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11)
러스트 [RUST]-111
길고 반투명한 촉수가 기순을 노렸다.
‘워이워이워이!!!!’
기순이 화들짝 뒤로 몸을 던졌다. 물 속이라 둥실 뒤로 가면서 아래로 가라앉았다. 뽀그르르륵 거품으로 시야가 막힌 기순이 허겁지겁 수면으로 올라갔다.
“씨발. 씨발. 뭐야! 뭐야? 따개비에 뭔 좆같은 게.”
그러고 보니 따개비가 번식하는 방법이 생각났다. 따개비는 신체대비 최대 8배인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 한 곳에 붙어서 살기 때문에 생식기를 최대한 길게 늘여서 번식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기 기다란 촉수 같은 게 따깨비의···.
“저게 그거라고?”
‘좆같다고 했더니 진짜 좆이었네.’
근데 왜 거기가 지랄일까? 기순은 뭔가 더러운 걸 본 기분이었다. 긴 좆이 자신을 촉수처럼 찌르려고 했다고 생각하니 전신에서 두드러기가 돋을 것 같았다.
콰자자자작!!!!
물보라가 튀고 껍질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루가 제트 스키를 타고 호쾌하게 칼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달리는 제트 스키. 상어가 먹잇감을 두고 빙빙 도는 것처럼 카타마란에 딱 붙어 빙빙 돌면서 칼질하는 마루였다. 카타마란에 붙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따개비를 분쇄하고 있었다.
좆이고 촉수고 내뻗고 어쩌고 할 그런 것도 없이 깨지고 갈려버리는 따개비들.
기순은 ‘와우- 씹사기네···’까지만 말하고 다시 레귤레이터(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수중 용접으로 지져 버린 뒤 떼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방금까지 도끼질했던 곳으로 가까이 가자 따개비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따개비들이 촉수를 내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찔러대는 촉수들. 기순은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후딱 해치우고 올라가자.’
‘금방 끝낼 수 있어.’
완전히 깔끔하게 다 떼어내는 건 힘들더라도. 도끼로 여기저기 깬 뒤, 배를 최고 속력으로 몰면 물의 저항과 압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상처를 내자.
기순이 도끼질을 시작했다. 부수고 깨고 깔끔하게 떼려고 욕심내지 말고. 때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상처 입은 따개비들이 촉수 같은 생식기를 사방으로 찔러대기 시작했다.
지름 10cm 정도 되는 큰 따개비에서 70~80cm 길이의 생식기가 나와 사방으로 움직였다. 기순은 장소를 바꿔 여기저기 손도끼를 휘둘러댔다. 이윽고 카타마란 하부가 말미잘처럼 변했다.
기순의 움직임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순을 붙잡겠다는 염원을 담은 촉수들이 돋아 올랐다.
두둑.
기순의 손목을 휘감았던 촉수가 끊어졌다. 휙-휙- 언제 촉수를 뻗었는지 발목과 종아리를 얽기 시작한 촉수를 도끼로 잘라내는 기순.
하나를 끊어내면 둘이 둘을 끊어내면 셋이 넷이 엉겨 붙기 시작했다.
======
======
기순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마자 소리 질렀다.
“개 씨발!!!”
“왜?”
“씹새끼들이 끊임없이 좆을 내밀잖아!!!@#$%#@$!!!!”
“?”
마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기순이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고함쳤다.
“따개비 변태 같은 새끼들이라고! 그 새끼들이 수컷 게에 기생해서 암컷으로 성전환시켜 버리는 변태 같은 새끼들인데 그 새끼들이 나한테···.”
분기에 찬 기순의 얼굴색이 점점 파랗게 질리더니 갑자기 침묵했다.
“그래서. 따개비들이 어쨌다고?”
“······.”
“야? 뭔데 그렇게 넋이 나갔어?”
“······.”
“어이? 기순아? 괜찮냐? 뭔 말을 하다가 말고.”
“···아니. 아니. 설마···.”
허둥지둥 배 위로 올라온 기순이 잠수복을 벗고 자기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옆에 있던 생수병을 뜯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헹구고 뜯어보기를 몇 차례 반복한 기순이,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진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씨발. 와- 변태 씹-”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갑자기 따개비가 바다거북에게 달라붙었던 게 생각나서 말이야.”
“아- 그 사진? 근데 그게 갑자기 왜?”
“왜긴? 저것들이 날 노렸다고! 노린 게 분명해!”
“노려?”
“그래. 노린 거야. 아주 와- 씨발- 용접기 들고 내려가야겠다. 도끼로는 답이 없겠어. 지져서 죽여버리고 긁어내야지.”
“괜찮겠냐?”
“내가 자존심이 있지. 따개비 따위한테···. 어이가 없어서···.”
식식- 분노에 찬 호흡을 가다듬던 기순이 수중 용접기를 챙겨 들고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 바다로 들어갔다. 하얗게 용접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따개비 구멍에 용접기를 대자,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타버린 따개비. 휙- 옆에 있던 따개비에서 촉수가 뻗어 나왔다.
기순은 침착하게 촉수에 용접기를 댔다. 뽀그륵-불꽃과 함께 오징어 다리 오그라들 듯 촉수가 오그라들었다. 다시 따개비 구멍에 들어간 용접기에서 불꽃이 터졌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 좆같은 새끼들.’
반나절 내내 따개비를 조졌는데도 1/10도 못 끝냈다. 이렇게 가면 3~4일은 꼬박 따개비만 잡아야 할 판이었다.
쿠직쿠직
태워죽인 따개비를 도끼로 긁어내자, 배에 붙은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하얀 선체에 따개비가 붙었던 자국이 화인처럼 남아있었다.
기순이 우물우물 고기를 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용접기 들고 따개비를 조지긴 했는데, 따개비로 인한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해.”
“일부분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부식이 많이 진행됐더라. 방수 테이프로 대충 응급 복구를 해놓기는 했지만, 남은 따개비를 이대로 두고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전에 작업 시작했는데 방금 작업 끝날 때쯤 보니까, 오전에 새끼손톱 절반만 한 크기였던 것들이 엄지손톱 절반 크기로 자랐더라. 비상식적인 성장 속도야.”
빨리 자라면 그만큼 먹고 싼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딱 그만큼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따개비의 경우, 부착된 부분의 부식 진행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개비를 싹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기순이 김 양과 간호원을 보며 말했다.
“수영은 할 줄 알지?”
김 양과 간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할 줄 알아서 다행이네. 내일은 따개비 제거하는 데 손을 좀 보태주면 좋겠어.”
기순의 말에 김 양이 손을 척 들고 말했다.
“스쿠버다이빙 할 줄 모름.”
“어차피 스쿠버다이빙 장비는 하나뿐이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용접으로 지져서 죽이면 그거 뒤처리만 해주면 돼. 혼자서 용접기로 지지고 도끼로 긁어내고 그러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알겠음.”
“예.”
흔쾌히 동의하는 김 양과 간호사의 모습에 긁적긁적, 기순이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다.
“오케이. 그럼 다들 일찍 자자. 내일 일찍부터 시작해서 후딱 끝내버리자고.”
======
======
외벽 여기저기 그을음이 묻은 도난 병원.
연구원들과 의료진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놀랍군요.”
“그렇습니다.”
“다카이치 제약의 비밀을 엿본 것 같습니다.”
이곳의 연구원들은 야마츠키 신약쪽 사람들이었다. 전투자극제, 전술 마약을 중점으로 연구했던 그들이었기에, 다카이치 제약 실험실에 있던 바퀴벌레 표본에서 추출한 결과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바퀴벌레의 유전정보를 해독한 결과, 생존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영역이 월등히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선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냄새를 감지하는 화학수용체 유전자 수가 개미류 등 다른 곤충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미각수용체 유전자 역시 지금까지 알려진 곤충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연구원들은 먹이가 지닌 독성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미각수용체가 발달한 것으로 해석했다.
독성 먹이를 회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을 먹더라도 강력한 해독 능력으로 위기를 이겼다. 독성 분해를 담당하는 효소 유전자만 수백 개에 달했다.
“이것이 바퀴벌레가 가진 독성 분해 능력을 활용한 해독제입니다.”
“호오- 기존에 있던 것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해독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전투 마약을 풀로 때려 박지 못했던 이유가 뭐였던가? 중화제의 한계 때문이었다. 완벽한 중화제, 해독제가 가능하다면, 전투 마약의 농도를 더 높여서 투약하는 것도 가능했다.
부작용만 없다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오래가게 할 수 있었다.
“해독 능력뿐만 아니라 항균 작용도 탁월합니다.”
“면역 능력을 활성화하는 물질도 추출할 수 있고, 심지어 재생유도 물질까지 추출할 수 있게 됐으니. 다카이치 제약이 독점하고 있던 급속치료제에 관한 연구도 재개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과 의료진은 새로운 중화제, 해독제에 이어 항생제, 급속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기영 과장이 그 모습을 보고 안동구 팀장을 불렀다.
“자료는 다 챙겼냐?”
“예 병원에 있는 자료는 다 챙겼습니다.”
“저 사람들은 따로 모아서 한국으로 일단 떠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 팀장의 말에 이기영 과장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후-
“일단 심 사장님. 아니, 심 회장님께 저 사람들 데려다주고, 애들이랑 장비 더 챙겨와. 여기 왔을 때 어땠었냐? 감염자에, 베트남 갱단에. 아주 생난리도 그런 생난리는 처음이지 않았냐?”
“··· 그래도 먼저 가라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저 사람들 데려가야 한다면 과장님이 인도해서 가십쇼. 여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아니, 야. 안동구. 봤잖아. 베트남 갱단이 여길 딱 핀포인트 잡고 온 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다시 담배를 깊게 빤 이기영 과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베트남 갱단이 여기 뭐가 있는 줄 알고 왔겠냐? 여기에 뭔가 있다는 정보가 퍼졌다는 소리 아니겠냐? 그럼 베트남 갱단만 올까? 여기에 이놈이고 저년이고 죄다 모인다는 소리야. 그럼, 여기만 그럴까? 도쿄도 마찬가지란 소리고.”
“······.”
“그럼 그 바글바글한 놈들과 죄 싸우기만 할 거냐? 팀장이랍시고 네가 남아있으면? 그 세력들 가운데 누구랑 연합하고 누구랑 적대할지 결정할 수 있기는 하고? 너한테 결정권을 준다고 해도 그놈들이 달랑 실장인 너와 협상할 생각을 하겠냐?
“···그런 소리 하지 마십쇼. 약속했잖습니까? 무슨 일 생기면 먼저 가시기로. 제가 가서 지원 불러와 봐야 몇 명이나 데려오겠습니까? 심 회장님과 이야기 통하는 건 과장님 아닙니까?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짱박혀서 막는 거 하나는 잘하는 거. 그러니 과장님이 가십쇼.”
이기영 과장이 헛웃음 쳤다.
“와 ? 이 새끼 이거. 이젠 막 기어오른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약속 지키십쇼.”
안동구의 우직한 눈빛에 이기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주 고집이 지랄인 새끼.
“그래. 씨발. 내가 간다. 내가 가. 팀장 따리가, 과장을 부려 먹어요. 아주.”
피식- 피식- 서로를 보고 웃는 두 사람이었다.
잠시 뒤, 헬기 3대가 연구원과 의료진, 연구 자료와 실험장비들을 싣고 한국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블랙호크 2대와 치누크 2대가 도난 병원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
======
촤아아아아악
붉은 노을을 뒤로, 카타마란이 하얀 돛을 펼쳐 올렸다. 팽팽한 돛에 가득한 바람.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 위에서 기순과 마루, 김 양과 간호사가 뜨끈한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와 진짜 다들 봤지? 봤지? 그게 씨발 나한테만 달라붙는 거?”
기순의 너스레에 다들 미소 지었다. 이상하긴 이상했다. 따개비들이 기순에게만 죽자고 촉수(?)을 내미는 걸 보면. 그리고 촉수에 얽힐 때마다 바닷속에서 춤추는 모습에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다.
“···따개비라는 게 진짜, 좆같은 거라고. 생긴 건 조개처럼 생겼는데 조개가 아니라 게랑 친척이야. 거기에 대부분 독성이 있어서 먹기도 힘들고 쓴맛 때문에 국물용으로 쓰지도 못해···.”
“울릉도에서는 먹지 않냐? 그거 맛이 괜찮던데.”
마루의 말에 기순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건 삿갓조개라고 생긴 건 따개비처럼 생겼어도 전혀 다른 종이고. 여튼 따개비가 왜 좆같냐 하면···.”
긁적긁적.
“···외국에서 존나 황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긁적긁적.
“···따개비 유생인지 유충인지가 상처 난 틈에 들어가서···.”
긁적긁적. 북. 북. 긁어댄 볼에 빨간 자국이 짙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