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52)
러스트 [RUST]-152
김 양은 재빨리 호텔에서 나왔다.
발걸음은 가볍고도 상쾌했다. 5시밖에 안 됐는데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솔직히, 미국 근본은 총 아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공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바로 런을 때린 김 양이었다.
흥. 흥.
어제는 여러모로 좋은 날이었다. 스트레스도 쫙 풀렸고 강도 잡은 버거퀸 매장에서 무료 식사 카드를 선물로 줘서 좋았다. 혼자 매장에서 먹고 가는 것은 무제한인지라 실컷 먹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거기에 무슨 지역방송국인가? 거기서 뉴스랑 무슨 특집 방송해도 되냐고 하면서 계약하자고 했다. 계약서를 보니, 수익 분배랑 그런 게 적혀있었는데 전반적으로 혜자였다. 무슨 보험도 공짜로 들어준다고 했고 여러모로 좋았다.
심지어 따로 연기할 필요도 없고 귀찮게 한다는 내용도 없었다. 그냥 매장에서 햄버거 먹는 모습만 찍어간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버거퀸 매장이 보였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보통 5~6시쯤 되면 드라이브 스루로 포장하는 사람은 있어도 매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아직 6시 안 된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방탄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장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전부 김 양을 돌아봤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줄 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김 양을 돌아봤다.
뭐지? 김 양이 뭔가 긴장하는데, 한 사람이 외쳤다. 그러자 매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둥둥 외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건 슬링거 걸 걸
우오오오오
힛 걸!
우!
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순식간에 매장이 들썩였다. 아니 뭐임? 이게 뭐임? 김 양은 당황했다. 그 모습을 방송국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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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일 아닌 것에도 기분이 널뛰는 걸 보니, 확실히 찝찝하긴 했는데 말 그대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기분이 더러워지는 걸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근본이 총이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없었다. 거기까지는 좋다. 근데 그 불손한 눈웃음은 뭐란 말인가? 그렇구나. 그래서 김 양이 후드의 대가리를 날려버리려고 했구나. 슬쩍 웃으면서 ‘왜요?’라고 했으면 인정이었다.
마루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끊었다. 이럴 때는 그냥 뭐든 써는 게 좋았다.
팅! 팅!
칼집으로 빈 병 2개를 쳐올렸다. 무중력 상태처럼 둥실 떠오른 병들. 예전에는 위험했을 때만 그랬는데, 최근에는 조금만 집중해도 이처럼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더러운 기분이 씻겨져 나갔다. 찝찝함도 사라졌다. 오직 남아있는 것은 눈앞에 썰어야 할 빈 병뿐.
휘끽- 칼날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시작으로
서커커커컹!- 허공에 둥실 떠오른 맥주병 2개가 동시에 썰리는 소리-
스칵! 스칵! 스카카칵!- 제빙기로 얼음을 가는 소리처럼 서늘한 소리가 이어졌다.
집중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있던 조각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컥- 칼을 칼집에 넣고 나서야 TV가 눈에 들어온 마루였다.
지역방송국 채널에서 리포터가 현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었고.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조금 긴 단발. 순둥한 얼굴. 껌뻑거리는 눈. 김 양이었다.
[어제 총격전 끝에 강도들을···] [···최근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점은 무장 강도가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 경찰이 출동한다는 겁니다. 만약 인명피해가 생겼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명피해가 생기면 그건 재판을 통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재판? 재판이고 나발이고. 술 처먹은 새끼가 네 대가리에 총알 박아 넣고, 술 취해서 쏜 거 기억에 없다고 그러면? 뒈진 뒤에 재판이 무슨 소용이냐고!] [병신 새끼야. 그러니까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고. 너 같은 새끼들이 총 들고 설치니까 이 지경이 되는 거지.] [···중요한 건 너 새끼가 뒤진 다음에 경찰이 온다는 거라고, 살려면 범죄자를 막아야 하는데, 중요한 건 총이라고! 총이 있어도 이런데 총이 없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총기 규제하는 나라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유럽을 보라고! 일본이랑 한국으로 봐. 총기 규제하고도 잘살고 있잖아.]리포터가 나와서 뉴스인가 했더니, 갑자기 총기 토론인가? 코미디가 아니고? 마루는 어질어질했다. 동네방송국은 다 이런 거야? 이 동네만 이러겠지? 설마.
[이번에 잡힌 무장 강도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서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며 협박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요. 그런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은 작고 가녀린 그녀가 갱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단골 매장에 나온 것에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그러니까 갱들이 경찰에게 끌려가면서 복수하겠다고 했는데도 무시하고 간 거라고?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런 김 양에게 환호하고 있고?
마루는 어지럽다 못해 탈수증 생길 것 같았다.
갑자기 김 양이 범죄조직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여전사? 뭐 그런 이미지가 되고 있었다.
단순한 무장 강도가 아니라 진짜 갱이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돌아오면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가둬놔야 할 듯싶었다.
갱단 쪽에서 저 방송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조직원이 여자한테 당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졸라게 어려 보이는 여자한테.
조직원들이 총 맞고 죽은 것도 아니고 무기력하게 제압당해 끌려간 것도 쪽팔리는데, 그 여자가 ‘협박이고 뭐고 웃기지 마세요.’ 하면서 활보하고 다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피가 거꾸로 솟지 않겠는가? 이제는 정말 체면이 걸린 일이 됐다. 여자도 무시하는 갱단 -풉?- 이런 이미지를 떼려면 어째야 할까? 복수를 생각하겠지, 그것도 정말 잔인한 복수를···
마루의 현기증이 두통으로 진화할 무렵.
방송 내용도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장 강도와 싸운 가녀린 소녀의 투쟁이 총기 자유화 VS 총기 규제 논쟁으로, 범죄자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 여전사 히어로에서, 먹방으로.
먹방?
복스럽게 햄버거를 순간 삭제하고 있는 김 양의 얼굴이 TV 화면에 가득했다. 자기 얼굴만 한 커다란 햄버거를 두 손을 야무지게 움켜쥔 모습. 패티가 2겹인지 3겹인지 두껍기도 오지게 두꺼운 햄버거를 앙 베어 물고 오물오물하는 모습.
그리고 장면이 전환됐다. 팔다리가 총에 맞아 바닥에 꿈틀거리며 소리치는 강도의 모습. ‘죽여버리겠다.’, ‘XXXX에서 널 죽일 거다.’, ‘네년이 키우는 개새끼도 죽었어!’
다시, 행복한 얼굴로 앙- 햄버거를 베어 문 김 양. 기름기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날름 훔치는 모습.
이어진 절규.
‘XXXX한다. 으아아아!! 씨발련아!!!!’
감자튀김을 뇸뇸뇸 오물오물오물 먹은 김 양이 콜라를 시원하게 빨고. 크하-하는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
······
지금 내가 뭘 본거지?
······
씨발 새끼들이 쳐 돌았나?
······
어디야? 저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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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업 TV.
디트로이트시를 중심으로 인근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주로 다루는 지역방송국이었다. 디트로이트가 잘 나갔을 무렵. 그러니까 러스트 벨트가 잘 나갔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방송국은 호황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러스트 벨트는 점차 몰락했다. 지역 경제의 몰락과 함께 인구는 줄어들었고 디트로이트시는 파산까지 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역방송국들은 망했고 통폐합되고 그랬다.
그 고난의 시간을 버텨낸 방송국이었지만 현실은 더 암울해졌다. 디트로이트시가 파산에서 벗어나고, 유네스코 문화도시가 되면서 좀 살아나는가 싶었는데, 인터넷 개인 방송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방송국에 제보하던 사람들이, 뉴투버들에게 제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기가 채널을 파서 올리는 경우도 생겼다. 기자들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전문 뉴투버가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역 맛집 탐방이나, 여행지 관련은 지역방송국에서 만드는 프로그램보다 뉴투버들이 찍은 영상의 조회수가 더 높았다.
그리고 이제는 수입마저 역전되기 시작한 상황. 지역방송국 수익이 유명한 뉴투버 개인이 버는 수익보다 적어졌다. 아무리 지역방송국이라고 할지라도 방송국인데 말이다.
“지역 시청률 6.8%, 6.9%···7%. 7%가 넘었습니다.”
“좋았어!”
왓츠업 TV 사장이 허공에 어퍼컷을 쳤다. 대박이다.
“광고는 광고 따러 간 애는 뭐라고 해?”
“버거퀸 광고는 땄습니다. 6개월짜리입니다.”
“고작 6개월이라고? 지금 저걸 보라고. 저녁 황금 시간대에 7%가 넘었는데 6개월? 그 새끼 뭐 하는 새끼야. 바짓가랑이를 잡든 어떻게 하든 장기 계약을 땄어야지.”
언제 기분이 좋았냐는 듯 사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회사는 어때?”
“스미스 웨폰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빨리해. 빨리. 왜 이렇게 굼떠?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어야 뛸 건가?”
직원들이 팝콘 튀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PD 하나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사장에게 말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거 너무 자극적인데요?”
“괜찮아. 놈들이 어쩌겠어? 방송국 습격이라도 하게? 그러면 더 좋지.”
“그게 아니라. 미스 킴 말입니다. 갱단의 표적이 될 텐데 방송 전에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고 방송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린 걱정할 게 없어. 정식으로 계약했다니까? 수익 배분도 넉넉하게 했고, 광고까지 따면 유명해지고 부자가 될 텐데 뭐가 문제야? 갱단이 공격한다고? 그건 갱단과 그 여자 문제지 우린 책임 없어.”
사장이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다시 봐도 아름다운 계약이었다. 복수심에 불탄 갱단의 공격으로 여자가 죽으면? 특집 방송 거리가 됐다.
여자가 갱단의 복수를 피해 살면? 그건 또 그거대로 다시 방송 소재가 됐다. 그 와중에 다시 갱들과 총격전이 터지면? 그거야말로 최고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변호사들이 군침을 흘릴 상황입니다.”
“계약했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소송? 소송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
그것도 방송으로 만들면 최소한 몇 편은 나올 거다.
“이제 더 할 말 없나? 없으면 나가서 일하라고 일.”
“······.”
“나가면서 벨라 들어오라고 해.”
“······.”
여자가 사장실로 들어가고. 블라인드가 내려갔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
사장의 광기에 PD는 포기했다. 계약서를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영악하게도 보험을 공짜로 들어준다면서 호구조사를 했다. 보험금을 누가 수령 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수십 년을 버텨온 지역방송국인지라 썩어도 준치였다. 알음알음 이어진 인맥과 계약서에 있는 내용을 활용하자, 대충 개인 정보가 나왔다. 더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종합해 보자면 이랬다.
1) 일본에서 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
2) 가족 친지 없음.
3)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망시 보험금을 받을 사람 1명.
4) 현재 주거지는 호텔.
사망사고가 터져도 유족들이 들고일어나거나, 변호사가 물고 늘어지고 할 상황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사장이 저렇게 당당한 거고.
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악마적 편집도 적당해야지 저건 숫제 살인 교사 아닌가? PD가 사표를 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사장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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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썰리는 소리.
쿵! 쿵!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이어
끄그그그그극!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소리가 사장실에서 새어 나왔다.
목 조르기라도 하는 건가? 가지가지 한다.
PD는 포기했다. 사표 던질 때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