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55)
러스트 [RUST]-155
총총걸음으로 떠나는 김 양의 뒷모습에 PD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사장에게 말했었다. 도를 넘어선 것 같다고 계약을 악용한 것 아니냐고. 도를 넘어섰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계약서를 보자고?
사장실에서 자신이 봤던 계약서는 뭐란 말인가? 계약하곤 계약한 적 없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년은 얼마나 뻔뻔한가.
“Fuck!”
혹시 사장이 계약서를 위조했을까? 아무리 돈에 눈이 먼 사장이라고 해도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계약서를 보자고 했다? 그럼 계약서 원본이 없어진 건 어떻게 알고? 설마?
‘계약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소송을 걸었다?’
불가능했다. 자기가 사장실을 나왔고, 바로 벨라가 사장실에 들어갔다. 문이 잠겼고, 블라인드가 쳐졌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약단속국, 경찰, 911이 세트로 몰려왔다.
‘잠깐.’
PD는 이상함을 느꼈다.
직원들 가운데 누가 신고했다면 911이 먼저 오고, 그다음 경찰이 왔을 거다. 맨 마지막에 마약단속국이 왔겠지. 근데 전부 한 번에 왔다? 동시에 신고했다는 소리다.
‘누가?’
PD는 방송국에 돌아가 신고한 사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방송국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왓츠업 TV가 낡게 깜빡거렸다.
디트로이트는 번창하는 도시였다. 철강과 자동차 산업이 발달해 용광로의 도시, 강철의 도시, 자동차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지금은 들어가면 죽는 곳, 망한 곳을 상징하는 도시가 됐다. 슬럼화된 주택가는 팔리지 않아 집주인들이 그냥 버리고 나가는 도시. 연말과 연시에는 총화기를 공중에 쏘며 축하하는 도시.
PD는 자동차 핸들을 꽉 쥐었다.
나는 왜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는가?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니면서도 계속 다닌 이유는 무엇인가? 돈 때문에? 돈이 전부였다면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면서 왓츠업 TV 프로그램도 나락으로 빠졌다. 시청률을 올려야 광고가 붙으니, 더 자극적인 방송. 더 막장인 방송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젠 방송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의 막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신의 젊음을 바친 방송국이, 지역을 대표한다며 디트로이트를 사랑했던 방송국이, 썩어 가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미련 때문이라는 걸.
연초를 입에 문 PD가 라이터를 찾았다. 어디 뒀더라? 자동차 시거 잭엔 휴대폰 시거 잭 대신 휴대폰 충전기가 달려있었다. PD는 입에 문 담배 끄트머리 부분을 잘근잘근 씹다 뱉었다.
퉷-
연초는 불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버려져 밟혔다.
“씨발.”
PD가 방송국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없었다. 야간에도 일이 있어 최소한 15명은 넘게 있어야 했는데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최초 신고했는지 알아보려고 했더니···.
회의실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내가 PD를 보고 웃었다.
“헤이요. 맨.”
무장한 갱 하나가 PD를 반겼다.
“너는 알고 있지- 너는 답을 알고 있지-”
“그년이 어디 있는지- 그년이 누구인지-”
“대답 없는 너.”
“침묵하는 너.”
“그러다 뒈지는 너.”
앞니가 금으로 된 갱이, 풀린 눈을 하고 중얼중얼 읊조렸다.
“그년은 어딨어?”
히? 웃는 금니, 붉게 충혈된 눈이 아치형으로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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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마약 카르텔에서는 입단 테스트로 살인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북미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담력을 시험한다는 명분으로, 무장 강도를 하라고 한다거나, 경찰한테 개기는(?) 짓을 시킨다거나 그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김 양이 잡은 무장 강도도 그런 애들이었다. 진짜 갱은 아니고 갱단 입단 테스트로 무장 강도질하려고 했던 애들과 시험 감독관으로 옆에 붙은 조직원 하나가 완전히 탈탈 털렸다.
CCTV 영상이 공개되고 뉴스에 잠깐 언급된 정도라면 ‘잡힌 놈들이 병신’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특집 방송은 아니었다. ‘버거퀸의 히어로.’니 어쩌니 하면서 갱단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히어로 년을 찾으려고 할 때, 영상이 삭제됐다. 방송국에서는 영상을 내렸고 뉴투브에서도 해당 영상이 전부 삭제됐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얼굴에 똥을 던진 뒤 깨끗이 씻으면 된다고 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본래 약 먹은 갱은 미친 짓을 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디트로이트산 약쟁이 갱은 더.
[어제. 왓츠업 방송국 1층과 2층이 전소되는 화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화재 사고로 인해 17명의 직원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규모 참사로 인해. 왓츠업 방송국은 당분간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이번 화재에 상당한 규모의 화재보험금이 걸려있다고 하죠?] [그렇습니다. 천문학적인 보험금이 걸려있는 화재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되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TV를 보던 마루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변호사 맥 골든입니다. 왓츠업 방송국 화재 소식 들으셨지요?]“네. 지금 막 보고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왓츠업 쪽이 방송국을 접는 방향으로 간다면 보험금 가운데 많은 부분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렇군요. 계속 방송국을 한다고 하면 달라집니까?”
[그 경우에도 보험금을 받은 뒤라면, 충분히 합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좋네요.”
[다만. 이쪽에서 좀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무슨 소문인가요?”
[이번 화재가 갱단의 방화라는 소문입니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변호사와 통화를 마친 마루는 생각에 잠겼다.
‘갱이라.’
마루가 건너편에서 사만다와 놀고 있던 후드에게 말했다.
“왓츠업 방송국 근처 CCTV 자료 확보할 수 있지? 이상한 거 있으면 전부 정리해놔. 특히 갱단으로 의심되는 애들 주변에 나오면 확인하고 어디서 왔는지 추적하고.”
“갱단이요?”
“그래. 만약 갱들이 불 지르고 사람 죽였으면 흔적 찾기는 쉬울 거다.”
“···네. 근데 대놓고 그랬을까요?”
“갱들이 했으면 대놓고 했을 거다. CCTV는 무시하고 여기저기 흔적 남겼을 거야. 그래야 자기들이 죽였다는 게 알려질 거고 그렇게 사방팔방에 복수했다고 소문나야, 체면 차렸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럼 경찰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요.”
“경찰 무서워하는 놈들이 15명 넘게 죽이고, 불 지르고 그랬겠냐?”
문제는 방송국을 태워버린 놈들이 방송국 하나만 가지고 끝날까? 아니면 여기까지 올까? 이상한 방송 내보낸 방송국은 태워버렸다. 그럼 ‘버거퀸의 히어로’는 방송국 농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둘까?
“갱들 흔적 찾으면, 역추적해봐. 놈들의 아지트라든지 놈들이 자주 모이는 집결지 같은 곳을 찾으면 알려줘.”
“넵.”
후드가 사만다를 가동해, CCTV를 찾아 영상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후드가 정리한 CCTV 영상 속에는 갱들의 범죄 행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루의 예상대로 모두 보라는 듯 사람을 매단 채 달리고, 사지를 불태우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저거. 어제 온 PD 같음.”
언제 옆으로 왔는지 김 양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화면 속엔 사지에 불이 붙은 채, 비명 지르는 PD 얼굴이 클로즈업돼 있었다. 화상으로 한쪽 얼굴이 일그러진 모습.
뭐라고 뭐라고 필사적으로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내뱉는 PD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알 수 있나?”
“잠시만요.”
후드가 사만다를 통해 뭔가를 조작하더니, 입 모양이 분석됐다.
[*H*O*T*E*L*]“호텔인데요?”
“호텔?”
후드와 김 양이 모니터를 보고 어디, 어딘데? 하고 있을 때, 마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여기 호텔이지.”
번화가 인근 호텔에서 일이 터지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국토안보국과 끈이 닿았다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으면 나중엔 상하관계가 됐다. 그러니까.
“CCTV 자료 확인 빨리해. 놈들 아지트나, 모이는 장소. 찾으면 바로 나한테 바로 보내.”
놈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 먼저 정리하는 게 훨씬 좋았다. 민간인 사상자 나오지 않게 처리하면 국토안보국 눈치 볼 일 생기지 않았다.
마루가 칼을 옆구리에 차고, 검은색 코트를 걸쳤다. 그걸 본 김 양이, ‘나는? 나도 가고 싶은걸.’ 했지만 소용없었다.
“광학 은신 망토. 가져와.”
살짝 고장이 난 부분이 있어, 자세히 보면 한쪽이 살짝 튀었지만, 캄캄한 밤에 쓰는 덴 전혀 문제없었다. 김 양이 ‘그거 내 건데.’ 하는 표정으로 광학 은신 로브를 가져왔다.
“애들 지키고 있어. 나대지 말고, 방어 위주로. 버티는 쪽으로 해. 알았지?”
김 양이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루의 진지한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음.”
“방송 타거나, 괜히 얼굴 팔릴 짓 하지 말라는 소리야. 너 믿으라고 했지? 믿으라고 하고 이번에도 그러면 진짜 알지?”
“알았음.”
‘이 사람. 믿어주세요.’ 믿음의 김 양이란 말입니다.
마루는 그런 김 양을 뒤로하고, 호텔을 나섰다. 잠시 뒤. 마루의 폰에 갱단의 위치정보가 전송됐다.
광학 은신 로브를 둘러쓴 마루가 은신 모드를 작동시키자, 우웅- 웅- 공간이 일렁이나 싶더니, 마루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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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힙합 음악으로 가득한 공터.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는 10여 대의 차량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었다.
“방송국 새끼는 언제 죽일 건데?”
“이따 생방송으로 태워버리려고 한다더라.”
“산채로 태운다고 그랬을 걸 아마.”
“아 그 새끼? 근데 그거 팔다리 다 태우지 않았나? 그걸 또 태워?”
“어쨌든 산채로 불로 태우는 게 조회수 은근히 높게 나오니까.”
“개새끼들 지랄하는 새끼들은 싹 죽여야 해.”
“근데 올리자마자 잘리는 거 아니야?”
“잘려도 지워지는 것보다 퍼지는 게 더 빠를걸.”
갱들이 허연 이와 누런 금니를 서로에게 자랑하듯 웃었다.
“짭새들 CCTV 보고 바짝 쫄아있겠지?”
“그 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디트로이트에서 대규모로 총격전을 하겠다? 그럼 환영이었다. 그렇다고 주 방위군이 올까? 여길? 와서? 진짜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든지 폭동만 아니라면 쉬쉬할 거다. 뭘 지킬 게 있고 할 게 있어야 와서 똥이라도 싸지.
한 놈이 크리스털을 박았다. 투명한 액체가 혈관을 달리기 시작하자, 세상이 반전했다.
“후- 미치겠네.”
아차 하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혈관을 때리는 충격을 견디느라 진이 빠진 놈이 느릿하게 말했다. 확실히 다른 것들과는 달랐다. 결이 달랐다.
꾸욱- 주먹을 쥐자.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악력이 확실히 강해졌다. 동전을 꺼내 구부려 봤다.
“흐흐- 이거 봐. 내가 50센트 동전을 휘었다고.”
“오- 정말이야?”
“실화냐?”
“이야- 살짝 구부러졌는데?”
힘이 세진 것 같은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힘이 세졌다. 반사신경이 좋아지고, 진짜 빨라졌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쌩쌩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효과가 좋은 만큼 부작용도 뚜렷했다. 용량을 조금만 넘치게 하면 이성을 잃는다는 것과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성을 잃어? 언제는 제정신이었나? 중독성이 강해. 계속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잘못 먹으면 입에 거품 물고 뒈지는 것도 해대는 판국에 부작용? 갱들에겐 의미 없었다.
“이걸 그 새끼들도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렇지 뭐. 중국놈들이 뿌리고 있더라고.”
퉁- 퉁-
드럼통 울리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던 갱들이 조용해졌다.
한 놈이 앞으로 나왔다. 모피 코트를 입은 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개새끼 하나를 태우려고.”
“우리 얼굴에 똥칠한 방송국 PD 새낀데, 깔끔하게 태워버리자고.”
“태우고, 우릴 좆밥으로 본 씨발련이랑 본해드 새끼들도 한 번에 조지···.”
럭셔리 모피 코트를 입고 손으로 스웨그 하던 놈의 가슴에 검은 칼날이 삐죽 돋아나왔다. 등판을 뚫고 가슴으로 삐져나온 칼날이 상하로 몇 번 움직이더니 쑥 사라졌다.
“······.”
“······.”
풀썩- 모피 코트가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주변은 조용했다. 드럼통 모닥불이 군데군데 타오르는 소리. 크게 틀어 놓은 힙합 소리.
지금 뭘 본거지?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칼이 돋아서 사람을 죽였다.
뭘 잘못 했나? 용량은 지켰는데?
부칵!
기괴한 소리와 함께, 뒤에 있던 두 명의 머리통이 한 번에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툭- 툭-
머리통이 땅에 떨어져 구르는 모습
퓌숙- 퓌숙-
머리를 잃은 몸통에서 피가 찍찍 뿜어지는 광경.
“What The···.”
“HOOOOOL···.”
두 사람 주변에 있던 갱들이 총을 뽑아 들었다. 일렁이는 불꽃 저편 어둠 속. 아무것도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반쯤 말라비틀어진 잡초와 관리되지 않은 잡목들이 바람에 흔들릴 뿐.
“중국 새끼들이 개 병신을 팔았나? 씨발 내가 헛것을 보다니!”
“지금 봤어? 봤냐고?”
“뭘 봐 새끼야.”
“지금 봤냐고 저거! 저기!”
자동차를 향해 달리던 사람이 사선으로 절단되는 모습.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람이 사선으로 분할됐다.
사선으로 잘려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
누군가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텅 빈 어둠을 향해 총질하는 갱들.
타당!
타다다다다당!
외딴 폐허.
일렁이는 모닥불.
피어오르는 불꽃.
터지는 총성이 덧없는 겨울밤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