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42)
러스트 [RUST]-142
전자장비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대형 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댔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문자들. 순식간에 채워지고 지워지고 고쳐지고 넘어갔다.
액션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이 한쪽에 붙은 모니터에 떠올랐다. 민간인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 숨어있던 갱단의 머리가 터지는 모습.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갱들을 살리겠다고 몸을 던져 가로막는 민간인들. 그랬음에도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살짝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통이 날아가는 모습.
[Oh- JESUS···] [HOLLY···] [STOP!!!] [Enough!!!]타격대원들의 통신과 유혈이 낭자한 영상에 자판을 두들기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두 손을 잼잼 쥐었다가 펴며 손가락을 풀던 해커가 고개를 돌려 여러 사이트를 살폈다.
“Fuck!”
뉴투브에 방금 올라온 영상. 정전으로 깜깜한 동네가 언뜻언뜻 보이는 구도. 멀리 환한 거리와 높은 빌딩은 LA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지역 중앙 부근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모습. 멀리서 들리는 총성. 비명.
다다다닥-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뉴투브 동영상이 사라졌다. 이어서 동영상을 올린 아이피를 추적, 상대 컴퓨터의 하드를 쓸어 버리고 과열시켰다.
이어서 아이피 주소지를 파악, 해당 주소지 명의로 만들어진 휴대폰을 해킹. 모든 것을 지우고 휴대폰을 과열시켜 폐기유도.
작업을 하는 도중에 다른 동영상이 올라왔다. 하나가 올라오더니 그게 끝나기도 전에 둘, 셋, 넷 순식간에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씨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다고? 누군가 현장을 찍어서 그걸 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EMP로 인근을 침묵시켰으니까 올라와 봐야 얼마 안 된다며?’
지랄하고 있네. 그럼 지금 올라오는 이것들은 뭔데? 이거 터지면 또 목줄이 채워져 끌려다닐 게 분명했다.
지긋지긋했다. 위선자들. 정보를 숨기고, 거짓을 감추고, 범죄를 은폐하는 새끼들··· 이번 일만 끝내면, 뜬다.
아시아가 좋겠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가 좋을까? 치안을 생각하면 한국과 일본인데,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로 끝장났으니···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가운데 고르면 될 것이다.
잠깐 사이 4개를 지웠는데, 11개가 올라왔다. 똥줄이 타는지 지휘관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질렀다.
[치직··· 지금 뭘 하고 있나! 빨리 처리하지 못해!]“하고 있습니다.”
[후- 퍼지면 넌 끝장이야.]“······.”
끝장은 당신이 끝장이겠지. 나는 좆되는 거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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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이 뉴스가 흘러나오는 태블릿을 집어 던졌다.
금이 쫙 간 화면에서는 여자 앵커와 여기자의 얼굴이 비쳤다.
[래빗 뉴스에서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 해당 지역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이 됐고, 주민들과의 전화 통화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통신망이 마비된 것에 대해 통신사 측은···]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주변 지역을 봉쇄하고 있는데요. 주 방위군 투입이 적법한 절차를 받았는지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흑인, 빈민,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지역만 정전된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도로를 통제한 이유는 뭔가요? 지금 저 총소리는 뭘 의미하는 건가요?]정전된 지역 인근의 흑인들이 피켓을 들고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구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Black Lives Matter!! (블랙 라이브스 매터, BLM)] [Black Lives Matter!!] [···시위대가 조금씩 늘어나는 가운데,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통제하고 있는 도로를 향해 시위대가 이동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임시 의회와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지요?] [그렇습니다. 현재 LA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심상치 않은 사태임을 드러내는 반증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시시각각으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LA 폭동을 막으려고 한 작전이 오히려 LA 폭동의 기폭제가 될 상황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지?
EMP로 통신을 끊었는데, 어떻게 놈들이 이렇게 빨리 대응한 거지? 대비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준비했다면 EMP도 대비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건 놈들이 미리 작업해둔 방법이라는 소리였다.
‘언론. 방송. 이쪽에 놈들이 심어둔 새끼들이 있었군.’
낌새가 이상하니까 바로 방송국 헬기 올리고 드론 날려서 촬영하고, 긴급 속보를 때려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기에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시위대가 몰리기 시작했고.
“FUCK···.”
이래서야 싹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거부한 부관이 영웅이 될 판이었다. 자신은 민간인 학살을 주장한 미친 지휘관이 될 것이고. 그래 그것도 좋았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지랄을 했음에도 갱단과 카르텔을 정리하지 못한 채, 작전이 흐지부지 끝나버린다면? 그 뒤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휘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합중국은 약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내부에서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저격수가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합니다.] [민간인 틈에 숨어있는 갱단을 저격했다고 하는데요.] [···갱단이라는 증거도 없이, 저격수를 동원해 사살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설령 갱이라고 하더라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지, 저렇게 비저항 상태인 사람을 죽이는 건 불법입니다.] [비무장한 시민들, 민간인들에게 저격수를 동원해 총격을 가한 건 어떤 핑계를 대도 학살입니다.] [Black Lives Matter!!] [Black Lives Matter!!] [시위대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지역을 봉쇄하고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방위군과의 충돌 위험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레빗 뉴스···]이제 작전은 시간 싸움이 됐다. 나중은 어떻든 참수 작전이 성공해야 했다.
지휘관은 지도에 있는 저격수들 위치를 확인했다. 놈들은 분명 방송을 이용해 살길을 찾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시위대가 있는 방향이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니 그쪽으로 가겠지. 저격수 배치를 옮겨서···’
지휘관이 저격수를 상징하는 마크를 옮기며 상황판을 재구성하는 찰나, 문이 열렸다. 군사경찰 복장을 한 군인과 장교가 안으로 들어와 지휘관에게 경례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시각을 기해, 작전 명령권이 회수되었습니다.”
조용해진 작전 상황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
지휘관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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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냄새가 가득한 지하수로.
여러 수로가 한곳으로 모인 중간 처리장에 눈이 시뻘겋게 물든 자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씨발. 씨발 저건 뭐야.’
약 먹은 노숙자들과 빈민들 십여 명이 달려들자마자 순식간에 조각조각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면 휘발유를 수로에 뿌려, 총화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휘발유가 흘러넘치는 좁은 공간에서 총을 쏜다는 건 같이 죽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특수부대건 특수부대 할아버지건 총화기를 쓸 수 없게 되면 남은 건 칼질이었다. 약쟁이들을 풀어서 칼질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누가 생각해도 결과는 명확했다.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고, 칼 들고 있는 약쟁이를 어떻게 이기나?
근데. 저건.
씨발 저건 뭔가?
마루는 묵묵하게 전진했다.
어느 순간부터 뒤에서 들리던 아련한 총소리가 멎어있었다. 둘 가운데 하나. 전멸했거나, 아니면 바닥에 깔린 휘발유 때문에 총을 쓸 수 없게 됐거나. 뭐가 됐든 마루는 덤덤하니 칼을 휘둘렀다.
‘그런 놈들이 득실거리는 건 아니었네.’
수류탄 던진 놈이나, 금속 배트 들고 있던 새끼 같은 것들이 많았으면 피곤했을 것이다. 여차하면 중화제 꽂아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면 중화제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새로 보급한 칼도 좋았고 적당히 출력을 조절해서 그런지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부칵-
어깨와 몸통을 대각선으로 한 번에 잘라낸 검이 옆으로 틀어졌다. 다시 가볍게 잘리는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졌다.
팔다리를 잘라봐야 기어서라도 덤비는 약쟁이들이라, 제일 확실한 방법은 머리를 자르거나 토막 내는 것이었다.
크우우어어어억!
우아아아아아악!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음에도 약쟁이들은 계속 밀고 들어왔다. 목이 떨어지고 몸통이 조각나도 나이프와 쇠꼬챙이 따위를 의지한 채, 녹슨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약쟁이들.
찌릿찌릿
온다.
마루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부산 로얄 마리나에서 겪었던 사투. 일본에서 경험했던 혈투를 통해 미묘한 감각에 익숙해졌다. 약쟁이들 사이사이 그놈들이 숨어있었다.
좀비처럼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노숙자. 누런 이빨 사이로 흐르는 침이 걸쭉하게 흘러내렸다. 그 노숙자 뒤에 몸을 바짝 숙인 놈이 뾰족한 쇠 파이프를 쑥 내질렀다.
팅
가벼운 금속음과 함께 쇠 파이프가 잘렸다. 이어 노숙자가 수평으로 갈라지며 뒤에 숨은 놈의 머리통 윗부분이 캔 뚜껑처럼 열렸다. 비척비척 몇 걸음 움직이다 앞으로 꼬꾸라지자 머리통에 담긴 것이 쏟아져 흘렀다.
우와아아아악!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사진처럼 컷이 나뉜 공간 사이로, 움직이는 놈들이 보였다. 좌우를 동시에 찔러오는 것들. 한 놈은 몸통을 다른 놈은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빠르다.
방금 그놈보다도 빨랐다. 눈물 문신하고 칼질하던 새끼와 비슷한 속도. 방패를 아래로 내려 다리를 막고, 칼날을 비켜 몸통을 찌르는 것을 흘려냈다.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약쟁이들 사이로 몸을 숨기는 두 연놈.
한 년은 양손에 자마다르(Jamadhar) 다른 한 놈은 마체테. 바짝 몸을 숙여, 시야 밖으로 벗어난 놈들이 마루를 노렸다. 깔짝깔짝 신경을 긁으며 시간만 끄는 연놈들.
몇 번 찔러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모전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체력을 갉아먹겠다는 심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약쟁이를 구했는지 발에 걸릴 정도로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최 전무가 했던 짓이 떠올랐다. 이 새끼들 여기 있는 새끼들 전부 조져 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피곤하게 될 게 뻔했다.
시선을 피해서 바퀴벌레처럼 몸을 숨기는 연놈들 건너편,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새끼가 보였다. 저놈이 이곳에서는 제일 지위가 높은 놈인 것 같았다.
후-
심호흡한 마루가 바닥을 박찼다.
우직- 발에 밟힌 시체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뒤로 마루의 몸이 솟구쳤다. 대각선으로 튀어 오른 마루가 벽을 타고 사선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발걸음을 따라서 시멘트 구조체에 발자국 모양의 금이 뒤따랐다.
“막아!”
자신이 목표가 됐다는 걸 알아챘는지 고래고래 소리치던 놈이 사색이 되어 마루를 손가락질했다.
팍-한 걸음 벽을 타고 천장을 밟았다. 팍- 두 걸음-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다시 점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놈이 딱딱하게 굳으며 비명 질렀다.
“마아아아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살기. 마루는 바로 방패를 백 팩처럼 맸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방패에 튕겨 나가는 마체테. 그 짧은 순간 연놈이 마루의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표정했던 마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걸렸구나. 씹새끼들.’
딱딱하게 굳은 놈을 향하던 칼날이 둥근 원을 그렸다.
칠흑의 칼날이 만든 새까만 보름달이 공터 한쪽에 떠올랐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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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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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이 일그러진 것 같은 모습.
잠시 멈췄던 시간이 유리창이 깨지는 것처럼 부서져 내렸다.
딱딱하게 굳었던 놈도.
마루의 뒤를 노렸던 연놈도.
주변에 있던 약쟁이들도.
검은 보름달이 떠오른 곳에 있던 것들이 수평으로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