것 없이 됐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보급은 어쩌려고 바로 간다고 그러는지, 김 양은 새로 가방을 꺼내 식자재를 챙겼다. 군 입이 하나 늘었으니까 2배가 필요했다. 아- 의료진 가운데 한 사람 정도 더 데려가고 싶다고 했었지? 3배가 필요하려나?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마루가 핑크빛 앰풀을 꺼내 들었다. 기순도 같이 따라 내려온 헬기 조종사도 핑크빛 앰풀에 집중됐다.
“야 붕대 풀러. 상처 좀 보게.”
“이거 그냥 며칠 있으면 나을 것 같은데 아깝지 않아?”
급속치료제를 이렇게 쓰기는 아까웠던 기순이 우물쭈물했다.
“일단 일본 벗어나고 난 뒤에는 아끼지 말라고 해도 아낄 테니까, 지금은 상처 까. 빨리.”
“아 씨 진짜 아까운데. 솔직히 이거 여벌 목숨이나 마찬가지잖냐? 몇 방울이면 치명상도 버틸 수 있는데.”
짝-
마루가 우물우물하는 기순의 등판에 스매시를 날렸다. 악- 비명 지른 기순이 ‘이 미친놈아, 사람 죽일 일 있냐?’ 소리치곤 느릿하게 붕대를 풀었다.
“아- 씨. 소독하고 붕대 감은지 얼마 안 됐는데.”
마루가 부들부들 떨며 한 방울 상처에 떨어뜨리는 것을 본 기순이 비웃었다.
“존나 쿨하게 쓸 것처럼 하더니 손 떨리는 거 보소.”
“닥쳐.”
똑- 한 방울 떨어지자, 꿰맨 상처가 거품과 함께 아물었다.
“실밥 뽑는 거니까 사람 부르지 말고 바로 뽑자.”
“이젠 그냥 막가는구나?”
기순이 가위와 핀셋으로 실밥을 뽑으며 말했다.
“사장 죽은 거 너랑 관련 있냐?”
“아니. 야마츠키 신약에 있던 사람들이 사장을 배신했더라. 내가 갔을 땐, 가망이 없어 보였어.”
갑자기 들어온 기순의 질문에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헬기 조종사가 불편한 듯 살짝 몸을 틀었다. 기순이 마루와 헬기 조종사를 번갈아 가며 보다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씨발 경호원이 물어봤을 때 좀 잘 이야기하면 어디가 덧나냐? 내가 저번에도 말했었지? 말 좀 잘하라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그건 좀 아니지, 동생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며. 사장도 죽고 동생도 그렇게 됐는데 그 사람 마음이 어떻겠냐?”
“······.”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봐라. 존나, 원수질 일 있냐?
“알아.”
“아는 새끼가 그래? ···응? 뭐냐? 설마 사장이 죽은 게 경호원 동생 때문이야?”
“··· 아니.”
눈치 빠른 기순이 바로 알아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떻게든 엮였구먼, 그래서 경호원 얼굴 보기가 껄끄러웠나? 쌍둥이라서?
그것도 그렇지만 헬기 조종사 아재는 왜 이러는지, 사장이랑 경호원 이야기했더니 불편하다는 느낌을 뿜고 있었다.
마루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러는 걸까? 기순이 마루의 표정을 살폈다.
“근데 바퀴랑 쥐는 그렇다 치고, 뭐냐? 너 표정 썩은 거 보니까 뭔가 다른 게 있었나 본데.”
“···괴물이 있었어.”
“괴물? 뭔데 네가 괴물이라고 할 정도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영화 있지? 사람한테 기생하는 괴물 나오는 영화. 그 영화에 나온 괴물이랑 비슷해. 그것보다 좀 더 지랄 같은 형태로.”
제단같이 생긴 것도 그렇고 기괴한 실험실도 그랬다. 금속 상자에 봉인됐던 검은 괴물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뇌파로 의사전달을 하는 괴물? 심지어 인간의 정신에 일부 간섭하는 괴물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기생충 같은 거냐?”
“그것보다는 막 분열하고, 재생하고, 진화? 변이? 그러는 놈이었다.”
“들어보니 칼 쓰는 너랑은 상성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잡았데?”
“월드에서 온 칼잡이 아재 알지? 저번에 부산 마리나에서 싸웠던 칼잡이 아재.”
“아- 그 아재. 너 몰매로 괴롭히다가 안 되겠으니까 칼 버리고 도망친 아재 말하는 거잖아. 알지. 그 아재가 최 전무였다고?”
“그래. 그 아재가 자기네 직원들한테 자폭 조끼를 입혀놨더라. 그걸 괴물이 냉큼 주워 먹었고. 기폭 장치를 뺏은 김 양이 씨밤 쾅 해버렸지. 그 뒤에 불 질렀고.”
아- 하- 하던 기순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야. 잠깐만. 재생? 씨발- 그럼 재생약. 급속치료제 이거. 그 괴물이랑 뭔 연관 있는 거냐?”
“···아마도?”
마루의 대답에, ‘망했어요. 원료가 뭔지도 모르는 걸 썼다니. 이래서 FDA 승인이 중요한 건데.’ 기순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전 그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헬기 조종사가 입을 떼기가 무섭게, 마루가 웃으며 답했다.
“어딜 가시게요?”
“좀 피곤해서.”
마루가 헬기 조종수의 말을 씹었다.
“그냥 여기 가만히 있어요. 아저씨. 야- 기순아 존나 웃긴 게 뭔지 아냐?”
“왜? 뭐가 웃긴 데?”
“그러니까 헬기를 타고 도쿄로 갔잖냐? 근데 가는 도중에 목적지를 바꿨단 말이지. 본래는 야마츠키 신약에서 중화제 챙긴 뒤 가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사장이 다쳐서 급속치료제가 있는 다카이치 제약으로 방향을 바꿨거든.”
“······.”
“······.”
“가는 장소를 즉흥적으로 바꿨단 말이야. 즉흥적으로. 그렇게 간 타카이치 제약에서 바퀴벌레랑 괴물 때문에 똥꼬 빠지게 튀었는데, 다카이치 제약으로 월드 최 전무가 왔다는 거. 바퀴벌레랑 괴물이 없었다면, 그래서 거기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면 딱 마주쳤을 거란 말이지.”
“······.”
“······.”
“아무리 생각해도 재밌더라고 월드 최 전무가 어떻게 그렇게 콕 찝어서- 그곳으로 왔을까? 응? 여기로 간다고 했다가 저기로 장소를 바꿨는데 말이지.”
“무··· 무슨 소리요!”
헬기 조종사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병실 문을 가로막고 선 마루였다.
“뭐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 않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랑 김 양은 신분 만들려고 중간에 빠졌고, 사장이랑 경호원이 야마츠키 신약으로 헬기 타고 먼저 갔거든. 나랑 김 양이 일 보고 갔더니 야마츠키 신약에 최 전무가 있더라고. 그러니까 사장이 간 곳을 정확하게 알고 최 전무가 있었다는 소리네? 이건 좀 이상하지 않냐? 응? 더 재밌는 건, 헬기를 지키고 있어야 할 헬기 조종사가. 서버실에서 발견됐다는 거야.”
“······.”
“······.”
“이게 왜 웃기냐 하면, 밖에서는 지하실험실 쪽으로 통신이 안 됐거든. 그러니까 사장이랑 경호원이랑 안으로 들어간 뒤에, 이 아재가 최 전무가 오고 있다고 사장한테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그럼 이 아재는 어떻게 안으로 들어간 걸까?”
“안에서 열어줬겠지?”
“그래. 안쪽에서 열어줬다는 거다.”
“근데 그게 뭐?”
“말했잖아. 야마츠키 신약에 있는 사람들이 배신했다고···.”
기순과 마루의 시선이 헬기 조종사를 향했다.
“나- 난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세요.”
“난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봤잖아. 난 정신을 잃고 있었어!”
“왜요? 내가 그렇게 무서웠어요? 맨정신으로는 감당이 안 됐어요?”
킥킥 마루가 웃었다.
기순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니가 존나게 무서웠나 보네, 정신을 잃은 채로 어떻게 내려갔다냐?”
“······.”
마루가 망연자실한 표정의 헬기 조종사를 칼집으로 쿡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