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50)
러스트 [RUST]-1050
김 양이 지휘하는 친위대와 U+ 부대가 쿠키처럼 바삭하게 구워진 싱가포르 도로를 거닐었다.
콰직- 콰득-
“글렀네.”
최고 온도가 3천도 이상 올라가는 신형 네이팜은 아스팔트를 녹이고 철근 콘크리트를 태웠다. 거기에 작고 귀여운 핵 수류탄의 충격이 더해져, 식육 밀림이고 나발이고 남은 건 잿더미뿐이었다.
“지하로 가는 입구가 전부 녹아버렸습니다.”
“이쪽 빌딩도 타버렸습니다.”
김 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식육 식물을 바싹 태워버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건축물도 부스러기처럼 만들어버렸다.
“지하 아케이드 쪽은?”
“그쪽도 위험합니다.”
지하 아케이드로 이어지는 공간도 고온으로 녹아버린 H빔 구조와 바스러진 건축 자재들로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식육 식물이 질겨서 뿌리까지 조지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계단이고 엘리베이터고 작살이 나버렸다.
엑소슈트나 노심 아머를 쓸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뿌리만 남은 식충이들이 생체 EMP 필드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처럼 정말로 EMP 필드가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레펠로 내려간다.”
“준비하겠습니다.”
김 양과 친위대가 노심 아머 없이 특수 전투복만 입은 것도 그 때문.
“먼저 제초제부터 뿌려.”
“옛.”
“거기. 그 아래쪽에 뿌려.”
식육 식물에 반응하는 제초제를 지하 공간에 뿌리자, 잿더미 속에 매복하고 있던 가지와 이파리가 몸부림치며 말라버렸다.
“잿더미 속에 매복하고 있다.”
“잔해 근처에 넉넉하게 뿌려!”
“내려갈 공간부터 확보해.”
특수 제초제와 식육 식물 뿌리를 갉아먹도록 재조합한 균을 가지고 내려가는 김 양과 친위대였다.
‘굳이 직접 내려갈 필요 있나? 제초제를 넉넉하게 생산해서 뿌려버리면 되지 않고?’
희연은 김 양의 지휘를 지켜보며 의아했다.
“왜? 내려가기 싫어?”
“······.”
“다른 쪽에 있는 애들한테도 제초제부터 뿌리고 바로 내려가라고 해. 동시에 내려가야 놈들 전력이 분산되니까.”
희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링크를 통해 U+ 부대에 명령을 전했다. 동시에 진입 시작하는 토벌부대.
제초제도 제초제지만, 사방에서 지하에 진입해서인지 가지와 이파리의 저항이 미비했다. 김 양의 예상대로 놈들의 전력이 분산된 것.
“화염방사!”
화르르르륵
불이 붙은 가지와 이파리는 끝까지 친위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가까이 접근하지 마.”
“굵은 가지부터 끊는다. 집중사격 개시.”
김 양의 지휘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이는 친위부대. U+로 연결된 부대도 동시에 같은 방법으로 식육 식물의 지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갔다.
“마스크 장착. 정화통 연결.”
“제초제 뿌려.”
“그쪽 바닥 까봐.”
“깠으면 제초제 뿌려야지 뭐 해?”
희연은 그런 김 양의 지휘를 가만히 바라봤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것처럼 꼼꼼했다. 이식받은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양아치 같은 년이 지휘를 잘했다. 심지어 대응도 잘했고. 어쩐지 배우는 느낌인데,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라서 묘했다.
“왜? 뭘 그렇게 쳐다봄?”
“······.”
희연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다른 쪽 애들 실수하지 않게, 계속 쪼아.”
“···알았어.”
말레이시아 방면도 나루즈가 공격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방면보다 더 규모가 큰 식육 밀림이었기에 폭격과 포격이 길게 이어졌다.
[폭이 좁으니까. 포격만으로 될 것 같은데?] [포격만으로는 무리야.] [까마귀 폭격 지원 요청했어.] [까마귀 폭격대 3차 폭격 시작.] [최소한 5번은 더 때리라고 해.]범위가 좁은 대신 도시 지하를 파고든 싱가포르와 달리, 말레이시아는 국경선처럼 외부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공략이 쉬웠다.
화르르륵-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불타오르는 식육 밀림이 몸부림치는 모습에 나루즈는 추가 포격과 폭격을 계속 요청했다.
[이거 개꿀임.] [싱가포르는 개고생이라고 하던데.] [오라버닝은 어디에 계심?] [왕님 지금 인도네시아군 사령부 조지고 계신다던데?] [여기는 불 다 꺼지고 정리해야 하니까 우리 가볼래?] [어디? 오라버닝?] [오라-오라-오라-] [버닝-버닝-버닝-] [가즈아아아아아-]불 지르고! 모조리 태우자!
[다들 진정해. 우리 맡은 것부터 해야지.] [그래. 여기 빨리 끝내고 가면 모를까 그냥 가는 건 징계일 걸.] [공훈 세워서 포상 휴가 노리기로 했잖아.]흥분했던 나루즈가 진정했다. 어쨌든 저쪽 밀림 근처에 인도네시아군 사령부가 있었으니, 그쪽 정리하는 애들은 오라버닝과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자. 뽑기다. 뽑기부터 해.] [이번에 뽑힌 애들인 다음엔 양보하는 거다?] [저번처럼 두 번 들이밀려고 하면 묻어버린다.] [양심에 털 난 년은 제거야.]폭격과 포격 속에서 여유 있게 제비뽑기를 시작한 마루즈에게, 경계를 서고 있던 마루즈가 비상을 알렸다.
[비상! 이년들 폭격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어!]불타오르는 밀림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뿌리다. 뿌리가 움직이는 거야!] [저거 막아!] [어떻게?] [이동 방향에 불 질러!] [네이팜 뿌려서 불로 장벽 만들어!] [제초제!] [땅을 제초제로 적시자.]식육 식물의 뿌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키오오오오오오오오-)
식육 식물의 덩어리에서 터진 정신파에 인도네시아 특수부대가 다리가 풀려버렸는지, 풀썩 주저앉았다.
전원이 능력자와 식인귀로 이뤄진지라 정신계열에 저항력 있는 자들이었건만 버틸 수 없었던 것.
(끼어어어어어어어어-)
생으로 뇌를 헤집는 듯한 식물 덩어리의 외침에도 마루는 태연했다. 그저 죽음의 정원을 펼쳐 음식 포장하듯 식물 덩어리를 휘감기 시작했을 뿐.
‘뿌리인가?’
식물 덩어리는 길쭉한 칡뿌리처럼 생긴 것이었다. 죽음의 정원에서 피어오른 넝쿨과 풀잎이 휘감고 자르고 안으로 파고들자, 검은 진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식물의 수액이라고 할 수 없는 비릿한 냄새. 그 독한 국물이 향수라도 되는 것처럼 식인귀들이 홀렸다.
인도네시아 특수부대 가운데 식인귀인 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검은 진액이 흘러나오는 뿌리로 향한 것.
‘식인귀를 유혹하는 건가?’
처음에는 식인귀만 유혹되는 건가 싶었더니, 감각이 예민한 식인귀가 먼저 반응했던 것이지 능력 각성자들도 점점 진액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뭐지?’
죽음의 정원이 식육 식물의 생명을 흡수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동물을 흡수할 때보다 턱없이 느릴 뿐.
생명을 수확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물리력으로 찢어 버리기를 선택한다면 딱히 문제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지켜보자.’
그래서 마루는 식육 식물의 뿌리가 식인귀와 능력자를 유인하는 걸 지켜봤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야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취릭-
검은 진액에 이끌린 식인귀가 칡뿌리처럼 거대한 덩어리 근처에 접근하자, 팔뚝 굵기의 잔뿌리가 식인귀를 휘감았다.
마치 죽음의 넝쿨처럼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식인귀를 쥐어짜기 시작하는 잔뿌리. 가드득- 뼈가 통째로 으스러지며 식인귀의 입과 코,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줄줄 흐르는 검붉은 피가 뿌리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흡수됐다. 식인귀의 체액을 흡수한 것이 효과 있었는지, 죽음의 정원에 막힌 식물 덩어리가 크게 흔들렸다.
‘식육 식물이 식인귀를 유인해 잡아먹는다?’
이건 좋은 소식이었다. 사람만 잡아먹는 게 아니라 식인귀까지 잡아먹는다면 이걸 이용할 수도 있었다.
‘디트로이트 외벽에 키운 넝쿨처럼 이놈들도 키울 수 있을까?’
식인귀를 잡아먹고 몸부림치는 뿌리를 지켜보던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넝쿨과는 달리 이놈들은 군체를 이뤄 의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체 EMP 필드까지 있었고. 그러니 통제력을 잃는 순간, 도시가 통째로 먹이통이 될 터.
‘치우는 게 맞아.’
마루는 힘 싸움에 들어간 죽음의 정원에서 그림자 쥐를 뽑았다. 수천 마리에서 순식간에 수만 마리가 둘둘 말린 식육 뿌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각- 가가가각-
단단한 껍질이 순식간에 파먹히며, 진득한 액체를 쏟아냈지만, 그림자 쥐는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었다. 쥐의 모양으로 빚어진 죽음은 식육 식물의 뿌리를 파먹고 또 파먹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우지직-
처절하게 꿈틀거리던 덩어리 뿌리가 자기 몸통을 비틀어 끊어내곤 땅속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뚫린 바닥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그림자 쥐떼.
고작 100m 남짓 떨어진 밀림은 까마귀 폭격과 비행선 포격을 맞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튄 불똥이 여기저기 사령부 건물에 옮겨붙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눈앞에서 특수부대를 통째로 잃은 사령관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올지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사령부를 세우고 겹겹이 함정을 펼쳤다. 생체 EMP 필드 권역이라 신성 왕국이 자랑하는 최신 병기를 쓸 수 없었다.
거기에 능력자와 식인귀로 이뤄진 특수부대에 식육 식물의 지원까지 있었다. 그것도 부족할까 싶어 마지막에는 식육 식물의 핵심인 뿌리까지 동원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식육 식물이 같은 편인 특수부대를 잡아먹기까지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식육 식물은 이성적이었다.
놈들에게 제물을 주면, 놈들은 방어벽이 되기로 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을 공격하면, 놈들을 더 많이 퍼뜨려 주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사령부는 괴멸했고.
창밖에는 불타오르는 식육 밀림이 보였다.
방어선이 무너지면, 지금까지 말레이시아로 이송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식육 식물이 쏜 갑작스러운 정신파에 주저앉은 1군단 사령관이 고개를 들어 마루를 노려봤다. 생기가 빠져버린 듯한 눈빛이었다.
“이제까지 뿌린 정보는 전부 거짓이었는가?”
한국에서 찍은 영상. 무장 난민을 공략했던 영상 속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검은 대지를 만드는 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물리력이 있다지만 그렇게 크지 않았고, 넓게 퍼졌어도 식물을 죽이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강한 식육 식물을 찢어 버릴 정도로 강했고 빌딩을 통째로 비틀어버릴 정도의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 쥐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방송에서 나왔을 때는 정찰이나 하던 그림자 쥐떼였다. 잘해야 무장 난민 부대를 와해하는 정도.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식육 식물의 뿌리를 갉아버릴 정도로 강력한 생체병기였다. 생물을 유혹하는 체액에도 영향받지 않았고, 군체가 일으킨 정신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블라디마루 칼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협상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멸망시키려고 일부러 그랬나?”
마루는 헛소리를 내뱉는 1군단 사령관을 내려봤다.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 같은 눈빛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피해자가 되나?
그 역겨운 태도에 마루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 차가운 마루의 눈빛에 사령관은 자기 생각이 맞았다는 것처럼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군. 그래.”
“······.”
“동남아시아를 장악하는데 눈엣가시 같은 우리를 몰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어.”
“······.”
화르르륵- 지붕에 붙은 불꽃이 옆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저 국민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살고 싶었을 뿐이었단 말이다!”
연쇄적으로 터진 화산 폭발과 지진 그리고 쓰나미 때문에 해안선 인근의 도시와 마을은 초토화됐다.
해안선 근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화산 폭발과 지진의 여파는 인도네시아 전체를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실 수 없는 물.
숨 쉴 수 없는 공기.
그리고 모든 것이 죽어버린 대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뭍으로 나가야 했다.
섬은 아무리 커도 위험했다.
인도네시아의 섬은 대부분 화산을 끼고 있었으며, 화산이 없더라도 화산과 지진의 영향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안전한 곳에서 살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을 가진 놈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피와 살을 뜯어 먹겠다며 한 발씩 담근 나라들을 보며 인도네시아 신정부와 군부는 생각했다.
저놈들에게 안전한 땅은 과분한 것이라고.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가 전쟁인 인도네시아 국민이 뭍으로 올라가는 게 옳다고.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싱크홀 괴물과 식육 식물을 이용할 수 있었고, 싱가포르 공략과 말레이시아 공략도 성공했었다.
성공했었단 말이다!
신성 왕국의 개입만 없었다면.
눈앞에 있는 이 괴물만 없었다면.
“왜 개입한 거지? 뭣 우리 앞길을 막는 거냐? 2억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셈이냐?”
마루는 대답 대신, 사방으로 죽음의 정원을 펼쳤다. 여기저기 불이 옮겨붙기 시작한 사령부 건물이 검은 정원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꺼져버린 불꽃에 사령관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그 정도의 힘이 있으면서···. 어째서 가만히 있었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있었잖나? 아- 그렇지. 전쟁이 터져야 동남아시아를 지배할 수 있으니까 그랬겠지.”
서걱-
마루는 사령관의 머리통을 보존 용기에 담았다.
‧
‧
‧
뽀그르르르르륵-
인도네시아 1군단 사령관의 머리통에서 거품이 솟아오르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전황 보고가 이어졌다.
김 양과 친위대, 희연과 U+ 부대는 싱가포르 식육 식물 공략을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처음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듯했다.
[식물 년들이 지하를 개판으로 뒤집어 놨음.]도시 지하 공간을 뿌리와 가지로 요새처럼 만들어 놨다는 김 양의 보고였다.
[말레이시아 쪽으로 뿌리가 도망치고 있습니다앗!]나루즈의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토벌 속도 자체는 본래 계획보다 빨랐지만, 마무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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