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51)
러스트 [RUST]-151
좋지 않았다. 일단 쏘고 보는 게 뭐가 좋은가?
후드는 맞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아픔이 가짜인가 싶었다. 시트콤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어이없었다.
“좋다고? 진짜?”
마루가 고개를 갸웃하고 되묻자, 김 양이 냉큼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진짜임. 좋음.”
‘아닌데? 이상한 느낌인데 이게 참.’ 이러는 것을 보니 칼잡이는 그래도 정상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근데 저년은 아니었다. 김 양에게 탈탈 털리던 후드가 ‘이의 있습니다.’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이상한 거 맞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마루가 김 양을 바라봤다.
‘거봐 쟤도 이상하다고 하잖아.’
김 양이 후드를 향해 삐딱하게 고개를 돌렸다. 뭔가 침침한 느낌. 흐린 눈동자.
‘니가 덜 맞았구나?’
‘저거 봐. 저거. 저게 정상이냐고?’
후드가 필사적으로 마루에게 눈짓했다.
“좋음.”
그런 후드의 눈빛을 즈려밟듯, 김 양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었음? 얼타다가 뒈지는 것보다 후딱 정리하는 게 좋은 거라고?”
기순이가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근데 그때는 위급한 상황에서 어리바리하나 싶어 그런 거였고,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막말로 피할 수 있는데도 일단 쏘고 보고, 썰어 재끼는 게 정상인가?
마루의 눈빛을 읽었는지, 김 양이 후드를 노려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선빵 필승임.”
아니.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가는 건데? 마루와 후드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상하지? 맞지?’
‘이상한 거 맞아요.’
긴가민가하던 마루에게 김 양이 한마디 더 보탰다.
“선빵 좋음.”
아- 이상하구나. 이게 진짜 애매하게 본래 김 양이 좀 그런 경향이라, 완전 이상하다고 하기도 뭐하긴 했는데. 이상한 거 맞았다.
‘그러니까 증상이 감정 증폭? 충동적? 이었지?’
생각해 보니, 간호사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간호사도 그랬었다. 사람들이 점차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그때 이미 성질 급해진 사람들이 있었다.
도난 병원에서 있었던 일도 증상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이해됐다.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심해진 감염자들은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마치 좀비처럼 폭력적으로 변했다. 의료진들과 연구원들도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루가 도난 병원에서 간호사 둘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을 때,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던 일을, 배운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무지성으로 찌르고 본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지 않았다. 눈에 확 띄게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인체 실험하는 부분도 그랬다. 본사와 연락 끊기고 당장 실적이 급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사태가 진정된 것도 아닌데 조금 상황이 좋아졌다고, 안전 구역 확보했다고, 곧바로 1층에서 생체실험하자는 걸 생각하고 그걸 실제로 실행한다?
근본이 썩어버린 미친 새끼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영향이 전혀 없었을까?
마루는 가만히 김 양을 봤다.
김 양은 후드를 어떻게 팰까에 골몰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김 양 다웠다.
조그만 주먹을 슬쩍 보이면서 후드를 협박하고 있는 모습. 일반적인 김 양의 행태였다. 언제나 보던 모습 그대로 김 양이 후드를 잡도리하고 있었다. 김 양이니까 위화감이 없었다.
방금 말대꾸했다고 후드 머리통 날리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몰랐을 것이다. 원래 좀 그랬었으니까. 근데 알았다고 해도 문제였다.
‘이걸 어떻게 하지?’
마루는 머리에 돌을 얹은 것 같았다. 막 갑갑하고 무겁고 짜증 났다. 시원하게 확···.
“에이- 진짜-”
머리만 무거운 게 아니라 가슴도 답답해졌다.
마루는 칼을 들었다. 칼을 잡자, 갑갑한 게 아주 조금 진정됐다.
스르르르릉!
검은색 칼날이 번들거렸다. 미세하게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맥주병을 칼끝으로 쳐올렸다.
팅! 소리와 함께 둥실 떠오른 맥주병.
문득,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느낌.
마루는 그 감각을 타고 칼을 휘둘렀다.
쓰컥!
반으로 갈리고
부컥!
다시 수평으로 썰리고
슈카카칵!
길게 수직으로 잘렸다.
토막 난 맥주병이 붉은 양탄자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기분이 조금 풀린 마루가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했다.
그 모습을 본 김 양이 눈을 빛냈다. 후드를 잡도리하면서도 갑갑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김 양이 글록을 뽑아 들었다.
철컥-
투깡!- 팍
투캉! -퍽
투앙!- 픽
호텔 거실, 샹들리에를 장식한 크리스털이 하나씩 터졌다.
소음기 달린 글록을 홀스터에 꽂아 넣은 김 양이 어쩐지 시원한 얼굴을 했다.
당황한 마루가 뭐라고 하기 전, 김 양이 눈빛으로 말했다.
‘난 쏘면 안 됨?’
‘그러는 백정은 성질대로 썰어도 되고?’
“······.”
“······.”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어이없어하던 마루의 시선이 샹들리에를 향했다.
뭐지? 김 양도 같이 샹들리에를 봤다.
누가 쐈는지 참 이쁘고 깔끔하게 잘 쐈다. 음.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조각난 맥주병을 바라본 마루가, 김 양의 금 가방을 지긋하게 쳐다보곤 다시 샹들리에로 시선을 향했다. 눈빛으로 마루가 말했다.
‘이년이. 넌 멀쩡한 호텔 샹들리에를 쐈잖아. 난 빈 맥주병 썰었고.’
‘금에서 샹들리에 수리비 차감하겠다.’
아-
시무룩해진 김 양이 후드를 태우기 시작했다.
후드는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썰고 쏘고 그러는 게 이상하니, 이상하지 않니, 하더니.
이 새끼들은···.
======
======
조금 풀렸던 기분이 김 양 때문에 다시 복잡해졌다.
모르겠다.
마루는 한숨을 푹 쉬었다. 김 양이 감염됐다면? 김 양보다 접근해서 싸웠던 자기는? 기순이는? 간호사는? 그러고 보니 간호사는 멀쩡한 것 같았다.
증세가 심한 사람이 있고 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계속 증세가 나빠져, 나중에는 그놈들처럼 지랄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자기가 칼 들고 회까닥 돌아서 썰어대기 시작하면?
“에이-”
욕이 절로 나왔다. 일단 김 양이 감염됐는지 되지 않았는지, 아무래도 감염된 것 같지만. 어느 정도인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상태가 심각하다면 긴급 치료제 뭐 그런 것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좀 먹여보고, 샬롯의 약 버서커 폴이나, 중국 약 크리스털 먹었을 때랑 비슷한 점도 있으니까 중화제를 꽂아 보는 건 어떨까?
좋아.
마루가 결정했다.
“일단 너 피 좀 뽑자.”
“?”
마루는 간호사를 불러 김 양의 피를 뽑게 했다. 김 양은 순순히 팔을 내밀었다.
“무슨 검사를 하려는 건가요?”
간호사가 물었다.
“감염됐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코점막 세포랑. 구강점막 세포도 채취해서 보내야 감염 여부를 빨리 알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걸렸다는 것만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오노 씨도 뽑으세요.”
“예? 저도요? 아?”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는 후드도 뽑게 했다.
“마루 상은 안 하세요?”
“네. 전 안 합니다.”
기순과 마루가 제일 걱정했던 건. 마루의 급속한 신체 능력 향상이었다. 피를 뽑아서 검사를 맡겼는데 ‘이거 이상한데요? 사람 새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나오면 망했다.
“전. 해봐야 소용없으니까요. 약 처방되면 그 약 구해서 같이 먹죠. 뭐.”
“예에?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실험실에 끌려갈 일은 피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근데 채취한 시료들은 어디로 보내려고 하시나요?”
“질병통제센터 연구실로 보내려고요.”
확실히 그곳이라면 확인이 빠르고 대책도 금방 나올 게 분명했다. 단지, 이쪽의 정보를 숨기고 그쪽의 정보를 빼내는 게 관건인데. 여기에는 실력이 좋은 해커가 있었다.
“할 수 있지? 저쪽에서 우리 위치 추적하지 못하게 하고, 저쪽에서 검사하고 연구한 건 가져오고 그렇게.”
“···가능합니다.”
깊게 뒤집어쓴 후드,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음성 변조기까지 달아서 기계음 나는 목소리.
가만 보니 이것도 이상한 녀석이네, 뭐 얼굴 뜯어 먹을 것도 아니고 꽁꽁 감싼 이유가 있겠지. 후드를 바라보던 마루가 그렇게 신경을 껐다.
======
======
며칠이 지났다.
그간 국토안보국 과장이 철수 작전에 참여해 주길 부탁했지만, 마루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자기 한 사람이 가서 될 일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두 사람 빼 오는 것도 아니고 대규모 군사작전이 될 텐데, 개인이 가서 뭔 도움이 되겠습니까? 걱정되는 마음 이해는 합니다만, 제가 가면 오히려 작전에 혼란만 끼칠 수도 있습니다.’
구조작전은 이제 완전히 국방부로 넘어갔다. 처음 보냈던 구조대, 2번에 걸쳐 추가로 파병한 군인들을 합하면 거의 3천 명에 육박하는 수였다.
대규모 철수 작전이 됐는데 국토안보국에서 꽂아 넣은 용병이 설치는 걸 군부에서 좋아할까? 가면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일정은 비워 놓을 테니, 정말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때 연락해 주십시오.’
국토안보국과 척 질 생각은 없었기에 마루도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 그런 마루의 노력이 통했는지, 과장도 아쉬워는 할망정 뒤끝 없는 모양새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나저나. 기순이도 검사를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질병통제센터 산하 연구소에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했는데 고작 며칠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는지 별다른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바쁜 일이 생겼는지, 기순이에게 전화하면 전화기가 꺼져있거나 통화 중인 경우가 많았다.
이쪽으로는 절대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도 마냥 편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자주 전화하긴 좀 그랬다.
검사해보라는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눈치 좋은 기순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마루의 눈에 주섬주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김 양이 보였다.
“또 나가냐? 어딜 가는데?”
“버거퀸.”
“어제 먹었는데 또?”
“응.”
“조금 있으면 해 떨어질 텐데? 괜찮겠냐?”
“여기 버거퀸 진짜 좋음.”
그렇게 맛있나? 한국에서보다야 확실히 괜찮기는 했는데, 아웃 앤 아웃 버거라든지, 쓰리 게이 버거라든지, 칙칙 버거라든지 그런 유명한 버거집도 있을 텐데.
“뭐가 그렇게 좋은데?”
“방탄 설비 좋음. 공짜임.”
뭐?
마루는 황당했다. 방탄 설비? 공짜? 무슨 소리야?
틀어 놓은 TV에 뉴스가 나왔다. 지역 방송국 뉴스.
무장 강도들이 동양계 소녀가 쏜 총에 제압되는 영상이었다.
[···버거퀸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저거 너?’
마루의 표정을 본 김 양은 뿌듯한 얼굴로 답했다.
“맞음. 어제 강도 와서 잡았음.”
강도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김 양의 모습. CCTV에 찍힌 영상이 SNS에 퍼지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정당방위 좋음.”
“총기 자유화 좋음.”
“여기 너무 좋음.”
냉큼 쏠 수 있어서 좋았다. 죽이지만 않으면 됐다. 죽이지만 않으면 팔다리 몇 방을 쏴도 괜찮았다.
현장에 온 경찰도 잘 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짜증을 숨기지 않아도 됐다. 참지 않아도 됐다. 스트레스가 쫙 풀렸다.
그런데 우리 백정은 어쩌나? 칼 들고 시원하게 썰다 걸리면 바로 X될 텐데. 삐죽 김 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 양이 마루의 허리춤에 꽂힌 칼을 보며 다시 한번 눈웃음쳤다.
역시 미국, 근본은 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