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85)
러스트 [RUST]-185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슬슬 움직이는 그림자.
“어떻게 알았대?”
어둠에 녹아든 그림자는 눈으로 알아채기 힘들었다.
하지만 놈도 이쪽을 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
치지직- 띠-띠-
10%가량 남았다던 배터리가 갑자기 1%로 확 떨어지더니, 마루의 은신이 서서히 깨져나갔다.
“······엿을 먹이네. 하?”
어이가 없어서.
“아재요. 이걸 어쩌나? 빠데리 나갔나 보네.”
킥.
“이제 아재는 훤히 보이고, 난 안 보이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마루가 팔을 빙빙 돌려봤다. 팔이 뻐근한 걸 보니, 살살한다고 했는데도 인해전술 써느라 무리한 것 같았다.
오버히트 되기 전에 중화제 하나 박는 게 낫겠는데? 어지간하면 안 썼는데, 저 새끼 하나만 있다는 보장도 없고.
외투에 손을 넣은 마루가, 중화제를 꺼내 슬며시 허벅지에 박았다. 약간 쑤시고 달아올랐던 팔다리가 시원하게 풀어졌다.
“지금부터 이건 다 아재 잘못이다?”
“······.”
“아저씨는 그냥 보내라고 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진짜라고.”
아재를 그냥 보내야, 중국 애들 눈 돌아가서 추격하고, 미군 애들 발광하고 아재는 그렇게 똥을 싸고.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했단 말이야.
“아재가 칼질하는 거 보고 진짜 기대 많이 했거든. 괴물은 잘 써는데 과연 사람도 잘 썰까? 그거 있잖아. 몹은 잘 잡는데 PVP는 좆망인 캐 말이야. 아재는 그런 캐 아니겠지?”
“야. 주둥이 그만 털고. 누가 시켰냐?”
그림자는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제법 빠른 움직임.
“눈치 없는 아재가 그냥 조용히 갔으면 됐는데. 이렇게 찔러달라고 애원해 버리면 그냥 보낼 수도 없고.”
“가다마냐?”
빙글빙글 지그재그 움직이던 그림자가 살짝 움찔했다.
“어이어이-어이- 아재요. 진짜 더럽게 눈치 없네.”
‘그런 건 알았어도 입을 다물어야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기척이 사라졌다.
?!
실실 간 보듯 찔러대던 살기마저 깔끔하게 증발했다.
말 그대로 감각에서 벗어났다? 뭐야 이 새낀?
이런 놈이 있었다고?
능력치 올라간 사람들 서른다섯이나 있다며?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
잊고 있던 옛 애인을 떠올린 것처럼 박동이 빨라졌다.
위기감 때문?
아니면 썰만한 놈이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튀어나와서 반가운 건가?
그딴 거 알게 뭐냐.
스르르르르릉-
일단 저 새끼 귀부터 좀 다듬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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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르르릉-
느릿하게 칼을 뽑는 아재.
‘존나게 폼 잡네.’
킥
웃음이 끝나기도 전, 아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짓누르는 것 같은 감각···
캄캄했던 세상이 하얗게 반전했다.
나카소네 류세이는 구원을 믿지 않았다.
중3 졸업식이 가까웠음에도 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소한 몸. 약한 체력은 졸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적들에게 가문이 견제당하면서, 류세이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지메에 시달려야 했다. 사립 명문 중학교임에도 집요하게 이어지는 괴롭힘. 더 끔찍한 것은 그대로 고등학교에 같이 진학하게 된다는 것.
에스컬레이터 진학이라는 독특한 진학 방식 때문에,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그대로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좋았다면 도피성이라고 할지라도 유학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유학 논의는 없었던 일이 됐고, 류세이는 벗어날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게 되었다.
그렇게 괴롭힘 때문인지 의료진의 실수인지 모르지만, 다른 아이들이 한 번 맞는 주사를 두 번 맞고 말았다. 그 뒤 고열과 몸살을 앓고 몸이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은 그대로였지만 힘과 순발력이 달라졌다.
강하고 빠르게. 마치 기계체조 선수가 된 것처럼 몸이 움직였다. 충동을 견딜 수 없었다. 복수심을 누를 수 없었다. 본능대로 괴롭히던 놈들을 때리고 패고 짓밟았다.
놈들이 비는 모습을 감상하며 속이 뻥 뚫렸던 것도 잠시, 급격하게 늙어가는 얼굴. 주름이 지고 피부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능력 강화는, 원인 모를 조로증을 가져왔다.
그 끔찍한 순간 대재난이 터지고 말았다. 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성질대로 찌르고, 때리고, 겁탈해도 문제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금방 늙어 죽을 거 마음껏 살고자 했지만, 감염자들이 나오고 변종이 생겼다. 사람들의 뇌와 심장을 파먹는 괴물들, 거대한 쥐들, 고양이와 개까지. 류세이는 강화된 신체능력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도난 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미래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시간 속에서 가다마 키리코. 그녀를 만나고야 말았다.
그래. 그 순간 나카소네 류세이는 구원을 만난 것이다.
‘그 얼굴. 그 움직임. 정상이 아니군요.’
‘살고 싶은가요?’
‘고치고 싶은가요?’
가다마 가문에서는 늙어가는 몸을 회복시킬 약이 있다고 했다. 분홍색 약. 지금은 없지만, 거점을 만들고 연구시설을 다시 확보하면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번쩍—–
찰나의 순간. 류세이가 본 것은 주마등이었다.
하얀 시간이 다시 본래의 캄캄한 밤으로 변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 모를 죽음이 곁에 있었다.
????????????????
으- 아-아아아—-
성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죽는다. 안 돼.
아니야. 여기서는. 나는.
이렇게는···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달아올랐다. 전신이 타오를 것 같았다.
관절이 삐걱거리고, 눈꺼풀이 겹겹이 겹쳐진 공기에 찢어질 것 같았다.
아?아—아—
움직여! 움직여!! 더 빨리!!
피해에에에에엤—–
부화아아아악!
류세이는 이름처럼 움직였다.
하나의 유성이 되어, 추락하듯 몸을 비튼 류세이가 눈을 번뜩였다.
‘비었다. 몸통이.’
칼질한 뒤에 보이는 빈틈이 보였다.
아재의 빈 몸통에 칼을 꽂아 넣으면 끝이었다.
죽음을 피했으니, 이젠 죽음을 박아줄 차례.
‘이겼다.’
류세이는 마루의 몸통을 향해 오른팔을 찔러 넣었다.
쑤셔 넣고, 박아 넣어서, 찢고 헤집고. 죽어!!!
어?
섬뜩- 차갑고 서늘한 느낌에 몸을 뒤로 던져 뒤로. 뒤로. 뒷걸음질한 류세이의 눈에 들어온 무엇.
미군에게서 뺏은 나이프를 꽉 쥔 손. 익숙한 팔. 어깨부터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
치지지직- 잘린 은신 장비에서 전기 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서늘한 고통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아아아아악!
“내 팔. 팔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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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눈밭을 뒹구는 녀석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나 한쪽 떼주고 시작할까 했더니, 애새끼가 갑자기 빨라져서 덩달아 힘을 좀 써버렸다.
‘조금 더 옆으로 갔으면 반 토막을 내버릴 뻔했네.’
‘새끼 애매하게 빨라져서 놀랐잖아.’
빈틈을 찾았답시고 버둥거려서 이번에야말로 귀를 떼려고 했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아챘는지 뒤로 훌쩍 도망친 뒤 저 모양이었다.
“아아아악! 팔! 내 팔! 팔이···.”
“조용히 하고 지혈이나 해라. 우리 진득하게 할 얘기가 많은데, 그렇게 버둥거리다 훅 간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뒈지더라도 이야기는 하고 죽지 않으련?
마루가 천천히 류세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루에게서 떨어지려고 버둥거리던 류세이의 눈에서 독기가 솟았다.
“으아아악. 죽인다! 죽인다!! 죽여버린다!!!”
“······.”
구르면서 몰래 뺐는지, 류세이의 왼손에 들린 주사기.
투명한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류세이의 목덜미에 박히려는 순간. 검은 실선이 길게 늘어졌다.
????????????????
둥실. 류세이의 머리와 주사기를 든 왼손이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됐다. 그냥 가라.”
주인 잃은 팔과 몸을 떠난 머리통이 하얀 눈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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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카카카카칵!
체인건이 전방을 훑었다. 인해전술도 전술 나름이지, 중간중간 은신 장비 찬 애들이 껴 있어서 위태위태했다. 그나마 중간에 짱박혀 있던 화기 분대와 정찰 분대가 퇴각로를 지켜줘서 다행이었다.
[완전 극혐.]진짜 끔찍하다는 듯, 박스 탄창을 교체한 김 양의 HUD에 급속도로 접근하는 붉은 점이 잡혔다.
삐-이- 삑삑삑삑-
‘빠른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김 양은 유탄 발사와 중기관총을 갈길 준비를 시킨 뒤, 공격 자세를 잡았다.
‘응?’
백정이었다. 근데 왜 은신 장치 안 쓰고 오는 거지? 배터리 떨어졌나?
“어떻게 됐어?”
[30분 전에 온 애들이 마지막이었음.]“걔들이 꼬투리 잡지는 않았고?”
[?]“아. 내가 지휘관 암살범으로 몰려서. 숙소에 있던 애들 전부 난리가 아니었다. 그 뒤로 바로 습격당했고.”
[괜찮음?]백정 말고 거기 애들. 김 양은 진지했다.
“나 빠져나왔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쪽으로는 몇 명이나 왔는데?”
[47명. 부상자 11명 합해서 58명, 걷는 데는 지장 없음.]그건 다행이었다.
뺑이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 고생했는데 꼴랑 이거 살려 간다고 해야 하나. 일본에만 오면 왜 이 지랄이냐.
“그럼 바로 출발하자. 아주 지긋지긋하다.”
[해 뜨면 가지 않고?]“아니, 그냥 가자. 도시 쪽 조용해진 거 보니까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다.”
[···알겠음.]“그리고 피난민들 가운데 좀 이상한 애들 있잖아. 능력치 좀 올라간 사람들. 그 사람들은 없었냐?”
[안 왔음.]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찝찝한 새끼가 하나 있었는데, 가다마 가문에 붙었더라. 근데 피난민들 다 그쪽에 붙었다고 생각하면 능력치 올라간 35명도 그쪽에 붙었다고 봐야 하잖아. 붙지 않고 빠져나왔으면 탈출로 있는 이쪽으로 왔을 테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아- 35명이 아니라, 이제 34명.”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김 양은 34명으로 줄었다는 소리는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또 하나 썰고 왔다는 말. 그래 이것이야.
[응.]박자 늦은 김 양의 대답에 마루는 그러려니 했다. 중화제를 맞았더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는데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항구를 향한 행군이 시작됐다.
김 양은 최선두에서, 마루는 최후미에서 이동했다.
몇 번. 은신 장비를 한 추격대가 뒤쫓아 왔지만, 마루의 감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신품 은신 장비를 몇 개 상납한 뒤로는 추적이 뜸해졌다. 추적을 포기했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너희가 가봐야 뻔하다는 쪽.
[1시간 거리.]끼융끼융 다가온 김 양이 산자락 아래 펼쳐진 바다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 흔적은?”
[많음.]확실히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생존자가 많았다.
“괴수도?”
[괴수는 없음.]“이상하네.”
[?]사람이 많으면 괴수들도 모였을 텐데 말이지, 도쿄와 그 인근에서만 괴수 변이가 일어난 건가? 마루는 쌍안경으로 부두 인근을 점검했다.
텅 빈 부두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가지로 보이는 곳. 높은 건물 옥상에 피어오르는 연기로 보아, 제법 꽤 되는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것 같았다.
“중사님. 통신 가능합니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무전은 잡음이 심하지만, 가능합니다.”
화산 폭발의 여파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그나마 위로 올라갈수록 좀 나아진다는 것이 위안이랄까.
“어디까지 될까요?”
“지금이라면 7~10km까지는 됩니다.”
짧다. 수송선이 먼바다에 있으면 턱도 없었다.
“위성통신은 안 되나요?”
“그쪽은 먹통입니다.”
“일단 신호 보내보시죠. 내려갑시다.”
수송선이 대기하고 있겠다고 했는데, 없었다. 너무 먼 바다에 있지 않으면 좋으련만. 김 양을 선두로 60명의 병력이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다가설수록 군데군데 머리를 내민 건물 옥상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연기. 옥상에 있는 자들이 이쪽을 발견했는지, 비상구조를 의미하는 연막탄을 피워 올렸다.
한 줄기 붉은 연기가 오르자, 여기저기 뒤따라 피어오르는 연기를 묵인하고 항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렬. 구조든 상황 확인이든 항구에 도착한 뒤에 할 일이었다.
“신호입니다!”
[-칙? 치지직—]계속 반복해서 무전을 넣던 무전병의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했다.
“신호가 잡힙니다!
먹통이었던 무전기에 잡음 섞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치지지? 여기는? 수송선. SS 놀란—]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이예!!!”
“살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마루와 김 양은 영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