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30)
러스트 [RUST]-130
황무지를 길게 관통한 도로는 한산했다.
한 대씩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일 때마다, 격발장치에 얹은 손가락을 놓았다 뗐다 하는 마루였다. 금방 온다고 해서 부랴부랴 열심히 대비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땅덩이가 넓다고 하더니, 시간관념 자체가 다른 건가?
한국이었으면 그렇지 않나? ‘1시간 전에 도망친 차를 추격한다고? 뭔 병신 같은 소리야.’라고 할 판이었는데 미국은 안 그런가 보다.
“이쪽은 한산한데. 그쪽은?”
[없음.]“정보 확실한 거야? 금방 온다고 했다면서?”
[태웠음. 타면서 한 말임.]익다 못해 타면서 한 말이니까 사실이기는 할 텐데. 진짜 헬리콥터라도 타고 올 건가? 그걸 대비해서 김 양이 바렛을 들고 있기는 했다.
바짝 긴장했던 김 양이 기다림에 지칠 무렵, 멀리 차량 행렬이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확인했어?”
김 양이 저격 스코프로 선행 차량의 운전석과 조수석을 확인했다. 선팅 때문에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선팅 때문에 안 보임.]“앞에만 보지 말고. 뒤에 따라오는 차도 상관없으니까 카르텔인지 아닌지만 확인해.”
[알겠음.]10대가 넘는 차들이 한 줄로 내달리고 있었다. 몇 대만 속도를 높인 게 아니라, 전부 그랬다.
[9대. 토요타. 그 차.]약간 흥분한 톤의 김 양 목소리. 전투 직전의 고양감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기대감 넘치는 느낌이었다.
[앞에 4대, 가운데 독일차 3대, 뒤에 5대.]중앙에는 벤츠, BMW, 아우디가 한 대씩. 모두 12대였다. 새끼손톱만 하게 보였던 차가 금세 주먹만 하게 보였다. 굉장히 빠른 속도. 제한 속도를 무시하고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놈들이다!”
[확인했음!]김 양도 스코프로 확인했는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3]
···[2]
···[1]
···
투캉!
낮는 소리와 함께 맨 앞에서 달리던 차의 운전석 부근에 구멍이 뚫렸다.
끼이이이익-
운전자를 잃은 차량이 좌우로 흔들리다 급브레이크를 밟자, 바짝 뒤따르던 차가 추돌했다.
콰앙-
한 대.
끼이- 콰직-
두 대.
끼이이이- 쿡-
세 대.
선두 그룹 4대가 뒤엉킨 다음에서야, 차량 행렬이 멈춰 섰다.
‘쩝- 조금만 더 들어오지, 아쉽네.’
김 양은 제때 제대로 쐈다. 선두 그룹 4대까지는 예상대로였는데 중간에 있는 놈들과 후미에 따라오는 놈들이 예상 범위를 살짝씩 벗어나 있었다. 뒤에 따라온 놈들은 크레모어 범위 밖에 섰다.
“뒤에 3대는 범위 밖이야. 도망치지 못하게 뒤에 놈들부터 조져.”
[알겠음.]투캉! 투캉! 투캉!
연이어 들리는 묵직한 소음과 함께 맨 뒤에 있는 차부터 운전석에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12.7mm 철갑탄이 운전사의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자, 뱀처럼 길게 늘어섰던 차량 행렬이 토막이라도 난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뒤엉킨 도로에서 빠져나가려고 전후좌우 핸들을 바삐 움직이는 카르텔 놈들을 김 양은 하나씩 사냥했다. 도로 밖 황무지로 빠져나가려는 차의 운전석과 바퀴에 총알을 박아 넣어 침묵시키자, 그제야 문을 열고 뛰쳐나오는 조직원들.
쿡-
마루는 기다렸다는 듯 격발장치를 눌렀다. 굉음과 함께 매설해 뒀던 크레모어가 한꺼번에 터져나갔다. 사방으로 찢겨 흩어진 시체 조각들, 피와 먼지가 뒤섞여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스르릉-
회색빛 아재칼을 뽑아 든 마루가 붉은 먼지 안쪽으로 들어섰다. 사람만 찢긴 게 아니라, 차도 구멍이 뚫리다 못해 찢어져 있었다.
크으으
몸통과 사지에 십여 개의 구멍이 뚫렸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는 카르텔 조직원. 놈은 아등바등 총을 쥔 팔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거기엔 비장함도, 그만하라는 부탁도, 살려달라는 애원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쏘겠다는 기계적인 목적뿐.
‘그런가?’
약이었다. 맛이 갈 정도로 먹은 건 아니었는지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지만, 약이 분명했다.
푹-푹- 폭-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들에게 안식을 찔러 넣어주던 마루의 감각에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크레모어에 구멍 뚫리고 다른 차들과 충돌해 여기저기 구겨진 바이마흐가 있었다. 짙은 선팅 너머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이어서 서서히 커지는 살기.
쿵-
BMW와 충돌해서 찌그러진 문짝이 흔들렸다.
콰득-
뒷문과 앞문이 동시에 터지며 그림자 둘이 뛰쳐나왔다.
‘다르다.’
뭔가 달랐다. 감각이 경고했다. 느슨했던 신경이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휘이이이익
먼지를 뚫고 훅하고 날아온 그것을 칼손잡이 끝으로 비켜 튕겼다. 틱- 묵직함이 느껴졌다. 토마호크 도끼가 튕기는 것과 동시에 찌르는 것 같은 살기.
‘총.’
마루가 대각선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타다다다닥 뒤를 쫓아오듯 총알 세례.
‘뭔 총알이.’
총알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 20~30발 정도 한 탄창일 텐데. 40발이 넘게 쏟아붓고 있어 접근하기 힘들었다.
대각선에서 대각선으로 지그재그 하듯 조금씩 다가서자. 양손에 마체테를 들고 있는 놈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카각!
캉!
칼날과 칼날이 부딪쳐 불꽃이 튀며 순식간에 3~4 합이 지나갔다. 머리, 경동맥, 간을 노린 치명적인 공격과 반격이 서로 얽혔다.
‘어쭈 이걸 막아?’
마테체 든 놈과 마루가 서로를 봤다. 눈꼬리에 깨알 같은 물방울 문신을 한 놈이 마루를 노려봤다.
칵. 카칵. 카카칵
허벅지, 오른쪽 팔목. 몸통 찌르기.
서로 붙었다 떨어지며, 칼날과 칼날이 허공을 베고 찔렀다.
‘이것도?’
놈의 뒤편에서 뾰족한 살기가 짙어졌다. 놈이 옆으로 피하는 순간, 마루도 동시에 몸을 피했다. 그 공간을 훑고 지나가는 총격.
칼잡이가 근거리에서 칼질할 때, 기회를 노려 총잡이가 원거리로 조지는 방식. 어디선가 익숙한 방식이었다.
‘이것들이···’
조용히. 살살 평화롭게 쉬게 해주려고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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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흥. 흥.
투캉, 투앙, 투웅.
김 양의 경쾌한 콧소리와 함께 낮은 총성이 연이어졌다.
무려 12대였다. 그 가운데 3대는 진짜 비싸 보이는 차였다. 그것도 독일차!
그래 독일차였다.
독일차 하면 생각나는 차가 있었다. 회사에서 백 실장이 수금할 때 타고 다녔던 차. 트렁크에 금고 달렸던 던 거. 금고가 없더라도 비싼 차에는 비싼 게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후딱 정리하고 파밍해야지.’
김 양은 부지런히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아- 터졌다.’
마루가 크레모아를 터뜨렸다. 피 먼지가 높게 피어오르고 칼을 뽑아 든 백정이 피 먼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백정이 칼 뽑았으니 금방 끝나지 않을까?
백업은 먼지가 가라앉아야 할 수 있겠고. 칼 뽑은 백정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김 양이 스코프로 주변을 살폈다. 조금씩 가라앉는 먼지들 사이로 흰색 뭔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얀색 양복?’
흰색 양복 여기저기를 붉은 핏방울로 떡칠한 라틴계 남자가 맹렬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김 양이 매복해 있는 포인트를 향해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남자. 스코프에 비친 사내의 얼굴은 일그러져 흉악 그 자체였다.
‘뭐 어쨌든 안녕히 가셈.’
김 양이 ‘아디오스.’ 인사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투캉! 투캉!
“어?”
피했다?
백정도 아닌데? 십정 약이라도 먹은 거야?
김 양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스코프에 댔다. 그 순간 번쩍하는 반사광이 스코프 렌즈 건너편에서 살짝 보였다. 그 소름 돋는 감각에, 옆으로 데굴 구른 김 양.
황금색 빛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바렛 스코프를 박살 냈다. 어리바리 그대로 스코프를 보고 있었다면 머리가 터지든지, 눈이 멀었든지 그랬을 게 분명했다.
‘금시계? 금시계를 던졌어?’
그건. 반쯤은 운이었다. 마루에게 단련된 김 양이었기에 피할 수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다시 이쪽으로 달려오는 놈이 보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사내. 김 양은 7.62mm 저격총을 겨눴다. 스코프 저쪽에서 놈의 어깨가 들썩였다. 머리를 스치듯 날아간 돌멩이. 저격총을 끌어안고 옆으로 구른 김 양이 반사적으로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앙- 철컥- 타앙.
철컥- 타앙- 철컥!
두 방 빗나갔고, 한 방이 팔에 명중했다. 7.62mm라고 해도 살상력은 충분했다. 그러니까 팔에 맞고 버틸 구경은 아니란 이야기. 멀리서 봐도 팔뚝이 옳지 못하게 됐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뭐야.’
마치 변이된 감염자 같은 터프함. 약을 먹었어도 팔 한 짝이 날아가다시피 하면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런데 그딴 건 개나 줘버리라는 식으로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게-’
그래 해보자 이거지? 김 양은 입술을 꾹 다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철컥-타앙!
철컥-타앙!-철커덕
탄피가 치솟았다.
날아간 팔 때문에 균형이 흐트러졌는지 놈이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몸통에 2방. 하나는 다리에 맞았다. 좋아. 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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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각- 카가각-
칼날과 칼날이 미끄러지며 불꽃이 튀었다. 회색빛 아재 칼날과 백색 마체테 모두 군데군데 이가 나갔다.
마주 서자, 놈이 깨알 같은 물방울 문신을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푸시- 예-
눈웃음과 함께 혀를 내미는 놈.
‘이 새끼가!’
순간. 인내심이 끊어진 마루였다. 버지니아 직원이 보고 있을지 몰라 적당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조용히 살살 보내주겠다는 생각도. 김 양의 백업을 유도해서 처리해야 하겠다는 생각 모두 하얗게 지워졌다.
뾰족한 살기가 놈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마체테를 휘두르며 옆으로 피하려는 놈.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마루가 한 걸음 내디뎠다.
쿡- 깊게 찍힌 발자국.
강한 반발력이 마루의 몸을 화살처럼 쏘아냈다.
단 한걸음에 10m 넘게 쏘아진 마루의 앞에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여자가 보였다.
투다다다당
푸화아아악!
총알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내질러진 칼날.
상체를 잃어버린 여자의 하체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무릎까지 오는 킬힐 부츠, 착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위로 보이는 배꼽엔 보석 피어싱이 붙어 있었다.
마루의 등 뒤에서 마체테 든 놈이 외치는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안 된다고 외치는 소리였다.
뻑-
마루가 몸을 돌려, 물방울 문신한 놈의 얼굴을 향해 여자의 하체를 걷어찼다.
물방울 문신 얼굴 위로 여자의 하체에서 핏방울과 내용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잠깐 굳은 순간.
부와악—
수직으로. 정수리부터 사타구니를 일직선으로 하는 붉은 선이 그어졌다.
쩌업-하고 양쪽으로 벌어진 토막이 뜨거운 김을 뿜으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타앙!-철컥-타앙!
철컥-타앙!-철커덕
어째선지 조급한 듯한 총소리. 김 양이 쏘아대는 총소리에,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았던 마루가 진정했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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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고양이처럼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김 양이 뛰어내린 자리 위로 피로 염색한 붉은색 양복이 점프해 올라갔다.
크아아아아!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김 양이 있던 곳을 뒤집는 남자.
콰드드득
바렛이 산산조각 박살 나 바위 아래로 뿌려졌다. 김 양이 챙겨놓은 간식 담은 배낭이 조각조각 찢겼다.
어딨냐는 듯이 으르렁대는 놈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김 양은 숨을 멈추고 바위 틈새로 깊숙이 몸을 숨겼다.
마지막에는 분명 머리를 맞췄다. 7.62mm 저격총으로 대가리를 맞췄는데, 두개골을 뚫지 못했다. 마치 종을 때린 것처럼 고개가 휙 젖혀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달려드는 놈이었다.
가라. 가라. 가셈.
김 양은 바위틈에서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조용해지나 싶더니.
뚝-
뭔가 한 방울 김 양의 이마로 떨어졌다.
힐끗- 김 양이 고개를 들자, 다시 한 방울 떨어지는 것.
툭-
핏방울이 김 양의 미간에 떨어졌다. 그 핏방울 건너편에서 보이는 사내의 얼굴.
놈의 얼굴이 김 양을 보며 일그러졌다.
아-
놈의 우악스러운 손이 김 양의 단발머리를 잡아챘다. 머리카락이 뜯기는 고통과 함께 몸이 통째로 들어 올려졌다.
김 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통이 단단해도 눈알까지는 단단하지 않을 것이야. 글록 17을 등 뒤로 감춘 김 양이 서서히 위로 끌려갔다.
크흐흐흐
일그러진 웃음소리. 짐승 같은 소리가 김 양의 얼굴을 핥듯이 가까워졌다.
‘지금? 아니 조금 더 가까이.’
단 한 번에.
피할 수 없게.
김 양이 필사적으로 기회를 노리는데, 뒤에서 마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크으?
괴물 같은 사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남자의 목에서 칼이 삐져나왔다.
우득-
목뼈를 쪼개고 삐져나온 칼날이 반 바퀴 비틀리더니 횡으로 그어졌다.
쩌어억-
목이 하품하듯 벌어지며 남자의 머리통이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머리통이 사라진 사내의 몸통 뒤로 마루의 여상한 모습이 김 양의 눈에 들어왔다.
“괜찮냐?”
마루가 손을 내밀었다.
붙잡은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입을 꾹 다문 김 양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