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054)
러스트 [RUST]-1054화
제일 멀리 떨어진 대피소로 향하는 식인귀들은 어쩐지 초조했다. 지금쯤이면 벌써 진행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들은 것은 굉음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불꽃의 끝은 거대한 폭발이었다. 유성이 수직으로 떨어질 리 없으니 저건 공격일 터.
“저 방향은···.”
“또 떨어진다.”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있는 방향이었다. 지금처럼 신의 지팡이처럼 내려꽂히는 공격을 할 수 있는 나라?
“신성 왕국이다.”
“······.”
제국이나 한국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이럴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신성 왕국이겠지.
“미쳤군.”
“피난민들까지 전부 날려버린다는 건가?”
피난민을 이용하기로 한 건 식육 식물을 키우기 위함이었지만 동시에, 공격당하지 않으리라는 계산도 함께였었다.
그런데 그딴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통째로 날려버리다니.
“버나드 그린이 실각했다는 정보가 사실이군.”
“확실히 그자가 있었다면 저런 식으로는 하지 않았겠지.”
“일본 규슈의 신세계 세력과 협상한 것도 그린 기순이라고 했어.”
“그럼 저 공격은 블라디마루 칼린의 명령이라는 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신성 왕국 국왕이 직접 공격을 명령했다는 의미였다.
“위험하군.”
“버나드 그린과 접선하는 건 어렵나?”
“실각한 자와 뭘 하게?”
“내부에서 흔들 수는 없을까 해서지.”
“반응이 나올 때쯤이면 결판이 나고도 남을 거다.”
“······.”
식인귀들도 마루는 두려워했다.
홀로 군단과 싸울 수 있는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뭘 두려워하겠나?
싱가포르는 작은 국가였다. 무장 난민을 없앤 죽음의 정원을 펼치기만 해도 하루, 이틀이면 멸망할 터였다.
식인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쿠데타까지는 속전속결이었는데,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두 그룹이 순식간에 끝장났는데 계속 진행해야 하나?
“우리가 움직이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감시하고 있었군.”
식인귀 하나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통신용 비행선이라고 했던 것이 군사위성이었던 게 분명했다. 신성 왕국과 제국의 통신 비행선이 동남아시아 무선 통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의 비행선에 공격 기능이 있다면, 제국의 것도 그렇겠지. 레온 보나드 황제가 죽지 않았다면 동남아시아 대전쟁은 제국의 손에 좌지우지됐으리라.
“······.”
“······.”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진 식인귀들이었다.
“젠장. 전부 흩어지라고 해. 최대한 지하로 움직이라고.”
“지하로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생매장해 버릴걸.”
“민간인 피해 따위를 생각하겠어?”
“ 신성 왕국 놈들이 하는 짓을 보라고 그냥 쏴버리잖아.”
“다들 진정하고 일단 계획대로 가—.”
계속 가자고 외쳤던 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몇 걸음 달려나가다 엎어졌기 때문이었다.
“Shit!!!”
“블라디마루 칼린이다!”
욕설과 외침이 마지막 유언으로 변해버렸다. 수평과 수직으로 잘린 식인귀가 그대로 내장과 피를 쏟았다.
그 틈을 타, 등에 메고 있던 용기를 꺼낸 식인귀가 피바다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식육 식물 덩어리가 식인귀의 피와 살을 먹고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촤리리리릭-
강철 같은 뿌리가 포장된 도로를 뚫고 들어갔고, 문명을 파먹듯 식육 식물이 퍼져나갔다.
용기를 깨뜨린 식인귀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죽어버-”
서걱- 목을 자른 마루가 식인귀의 몸통과 머리통을 걷어차, 멀리 던져버렸다. 식육 식물은 그걸 쫓으려는 것처럼 시체를 향해 가지를 뻗었다.
콰득- 콰직-
순식간에 밀림의 한쪽이 그루터기만 남는 광경에 도망치던 식인귀들이 입을 벌렸다. 그들의 머리를 향해 단검을 던진 마루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맙소-”
“저–”
잠깐 뒤돌아본 풍경이 그들이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머리통을 뚫고 들어간 단검이 식인귀의 뇌를 헤집고 재생력을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에—–)
몸부림치는 식육 식물 사이로 스며든 그림자에서 네이팜 수류탄이 퉁- 튀어나왔다. 강력한 폭음과 불길이 이제 막 증식하려는 가지와 이파리를 불태우기 시작하는 모습.
(끼에에에에에에—–)
퉁- 팅-
일렁이는 공간이 이동할 때마다 네이팜 수류탄이 터지며 사방을 불지옥으로 만들었다.
[식인귀 요격을 시작했— 치지직–]그 끔찍한 불구덩이 속에서도 식육 식물은 뿌리를 뻗고 뻗었다. 그렇게 땅속으로 파고든 뿌리들이 서로 얽히며 군체를 이루자, 생체 EMP 필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치직—-]보조 인공지능과의 통신이 끊기자, 마루의 서늘한 시선이 불길 건너편을 향했다. 식육 식물이 움직이는 건 뿌리뿐만이 아니었다.
식육 식물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필사적으로 영역을 넓히는 장면. 악착같이 불길에서 도망치려는 모습에 마루가 뉴클립스를 겨눴다.
후으으읍–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
신성.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마루는 정신을 집중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혈관과 신경을 타고 도는 감각.
마루는 그 감각 그대로 뉴클립스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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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실선이 지평선처럼 그어졌다.
앞에 있던 가로등이 잘렸다.
이어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잘리고 불꽃에 흔들리던 가지가 끊겼다.
(끼에에에에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절단기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끊기고 썰리며, 잘리기 시작했다.
투각- 으득- 서거걱-
토막 난 끝에 버둥거리던 식육 밀림이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리고 그 뒤를 죽음의 정원이 잡아 뜯기 시작했다.
치지직-
죽음의 정원이 펼쳐지며 자연스럽게 은신이 풀리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동남아시아 전역에 송출됐다.
‧
‧
‧
성층권 비행선의 고고도 폭격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신성 왕국 국왕 마루의 힘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저게 가능한 건가?”
“나도 아는 능력자가 있는데 저건 규격 외라고 하더라.”
“저게 그냥 능력이라고?”
“맙소사. 눈으로 보도고 믿을 수 없네. 정말.”
CG(Computer Graphics)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것이 실시간으로 방송됐기 때문이었다. 방송국 댓글 창이 순식간에 넘치기 시작했다.
(나 저 장면 실제로 봤는데 미쳤더라.)
(우리 집 근처에서 싸우는데, 소리 들리니까 키우는 개들 전부 오줌 지리더니, 꼬리 말고 낑낑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방송은 살벌한 느낌 1%도 제대로 못 담았지.)
(이거 진짜 동감. 난 멀리서 줌으로 봤는데도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
(심장마비 걸리는 줄이 아니라, 난 진짜 심장마비 와서 죽는 줄 알았다.)
(나도 줌으로 찍었는데. 갑자기 현기증 나고 그냥 뒈지는 줄.)
(구라도 참. 보기만 해도 죽는다?)
(웃기는 놈들이네. 저 소릴 믿음?)
(증거.)
(나도 영상 찍은 거.)
목격자의 증언은 믿을 수 없었지만, 여러 사람이 증거로 올린 카메라 영상까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능력자가 신인류라고 하더니, 저건 그냥 초능력 아닌가?)
(신인류는 식인귀고 능력자는 능력자지.)
(신성 왕국 국왕이 신적인 존재라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네.)
(신적인 존재는 무슨. 진짜 신이면 칼 들고 설치겠냐?)
여론이 들끓거나 말거나 신성 왕국의 발표는 계속됐다.
[지난 새벽 싱가포르에서 쿠데타가 벌어졌습니다.]싱가포르 정부가 무너지고 식인귀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식육 식물을 사방에 퍼뜨리려고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식인귀들은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을 제물로 이용해 식인 식물을 키우려고 했으며···.]식육 식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식인귀들의 생물학 테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강력대응을 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신성 왕국의 발표는 싱가포르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체를 들끓게 했다.
“저런 신무기를 공개했으면 무익한 전쟁을 억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전쟁이 터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다가 한다는 소리가 생물학 테러를 막기 위해서라고?” “생물학 테러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겠다.”
“애초에 싱가포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건데 신성 왕국이 왜 개입했냐?”
“이거 옛날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만들 때 하던 핑계 아니야?”
“그러게. 동남아시아 전쟁은 돈이 되지 않으니까 신경 안 쓴 거 아니야?”
“싱가포르에 쿠데타 터졌다니까 바로 철퇴 찍는 거 보면 꿀이라도 발라놨나 보지.”
“싱가포르에 금이 많잖아. 거기 부자들 현금도 현금이지만 금이랑 보석 왕창 쟁여 놓고 있거든.”
“그런 것 같네. 신성 왕국 화폐에는 귀금속 들어간다며? 싱가포르 부자들 털면 넘치는 게 귀금속 아니겠어?”
싱가포르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 금을 보관하고 있는지는 추정치만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신성 왕국의 설명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식인귀는 전부 사살됐습니다.] [이제 싱가포르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선출하게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 국민의 자산은 새로 선출된 싱가포르 정부가 지킬 것이며···.] [신정부가 구성되기까지 신성 왕국은 식육 뿌리의 소탕을 이어갈 것입니다.]싱가포르 정부가 가진 금괴나 부자들이 가진 귀금속에 손대지 않겠다는 발표였다.
‘그럼 대체 왜 싱가포르에서 지랄한 거지?’
싱가포르를 장악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의 귀금속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그럼 정말 식육 식물과 식인귀 때문에 개입했다는 건가?
‘그게 무슨 이득이 있어서?’
설마···.
진짜로 식육 식물과 식인귀가 위험해서 손을 썼다는 건가?
인류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서라는 개소리가 진심이라고?
정말로 그것뿐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 발표는 저렇게 하고 뒤로 알뜰하게 다 뜯어가겠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일방적인 발표가 이어졌다.
[식육 식물은 무조건 토벌합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펼쳐진 식육 식물을 공략하고 있으며, 식육 식물을 사용한 인도네시아 1군단을 섬멸했습니다.]식육 식물을 사용하려는 나라는 신성 왕국이 직접 정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싱크홀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불사의 괴물이 있는 싱크홀을 무기화하려 한다면 신성 왕국의 정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졌다.
식육 식물과 싱크홀을 써먹으려고 한 권력층은 반드시 죽이겠다.
설령 그 과정에서 민간인이 휘말린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민간인 희생?
식육 식물과 싱크홀 괴물 잡지 못하면 어차피 제물이 될 텐데?
냉정하기까지 한 신성 왕국의 통보에 동남아시아 각국은 발칵 뒤집혔다.
“우리를 공격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미 싱크홀 괴물을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한 나라도 있었고. 식인귀를 이용한 특수부대를 활용하는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신성 왕국과도 싸우겠다는 나라는 없었다.
지금도 밀고 밀리는 접전인데, 신성 왕국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면 그대로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게 뻔했으니까.
“싱크홀 쪽은 건드리지 않는 거로 합시다.”
“식인귀 부대는 신체 능력 각성자와 비슷하니, 걸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지요.”
전쟁은 멈추지 않았지만, 싱크홀 괴물과 식인귀 특수부대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민간인 피해가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마루의 머릿속을 간질거리는 무언가가 조금 더 늘기 시작했다.
[구원자님] [감사합니다.]감사와 신앙을 보내는 쪽과
[너 때문에 동생이 죽었어.] [증오한다. 반드시 복수할 테다.]증오하고 저주하는 자들이었다.
[신성이 강해져서 그런 건가?]“신경 쓰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기는 한데. 아무래도 좀 껄끄럽네.”
[신앙이 생기면 너에게 정신파를 보낼 수 있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증오하는 자들도 너에게 정신파를 보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한데?] [그럼 그거 식인귀들 아님?]“식인귀?”
[응. 식인귀의 정신파가 신성 때문에 읽힌 거.]김 양의 가설에 마루와 기순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데.]기순의 눈매가 더욱 좁아졌다.
[그리고 신성 때문에 생긴 거면, 이쪽이 저쪽으로 보낼 수도 있는 것 아님?]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신앙심 있는 애들이 기도하는 정신파를 읽을 수 있고. 걔들한테 정신파로 답해 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그게 가능하면 희연이 U+ 링크처럼 신성으로 연결되는 통신망 그런 거 생기는 거고.
응. 좋네.
저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식인귀가 저주하면, 식인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거 잡는 데도 효과적일 테고.
아닌가?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증오하는 정신파를 보내는 게 식인귀인지, 그것부터 확인해 보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