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31)
러스트 [RUST]-131
도로 한 쪽, 트레일러트럭이 멈춰 서 있었다.
여기저기 숨겨 놓은 몰래카메라 화면을 뚫어지게 보던 직원이 낮게 욕설을 뱉었다. 길바닥에 뿌려놓은 것 가운데 제대로 찍히는 것은 고작 3개뿐이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건 문제없었다.
‘이래서 먼저 출발하라고 했군.’
눈물 문신한 카르텔 조직원과 블라디마루가 싸우는 모습은 일반인들의 운동능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단순한 전투자극제로는 저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크리스털 같은 약물에 특수한 뭔가를 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
‘빌어먹을 저런 놈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니까 이 지랄이 났지.’
DEA에서 카르텔 산하 조직을 건드렸다가, 들어간 팀이 전멸했다더니 이유가 있었다.
카르텔 문신 약쟁이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저 잽스는 뭐란 말인가? 약하는 걸 보지 못했다. 크리스털처럼 반투명한 약은 있지도 않았다.
그럼 생으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가? 진짜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게 영화나 애니 말고 실존하는 거였어?
초점이 조금씩 맞지 않더니, 숫제 화면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또 왜 이래?”
근처의 카메라는 크레모어 터지면서 그 여파로 날아갔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숨겨둔 카메라로 찍은 화면뿐이었는데, 이마저도 바닥에 깔아 놓은 카메라에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화질이 점점 나빠졌다.
‘어?’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흐릿한 영상. 직원은 녹화된 화면을 뒤로 감았다가 반복 재생했다.
다시 흐릿한 영상이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뭔가 중간에 화면이 잘린 것 같은 모습. 잽스가 이쪽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젠장.”
직원은 다른 카메라들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총잡이 년이 있는 곳 근처에 뿌려둔 것들은 멀쩡했다. 간식 배낭 옮겨 준다고 하면서 뿌린 것들이 깔끔한 영상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녹화된 영상 속 장면, 역시 이 년도 정상은 아니었다. 원 샷, 원 킬. 거의 1km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 허투루 쏜 총알이 1발도 없었다.
‘관측수도 없이 적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도 모자라, 계속 목표를 찾아 쏠 수 있다고?’
얼마나 숙련됐으면 저게 가능할까? 훈련으로 가능할까? 칼잡이도 그러더니 저년도 마찬가지였다. 훈련의 영역을 넘어서 본능의 영역.
크레모어가 터지고, 피 먼지 피어오른 곳에서 달려들기 시작한 하얀 양복을 입은 카르텔 조직원. 이건 뭐지? 저쪽에서 칼잡이들끼리 싸운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HOLLY SH······!”
총알을 대놓고 피해? 그것도 총잡이 년이 쏜 총알을? 그게 끝이 아니었다. 흰색 정장 놈이 뭔가를 던졌고, 총잡이 년이 피하자마자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간식 가방 옆에 붙여 놓은 카메라와 바위 언덕 아래에 놓인 카메라 양쪽에서 찍은 상황은 긴박했다.
팔뚝이 날아가다시피 한 남자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도망치지 않고 침착하게 쏴대는 총잡이 년. 사내의 몸통과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그리고 나중에는 총알이 남자의 머리통을 때렸다.
“······.”
뒤로 확 꺾였던 고개가 다시 천천히 돌아오는 모습.
저게 인간인가? 머리통에 저격총을 처맞고도 움직인다고?
두개골을 티타늄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저렇게 멀쩡하기란 불가능했다. 합금으로 된 머리통이라 깨지지 않았다손 쳐도 충격은?
방탄복을 입었어도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내상을 입는 일은 흔했다. 총알이 방탄복을 뚫지는 못했어도 그 충격량이 온전히 해소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었다. 근데 멀쩡하다고?
“FUC···.”
직원은 녹화된 영상을 부랴부랴 저장했다. 칼잡이가 총잡이 년을 구하는 장면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칼잡이가 하는 짓이 이상했다. 갑자기 칼로 잘린 머리통을 쿡쿡 찔러보더니, 휙휙 잘라내기 시작했다.
“What The···.”
어? 설마?
안 된다고 이놈들아!
그러지 마! 그럼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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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앙다문 김 양은 어쩐지 풀이 죽어있었다.
바닥에 흩어져 짓밟힌 간식. 조각조각 찢긴 가방. 애지중지하고 아끼고 아꼈던 바렛은 산산조각. 망연자실 짓밟힌 간식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김 양을 뒤로한 채, 마루는 나뒹구는 머리통을 칼끝으로 쿡 찔러봤다.
칼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힘을 줘 밀어 넣자 강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냥 단단하다고 치고 넘어가기엔 너무 강도가 셌다.
툭-
마루의 발 앞에 작은 돌멩이가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김 양이 찢어진 가방 쪼가리를 들고 있었다. 샐쭉하게 가늘어진 김 양의 눈매.
저런 눈매는 뭔가 일이 있었을 때나 하는 모양이었다. 마루는 ‘왜?’라고 묻기 전 김 양이 들고 있는 쪼가리를 살펴봤다. 어깨끈 부분에 작은 단추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소형 카메라?’
‘맞음. 카메라.’
순간적으로 마루와 김 양이 눈빛을 나눴다.
‘초짜가?’
‘초짜임.’
초짜 주제에 버지니아 직원이랍시고 스파이 카메라를 깔았네?
김 양의 눈빛이 강해졌다.
‘순직?’
‘여기서 순직시키자고?’
‘ㅇㅇ’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이걸 어쩌나? 이곳에 카메라가 있다는 건, 저쪽 도로에도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싸우는 걸 봤을까? 봤겠지? 자료를 회사에 넘겼을까? 넘겼는데 순직시켜 버리면 나가리 됐다.
‘그럼 언제 순직?’
‘지금은 아니니까 기다려.’
덮어 놓고 무조건 순직이래. 왜 그렇게 못 순직시켜서 안달이야.
마루는 모르는 척 시체를 살폈다. 목에 걸려있는 굵은 금목걸이, 실크 셔츠 소매 끝에 달린 루비로 장식된 커프스단추.
옆에서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김 양이 뚫어지게 금목걸이를 보고 있었다. 마루는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슬쩍 자리를 비켜주자. 희희낙락 시체를 까뒤집는 김 양이었다.
그렇게도 좋을까. 세상 근심 없이 해맑은 얼굴로 시체를 뒤지는 모습은 좀··· 그러기는 했지만, 어쩌겠나? 자기가 좋다는 데야.
톡- 톡-
마루가 칼끝으로 잘린 머리통의 이마를 때렸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톡- 톡-
마체테를 들고 설친 놈과 교전한 부분은 먼지 때문에 제대로 찍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확실하게 찍힌 장면은 아마도 김 양과 이놈이 싸운 부분일 터.
팔다리와 몸통에 총알을 맞고도 설치는 걸 봤으니, 시체를 확보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놈 시체를 확보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마체테 눈물 문신한 놈 시체도 가져가서 이렇고 저렇고 하겠지?
그럼 ‘갈라보고 핥아 보니까 이 새끼들 진짜 이상하네. 근데 이런 새끼들이랑 싸워서 이긴 그 새낀 뭐야?’ 하는 순간이 올 게 분명했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증거로 실물 시체가 있는 것은 분명 달랐다. 그리고 시체와 살아있는 견본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고리를 끊어야 했다.
“김 양아.”
“?”
“후딱 챙겨라. 모조리 불 질러 버리게.”
“!”
마루의 심각한 표정에 김 양이 재빨리 챙길 걸 챙겼다.
톡- 톡-
다시 두들겨 봐도, 잘린 머리가 단단했다.
확실히 그냥은 잘 안 탈 것 같고, 이러기는 싫지만.
‘좀. 곱게 해야 잘 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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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불길이 맹렬하게 치솟았다.
배부른 표정의 김 양과 노랗게 뜬 얼굴의 간호사가 현찰과 금붙이를 챙기고 있었다. 도로 저편 멀리서 들리는 경적.
빠아아앙!-
빵!! 빵!!
빠아아앙!-
트레일러를 뗀 트럭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다급하게 경적을 계속 울리는 걸 보니 그만하라는 소리겠지만, 어쩌겠나? 이미 늦었는걸. 마루는 피식 웃고는 활활 타오르는 곳에 기름을 끼얹었다.
푸화화아아악
치솟은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빠아아앙!!!
끼이이익
트럭에서 내린 직원이 소화기를 들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안 돼! 안 돼!!”
필사적으로 진화하려고 하는 직원.
푸쉭-
푸쉬시시식-
간이 소화기치고는 제법 큰 소화기였지만,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잡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게···. 이걸···.”
철퍼덕 주저앉은 직원이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차량에서 뜯어낸 연료 탱크를 반으로 갈라 불길에 집어넣었다. 폭발하듯 치솟는 불길을 멍하게 보던 직원이 갑자기 마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신! 당신이 지금 뭘 한 건지 알아?”
“뭘 태우는 건지 알면서 태운 거야? 엉?”
“증거를 없앴다고! 증거를 없앤 거라고!”
“합중국의 안보와 직결된 증거를···.”
덩치 좋은 직원이 호리호리한 마루의 멱살을 잡았건만 꿈쩍하지 않았다. 순간 이질적인 느낌이 직원의 전신을 엄습했다.
차가운 얼음물을 뇌에 직접 때려 붓는듯한 감각에 온몸을 벌벌 떨던 직원이 멱살 잡았던 손을 떼고 비척비척 뒷걸음질 쳤다. 그런 직원을 보며 마루가 미소 지었다.
“어디까지 봤어요?”
“······.”
언제 왔는지 마루의 뒤에서 삐죽 고개를 내민 김 양이 대답 없는 직원을 보며 말했다.
“구움?”
“······.”
천천히 구우면 약을 빨았든, 입을 꿰맸든, 초짜 정직원이든 다 불게 돼 있었다.
“아니. 왜 그렇게 무서운 소리를 하고 그래. 18만 불 아저씨 놀랐잖아.”
“······.”
“영상. 아직 위로 올리진 않았죠?”
“······.”
영상을 즉시 보고 했다면 전화기가 불이 났을 것이다. 불이 나지 않더라도 헬기가 날아왔겠지. 다행이네.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그 나긋나긋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차가운 칼날 같다고. 직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온몸을 겨눈 칼날들이 사방에서 조여오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직원을 향해 김 양이 다가갔다. 김 양은 직원의 휴대폰을 착- 꺼내 들고서, 가늘게 떨고 있는 직원의 손가락을 살포시 펴 지문인식 잠금을 풀어버렸다.
“영상 있음.”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양은 영상을 지운 뒤, 바로 폰을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 넣었다.
“에이. 도착하면 더 좋은 폰으로 사드릴까요?”
“······.”
“아니면 돈으로 드릴까요? 그렇죠. 현찰이 최고죠.”
“······.”
“얼마? 만 불? 이만 불?”
“······.”
마루가 직원과 화기애매한 대화를 이어가는데, 갑자기 김 양이 한마디 했다.
“트레일러는?”
“······.”
“······.”
트레일러? 갑자기 웬 트레일러?
마루가 김 양을 봤다. 김 양이 바라보는 곳에 덩그렇게 있는 트럭. 그러니까 뒤에 달린 트레일러는 어디 가고 트럭 대가리만 있었다.
휙 뒤돌아선 김 양의 눈빛이 점점 칙칙하게 변했다. 갸웃- 직원을 바라본 김 양이 다시 말했다.
“내 돈. 트레일러는?”
“······.”
“······.”
철컥-
언제 뽑았는지 권총이 김 양의 손에 들렸다.
“트.레.일.러. 어디?”
“그. 급하게 오느라, 속도를 내기 위해서 트레일러는 잠깐 떼어 놓고 왔는데···.”
“잠깐? 어디? 누가 뜯으면?”
김 양의 목소리가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금 가면 되지. 지금 가면 된다고.”
오돌토돌 돋은 소름을 한 번 쓸어내고 트럭으로 뛰는 직원을 김 양이 쫓아갔다. ‘내가 지켜본다고 했지? 했었지? 근데 트레일러를 떼놓고 와?’ 김 양의 공허한 눈이 직원을 비췄다.
‘씨발 미친 연놈들.’
직원이 옆에 김 양을 태운 채 미친 듯이 내달렸다. 트레일러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마루는 그렇게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트럭을 바라봤다.
‘어떻게 잘 넘긴 건가?’
아무리 초짜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순직해선 안 됐다. 순직도 그렇지만, 초짜 직원이 대놓고 적대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어떻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좋게 순리대로 평화롭게 가는 게 좋았다.
‘다짜고짜 쉘터부터 만들겠다고 하면 꼬일 가능성이 있겠어.’
일본에서 탈출한 사람이 미국 시민권 얻더니, 제일 처음에 한 행동이 쉘터 건설이다? 버지니아 회사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쉘터를 만들고 대책을 세우려면 미국과 척져서는 안 됐다.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근데 씨발 카르텔이고 갱단이고 도와주지를 않네. 이것들이.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불길에 다시 기름을 뿌린 마루가 바닥을 툭툭 쳤다. 피를 머금은 붉은 흙이 푹푹 파였다. 카르텔이고 갱단이고 계속 엮일 각이면 생각 좀 해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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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가미만 인근 작은 항구마을.
수륙양용차량이 짙은 화산재와 연기를 뚫고 가다가 퍼졌다.
크르르륵-
티리리릭-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안 실장님. 틀렸습니다.”
“버린다. 보급품은 나눠서 들고 이동한다. 무전은 아직도 안 터지고?”
“예. 먹통입니다.”
“거리는 얼마나 남았지?”
“7~8km 정도만 더 가면 됩니다. 콜록콜록”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 정화통 아끼지 말고 갈아.”
“알았습니다. 실장님 먼저 가십쇼.”
“그래. 전부 10분간 휴식한다.”
안동구 실장이 구석에 앉아 정화통을 갈았다. 3cm 가까이 쌓인 회색빛 화산재. 화산재와 연기로 뒤덮인 폐허는 종말의 한 장면 같았다.
‘빌어먹을 유 이사.’
월드에 있을 때도 유 이사가 미친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책이 없을 줄 몰랐다. 4년간 정전하기로 협의해 놓고 그딴 건 개를 줬다는 식으로 달려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실장님!”
직원의 낮은 목소리에 안 실장이 고개를 들었다. 직원이 가리킨 곳엔 서치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서치라이트가?’
“전투 준비.”
철컥- 철컥-
직원들이 은 엄폐를 하고 총구를 겨눴다. 서치라이트 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점점 뚜렷해졌다.
“여긴 미합중국 해병대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