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34)
러스트 [RUST]-134
영상 품질은 조악했다.
소형카메라로 원거리에서 찍은 영상. 먼지가 흩날리고 마테체를 든 카르텔 조직원이 회색빛 칼을 든 동양인과 격돌했다. 순식간에 이어진 공방. 철과 철이 부딪쳐 불똥이 튀는 장면.
“저 사람은?”
“이번에 귀화한 일본인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놀랍군요.”
“약을 쓴 카르텔 놈과 근거리 교전하다니. 저 일본인도 약을 쓴 겁니까?”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추가 보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점점 카메라와 멀어지는 두 사람. 그리고 일순 동양인이 사라졌다.
“아쉽지만 여기까지가 영상의 끝입니다.”
“······.”
“······.”
“보셨다시피 DEA 특수 진압대를 전멸시킨 카르텔 조직원과 같은 무기, 같은 문신을 한 놈이 캘리포니아 인근에 출몰했다는 겁니다. 이런 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카르텔 조직원과 싸운 일본인도 약물을 사용한 겁니까?”
“정직원 하나가 관리하고 있어, 추가 보고 때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약이든 아니든 근접전으로는 최고의 스페셜리스트 같은데 스카우트는 어렵습니까?”
“일본 구조대의 길잡이로 동행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조직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리랜서라면 모르겠지만, 스카우트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휴대폰 진동음에 발표자가 잠시 휴식 시간을 제안하고 밖으로 나갔다.
“뭐야? 현장에 있는 직원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영상을 보낸 뒤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실종되거나 순직하는 직원들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보고하고 난 직후거나, 보고하기 직전이거나.
“위치는 확인했나?”
“위치 확인했으면 빨리 헬기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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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에서 내린 간호사는 슬그머니 김 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금붙이를 분류하면서 기뻐하는 김 양이 간호사에게 슬쩍 자랑하듯 금덩이를 흔들었다. 간호사의 고개가 고양이처럼 왔다 갔다 금덩이를 쫓았다.
직원은 바싹 긴장한 모습으로 흑형의 사체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루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태우라고 했더니 뭐 하십니까?”
“잠시만요. 왜 자꾸 불 지르려고 하는 겁니까? 이걸 회사에 넘겨준다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보상이라는 말에 김 양이 고개를 획 돌렸다. ‘내가 잡았는데 아까는 말하지 않더니 지금 백정이 오니까 바로 보상?’ 직원은 이제 포기했다. 어째서 자신이 저런 눈빛을 이해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일단 보상금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해드릴 테니, 그 뒤는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누가 죽였는지가 중요합니까? 그게 아니라. 이 시신으로 보상받으실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직원의 항변에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잡았는데, 보상도 준다는데 굳이 시체를 태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마루는 이걸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뭣 때문에 태우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합중국의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부디 국익을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원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김 양이 죽인 시체에는 칼질 흔적이 전혀 없으니 자신과 연결될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마루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자 김 양이 냉큼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보상 얼마?”
“100만 달러는 되지 않을까요? 아니, 100만 달러는 넘을 겁니다.”
김 양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거 중요하다며? 근데 고작 100만 달러? 미국 부자잖아? 근데 100만 달러? 여기 입이 몇 갠데?
직원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어느새 김 양이 휴대폰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100만 달러? 확실히 넘음?”
“제가 꼭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확인?”
넘는다고 하더니? 말이 바뀌네.
김 양이 가늘어진 눈으로 직원을 째려봤다. 아?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있었다.
“아까 영상 보냈다고 함.”
“?”
“!”
마루가 김 양을 돌아봤다. 자세히 설명하라는 눈빛이 점점 서늘해졌다.
“그러니까. 카르텔이랑 싸운 영상. 초짜가 이미 보냈다고 함.”
“······.”
냉기 서린 마루의 눈빛이 직원을 향하자, 직원이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저거 저 기분 알지 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김 양이었다.
“어떤 영상을 보냈습니까?”
“카르텔. 끕- 칼잡이와 싸우는 딸꾹- 부분··· 인데, 거리가 멀어서 딸꾹- 제대로···”
그러니까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찍히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어디까지 어떤 걸 보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직원의 휴대폰은 불태워 버린 뒤였다.
‘하- 이걸 정말.’
그냥 속 시원하게 썰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벌컥 솟아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칼 손잡이를 쥔 손. ‘썰까?’ 그런 마음을 숨기고 김 양을 보자, 마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라텍스 장갑을 낀 김 양이, 순직. 순직. 순직. 하는 표정으로 갱이 들고 있던 권총을 살포시 들고 있었다.
‘칼 쓰지 말고 총으로, 순직하려면 갱단이 한 거로.’ 하는 눈빛. 직원은 마루의 살기에 눌려 김 양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픽- 웃었다. 확 올랐던 충동이 팍 가라앉아 버렸다. 서리처럼 내려앉던 살기가 사라지자 호흡 곤란으로 하얗게 질렸던 직원이 숨을 내뱉었다.
허-딸꾹-후-
흡-딸국-후-
직원은 딸꾹질과 심호흡을 동시에 하며 심장 부분을 쥐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직원은 풀썩 주저앉았다. 마루의 살기가 풀리자 김 양은 샐쭉했다.
불쑥 치솟은 충동이 가라앉은 뒤, 마루는 조금 냉정하게 상황을 생각할 수 있었다. 직원이 책임지고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따개비도 보상받았으니까.
그런데 그건 기순이 있었을 때 일이었다. 협상은 전적으로 기순이 했었다. 기순이 국토안보부와 대학 실험실에 샘플을 보내서, 버지니아 당하지 않도록 자세를 잡아 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버지니아와 협상한다? 힘들었다. 더구나 카르텔과 싸운 영상도 일부 올라갔고, 직원의 증언까지 더해진다면 앞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건 글러 먹었다고 봐야 했다.
정당방위를 하는 데 버지니아가 편하기는 했지만, 이대로 같이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했다. 마루는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는 직원을 바라봤다. 심장이 참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마루는 기순이 남기고 간 명함을 꺼냈다. 국토안보부 과장의 전화번호였다.
그렇게 직원은 알링턴 카운티를 향해 먼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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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전화를 받은 국토안보부에서는 미친 듯 날아왔다. 버지니아에게 밀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고작 40분도 걸리지 않아 현장으로 날아왔다.
“이렇게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상황부터 설명해 드리지요.”
마루는 휴게소에서 카르텔, 갱단과 엮인 사건을 시작으로 버지니아에서 뒤를 봐준 것을 이야기했다.
“뒤처리가 조금 아쉽더군요. 버지니아라면 카르텔이나 갱단이 습격하는 것을 먼저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습격당해 많이 위험했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그쪽에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사건이 터지는데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 생기는 문제죠.”
과장은 바로 버지니아 디스를 전개했다.
조직 이름이 국토안보부인 만큼 최소한 국내 정보, 방첩 분야에서는 뭔가 확실한 존재감이 필요한데, 기존에 있던 기관들이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고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와 FBI가 그랬다. 해외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정보, 방첩 분야는 협조해주면 어디 덧나나?
FBI도 짜증 났지만, 버지니아는 정말 징글징글했다. 인력난에 시달리면서도 협력 요청하지 않았고, 국내 방첩, 정보 분야도 놓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다. 그러면서 예산 감사 때마다 하는 말이 국토안보부에 중복 예산이 들어간다고 매번 찌르고 있으니, 정말 원수가 따로 없었다.
최근에는 국토 안보를 담당한다는 존재감은 고사하고 영화에서 악역이나 흑막으로 표현되는 상황이었다. 욕먹을 짓은 버지니아와 FBI가 더 많이 했는데, 욕은 국토안보부가 먹고 있으니 진짜 갑갑했다.
그런 와중에 따개비 사태와 같은 큰 건을 눈앞에서 놓쳤었는데, 주시하고 있던 크리스털과 관련된 사건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의욕이 넘치는 과장이었다.
“그럼 이 시신이 특이하단 말이군요.”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류탄의 폭발력을 몸으로 받았는데 파편이 조금 들어갔을 뿐입니다.”
수류탄이 터진 흔적을 보면 확실히 일반적인 상흔은 아니었다.
“근거리에서 9mm 철갑탄을 박아 넣었는데도 미간을 뚫지 못했습니다.”
“허! 철갑탄이 두개골을 뚫지 못했단 말입니까? 이걸 어떻게 잡았습니까?”
“입에 수류탄을 물리고 나서야 간신히 죽일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돌아다닌다면 확실히 국토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겠군요.”
마루의 설명을 들은 과장은 매우 흡족했다. 총알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놈들이 합중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었다.
“카르텔과 갱단에게 추격당한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국토안보부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정보가 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버지니아에서 제공한 안가는 그대로 두더라도, 따로 쉘터를 만드는데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쉘터 말씀이십니까? 흠- 생각해두신 지역이라도 있으십니까?”
기순의 예측대로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인적없는 곳으로 들어가 짱박혀 있을 거라면 미국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땅을 쓸 수 있으며, 적당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 쉘터로 개조할 수 있는 빈 건물이 많고 자재를 구하기 쉬운 도시.
“디트로이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라. 좋은 선택이군요.”
철강 도시이자 자동차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는 파산을 극복하고 재건에 들어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네스코 문화 지정 도시로 선정되어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건물과 토지들이 버려진 상태였다.
“쉘터는 어떻게 만드실 생각입니까?”
“도심에 있는 빌딩을 개조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황무지에서 싸워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허허벌판에 쉘터를 만드는 건 위험했다. 최대한 도심, 사람이 많은 곳이 오히려 안전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마루와 과장은 서로 만족했다.
그리고 국토안보부 직원들이 현장을 절반 정도 정리했을 무렵, 버지니아의 헬기가 도착했다.
버지니아에서 온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시체를 싣고 먼저 가버린 국토안보부는 ‘배 째라 어쩔 건데?’을 전개했다.
거기에 국토안보부 과장급 인사가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지라, 사실상 끼어들고 어쩌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간만에 신이 난 국토안보부 직원들이 마루와 김 양을 철저하게 마크했기 때문에 버지니아 직원들은 사정 청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버지니아 뒤처리 팀은 소득 없이 돌아갔다.
“걱정하지 마십쇼. 앞으로 저희가 직접 관리할 테니 버지니아에서도 여러분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과장은 뿌듯한 얼굴로 마루 일행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