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62)
러스트 [RUST]-162
[치직- 클리어.]통신기에서 흘러나온 김 양의 목소리엔 살짝 짜증이 배어 있었다. 시원하게 쓸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
“O.K. 그냥 쭉 안으로 들어가.”
[유인 안 됨.]엑소슈트가 내는 미세한 기동음을 이용해 안에 있는 것들을 한쪽으로 유인하려고 했지만, 유인되지 않았다.
“유인하는 작전은 폐기하고 보이는 대로 쓸어버려.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자.”
[알겠음.]조금 풀어진 김 양의 목소리. 시원하게 쓸어버리라고 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근데 이것들 웃기네.”
기관들 사이에 알력이 있다고 하지만, 정보 같은 건 빠닥빠닥 공유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에도 그렇고 기관들끼리 힘겨루기하다 문제 많았으면서 아직도 이러는지.
변이된 동물들이 이상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날뛰다가, 치매 걸린 것처럼 변하는 게 대부분인데, 짐승들은 어째 점점 똑똑해지는 것 같았다.
변종들이야 사람의 뇌나 심장 먹고 똑똑해진다고 하지만, 짐승들은 대체 뭔가? 그리고 이런 변화를 전진기지 애들이 못 느꼈을 리는 없었다.
쑤욱!
칼날을 끈적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머리통. 마루가 거대 고양이 머리통에서 칼을 뽑았다.
굉장히 단단한 뼈, 심지어 가죽도 질기고 두껍다. 5.56mm 탄으로 이걸 저지할 수 있을까? 7.62mm도 간당간당할 것 같은데? 일반탄은 뭐가 됐든 아니었고 철갑탄으로 갈겨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카림빗 나이프처럼 예리하게 뻗은 발톱도 위협적이었다. 그대로 뽑아서 나이프로 써도 될 정도.
그렇다고 해도 거대 고양이, 개 정도라면 도난 병원을 장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다른 뭔가가 또 있다는 건데.’
3.5m를 넘나드는 기갑병을 박살 낼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의미. 그게 뭘까?
투다다다다다닥!
■■■■■■■!
마루의 상념을 깨우듯 복도를 흔드는 체인건 소리. 김 양이 시원하게 쏟아붓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어디 뭐가 있나.’
뭔데 이 지랄을 내고 있는지 구경이나 해 보자.
광학 은신 로브를 걸친 마루의 신형이 사라졌다.
일렁- 공간이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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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
헤드 업 디스플레이에(HUD) 붉은색 마크가 잡혔다. 김 양은 붉은색 표시와 조준선, 총구를 일치시키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체인건 특유의 체인 모터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위이이이이이잉!
투다다다다다닥!
■■■■■■■!
일직선 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갈려 나갔다. 벽 뒤에 있으면 벽을 뚫고 다졌고, 집기류 아래 있으면 집기류를 박살 내고 뭉갰다.
철갑탄으로 갈고, 다지고, 뭉개는데도 점점 늘어나는 붉은 표시. 체인건의 총신이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0kg는 넘어갈 정도로 큰 쥐가 김 양의 엑소슈트 다리를 물었다. 그래핀 소재와 특수합금을 이용해 만든 장갑을 뚫지 못한 쥐의 앞니가 박박 긁는 소리를 냈다.
뻑!
쥐새끼 머리통에 때려 박힌 철권.
부서지지 않아? 쥐새끼 머리통이?
김 양은 슈트의 출력을 올렸다. 작았던 기계음이 조금 더 커졌다.
빠각!
망치질하듯 내려찍은 주먹에 쥐의 목뼈가 부러졌다. 단단했다.
고작 주먹질 두 번 했을 뿐인데, 사방에서 몰려든 쥐새끼들이 엑소슈트에 달라붙었다.
“으-”
등판, 헬멧, 허리, 다리, 팔. 전신에 달라붙어 갉아대는 소리.
김 양은 바로 뒤로 굴렀다.
안전핀이 빠지고 슈트에 달아둔 수류탄 2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쾅-
연속해서 터진 폭음을 뚫고 엑소슈트를 두들기는 작은 파편들.
달라붙은 쥐새끼들을 떨친 김 양이 체인건을 앞으로 겨눴다.
그 순간,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후두둑- 체인건 위로 물 쏟아지듯 떨어지는 쥐새끼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방아쇠를 당겼다.
위이이이이이잉!
투다다다다다닥!
■■■■■■■!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철갑탄이 그대로 천장까지 쓸어버렸다.
567··· 534··· 512··· 498···
탄약 숫자가 맹렬하게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못 죽여도 거의 200마리는 넘게 죽인 거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거지? 김 양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맹렬하게 쏟아부은 총알이 시선에 있는 모든 것을 육편으로 만들었다. 바글바글했던 쥐새끼들이 열 마리 남짓으로 줄어들고 나서야, 김 양은 조그맣게 숨을 내뱉었다.
‘후- 으아- 쪼오.’
빨갛게 달궈진 체인건 총신이 하얀 김이 피워올렸다.
‘빡세네. 흐으아-’
배터리 잔량도 확인해야 했고, 잔탄 관리도 해야 했다.
‘배터리 개 빨리 닳아.’
‘총알도 순식간이네···.’
엑소슈트 손상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기능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질긴 갈증에 김 양은 헬멧을 올렸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살짝 인상을 쓴 김 양이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데, 갑자기 경고음이 났다.
삑!삑!삑!
응?
흐르는 땀을 대충 털어내고 헬멧을 쓰자, 붉은 표시가 동그랗게 박혀있었다. 멀리 7~8개 정도였던 붉은 표시가 20~30개로 늘었다.
‘뭐지? 고장인가?’
20~30개였던 표시가 순식간에 50~60개로, 나중에는 HUD 전체가 붉은색에 물들었다.
‘어? 어어?’
붉은 물결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백정이랑 엘리베이터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최!]귓가에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김 양은 반사적으로 최루탄을 뽑아 던졌다.
푸쉬쉬쉬쉭!
흰 연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뿜어지는 하얀 연기. 앞이 보이지 않게 짙은 안개. 멍하니 하얗게 변하는 복도를 바라보는 순간, 백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잘하자.]“어. 응.”
‘착하게’ 정신이 돌아온 김 양이었다.
[쥐새끼들은? 도망갔냐?]붉은 물결로 넘쳤던 HUD 화면이 점차 정상적으로 변했다. 바닥에 남은 주황색, 붉은색 잔상들은 서서히 식어가는 쥐새끼들을 의미했다.
“갔음.”
[워낙 변해서 안 통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 총알은 어때? 얼마나 남았어?]김 양의 눈동자가 데굴 표시창을 살폈다.
“420발 정도?”
[···420발? 하- 배터리는?]그러니까.
“38%”
[아- 이거 참.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건 그랬다. 이 고생을 했는데, 아무것도 못 건지면 화났다. 김 양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근데 백정은 어딨는 거지?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려 확인해도 잡히는 게 없었다.
[쥐새끼, 고양이 말고 다른 놈은 없었고?]“없었음.”
[이상하네. 뭔가 있을 법한데··· 쥐새끼들 때문에 딴 곳으로 갔나?]“······.”
[일단 엘리베이터로 와.]“알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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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엘리베이터에 비상키를 꽂았다.
안내 방송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왔다. 비상 전력이 살아있다는 의미.
그렇다면 15층에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전기가 있다는 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장비가 유지되고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난방과 상수도만 작동하고 있어도 생존자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위잉- 위잉-
기계음과 함께 엑소슈트를 장착한 김 양이 도착했다. 여기저기 뜯기고 까진 흔적이 가득했지만, 장갑이 뚫린 곳은 없었다.
“이상한 건 없었고?”
“없었음.”
“헬멧 다시 써. 돌아갈 때까지 벗지 말고.”
[알겠음.]엘리베이터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위로 향했다.
“일단, 난 은신해 있을 테니까. 너도 준비하고 있어.”
마루의 말에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문이 열리자마자 창을 찔러댄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총을 갈겨댈지 몰랐다.
김 양의 엑소슈트는 방탄 성능이 뛰어났지만, 그것도 소구경 화기에나 통하는 말이었다. 중기관총에 철갑탄이라든지 열화우라늄탄을 넣고 쏜다면 100% 막는다고 보긴 어려웠다.
김 양은 작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체인건을 쏠 준비 했다. 여차하면 긁어버릴 태세. 마루는 은신 로브로 몸을 감춘 뒤, 감각을 집중했다. 건너편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정신을 집중했다.
뭔가 살짝 거슬리는 느낌.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달하는 순간. 거슬렸던 느낌이 순식간에 살기로 변했다.
[띵! 문이 열립니다.]“쏴!”
투다다다다다닥!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체인건이 총알을 퍼부었다. 7.62mm 철갑탄이 엘리베이터 문짝을 종잇장처럼 뚫고 찢었다. 너덜거리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고통 섞인 괴성이 터졌다.
크어어어어억!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변종의 몸뚱이에 철갑탄이 틀어박혔다.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도 팔을 뻗는 변종. 비대하게 부푼 근육과 과할 정도로 커진 덩치가 김 양이 들고 있던 작은 방패를 낚아챘다.
일렁거리는 공간 속에서 빠져나온 검은색 실선이 변종의 팔뚝에 그어졌다.
팔뚝에 생겼다 사라진 검은색 실선 위로, 삐져나온 검붉은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더니, 숯불 위에 얹어진 조개가 쩍 벌어지는 것처럼 팔뚝이 갈라졌다. 툭- 잘린 팔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어?
가슴과 배에 10발 넘게 맞고도 달려들었던 변종이 주춤주춤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김 양이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체인건 총구가 배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변종의 머리통을 향했다.
빠다다다다닥!
머리통을 향해 쏟아진 철갑탄. 몇 방을 버티나 싶더니 이윽고 폭발하듯 산산 조각나는 변종의 머리통.
김 양은 재빨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HUD에 표기된 붉은 기운. 많지는 않았지만,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3마리 3시 방향. 1마리 9시 방향. 접근.]“3시 섬!”
마루의 목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김 양이었다.
[3시! 섬!!!]섬광탄 3시 방향에 까 넣은 김 양이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김 양은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번쩍!
쓰커커커커커컥!
강력한 빛과 소음에 HUD 센서가 잠시 먹통 됐다. 치직- 다시 서서히 작동하는 화면,
눈을 부여잡고 있는 변종. 팔을 앞으로 내 뻗은 상태로 서 있는 변종, 그리고 막 앞으로 달려오던 변종이 있었다.
김 양이 급하게 체인건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달려오던 변종의 몸통이 상하로 분리됐다. 이어 팔을 앞으로 내 뻗은 변종의 팔이 떨어지고, 이어 목이 떨어졌다. 눈을 부여잡고 있던 변종의 정수리에 검은 실선이 삐죽 생기더니 그대로 좌우로 갈라졌다.
후두두둑— 철푸덕—-
‘어?’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쳤다.
‘9시!’
오른쪽을 향하던 체인건을 왼쪽으로 돌린 김 양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중에서 X자로 잘려 4토막으로 분리되고 있는 변종의 몸뚱이였다.
4조각으로 갈라진 틈으로 일렁거리는 모습이 사라졌다.
두근두근두근 심장 터질 것 같았다.
자동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엑소슈트 안이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가, 사포로 피부를 문지른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 양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쭉 빠졌던 손이 서서히 돌아왔다.
‘응. 착하게 잘하자.’
끄덕.
엑소슈트는 개뿔.
후- 깊게 숨을 내쉰 김 양이, 왼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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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기설기 용접한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은 변종의 옆구리에 칼을 휘둘렀다.
부확!
칼날이 변종의 가죽을 파고들었을 때 느껴지는 반탄력. 이건 피부가 아니라 가죽이었다. 거대 고양이나 개, 쥐새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긴 가죽.
가죽을 베고 들어가자, 빡빡하게 엮인 근섬유가 칼날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육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근육이었다.
근섬유를 찢은 칼날이 뼈에 닿자, 강한 반발력이 생겼다. 어설프게 휘둘렀다가는 튕겨 나갈 정도로 강한 반발력과 탄성. 하지만 마루가 휘두른 칼날은 모든 것을 무시하고 절단했다.
‘이 새끼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군.’
15층.
혹시라도 헬기를 통해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도망친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곳. 1층 접수처와 중앙 로비에 널려있던 흔적들은 전부 이놈들의 작품이었다.
기갑병 정도나 이놈들과 비벼볼 수 있을까. 김 양이 타고 있는 엑소슈트 출력으로는 백병전은 힘들어 보였다.
크하아아아아! (어디냐! 어디야!)
입을 벌려 고함치는 것의 주둥이에 칼을 박은 마루가 수평으로 칼을 뽑았다.
목뼈를 꿰뚫은 칼날이 옆으로 빠져나가자 쩍 벌어진 목.
변종은 목이 반쯤 잘렸음에도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마루를 찾아 몸부림쳤다.
은신 로브로 몸을 감춘 마루가 끝장을 보려는 순간.
치-익-
“거기 비켜!”
허스키한의 여자 목소리와 함께, 바리케이드 한쪽에서 삐져나온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