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2)
러스트 [RUST]-12
마루는 호흡을 골랐다.
3분.
최 실장과 백 실장을 잡는 데 걸린 시간.
백 실장이 마루의 예상보다 오래 버텼다.
최 실장의 폐에 구멍을 내고 바로 백 실장의 경동맥을 노리는 순간, 백 실장은 오른손으로 마루의 소매를 노리며 다리 후리기를 했다.
그대로 공격했다면, 팔이 꺾여 칼을 놓치면서 그대로 바닥에 꽂혔을 것이다. 그래서 경동맥을 노리던 칼을 꺾어 그대로 잡아채던 오른손을 노렸다.
손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손가락 두 마디만 도마뱀 꼬리처럼 남기고 빠진 백 실장이었다.
만약 백 실장이 방검 장갑을 끼고 있었다면?
위험했겠지.
하-
낮고 길게 숨을 쉬니, 소진된 체력과 집중력이 빠르게 회복됐다.
최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명치 아래쪽 사선으로 칼을 넣어 한 방에 심장을 노렸다.
분명히 사각을 노렸는데 0.1초를 넘나드는 반응속도로 대응했다. 최 실장은 중심을 사이드로 이동해 급소를 피하면서 니킥으로 대응했다.
심장을 노리던 칼을 옆으로 빗겨 간장의 윗부분을 찌르면서 폐를 뚫고 밀어쳤다.
즉사시키지 못했지만, 간동맥을 건드리면서 폐를 찢어 다행이었다.
후-
복기하듯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재빨리 움직였다.
컴퓨터에 내려받아 놓은 [리믹스 메이커]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음악을 짜깁기하는 프로그램인데 마루는 이것으로 음성을 짜깁기할 생각이었다.
최 실장의 재킷을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찔린 지, 3분이 넘어감에도 최 실장은 죽지 않고 있었다. 힘을 줄 수 없어 버르적거리면서도 마루를 노려보는 최 실장.
어쩌라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담담했다.
원독(怨毒)에 찬 시선을 받아도 무덤덤했다.
나는 원래 이랬던 사람일까?
마루는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집안이 망했어도 세상을 증오하지는 않았다. 누굴 해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몸이 한계로 비명을 질러도 묵묵하게 참고 일했다.
모친 오미예 여사의 청순함도 끝내 견뎠다.
동생 하나루의 무개념도 눌러 넘겼다.
남도 아닌 가족이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도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다 지나가리라 생각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뭔가 망가졌음이 분명했다.
일본에 가서부터였나?
방사능이 뇌에 영향을 끼쳤을까?
모리노를 죽인 뒤부터였나?
상대방이 총을 잡으려 한다고 바로 칼질하는 게 정상인가?
상대방이 총을 쏜다고 바로 응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딱히 기계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치안이 좋은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홍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백정이 천성이야. 백정 마루.’
“씨발-”
마루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죽임을 당하기보다, 죽이는 쪽에 섰고
죽고 죽이는 선을 넘었으니, 더 이상의 고민은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할 일이었다.
폐에 피가 차서 기도를 채웠는지, 피를 내뱉는 최 실장이 금붕어처럼 뻐금댔다.
마루는 최 실장의 손가락을 대서 휴대폰 잠금을 풀고, 컴퓨터와 연결해 최 실장의 음성 파일을 열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전화 통화를 녹음한 파일이 있었다.
최 실장의 목소리가 담긴 파일에서 그의 목소리를 땄다.
[예.] [아닙니다.] [정리하고] [정리됐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출발이 조금 늦었습니다.] [별일 없었습니다.]······
짧은 말을 중심으로 음성을 딴 뒤, 번호를 지정해 놓고 재생을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루는 최 실장의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최 실장, 우리 미래의 백정 마루 사원은 어떻게 됐나?]홍 과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조금 들었는지, 고개를 든 최 실장의 입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피거품이었다.
끄으으끄륵-
마루가 최 실장을 보며 파일을 눌렀다. 녹음된 최 실장의 목소리가 재생됐다.
[정리했습니다.]벽에 기대 주저앉은 최 실장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래? 별다른 일은 없었고?]꾹-
[별일 없었습니다.]홍 과장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백 실장이랑 같이 갔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같이 가서 잘 풀렸나?] [예.]끄아-우-루-
[그렇겠지. 그놈이 그냥 잡힐 놈이 아니라니까. 최 실장과 백 실장이라면 어렵지 않게 눌렀을 거야.]꾹-
[예.]끄르르르륵-
피거품을 물며 발악하던 최 실장의 고개가 푹 꺼졌다. 부들부들 떨던 사지가 축 늘어졌다.
[그래. 잘했어. 알아서 조였다 풀었다 하겠지만, 너무 크게 상하게 하지는 말고.] [예.]홍 과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산삼으로 분위기 잘 잡아 놓을 테니까. 날뛰지 못하게 꽉 눌러놓고.]“······.”
산삼이라는 말에 마루가 버튼을 조금 늦게 눌렀다.
꾹-
[예.] [정리하고] [출발하겠습니다.]‘산삼? 산삼이라고’
마루는 동생이 떠올랐다.
뿌득-
당장 달려간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동생이 잡혀있다는 걸 미리 알고 가서 다행이었다.
정보.
정보가 필요했다.
마루는 백 실장의 휴대폰 비밀번호 잠금을 해제한 뒤, 내용을 살폈다.
백 실장은 사업장을 다니며 현찰을 수금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백 실장이 끌고 온 벤츠 트렁크에 간이 금고가 달려 있었다.
비밀번호 개폐식이라면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나?
다행하게도 지문인식 손잡이였다.
금고 손잡이에 지문인식 장치가 달려 엄지손가락을 대고 손잡이를 열면, 열리는 심플한 구조였다.
덜컹-
백 실장 엄지손가락의 협조로 간이 금고를 열자, 트렁크의 4/5쯤 채운 5만 원권 현찰 뭉치가 마루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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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쉽게 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
CCTV 동선에서 비낀 공중전화 부스는 더욱 적었다.
“기순아 난데.”
[왜? 목소릴 깔고 그래.]“너 자취하는 곳 옆에 놀이터 있지?”
[근데?]“거기 시소 가운데에 내 휴대폰을 묻어 둘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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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과장은 어째선지 기분이 꺼림직했다.
최 실장에게 애들 데려가라고 해놓고는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일이 겹쳐 똥이 될 것만 같은 느낌.
그런데 최 실장이 가려운 부분을 알아서 긁어줬다.
“확실히 최 실장이야.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해. 김 양아 화성각에 전화해서 코스로 예약 좀 해라.”
단발머리 약간 순둥하게 생긴 여자가 전화기를 들고 고개를 들었다.
“소고기로 하신다면서요?”
“소고기는 무슨 소고기. 고기 냄새 맡기만 해도 질린다.”
김 양의 순둥한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예약으로 하실 거죠? 몇 인분이나 할까요?”
“대기하고 있는 우리 애들이 10명에 나, 최 실장, 백 실장···. 김 양도 먹고 퇴근하지? 산삼이 혼자서 뻘쭘하게 있을 텐데.”
산삼은 무슨 산삼. 김 양은 낭랑하게 대답했다. 한우 투플 소고기가 아니라면 ‘굳이.’였다.
“아니요. 약속이 있어서요.”
“그래? 그럼 대충 25인분으로 잡고 1시까지 간다고 해.”
“코스는 어떻게 주문할까요?”
“B 코스 10인분, C로 10인분. D 코스 5인분.”
“네.”
“아- 김 양아. 1시 말고 2시로 해라. 2시면 점심시간 이후니까 2층 전부 쓰겠다고 하고.”
“네.”
홍 과장은 회식 준비부터 잡았다.
이제 녀석이 오면 흔들고 산삼으로 눈물 좀 빼고, 여기저기 좀 주물러 주고,
아니다 싶으면 약도 좀 꽂아주고, 회식도 하고, 하나씩 가다 보면 일이 풀릴 것이다.
최 실장과 통화해 보니 일이 풀리는 스토린데 어째선지 영 개운하지 못했다.
백 실장이 사고 쳤나? 월요일 수금할 걸, 서울 간 김에 하겠다고 돌아다니다 일을 쳤을까?
아니면 우리 마루 수수깡 하나 분질러서 병원에 갔으려나?
“김 양아- 주문 끝나면 백 실장 자동차 있지? 거기에 GPS 달아 놓은 거, 그걸로 위치추적 좀 해봐라.”
“위치추적이요?”
“그래. 그냥. 어디까지 왔나 싶어서.”
“네.”
김 양이 능숙하게 예약을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홍 과장님. 백 실장님 차.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는데요?”
흠- 괜한 걱정이었나?
“얼마나 걸리겠냐?”
“외곽 순환 고속도로 탄 거로 나오니까, 한 50분 정도면 도착할 거 같아요.”
걱정했던 게 기우였나?
그럼 슬슬 우리 백정 마루 사원 목에 목줄을 걸어 볼까 싶었다.
뭐라고 해도 가족 간의 애증, 사랑 뭐 이런 것에서부터 휴먼스토리가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래? 그럼 난 산삼이 향만 좀 맡고 올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중간에 김빠지지 않게, 찾는 전화 오면 조금 있다가 다시 하라고 해.”
“네.”
홍 과장은 휘파람을 불며 발걸음을 옮겼다.
돼지를 작업하는 4 작업실.
이곳은 갓 도축한 돼지의 피를 빼고, 내장을 걷어내는 곳이었다.
고리에 걸려 피가 빠지는 돼지들.
빨간 소쿠리에 쏟아진 돼지 내장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피비린내 가득한 한쪽 구석엔 카메라가 스탠바이 중이었다.
영화 촬영하는 것처럼 밝은 조명과 음향 마이크가 설치된 아래엔 비닐을 덮은 매트리스가 놓여있었다.
튼실하게 생긴 사내들이 음흉한 눈빛으로 산삼을 바라보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놈,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고 다른 손 검지를 넣다 뺏다 하는 놈, 허리를 튕기는 놈.
멀리서 보면 웃기는 모습이었지만. 그걸 직접 보는 나루는 끔찍할 따름이었다.
‘엄마. 아빠.’
그냥 눈물이 흐르는 나루였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피를 빼고 내장을 걷어내는 동남아 인부들이 나루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킥킥 웃었다.
전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들 같았다.
“오셨습니까. 셋팅 완벽하게 했습니다.”
나루를 희롱하던 덩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꼿꼿하게 허리를 펴더니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래- 그래- 분위기 좋고. 셋팅도 잘했네. 좋은 작품 하나 나올 분위기야. 어떠냐? 싱싱한 산삼 구경하니까 좋지?”
“예. 과장님.”
나루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웅얼거렸다.
“왜. 왜 이러시는 건데요?”
그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홍 과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러냐? 그래 왜 이럴까?”
“······.”
“이유가 있지 이유가. 우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러질 않아요. 산삼양.”
그 이유가 뭔데 자신이 이렇게 끔찍한 꼴을 당해야 하는지 나루는 너무 궁금했다.
이유고 뭐고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누가 됐든. 제발.
나루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홍 과장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볼과 볼이 닿을 지경.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 정말이라니까. 우리가 뭐 미쳤다고 시간 쓰고 돈 써가면서 이러겠나? 저기 저 오빠들 일당 세다.”
“······.”
“그래서 우리도 신사적으로 그 뭐냐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잘해보겠다고 그랬는데, 근데 그냥 하마루라는 사람이 그냥 가족이고 뭐고 버려버리네.”
“!”
“그래. 너도 알잖아. 약 좀 자신 오미예 여사를 신고해 버린 거. 와 진짜 대단하다 싶더라. 보통 엄마가 약 좀 잡숫고 그러면 일단 엄마랑 왜 약을 잡쉈는지 대화도 좀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도 좀 하고 그래야 가족사랑 나라사랑 그런 거 아니겠어? 근데 하마루 이 사람은 그냥 노빠구야. 119 부르면 바로 짭새한테 연락이 갈 텐데 그냥 신고를 때려버리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성질 더러운 짭새가 냄새를 맡아 버렸네? 짭새가 꼬일 걸 하마루가 몰랐을까?”
“······!”
“당연히 알겠지. 알면서도 신고 한 거야. 그럼 신고하고 나면 좆 된 우리가 어떻게 할까? 당연히 가족이고 뭐고 찾지 않을까? 그걸 알면서도 신고한 거야. 냉정하지. 냉정해. 하마루라는 사람.”
홍 과장이 나루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쩌겠어? 상황이 이렇게 됐는걸. 힘없는 우리가 본전은 찾고 그래야 하는데.”
나루의 눈에 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렸다.
“그러니까 우릴 탓하지 말라고,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은 다 네 오빠 때문이야.”
히끅-
“그래. 하마루. 네 오빠 탓이라고.”
히끅-
끄윽-끄윽-끄으윽
“어야- 괜찮아. 괜찮아- 우리 산삼이 숨넘어가겠네. 하마루가 뻗대지 않고 말 잘 들으면 좋게, 스무스하게 끝나겠지만···.”
“······.”
“귀여운 산삼이가 어떻게 되든지 안면몰수 하겠다고 하면 뭐, 여기서 이쁜 산삼이 너랑 나랑 기다리는 저기 힘 좋아 보이는 오빠들이랑 즐겁고 찐한 영화 아주 오래- 길게- 찍고. 저기 걸리는 거지,”
홍 과장이 턱짓한 쪽에는 내장을 털린 돼지가 걸려 있었다.
히끅- 히끅-
서서히 밝아지는 조명 아래, 카메라가 나루를 향했다.
홍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 이쁜 산삼이. 마루 오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속 시원하게 다 해.”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