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16)
러스트 [RUST]-116
“긴급상황이요?”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기순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무슨 긴급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왜 날?
“예. 전화 받았습니다.”
[버나드 그린 씨. 국토안보부 산하 생화학 테러 대응팀에서 연락드립니다. 현재 변종 따개비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최대한 빨리 넘겨주셔야겠습니다.]정말 박사한테 따개비가 붙은 거야? 그 짧은 시간에. 붙었다고 하더라도 박사와 근처에 있던 해안 경비대원까지 모조리 꽁꽁 포장해서 헬기로 싣고 갔잖아. 그런데 어쩌다가?
잠시 멍하니 생각했던 기순이 입술에 침을 축이고서 말했다.
“메일로 보낸 정보가 전부입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변종 따개비의 특징은 빠른 성장, 길게 내 뻗는 촉수 같은 생식기가 특징입니다. 생식기가 일반적인 따개비와는 다릅니다. 촉수처럼 움직이며 유생을 직접 분비하는 것 같습니다. 길이가 갑작스럽게 늘어나서 접근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변종 따개비에 감염된 사람의 치료 방법은 없는 겁니까?]“······.”
기순이 말을 돌렸다. 혹시라도 마루가 가지고 있는 급속치료제가 드러나면 위험했다.
“일단. 계속해서 이야기하자면, 스쿠버다이빙 장비에도 붙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나 생명체가 아닌 곳에도 붙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감염된 사람이 단순히 물건을 만지거나 스쳐 지나가도 옮을 수 있다는 건가요?]기순은 자신이 얼굴을 긁어댔던 것을 떠올렸다. 안개가 낀 듯 긁어댄 기억이 흐릿했다. 그러고 보니 통증도 느끼지 못했었다. 기절했었기 때문일까?
아니, 기절하기 전에도 그랬다. 얼굴을 긁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당시 상황을 생각하자면 손으로 감염부위를 만지면 번지는 게 확실했다.
“감염된 부위를 손으로 긁었다면, 손톱과 손가락도 감염됐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염부위에 손을 대고 다른 곳을 만졌다면 그곳도 감염됐다고 봐야 합니다. 감염된 부위를 스친 것도 마찬가지고요.”
[빌어먹을. 방법이 없습니까?]“감염된 부위를 완전히 도려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감염부위를 제거한 뒤, 재감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수술 장비도 한 번 사용했다면 가열처리하는 게 제일 확실할 겁니다. 따개비 자체가 일종의 게과 동물인지라 항생제는 소용없다고 봐야 합니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병원 응급실 병상이 모자라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변종 따개비 수술환자가 폭증한다면···.]“···병원이 감염자 확산의 온상지가 되겠네요.”
[···그렇다고 병원을 폐쇄한다면 감염자를 살릴 방법이 없겠군요.]“감염부위를 잘라내는 처지인지라, 그 외에 변종 따개비를 제거할 방법은 고온으로 삶거나 태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감염 지역 전체를 태우는 방법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후- 진짜 무슨 일이냐. 기순이 숨을 길게 뱉었다. 버지니아 직원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자 그도 연락할 곳이 있는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통화를 시작했다.
버지니아 직원이 조금씩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마루가 기순에게 말했다.
“트레일러에 다 옮겨 실었다.”
“그러냐? 그럼 이제 어디로 가게?”
“일단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인근에 있는 집으로 가져가서 짐을 풀게.”
“캐나다 여행한다며? 캐나다로 바로 가지 않고?”
“무기랑 폭탄에 금괴, 현찰까지 싣고 국경 넘어가라고? 아무리 버지니아 덕을 본다고 쳐도 그건 아니지.”
“뭐. 그렇기는 하겠네.”
“그래서 왜 그렇게 죽상인데?”
“아- 씨발. 변종 따개비가 샌 거 같다.”
“뭐? 그거 보관함 닫았다며?”
“교수가 열기 전에 닫았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빨리 닫았어도 혹시나 하기도 하고, 트롤 교수 엿이나 먹으라고 격리하라고 말해줘서 격리해서 싣고 갔는데···.”
기순의 말에 마루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거 처리하려면 초기에 감염부위 도려내야 할 텐데, 그것도 몇 명 감염되지 않았을 때나 그런거고. 일단 퍼지기 시작했으면 네이팜으로 주변 전부 태워 버리든지, 핵으로 지지든지 해야 그나마 확산 막을 가능성 있을 텐데. 망했네. 어디래? 그쪽으로는 가지 않게.”
“지역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 동네 근처 아니면 샌프란시스코나 LA. 아니겠냐?”
밴쿠버에서 헬기로 싣고 갔으니 어디로 갔겠나, 가까운 지역 연구실로 갔겠지. 시애틀 인근에도 연구실과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제법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와 LA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샌프란시스코나 LA로 갈 거면 51구역으로 갔겠지. 헬기로 갔으면 거기서 거긴데.”
“하긴 그렇겠네.”
따개비 사태가 터졌다면 무조건 멀리 피하는 게 좋았다. 마루가 서류철을 살피며 말했다.
“산호세 인근에 준 집은 그냥 패스하고 봐야겠네. 그럼 동부 보스턴 해안가에 있는 집으로 가야지 뭐.”
“MIT 대학이 있는 보스턴 말이지? 대학교 근처냐? 보스턴 대학? MIT?”
기순의 말에 마루가 서류철에 있는 약도를 봤다.
“아니, 거기는 아니고 해안가 쪽에 있는 집이네. 전망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근데 진짜 바로 한국 갈 거냐? 이왕에 왔으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같이 여행도 좀 가고 쉬었다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버지니아에서 일본으로 가는 걸 도와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왜? 그냥 자기들이 가면 되는 일 아니야?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도 있고, 비행기 타고 오키나와나 괌으로 가서 거기서 배 타고 들어가면 되는 일을. 왜 널 엮어?”
“그러게, 말이다. 하는 말로는 그런 루트로 구조대를 보냈는데 전부 연락이 끊겼다고 하네.”
“아니. 그럼 더 못 간다고 해야지.”
“후- 그럼 카타마란에 싣고 있던 무기랑 폭탄, 금괴랑 외화들은 어떻게 하고? 그거 다 뺏기게? 안 간다고 했으면 별의별 이유 다 대고 압류했을걸.”
“······.”
“어차피 너 데려다주고 바로 돌아간다고 했었잖아. 가는 길에 도난 병원에 들렀다 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씨발.”
“됐고. 버지니아 직원들이랑 괌에서 미군 구조대까지 인솔해서 가니까 같이 갈 생각하지 말고. 미국에서 자리나 잘 잡고 있어. 미국에서 자리 잡기 좆같으면 캐나다에서 자리를 잡고 있든지. 그러자고 이중국적 만든 거 아니냐.”
기순이 가볍게 말했다. 마루가 기순에게 재차 주의를 다짐했다.
“도쿄로 가지 마라.”
“안 가.”
“진지하게 다시 말하는데, 도쿄에는 절대 가지 마. 저쪽에서 협박하든 뭘 하든 진짜로.”
“알았다. 미쳤다고 바퀴벌레에 쥐 떼, 검은 괴물까지 난리였다는 곳을 갈까. 도난 병원 근처까지만 가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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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부.
상황실에 대형 화면에는 붉게 물들어가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 원이 도로를 따라 여기저기 포도송이처럼 맺힌 모습. 실시간으로 점차 많아지는 붉은 원.
“빌어먹을 저게 뭐야? 저게 무슨 결과냐고!”
“진정하십시오.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앉아있나? 응? 좋아. 어쩌다가 유출된 건가? 다들 눈뜬장님은 아니었을 거고. 어쩌다가 유출이 됐어?”
붉게 물들어가던 화면이 CCTV 녹화 장면으로 넘어갔다.
“버나드 그린의 말에 따르면 감염부위에 닿는다면 전염된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자세히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남자가 격리된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불안한지 손등을 긁기 시작한 남자. 화면으로 봐서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빨리 감기로 영상을 재생하자 반복되는 패턴이 확연히 보였다. 손등을 긁고. 잠시 뒤 다시 손등을 긁어대는 모습.
긁은 부분을 확대하자 손등이 빨갛게 변해 출혈이 생기기 직전인 모습이 드러났다. 이어서 서류와 볼펜이 제공되고, 남자는 소리를 치더니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손등을 긁던 손으로 볼펜과 서류를 만지고, 얼굴이 가려웠는지 얼굴과 머리를 긁어대는 모습.
방안을 비추던 CCTV 화면이 복도로 변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 연구원이 남자가 작성한 서류와 볼펜을 들고 실험실로 향하는 모습이 찍혔다. 실험실에 들어간 연구원이 서류를 보고 뭔가를 확인하더니 잠시 뒤, 볼펜을 쥔 손가락을 긁기 시작했다.
몇 차례 손가락을 긁던 여자 연구원은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세면대에 물을 틀고 비누칠을 해 손을 닦기 시작한 여자 연구원. 그녀가 박박 손을 씻는 동안 다른 연구원이 책상 위에 놓은 서류를 들고 읽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볼펜과 서류를 직접 간접적으로 만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긁어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확산 속도가 더 빨라졌다. 문고리를 잡고 감염되는 사람.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감염되는 사람.
“퍽! 저게 사실이라면 감염자들이 손을 댄 곳을 만지면 전염된다는 소리잖나? 빌어먹을 손을 씻은 물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수를 오염시키고 저게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가면 대규모 아웃브레이크가 터진다고!”
“생물학 연구실이라 하수가 바로 배수되지 않고 1차 처리장으로 모입니다. 1차 처리장에서 아직 외부로 방류되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질러 호흡이 거칠어진 것을 간신히 가다듬은 부장이 물었다.
“그래서.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 같은 건가?”
CCTV에 보인 행동은 북북 긁다가 결국 피가 나도록 긁어대는 모습이었다. 손가락의 살점이 떨어지도록, 손등과 얼굴에서 피가 나도록, 손바닥을 거친 콘크리트 벽에 비벼서 피가 배도록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감염자들.
“변종 따개비 유생에 감염되면서 가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라. 다음 화면을 보시면···.”
요원은 말을 아끼고 다음 화면을 재생했다. 처음 격리실에 있던 남자가 보였다.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사내의 모습을 확대하자, 남자의 손등엔 뭔가가 빼곡하게 돋아나 있었다.
화면에 적힌 시간. 처음 손등을 긁었을 때보다 3~4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손등과 얼굴, 남자가 입고 있는 옷과 버둥거리는 바닥에도 작게 뭔가가 돋아 있었다.
홀리-
마더-
쉣-
회의실에서 같이 화면을 보던 요원들이 웅성거렸다.
“조용.”
이어지는 CCTV 화면, 여자 연구원이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재생됐다, 손가락을 잘랐지만 이미 얼굴에 돋아난 동그란 것 안에서 촉수 같은 것이 너울거리는 모습. 모두가 여자 연구원 얼굴 한쪽을 뒤덮은 따개비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저- 저- 홀리-”
한 직원이 뭔가를 봤는지 화면을 가리켰다.
“손가락. 손가락 잘린 부분.”
화면을 확대하자, 잘린 손가락에서 흐르던 피가 어느새 멎어있었다. 잘린 단면에 깨알같이 돋아난 따개비.
“대책은 있나?”
“전염을 막으려면 예상 지역을 전부 불태우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정지화면에 보인 모습. 잘린 손가락. 지혈된 단면.
“고작 3시간 만에 연구소 전체가 감염됐습니다. 인근 지역과 연구원들 관계자들이 이동한 동선 전체를 소각해야 합니다.”
“안 됩니다. 감염된 자들을 격리해 연구해야 합니다. 저 변종 따개비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혈된 단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획기적인 신약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의약품만 아닙니다. 생물학 병기로도 최상급입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닌, 적의 함선에 변종 따개비를 뿌린다면 적 함선의 기동력을 순식간에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미쳤습니까? 바다를 통째로 오염시킬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지금 고작 3시간 만에 생물학 연구소 하나가 날아간 걸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당장 소각하고 관계자들이 움직인 동선을 전부 태워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감염자들을 생포해 실험하자고요? 옷에도 기생하고 건물에도 자라는 괴물을 실험하자고요?”
부장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다들 조용. 각 부처장과 긴급화상회의를 할 테니, 위에 올릴 자료를 만들도록.”
진동과 함께 인터폰이 켜졌다.
[감염자가 비상 통로를 통해 실험실을 탈주. 사살에 성공했지만, 시신이 호수에 빠졌습니다.]부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긴급사태 발령한다. 호수 주변 반경 10마일까지 봉쇄해.”
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