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66)
러스트 [RUST]-166
마루는 액션 캠에 저장된 영상을 김 양의 엑소슈트로 전송했다.
“거기 나온 사람이 저번에 말했던 유 이사 맞아?”
“???”
처음 마루에게 총을 겨눈 것부터, 스치고 지나가기까지의 과정을 본 김 양이 온몸으로 초롱초롱을 시전하고 있었다. 돌렸다 다시 보고 느린 화면으로 또다시 보는 김 양.
“아니 아직도 보고 있어? 빨리 보라니까. 뭐가 그렇게 볼 게 있다고 되감기하고 그러는데?”
“!!!”
김 양이 반복해서 보고 있는 장면을 슬쩍 보니, 유 이사가 마루에게 총을 겨눴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이거 지금 날 엿 먹이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그 여자 때문에 짜증 났었는데, 꼭 봐도 그 장면만 돌려보고 있었다.
“그 사람 유 이사 맞냐고?”
서늘하게 공기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영상을 반복 돌리던 김 양이 화들짝 멈추곤 고개를 끄덕였다.
[맞음.]“홍 과장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며? 저게 그렇게 보이냐?”
어? 콜트 파이슨에만 집중했던 나머지 유 이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급히 유 이사를 따져보던 김 양이 중얼거렸다.
[딸인가?]“너 지금 장난하냐?”
머리에서 슬슬 수증기가 피어오를락 말락 하기 시작했다.
[아님. 진짜 아님. 정말 어려 보여서.]“그게 무슨 말이야?”
[유 이사 나이 많은데.]나이가 진짜 많았다. 걸프전에 이라크전, 아프간까지 갔었으니까. 근데 저렇게 팽팽하고 팔팔하다고? 싱싱하다 못해 싱그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가 묻잖아. 저 여자가 유 이사 맞냐고.”
김 양은 당혹스러웠다. 얼굴 흉터를 보거나 얼굴 형태는 확실히 유 이사 같은데, 피부도 그렇고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20년 그 이상 젊어 보였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 꼭 저런 얼굴이었다.
[맞는 거 같은데.]‘맞음.’이 아니라, 맞는 거 같다? 마루는 숨을 들이켰다.
“좋아. 그렇다고 치고. 저 여자 원래 저런 성격이냐?”
[무슨 성격?]“너 지금까지 뭘 보고 있었냐?”
마루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김 양이 재빨리 판단했다. ‘아. 이건 아님. 피하자.’
뀨이이잉- 모터 소리와 함께 엑소슈트가 슬그머니 옆으로 피하려고 했다.
스르르르릉-
“스톱. 원위치.”
끼이이잉- 기계음이 가라앉았다. ‘대체 뭘. 왜?’ 김 양은 마루가 뭘 묻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부분이 그런 건데? 성격이 어쨌다고? 웃은 거? 웃지 말아야 했나? 웃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활짝 웃고 있는데? 좋은 거 아닌가?
[웃은 거?]마루의 관자놀이 부근 혈관이 툭 붉어졌다.
“아- 진짜.”
칼끝이 부르르 떨리더니,
푸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콱!!!
병실 벽이 길게 썰렸다. 수평으로 쫙 그어진 칼날이 철근콘크리트를 헤집고 나왔다.
부칵! 서걱! 후각!
기괴한 절단음이 센서로 증폭돼 헬멧으로 들어왔다. 김 양은 눈을 꾹 감았다. 잠시 뒤, 순식간에 벽 하나를 통째로 회를 뜬 마루가 조금 분이 풀린 듯 칼을 칼집에 넣었다.
조신하게, 착하게 가만히 옆에 서 있던 김 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밥부터 먹고 해.]난 아까 먼저 먹었잖아.
백정 신경 날카로운 거 보니까 혈당 떨어져서 그런 게 분명했다.
응. 맞아. 아까부터 예민한 이유가 있었어.
“······.”
어이없이 바라보는 마루를 향해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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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 5개를 까먹고 흥분을 가라앉힌 마루는 김 양이랑 대화를 시도했다.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말을 하면, 착하게 들으려고는 하니까. 마루는 영상을 보면서 설명했다.
“여기 봐. 유 이사 웃는 거. 눈은 웃지 않고 있으면서 입만 웃고 있지? 이거 진짜로 웃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이상한 거 아니냐고 한 거야. 알겠어?”
[······.]“그리고 이 부분. 내 속을 긁는 부분 있잖아. 저기 총에 손댄 거 보여? 도발하는 거잖아. 내가 빡쳐서 썰어버리면? 위에 CCTV 있지? 저기에 다 찍힐 거 아니야.”
[······.]“여긴 후드도 없잖아. 너도 해킹 못 하고 그러니까 바로 미군 애들이 보고 있다고. 그런데 내가 썰어버리면? 그 영상 다 까발려지면? 나만 엿 먹은 거잖아. 근데 내가 미친 척하고 토막 치면 어쩌려고? 목숨 줄이 2개인가? 그래서 성격이 어떠냐고 물어본 거야.”
[······.]어··· 왜 성격이 문제지?
김 양은 마루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살짝 봤다. 성격 좋으면 안 썰려고? 성격에 따라서 썰고 안 썰고 그러나? 근데, 한 번 딱 보면 알 수 있는 건가?
“원래 그런 여자다. 성격이 본래 그렇다. 그러면 이해를 해, 근데 본래 성격은 저렇지 않다. 그러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 그 이유가 뭘까?”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김 양은 깨달은 느낌이었다.
“유 이사가 본래 저런 식으로 도발하고 뒤 없이 막 나가는 성격이야?”
[살짝 미친년임.]마루는 김 양의 증언을 인정했다. 성격이고 나발이고 미쳤으면 그걸 끝이지. 그렇구나. 하긴 옳지 못해 보이긴 했었다.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는 저런 얼굴이고?”
저게 보통 아닌가? 다들 저렇지 않나? 정상 같은데? 뭐가 문제지?
김 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원을 그린 뒤, 아랫부분에 이렇게 ‿ 호선을 그린 모양.
[이거 무슨 표정임?]“스마일? 웃는 표정이잖아.”
그 옆에 다시 원을 그리는 김 양. 원 속에 길쭉한 눈 두 개를 0 0 이렇게 그리곤 입 부분에 끝이 위로 올라가는 호선을 그린 뒤, 마루를 쳐다봤다.
[이건?]“이것도 스마일.”
[그럼 얘는? 스마일 맞지?]“······.”
김 양이 마지막으로 그린 건. 동그란 원에 점 두 개로 눈을 찍고 입을 호선으로 그린 모양이었다. 눈이 있든 없든, 눈 모양이 어떻든 스마일은 스마일이라는 소리.
마루는 순간 현타가 왔다.
‘그 표정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이상한 건가?’, ‘멀쩡하게 미친년을 정상인 취급한 건가?’, ‘대체 난 뭘···.’
그런 마루에게 김 양이 말했다.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이상함.]“···뭐가?”
[어려진 거 같음. 이상할 정도로.]“월드 이사니까 수술이든 시술이든 했겠지.”
마루는 그냥 진이 빠졌다.
[아님. 확실히 이상함.]“······.”
김 양이 다시 영상을 틀었다. 액션 캠에 맨 처음 찍힌 부분. 그러니까 빈 총으로 유 이사가 마루를 겨누고, 마루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사선을 피했던 부분이었다.
“이게 왜?”
[정상적이지 않음.]김 양은 느린 화면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총을 뽑고 순식간에 2번 쏘는 모습. 시간을 확인해 보니 0.016초. 세계에서 제일 빠른 총잡이라고 불린 사람도 0.02초에 2발이라고 했다.
고작 0.004초 차이가 아니었다. 10초와 9.996초는 전혀 다른 세계였고 8.996초와 9초는 더 큰 차이였다. 무엇보다도 유 이사의 나이가 문제였다.
종합격투기든 양궁이든 뭐든 몸으로 하는 종목 가운데, 세계챔피언이었던 50대와 현역 20대 세계챔피언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생명체라면 극복할 수 없는 노화. 그에 따른 육체 능력 저하는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나 봐줬을 때보다 훨씬 빠름.]“널 봐줘? 너 유 이사한테 배웠어?”
마루가 김 양을 봤다. ‘혹시 그 스승에 그 제자?’, ‘그래서 김 양이 좀 안타까운 건가?’
[처음에 이야기하지 않았음?]“언제?”
[처음에?]“아니··· 됐다. 그래서. 유 이사가 예전과 다르다는 거지?”
[다름.]단호하게 말하면서도 뭔가 묘하게 전투 오라를 뿌리고 있는 김 양의 모습. 자기 입으로 이상하다고 해놓고도 의욕이 넘쳐? 싸우면 김 양이 질 거 같은데? 왜 의욕이 넘치는 거지? 진짜 이해하기 힘드네.
[유 이사가 먼저 칠 것 같음?]“그건 아닌데.”
스카우트하려고 했으니, 먼저 때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빈 총 도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살짝 미친년이 발광했을 뿐인데 거기에 열 낸 자신이 월월이었다.
[그럼 우리가 선빵??]“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럴 이유가 없네.”
신경 좀 긁었다고 썰어버리면 뭐가 되나?
따져보면 예민한 게 맞았다. 월드 이사라는 년이 다짜고짜 총으로 겨눠 빈정 상했고, 전부 피하지 못하고 한 발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난 게 사실이었다. 거기에 살살 긁기까지 하니 반쯤 빡친게 맞았다.
김 양이 내뿜던 의욕적인 전투 오라가 칙칙한 실망 오라로 변했다.
“왜? 유 이사랑 싸워보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다시 전투 오라를 회복하는 김 양.
“총 쏘는 거 봐줬다면서?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스승님 아니야?”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음.]엑소슈트도 있겠다. 그냥 냅다 달려들면서 체인건으로 갈겨 버리면 어쩌겠음? 히죽- 김 양이 웃는 모습이 느껴졌다.
“칼린 씨. 블라디마루 칼린 씨.”
병실 밖에서 마루를 찾는 소리가 났다. 마루가 밖으로 나가면서 김 양에게 말했다.
“복잡한 사제관계는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고. 일단 먼저 냅다 쏘는 건 금지.”
[······.]아니 왜 나만?
영상 보니까 너님도 여차하면 썰려고 하지 않았음? CCTV 안 걸리게 생각하고 쏘면 되지 않음? 증인이 없으면 깨끗한 건데?
김 양의 호소 눈빛은 엑소슈트 헬멧에 가려져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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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쿨럭-
길버트 브라운 중령은 입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 묻은 검붉은 피. 화산재와 먼지, 연기도 견디기 힘든데, 바이러스까지 폐를 공격하고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남은 병사들이라도, 구한 사람들이라도 살려 보내는 것.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합중국을 위해, 합중국의 명예를 위해 불태우리라.
“그래 블라디마루 칼린이 제안한 작전. 가능성 있겠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이 제일 현실적입니다.”
마루가 건의한 방법. 바로 전선을 이용해 내려가는 방법이었다. 15층에서 저쪽 아래 나무들에 전선을 연결,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어떨까? 줄을 많이 걸면 거는 만큼 빠른 탈출이 가능했다.
문제는 탈출하다 발각될 경우였다.
그냥 미친 자들과 달리, 뇌와 심장을 먹은 변종들은 지능이 좋았다. 놈들은 어장 안에 있는 고기들이 도망치는 것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분명히 공격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엔 밖으로 따라나올 위험도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전부 탈출할 때까지 놈들의 이목을 끌고 후방을 지켜 줄 팀이 있어야 했다.
먼저 자리를 잡은 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밖에 사람들이 모일수록, 주변의 괴물들에게는 뷔페가 차려진 꼴이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다면 전진기지에서 출발한 구조대가 자리를 잡고 지원해주겠지만,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오롯이 이쪽 병력으로만 버텨야 했다. 그것도 5m 가까이 쌓인 눈 속에서.
“칼린 씨가 오셨습니다.”
“모시게.”
쿨럭- 쿨럭-
손수건에 대고 힘겹게 기침한 브라운 중령이 지형도를 살폈다. 호수가 있고 공원이 있었다. 그쪽에 있는 나무들이 굵어 가능성 있었다.
“이쪽에 공원 방향에는 뭐가 있었지?”
“거대 쥐와 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병원 안쪽으로 들어왔겠군.”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를 생각하면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변종과 동물들을 병원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커졌다. 브라운 중령이 지켜보고 있던 마루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마루도 지형도를 살폈다. 중령의 말대로 인근에 있는 변종과 동물들이 병원으로 모여들었다면 탈출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다만, 그 경우 마지막까지 남아 어그로를 끌어야 할 팀은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변종들이 생각보다 똑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탈출한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면 정말 쉽지 않았다.
거기에 숫자가 많은 거대 쥐나 고양이는 어떻게 할 건가? 이것들까지 병원에 잡아두려면 한곳에서 방어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숨바꼭질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엑소슈트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내구성 문제도 그렇지만,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서 어렵습니다.”
즉답하는 마루였다. 엑소슈트 달랑 한 기로 변종들과 드잡이질? 근접전에 들어가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지분해가 될 게 분명했다.
3.5m 크기의 기갑병도 장갑 다 뜯기고 해체되는데 그보다 훨씬 경량급 기체인 엑소슈트가 어떻게 버티겠나?
“광학 은신 로브를 이용하면 어떤가?”
“어그로를 끌 목적이라면 맞지 않겠군요.”
혼자서 차근차근 썰기 시작한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근데 위험을 무릅쓰고 그럴 이유가 있을까?
마루의 대답에 브라운 중령이 무겁게 말했다.
“나는 맨 마지막까지 있을 걸세.”
“······.”
그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