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13)
러스트 [RUST]-113
30m가 넘는 카타마란이 붕 떠올랐다가 내리꽂혔다.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이어서 파도를 타고 다시 솟아오른 카타마란.
한 번에 몇 미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판이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옆에 달라붙은 간호사는 이미 늘어진 해삼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종간나 새끼.’
따개비한테 총 좀 겨눴다고 복수하는 건가? 따개비한테 응앙 당하지를 말든지, 소름 돋게 벅벅 긁어대 놓고 스트레스 해소를 이따위로 하네. 김 양이 기순을 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순은 시원하게 내달렸다.
우욱
으웩
‘나 죽어. 새끼야.’
‘나 죽는다고.’
‘간호사도 죽어.’
분노에서 애원으로 애원에서 절망으로 이어진 기순의 질주는 1시간을 넘어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일본 동부지역에서 밴쿠버까지는 대략 7,500km를 넘나드는 거리였다. 비행기처럼 일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8,000km가량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낮에는 17~20노트 그러니까 대충 평균 잡아 34km 내외의 속도를 꾸준히 내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15일에서 20일 잡았던 시간이 확 줄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열흘이면 도착할 거 같은데?”
“그럼 예상보다 거의 4~5일 앞당겨지는 건가?”
“그래. 날 잡은 김에 속도를 쭉쭉 뽑아서 가면 좋겠지만, 그건 좀 어렵겠다.”
기순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11월이 되자 확실히 바람이 강해졌다. 덩달아 파도도 높아져 속도를 높이면 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기순과 마루는 가뿐하게 버텼지만, 김 양과 간호사는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파김치가 된 김 양이 퀭한 눈으로 쳐다볼 때는 기순도 솔직히 조금 움찔했었다. 간호사는 그냥 끙끙 앓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쩝-
뭐 그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너무 기분을 냈나? 기순이 두 사람을 생각하곤 머쓱했다.
“마루야. 근데 내 거 신분 새로 판 거.”
“어.”
“그거 이름 뭐냐?”
“어때서. 입에 착 달라붙더라.”
“아니 님아. 뭔 입에 달라붙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스즈키 스바루가 어때서. 그냥 팍하고 입에 붙네, 뭔가 공대 느낌도 나고 좋잖아?”
“그럼 혼다 시키마루는 뭐냐? 이름에 한 맺혔냐? 왜 그따위로 짓는 건데.”
“니가 그러지 않았냐? 신분 새로 팔 때, 이름으로 실수하지 않으려면 머릿속에 팍팍 박히는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아- 그건 내 이름을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너 이름 바꿀 때 생각하라고 그런 거지.”
“어쨌든 이름 기억하기 좋잖냐. 스즈키 스바루, 혼다 시키마루. 일본 대기업 느낌 나고 좋네.”
“됐다. 됐어. 혼다 시키마루라니 대체 뭔 생각이냐? 하는 김에 세키마루라고 하지 그랬냐? 성은 시모노로 하고.”
“······.”
“설마 진짜 그렇게 하려고 했냐?”
“······.”
“미친. 이번에 영주권이든 시민권이든 만들 때는 제발 좀 정상적인 이름으로 가자. 응?”
“실수하지 않으려면 자기 이름이랑 비슷한 거 쓰라며.”
마루와 기순이 투덕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과 간호사는 퀭한 눈으로 위성 방송 채널을 돌렸다. 뉴스가 잡혔다.
[···지금 보시는 영상은 일본 히로시마시 인근에서 촬영된 동영상입니다.] [어두운 밤. 헬리콥터가 날아오릅니다···.] [···헬기가 거대한 폭탄을 민가에 떨어뜨리자, 사방이 불바다로 변합니다.] [···네이팜 탄으로 보이고요.] [그렇다면 현재 일본 히로시마시 대규모 화재 사건이 벌어진 이유가 정체불명의 군사 집단이 벌인 일이라는 것입니까?] [···일본 임시정부는 교토를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대규모 화재 사태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죠?] [그렇습니다. 지난번 특집 뉴스에서 다뤘던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도쿄와 인근 지역 통신 두절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예. 당시 도쿄 특파원들과 연락이 끊겼다고 했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후 각국에서는 기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구조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구조대가 보내온 영상입니다. 같이 보시죠.] [··· 도쿄 특파원을 구출하기 위해, 프랑스 외인부대가 투입됐습니다.] [항만 지역이 쓰나미에 휩쓸려 진창으로 변한 상황, 구조대가 힘겹게 행군을 계속합니다.]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는 구조대. 한 대원이 뭔가를 보고 비명을 지릅니다.] [멀리 검은 연기가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흔들립니다. 이후 통신이 끊긴 구조대.] [구조대 실종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저거, 검은 연기 그거 아닌가? 까마귀? 근데 까마귀가 접근하기 전에 왜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던 거지?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간호사는 일본 도쿄가 초토화됐다는 뉴스를 보곤 울먹울먹했다.
그러고 보니까 간호사 고향이 도쿄였다고 했던가? 뭐··· 그럼 좀 그렇기는 하겠네. 김 양이 배려하는 차원에서 채널을 돌렸다. 미국 뉴스였다.
[중국이 일본에 무장 병력을 파견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펜타곤에서는 이를 국제사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이에 대해 중국 대변인은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며, 일본에 무장 병력을 파견한 일이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히로시마시 인근에서 발견된 시체들이 중국인으로 밝혀진 가운데 중국산 무기와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FN-6과 FN-16이 발견됐습니다.] [···구소련의 이글라 지대공 미사일을 기반으로 만든 중국제 지대공 미사일로, 보병이 휴대하고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로···.] [주일미군 헨리 게리슨 소장은 중국이 일본 재난의 틈을 타 대만 무력 합병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보고서를 국회에 보냈습니다.] [하원에서는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공격할 경우, 동맹국들과 함께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대응이란 무력 대응을 의미하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할 경우, 동맹국들과 함께 무력충돌을 불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에서 구조 활동과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 진주만에 있는 태평양함대를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가운데···.]난리가 아니었다. 김 양은 TV를 껐다. 응- 그냥 음악이나 듣자.
잔잔한 음악과 파도 소리가 카타마란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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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마란은 순조롭게 태평양을 횡단했다. 처음 따개비 사건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양동이에서 보관함으로 옮겨진 따개비들은 미친 번식력을 보였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크기도 상당히 커졌다. 순식간에 골프공 크기로 커진 것들이, 며칠이 더 지나자 야구공만큼이나 커졌다.
한 번씩 확인하기 위해 보관함을 열 때마다 촉수 같은 생식기를 휘둘러대서 그만 열기로 했을 지경이었다.
“아오. 씨- 진짜 그만 열자.”
보기만 해도 온 전신에 두드러기가 난다는 듯 몸서리치는 기순이었다.
“대충 어떤 상태인지 봐야. 이야기하기 편하다면서?”
당장 캐나다 정부랑 미국 정부랑 협상할 때, 보관함에 있는 따개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협상하긴 그랬다. 그래서 한 번씩 열어보고 그랬는데. 지금 보니까 열어보기 위험했다.
“봤잖아. 저거 좆에 닿으면 좆되는 거.”
비닐에 밀봉해 놓은 스쿠버다이빙 장비에도 작게 따개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피부에 닿으면 피부에 알을 박아 넣는 건지. 아니면 유생을 박아 넣는 건지. 일반적인 따개비랑은 달랐다.
생식기라는 말은 그대로 생식에 관련된 행위를 하는 거지, 거기에 알을 낳거나 유생을 밀어 넣는 기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산란관이라고 했거나, 유생을 박아 넣는 기생관?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저건 따개비의 탈을 쓴 뭔가 다른 생물이라고 보는 게 맞지 싶다.”
“하긴.”
기순의 말에 마루도 동의했다.
“근데 저게 왜 그렇게 너를 노리냐?”
희한하게 다른 사람이 열어보면 반응이 그냥 그런데. 기순이 열거나 근처에 있다고 하면 난리 발광을 떠는 따개비였다.
“씨발 뭣 때문인지 내가 알겠냐?”
“혹시. 따개비한테 먹히게 생긴 건 아니고?”
“뭘 먹히게 생겨?”
“먹히-응~ 먹히-ANG?”
“야! 이 씨-”
“따개비가 성전환도 시킨다며? ~응? ~앙? 미국 도착하면 정밀검사~앙~”
기순을 야금야금 놀리는 마루였다.
[치지직-해안 경비대에서···]“야. 왔다. 조용히 해.”
기순이 무전기를 잡고 입을 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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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추가 신분을 만들어 두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니까 하나에서 둘 정도는 따로 만드는 게 좋다는 소리지?”
“그렇지 않겠음?”
“캐나다랑 미국 정부에서 신분을 만들면 해결된 거 아닌가 싶은데. 일본 신분으로 공식 인증받은 거니까 세탁 확실히 끝난 거잖아.”
“일단 신분 세탁은 해결됐지만, 혹시 모르니까. 따로 더 해두는 게 좋음.”
그렇기는 했다. 당장 마루 자신도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상황이었고, 가지고 있는 약도 그랬다. 급속치료제가 밝혀져도 위험했고,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감지? 예견하는 감각이 밝혀지는 것도 위험했다.
“그건 김 양 말이 맞는 거 같네.”
가만히 듣고 있던 기순도 동의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캐나다, 미국 정부와 딜이 됐다고 하더라도 따로 하나 정도는 굴을 파두는 게 안전했다. 무슨 일이든 닥치고 난 뒤에 후회해봐야 소용없을 테니까.
“어떻게 이야기는 잘됐냐?”
“일단 진득하게 기다려봐. 이 킹기순님께서 떡밥을 잘 뿌려놨으니까 말이지.”
“어디에다 어떻게 뿌렸는데?”
“캐나다에만 뿌리면 버지니아 회사에서 냄새 맡고 슥삭-하러 왔다가 썰릴 거란 말이지. 그럼 그냥 그때부터는 좆되는 거고.”
기순의 말에 김 양과 간호사가 마루를 힐끔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실에 샘플을 보내면서, 미국 스탠포드 연구실에도 샘플을 보냈다.”
“야- 약속받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샘플부터 보내면 어떡해?”
“워- 워- 진정하고. 내가 그냥 샘플을 보냈겠냐? 일부만 보냈지 일부만. 애가 타게. 받아 보고 나면 바로 연락이 올 거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리릭-
“거봐. 밤이고 낮이고 바로 올 거라고 했잖아. 기다려봐.”
기순이 냉큼 무전기를 들었다.
“네. 스즈키 스바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스즈키씨. 버지니아 컴퍼니에서 연락드립니다.]샘플을 받은 대학교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더니, 직방으로 버지니아에서 연락이 왔다. 빠르네. 역시 버지니아 그 회사다웠다.
“아? 버지니아요. 예. 말씀하십시오.”
[위험한 생체조직을 가지고 계시던데,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계시죠?]“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캐나다와 미국의 대학교 연구실에 샘플을 보냈습니다만.”
[하. 하. 그러셨군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했으면 합니다만.]“시간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먼저 이쪽이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캐나다와 미국 시민권과 집, 소정의 보상금을 원합니다. 확인하시고 제안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거. 참- 직설적이시네요. 좋습니다. 다만 살아있는 표본이 필요합니다.]“글쎄요. 살아있는 샘플에 대한 대답은 보상을 들어보고 답해드리죠.”
[그래요. 그러기로 하죠.]“미리 말씀드리지만, 지옥 같은 일본에서 샘플까지 챙겨나온 사람들입니다. 좋게, 좋은 거래 했으면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회의가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기순이 무전을 끊자마자, 팔짱을 꼈다.
“왜? 이야기 잘 된 거 아니었어?”
“야. 죽이지 않고 제압은 진짜 힘드냐?”
“힘들지. 그냥 일반인이라면 모르겠는데, 버지니아라며? 총 맞으면 뒈지는 건 마찬가진데 살살하고 어쩌고 하긴 힘들지. 근데 왜? 들어보니까 이야기 잘 끝난 거 아니었어?”
“후- 이게 좀. 안 되겠다. 국가안보국에도 찔러야지.”
“국가안보국에? 일이 커지는 거 아니냐? 버지니아는 조용히 덮으려고 하겠지만, 국가안보국까지 가면 조용히 끝나기는 쉽지 않잖아.”
“그래서 그래. 조용히 덮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 않냐? 뭣보다 버지니아에서 너무 빨리 연락이 왔어. 게다가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보험이라도 들어놔야지, 불안해서 안 되겠다.”
그렇다면야. 마루가 김 양을 보고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지금부터 나랑 김 양이 경계 설게.”
김 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광학 은신 로브를 둘러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