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8)
러스트 [RUST]-18
한 형사의 눈에 보인 건 토막 난 시체들이었다.
토막 난 시체를 살피는 한 형사의 표정은 심각했다. 한 형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흔적이었다.
‘시체와 함께 뒤에 있는 사람까지 한 번에 절단했다.’
근데 그게 가능한가? 왼팔 뼈를 자르고 왼쪽 갈비뼈와 척수를 자르고 오른쪽 갈비뼈와 오른팔 뼈를 자른다. 그렇게 자르고 지나간 힘으로 다가오는 시체와 그걸 든 피해자를 연속해서 잘랐다?
이게 뭐지?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오는 단분자 커터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게 순식간에 토막을 친 범인이 한 발 굴러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핏물 묻은 발자국을 보면 그랬다. 한걸음에 무려 10m가량을 이동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1초에 10m가량을 주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에는 4~5m 정도를 주파한다.
근데 한 번 튀어 나가니까 10m? 제자리에서? 멀리 뛰기도 아니고? 슈퍼 솔져? 뭔가 유전자 조합 생체병기? 생각이 복잡했다.
더 무시무시한 건 그 10m를 가는 동안 칼날이 닿는 범위로 짐작되는 곳은 전부 절단됐다는 사실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뛰었다고 치자, 부웅- 날라서 1초 만에 10m를 이동했다. 그 붕 뜬 1초 동안 사방으로 칼질하면서 이동했다고?
한 형사는 불가해한 현장을 보자 두통이 생겼다. 과학적으로 그래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전복 된 자동차를 들어 올렸다는 이야기, 분명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현실이었다.
그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무슨. 초 단위로 사람을 뼈째 썰어버리는 게 인간이 가진 숨은 능력이라고?
한 형사의 걸음걸음마다 토막 난 시신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방검복을 입고 있어 한 방에 자르지 못하자 바로 머리를 쪼개고 목을 쳤다.
뒤에서 테이저건을 쏘는 걸 피하면서 테이저건을 쥔 두 팔을 잘라 냈다. 머리가 그렇게 쉽게 쪼개지고 목이랑 팔이 이렇게 쉽게 잘리는 건가?
‘테이저건을 쏜 피해자가 둘, 둘 다 쏘지도 못하고 겨누는 순간 절단됐고, 가스총도 마찬가지, 눈이 뒤통수에라도 달린 건가?’
조폭 새끼들이 테이저건은 무슨 테이저건, 손에 익은 걸 써야지.
그렇게 흔적을 따라간 곳.
촬영장의 중앙. 매트리스 앞. 핏방울이 튀었는지 매트리스 인근에는 230~235mm 정도의 발자국이 있었다. 여자의 발자국. 범인은 이 여자를 구하러 왔을 것이다.
‘조폭 새끼들 대체 어떤 놈의 여자를 건드린 거야?’
한 형사는 이 범인을 찾는다고 해도 검거가 가능할까 짚어봤다. 장거리에서 저격해 사살은 가능해도, 생포하겠다고 접근하면 대량 학살이 터질 뿐이었다.
웅- 웅-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한 형사님, 저기 우리 그 약 신고 했던 사람 기억하시죠?]자신의 과거와 겹치는 듯한 느낌에 오지랖을 부려봤던 청년이 떠올랐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확실히 났다.
“어- 그래. 하마루였지 그 사람.”
심지가 곧은 청년이었다. 대개 부모나 친지가 약에 빠지면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다가 주변 인물까지 약을 하게 되거나, 치료가 너무 늦어 약물 중독이 더 심해지고 이후 가정파탄까지 가는데, 그 청년은 단칼에 모친을 119에 신고해 마약을 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거기 그 사람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팀에서 초동수사를 해서 그쪽 경찰서에서 이쪽으로 연락했는데. 어떻게 하죠?]“정말 오늘따라 지랄이 풍년이네. 여기 제보 받은 지하 창고만 확인 정리하고 바로 출발할 테니까 현장 건드리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 그래.”
한 형사는 현장에 제일 처음 가는 것을 선호했다. 감식반이 바글바글하면 방금과 같은 감각이 죽었다. 그러니 뭔가 단서를 찾으려면 감식반이나 지역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돌아다니기 전, 사건 현장을 보는 것이 베스트였다.
한 형사는 제보 받은 곳으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대형 냉장고 속에 지하로 가는 비밀 문이 있다고 했다. 정말 대형 냉장고 구석이 이상했다. 한쪽 벽면에 달린 번호키.
“번호가 0492라고 했지.”
한 형사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치익-소리와 함께 벽면이 통째로 열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넓은 계단과 그 옆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 짐을 내리거나 올릴 때 컨베이어 벨트에 놓으면 되니, 이곳에 뭐가 있을지······.
창고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스티로폼? 이걸 왜 여기 쌓아놨지?”
반투명한 들통에 걸쭉한 용액이 담겨 있었다. 혹시 마약 원료? 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휘발유 냄새가 톡 쐈다. 칙칙한 색의 분말가루가 보였다. 뭔가 금속? 가루와 녹다 만 스티로폼 건더기가 엉겨있었다.
“이게 뭐야?”
휘발유, 등유, 식용유에 신나, 에탄올, 벤젠까지 쌓여있는 곳을 지나자 유리로 된 장식장이 있었다.
골동품도 있었고, 뭔가 유물? 느낌이 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마약과 연관된 것은 없었다. 신나 벤젠 에탄올이라면 마약 제조 과정에 사용될 법한 것들이지만, 이게 전부라면 유물관리부가 와야 할 곳이었다.
한 형사는 벽면을 따라 걸었다. 골동품과 유물 지역을 벗어나자, 무기들이 보였다. 도검류, 총화기류가 벽에 전시되어있었다. 여기저기 빈 곳도 많았지만 걸려 있는 양이 워낙 많았다.
“하- 새끼들, 이런 게 있으면서 테이저건 쓰겠다고 하다가 썰린 거야?”
그리고 바로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유리로 된 밀실 속. 한 형사가 찾고 있던 그 약이 있었다. 유리로 된 밀실과 유리로 된 보관함. 그 안에 반투명한 크리스털 느낌의 알갱이들이 투명한 병에 담겨 있었다.
한 형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순경, 여기 찾았다. 애들 좀 보내고, 넌 하마루씨 그 집 살인사건 그쪽으로 먼저 출발해라 난 1~2시간 정도? 그쯤이면 여기 정리되니까, 바로 따라 올라갈게. 그래. 그쪽에서 어떻게 하는지 살피고, 그쪽에서 뭘 물어봐도, 우리도 현장을 봐야 안다고 무조건 말 돌려. 꼬투리 잡히지 말고.”
[예. 그럼 전 먼저 올라가겠습니다.]한 형사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삑-삑-삑- 하는 전자음이 들렸다.
“응? 뭐지?”
삑?삑?삑-
삑삑삑삑삑
한 형사는 무선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나가. 전부 대피해. 폭발물이 있다!”
“무조건 몸부터 빼. 전부!! 지금 당장!!”
점점 빨라지는 전자음. 마치 시한폭탄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한 형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왔다.
창고 밖으로 몸을 빼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폭음과 함께 불꽃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이런 썅-”
계단을 타고 올라온 불꽃이 작업장까지 옮겨붙었다. 마치 인화물질을 뿌려둔 것처럼 사방으로 번지는 불길.
소화기를 찾던 한 형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밖으로 탈출했다. 돼지를 잡는 냉장 작업장이니, 사실상 거대한 냉장고나 마찬가지였다.
“증거. 씨발!! 눈앞에 증거들이 쌓여있는데.”
마약 유통의 증거였다. 수천 억대 마약 사건의 증거였다. 서류도 있을 것이고 서류가 아니라면 컴퓨터 파일이라도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 그게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그 불꽃을 보며 한 형사가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내 증거. 증거들!!”
넋 놓고 있던 한 형사가 미친 듯이 119를 눌렀다.
“뭐요? 개천 다리가 무너졌다고요? 아니, 아까 30분 전에 그 다리를 건너왔는데 그게 왜 무너집니까? 방금 무너졌다고요? 그래서 소방차가 건너올 수 없다고요? 여기 전부 다 타게 생겼는데 산불 끄는 소방헬기 없습니까? 산불 소방헬기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헬기는 위에서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고요? 지금···.”
월드파 이 새끼들이 꼬리가 잡히니까 자른 건가? 아니면 뭐지? 여기를 감시하고 있는 놈이 있지 않고서야, 불이 나더니 다리가 끊겨? 한 형사의 신경이 뚝 끊겼다. 속에서 울분이 터져 나왔다.
“씨바아아아아아아알!!!!!! 개 좆 같은 새끼들이!!!!!! 날 가지고 놀아!!!!!!!!!!”
다른 곳에도 뭔가 장치가 있었는지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증거든 현장이든 몽땅 날아갔다. 남은 건 잿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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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 김 양은 쌍안경으로 아래를 감시하고 있었다.
꾹- 격발기를 누르는 김 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 양은 다시 쌍안경을 아래로 향했다. 부어오르기 시작한 오른손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퉁퉁했다. 움직이는 것도 둔하고. 김 양은 눈물이 찔끔 났다.
회사에서는 혹시라도 꼬리가 밟히면 소각처리 할 수 있게 장치를 해놨다. 시한신관으로 불을 붙일 수도 있고, 무선을 이용해 원격으로 격발을 시킬 수도 있었다.
증거 인멸하겠다면서 당장 불을 싸지르자고 하는 마루를 뜯어말리고, 발화 장치가 있으니 그걸로 하면 된다고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혼내주고 싶었다.
‘아픈 사람한테 이런 거나 시키고.’
그래도 회사의 눈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려면, 불 지르는 게 맞으니까. 마루가 어설프게 불 질렀다가 다 타지도 못하고 진화되면 그게 더 골치 아팠다.
경찰이 방화에 휘말리면 그렇지 않아도 꼬였는데 더 꼬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경고음을 최대로 해 놓고, 이상함을 느낀 경찰들이 밖으로 피하면 그때 발화 신관을 작동하기로 했다.
‘먼저 신고를 해야지.’
‘그냥 후딱 불 지르고 잠수 타는 게 확실하지 않아?’
‘그러면 당장 나랑 당신이 용의선상에 오를 텐데?’
‘전부 불 지르면 나도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거기 인화물질도 엄청 많고, 사제 네이팜? 그런 것도 있어서 온도가 진짜 많이 올라가니까 전부 녹는다고 했어.’
‘사제 네이팜?’
‘응. 휘발유랑 알루미늄 가루랑 뭐랑 또 뭐랑 섞으면 된다고 하던데?’
마루는 그 뭐랑 이랑 뭐는 뭡니까 하는 표정이었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간 걸 어쩌라고?
‘어쨌든 애먼 사람들 다치지 않게 저기 뒷산에서 보고 있다가 무선으로 해.’
‘알았어. 그럼 너는?’
마루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봉지를 열어보니 5만 원 뭉치였다.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바로 은행으로 가서, 계좌에 있는 돈 현금으로 전부 빼. 회사나 경찰에서 혹시라도 추적 들어가면···. 아니다. 은행에 있는 돈은 잊어. 그걸 전부 빼면 바로 의심 살 수 있을 테니.’
‘나 은행에 돈 많은데?’
‘얼만데?’
‘한 2억은 있을걸?’
‘그 봉지에 들어있는 게 한 1~2억은 되니까 은행은 잊어. 당장 은행에 있는 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여기일 다 해결하고, 우리가 외국으로 안전하게 뜨든 한 뒤에 찾으면 되잖아. 지금은 잊어.’
‘아-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데, 이번엔 박력이 쩔었다. 확실히 묵직한 돈으로 박력하니까 뭔가 와닿는 느낌이었다. 김 양은 검은 비닐봉지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마루를 생각하던 김 양이 쌍안경을 내리며 말했다.
“아 나왔다.”
불꽃이 올라오는 현장. 마지막에 나온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 내 증거. 증거들!!”
뒷동산 중턱까지 들리는 절규였다.
“아- 맞다- 개천 쪽 다리도 끊으라고 했지.”
119 와서 불 끄면 안 되니까. 김 양은 무선 격발기를 꾹 누르곤 동산을 넘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까 그 형사가 지르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목청 좋았다.
“씨바아아아아아아알!!!!!! 개 좆 같은 새끼들이!!!!!! 날 가지고 놀아!!!!!!!!!!”
경찰도 안 죽고 형사도 안 죽고, 이걸 계획대로라고 하는 건가?
어쩐지 비닐봉지가 묵직한 느낌이었다.
팔이 괜찮았으면 양손에 묵직함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오늘 저녁은 한우 투플로 할까? 팔이 아프니까, 일단 삼계전복죽 특부터 하는 게 좋겠다.
김 양의 발걸음 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울 기세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