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23)
러스트 [RUST]-123
높은 소리에 김 양이 총을 뽑아 들고 벌떡 일어났다. 시체를 치우던 직원도 몸을 돌려 조리실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마루가 별일 아니라는 듯 김 양에게 말했다.
“에이. 괜찮아. 앉아. 앉아도 괜찮아.”
“?”
“거기 웨이트리스 보고 저러는 거야.”
약 부작용 난 웨이트리스 보고 깜짝 놀란 게 분명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으니까. 마루의 말에 김 양이 권총을 홀스터에 채우고 털썩 앉았다.
“괜찮으니까 하던 일 하세요.”
마루의 말에 엉거주춤 허리를 편 직원이 다시 묵묵하게 시체를 정리했다. 히이이이익 소리 지른 간호사였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자 잠잠해졌다.
그렇지 조용하게 꾹 참을 줄도 알아야지. 마루는 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요.”
간호사가 작게 소리 냈다.
“요기여. 여기 좀 도와주세요.”
햄버거 만드는 데 일손이 필요하다는 건가? 김 양을 봤지만, 김 양은 골드폰을 눈으로 핥고 있는지라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체 치우고 있는 직원을 보내면 시체 치우는 게 늦어질 테고. 귀찮지만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마루가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뻗어있는 요리사 목에 술병을 얹어서 기도 확보 좀 해주고 조리실에 들어서자, 거품 물고 있는 웨이트리스를 끌어내리고 낑낑 매는 간호사가 보였다.
도와주러 온 마루를 보고 순간 얼굴이 환해진 간호사. ‘그래, 무서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어.’ 이런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데?”
“여기 이 환자 좀 내려 주세요.”
휙- 빨래 널 듯, 한 손으로 들어 어디로 치울까 눈짓하자. 간호사가 화들짝 자리를 만들었다.
“여기 조리댄데 여기에 눕히면 햄버거는 어떻게 만들려고?”
“괜찮아요. 일단 환자 체온 유지해야 하고, 기도 확보해서 호흡 돌려놓고. 수액이 있으면 좋은데. 우리 수액 없죠?”
“링거가··· 트레일러에 있기는 한데···.”
부산에서 출발할 때 다량의 구급약품을 챙겨왔었다. 카타마란에 실었던 화물을 그대로 트레일러에 실었으니, 구급약품도 그대도 있었다.
“빨리 좀 가져다주세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트레일러에서 수액과 중화제 하나를 챙겨왔다.
“이게 뭔가요?”
“마약 부작용을 덜어주는 중화제인데, 상태가 비슷하니 효과가 있을지 몰라서.”
틱-하고 중화제를 건넨 마루가 밖으로 나갔다.
오버 히트에 쓰기 위한 중화제였다. 사실 본래 사용처는 샬롯의 전투자극제, 전술 마약인 버서커 폴의 부작용을 줄일 때 사용하는 약이었으니, 비슷한 마약에 쓴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싶었다.
‘카르텔이 쓴 약 이름이 크리스털이라.’
마루의 기억에서 크리스털은 중국계 기업이었다. 삼합회인지, 흑룡회인지가 운영하는 폭력 조직 그룹. 그 이름과 똑같은 약이라니. 뭔가 냄새가 났다.
그런 미묘한 마약을 대놓고 들고 다니는 카르텔이 미국에서 설치는 걸 보니, 중국이 미국에서 중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징글징글하네.’
중국에, 일본에, 한국도 부족해서 미국까지. 하긴, 월드 축산이랑 엮이지 않았으면 이런 세계가 있는 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은 정당방위가 넉넉한지라, 자력 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변호사 비용이야 나가겠지만, 증거만 있으면 확실히 정당방위 친화적이었다.
마루가 조리실에서 나오자 슥- 마루를 훑어본 김 양이 말했다.
“햄버건?”
“시킨 지 10분도 안 됐어, 수제 햄버거가 그렇게 빨리 되겠냐?”
10분이면 오래 기다린 거 아닌가? 김 양이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
“···왜? 표정이 불만인 거 같은데?”
“아님.”
“한 30~40분 정도 걸릴 거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설마. 고기를 손으로 다져서 패티를 만들고 햄버거 번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직접 굽는 건가? 그런 건가?
김 양의 흐릿한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올 수제 햄버거? 간호사가 그런 재주를? 김 양의 기대가 한없이 커지는 것을 본 마루가 초를 쳤다.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니까. 포기하고 기다려.”
“······.”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고, 햄버거를 만들지 않고 요리사와 웨이트리스 응급처치하고 있다는 걸 알면, 분노한 김 양이 뭔 돌발행동을 할지 몰랐다.
마루의 느긋한 태도에 김 양은 다시 골드폰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임?”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일단 동부에 있는 집부터 확인해 보고. 너랑 간호사랑 어떻게 할지 본 뒤 결정해야지?”
“독립하면?”
“독립하겠다고 하면 집 팔아서 셋이 나눠야지.”
마루의 대답을 들은 김 양이 골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원을 켜면 카르텔이든 갱이든 위치 추적해서 득달같이 달려들겠지? 그럼 골드폰이 더 생길까? 아? 갱이고 카르텔이고 얘들 차에 뭔가 있을 거 같은데?
파밍을 잊고 있었다니, 김 양이 벌떡 일어나 직원이 시체를 정리하고 있는 곳으로 도도독 달렸다. 가지런히 정리된 시체의 머리맡에 지갑, 총과 같은 소지품이 딱딱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차 키도.
역시 직원! 초보여도 이런 건 할 줄 아는구나. 김 양이 휘리릭 차 키를 쓸어 담았다.
“그거 증거품입니다.”
시체를 끌어와 가지런히 눕히며 직원이 말했다. 손대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손대면? 다른 건 말고 현찰이랑 금만 챙기겠다는데 손대지 말라니. 마약이나 그런 건 패스하고 현찰이랑 금 없다고 문제 될 건 없지 않은가?
“앎.”
김 양은 가뿐하게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버튼을 눌렀다.
삑-
띠익띠익-
주차된 차 가운데 하나에서 번쩍번쩍 불이 들어왔다. 발걸음도 가볍게 차로 간 김 양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먼저 트렁크.
덜컹- 트렁크가 열렸다.
금일까? 현찰? 쓸데없는 마약만 아니면 됐다.
트렁크에 뭐가 있을까? 두근두근한 느낌. 보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었다.
어?
김 양의 눈이 차게 식었다.
‘여자네.’
의식을 잃은 여자, 늘씬하게 쫙 빠진 여자가 트렁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텁- 바로 트렁크를 닫은 김 양이 운전석으로 가 수납공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예스! 예스!! 이-예스!!!
두툼한 달러 뭉치가 나왔다. 100달러짜리 100장 묶음으로 6개나 나왔다. 6만 달러? 트렁크엔 쓸데없는 여자나 실렸는데도? 이게 첫차였다. 털지 않은 차가 무려 8개나 남았다.
마음이 바빠졌다. 빨리빨리 해야 했다. 뒤처리팀인지 뭔지가 오면 귀찮을 게 뻔했다. 김 양은 부지런히 차를 털었다. 점점 현찰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 결정했어.
역시 백정이랑 같이 다녀야겠다. 김 양은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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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소복하게 쌓인 현금 더미.
그 옆을 차지한 귀금속들, 갱단 애들이 차고 있던 금목걸이, 금팔찌. 금시계 그런 것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김 양의 앞에 놓인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총들. 금장 베레타와 다이아몬드 그립이 빛나는 글록-17. 금으로 떡칠한 AK 계열의 소총과 근본을 알 수 없는 45구경 리볼버까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은지, 김 양의 얼굴에 가진 자의 여유가 가득했다. 햄버거 따위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지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거 전부 증거품입니다.”
직원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무표정으로 변한 김 양이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였다.
‘그래서 여기에 손을 대겠다고?’
‘아 그렇지? 카르텔 가운데 하나가 살아있었지?’
‘방심한 사이 그놈이 직원을 순직시켜 버린 것이야.’
‘불행한 사고가 난 것이지.’
눈빛으로 많은 것을 계획하고 주장하는 김 양이었다.
계획을 머리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눈빛으로 계획 세우면 되겠냐? 마루는 갑자기 급발진하는 김 양이 왜 저러나 싶었다. 뭔가 믿을 게 생긴 것처럼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혹시 누가 뒤를 봐주기로 했나?
카타마란에서 내린 뒤로는 항상 같이 있었으니, 그런 조짐이 있었다면 알아챘을 것이다. 자기든 김 양이든 표정 관리 못 하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어쨌든 급발진은 사양이었다.
“진정해.”
마루의 한 마디에 급-진정하는 김 양. 확실히 많이 착해지고 뭔가 그런 느낌인지라 좋기는 한데, 일단 지금 상황부터 정리해야 했다.
“아저씨. 지금 이 상황에서 증거품 어쩌고 하는 건 좀 웃기지 않습니까?”
“증거품을 증거품이라고 하는 게 뭐가 우습습니까?”
마루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증거품 어쩌고 할 거면, 현장 보존도 하고 현장 상황도 찍어 놓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미국은 좀 다른가?”
“······.”
“통화하는 것도 잠깐 들었는데, 헬기로 뒤처리할 사람들 온다면서요? 그러면 여기서 벌어진 일은 덮기로 했다는 건데 증거품이라뇨? 덮었는데 뭔 증거품? 미국에서는 덮은 사건에서 나온 것도 증거품으로 가져가서 덮었다는 증거를 남기나 보죠?”
“······.”
오- 백정 잘한다. 김 양이 작은 손을 꼭 쥐고 응원했다.
“버지니아에서는 이런 게 생기면, 그냥 꿀꺽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봅니다?”
직원은 속으로 욕했다. 이거 성과급 날리게 생긴 거 아닌가? 일이 터졌고 결과가 좀 그렇지만 크게 성과가 났으니,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이렇게 됐다.
확- 버지니아의 이름으로 들이받아 버릴까? 뒤처리하러 오는 직원들과 함께 어떻게 해볼까?
순간 빵칼과 포크가 떠올랐다. 옆에서 뿌듯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총잡이 년까지 생각하면 대량 순직각이었다.
미국에서 버지니아 직원들을 묻어 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힘겨루기를 해볼 만도 했지만, 그러다 포크 맞으면?
‘선생님 우리 아들 사인이 뭔가요?’
‘안타깝게도 포크에 맞았습니다.’
‘걔 어쩌다 죽었데?’
‘포크에 찍혔다던데?’
씨발.
상상만 해도 씨발이었다.
합중국의 안보를 위해 거칠고 차가운 음지에서 일하다 순직했는데, 총 맞은 것도 아니고 포크···.
애초에 버지니아 직원이 증거라고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도 걍 씹는 것들인데,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심지어 절대 자극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후- 돌아버리겠네.’
직원은 하늘에 계신 분을 속으로 찾고 또 찾았다. 3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이런 꼴은 처음이었다. 선배들 경험담에서도 지금 같은 케이스는 없었다.
세상에 회사가 버지니아인데, 바로 자기가 바로 그 버지니아 정직원인데···. 생각이 복잡한 직원에게 마루가 횃불을 툭 던졌다.
“초보라서 숨어있었다면서요?”
Fuck!!!!!!!!!!
뭘 하고 자시고 할 시간 없이 상황 종료시켜 놓고서 뭔··· 지금 싸우자는 건가? 열받게 한 뒤, 정/당/방/위 노리는 거 아냐?
빨갛게 파랗게 얼굴색이 변하는 직원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루가 수북하게 쌓인 지폐 꾸러미를 뚝 잘랐다.
100달러로 100장짜리 묶음 18개. 18만 불이었다.
“그쪽 일은 잘 모르지만, 힘드시죠? 위험하기도 하고. 어차피 이건 없는 거 아닙니까?”
마루가 이해한다는 듯 18만 불을 직원 앞으로 밀어 놓고는 시계를 봤다.
“곧 있으면 뒤처리팀 헬기가 도착할 시간인데, 그 전에 깔끔하게 정리하죠?”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깔끔하게 현찰이니까···.
아니지, 이건 유혹이었다.
직원은 고개를 작게 숙이고 속으로 기도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시고, 일단 받고 보고하면?
순직이냐? 아니면 현찰이냐?
어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젠장.
고민하던 직원이 고개를 숙인 채 돈뭉치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자, 언제 꺼냈는지 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김 양이 보였다.
흐흐흐흐
마루는 미소 지었고, 김 양이 웃었고, 직원은 웃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