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86)
러스트 [RUST]-186
디트로이트.
새해가 됐는지 한 참이 지났는데도 밖에서 축포처럼 쏴대는 총소리에 간호사는 창문을 닫았다. 밝은 중심가와 달리 저 멀리 인적 없는 캄캄한 곳에서 불타오르는 폐가가 보였다.
지진, 쓰나미 때문에 사방에서 화재가 생겼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밀려드는 환자들, 코로나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하자, 미쳐 날뛰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때 일본은 불타고 있었다.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저주와 분노 그리고 비명뿐이었다. 그 당시 그곳에서 그녀는 항상 창문을 닫고 생활했다.
미국에 와서는 늘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오늘은 유독 시끄러웠다. 그래서일까? 창문을 닫자 아비규환이 벌어졌던 당시의 상황이 너무도 선명했다.
[···길버트 브라운 중령을 비롯한 해병대원들 일부가 먼저 귀환한 가운데··· 극비 정보를 입수했다는 소식이 백악관과 의회에 전해지면서 긴급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울프 방송에서는 독점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영상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시청을 제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간호사는 일본과 관련된 소식이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TV 앞에 앉았다.
잠시 뒤 송출된 영상. 거대한 쥐가 떼로 몰려다니고, 표범만 해진 고양이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영상이었다.
귀여운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했던 고양이 여러 마리가 뭉쳐 다니며 사람들을 사냥해서 잡아먹는 모습.
이어진 거대한 바퀴벌레의 등장에 간호사는 견디지 못하고 TV 채널을 돌렸다. 다른 채널은 일본에 파견된 군대 이야기였다.
[···현대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적의 위치나 상황. 아군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아프간에서도 통신 장애가 생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장애가 생긴 것이거나, 산악지형이라는 특수한 지형의 문제인 경우였습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통신은 대부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다릅니다. 성층권까지 올라간 화산재와 연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인공위성을 사용해서도 알 수 없고, 통신도 먹통입니다. 사실상 작전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구조작전이 실패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현시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실시간으로 작전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통신수단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 현재 국방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통신망 확보를 위해··· 중계기를 장착한 부표를 작전 해역 전역에 설치하고자 합니다.]장면이 전환되며 CG가 나왔다. 부표(浮漂)는 바다에 띄운 일종의 표시판을 의미했다. 바다에 안개가 꼈을 때, 안전한 항로를 알려주는 경고등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수면 아래에 있는 암초 같은 위험 요소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부표에 중계기를 달거나, 레이더, 수중 탐지기를 달기도 했었다. 인공위성 통신망을 비롯해 기술이 발달한 현재에는 그다지 쓰지 않는 낡은 방법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지도가 펼쳐지며, 일본 서북과 북중부 해역에 다목적 부표가 깔리는 화면이 떠올랐다. 이후 부표와 부표 사이가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한쪽은 한국으로 다른 끝은 일본 관동지역에 닿았다.
한국에 닿은 선이 공중으로 떠올라, 괌 기지와 미국으로 가는 모습을 끝으로 국방성 대변인이 입을 열었다.
[···현재 레이더, 수중탐지 기능을 갖춘 다목적 중계기가 작전해역에 설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실시간 전장 상황 파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둘 다 죽으면 어쩌지?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괴물들이 생겼다고 그러는 걸 보면 위험한가? 간호사는 김 양을 떠올렸다.
도리도리.
‘그년이 죽을 리가.’
소악마 같은 년이 죽을 리 없었다. 마루 상도 대단한 사람이었고. 두 사람을 떠올린 간호사는 최근 합류한 식구(?)가 떠올랐다.
‘후드 입고 다니는 애는 옷도 안 갈아입나? 아니면 똑같은 디자인의 옷만 입고 다니는 건가?’
어쩌다 한 번씩 볼 때마다 늘 같은 옷이었다. 마스크에 스키 고글 같은 것도 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생김새도 몰랐다.
‘해커라고 하던데.’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해야 하나? 오해하면 어쩌지? 음성변조기 때문에 성별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펑퍼짐한 후드로 가린다고 가렸어도 선이 가는 느낌은 있었지만, 요즘엔 여자보다 날씬한 남자들도 많은지라.
‘아? 해커라고 하니까 일본 정보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물어봐야 하나?
도리도리.
그냥 하던 공부나 계속하자. 이번에 서류는 통과된 거 같은데. 잘하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럼 밥값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지.
[···레이더에 음파탐지기까지 넣으면 생산 단가가 올라가지 않습니까?] [과도한 지출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간호사는 TV를 끄고 공부를 시작했다. 밥값 소리 못하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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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환호의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았다.
5백이 넘는 피난민들을 호위하기 위해 같이 출발한 병력은 3백이 넘었다. 해병대와 육군으로 구성된 호위병력 가운데 항구에 도달한 병력은 마루와 김 양을 제외하면 고작 58명.
이번에 탈출에 성공한 자들은 외곽에 있던 자들이었고 병력 대부분이 숙소에서 항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병들은 재정비를 마치고 바로 전우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송선에 적재된 설상차와 스노모빌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내가 받은 명령은 수송이지, 공격지원이 아니야. 구조대 차출해서 보낼 권한도, 보급품을 반출할 권한도 없어.”
일본에서는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두 차례씩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이상기후로 평년보다 낮은 온도 때문에 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돗토리 현에 있는 캠프에서는 병력의 원활한 수송과 전개를 위한 물자를 요구했고, 설상차와 스노모빌, 동계장비를 실은 수송 선단이 캠프로 이동 중에 이들을 구조한 것이었다.
“아군을 구조하는 일입니다. 장비만 있다면 충분히 구조할 수 있습니다.”
“수송도 작전이야. 상사. 보급도 작전이라는 것 알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내가 받은 작전 명령은 구조와 수송이네.”
해병대 상사는 숫제 분노한 얼굴이 됐다.
“여기서 제일 계급이 높은 사람이 함장님 아닙니까. 아군이 고립되어 있는데 버리겠다는 말입니까?”
“말조심하게. 상사.”
“오늘 새벽까지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도시를 빠져나온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설상차와 스노모빌을 사용한다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고, 중기관총과 박격포를 동원해 화력 지원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만! 상사! 나가게. 지금 당장!”
상사가 함장을 노려보며 밖으로 나갔다.
“빌어먹을. 통신은? 통신은 아직 인가?”
“캠프 근방 해역에는 아직 중계기가 설치되지 않아서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에 부표처럼 뿌린 중계기. 탐지기와 중계기의 역할을 겸하는 장비. 아직 전역에 깔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화산재로 말미암은 통신 두절에 대응하기 위해 신형 중계기를 바다에 쫙 깔았다고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시청자들은 몰랐지만, 다른 나라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송이었다. 탐지기를 겸한 중계기를 바다에 쫙 깔아서 감시하고 있으니까 엉뚱한 짓 하지 말자. 일 키우지 않으려면 적당히 하자.
이렇게 밑밥을 깐 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수송선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는지, 수송선은 별일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문제는 밑밥이 아니라 성능이었다. 생각보다 미흡한 성능.
“캠프 해역에 뿌리기로 한 놈들은 뭔가?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건가?”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함교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도넛 포장지를 까는 데 여념이 없었다. 까서 먹고 욤욤욤. 까서 씹고 뇸뇸뇸.
다람쥐처럼 볼이 볼록함에도 끝없이 밀어 넣는 모습에, 싸늘했던 함교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워낙 복스럽게 먹고 있어 짜증 내기 이상할 정도로 어이없었기에, 다들 헛웃음 짓고 마는 상황.
김 양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느낌을 받았다. 크게 앙 한입 넣고 우물우물하며 데굴데굴 주변을 살피는 모습.
“???”
“천천히 먹어라. 누가 안 뺏어 먹는다.”
눈알을 굴려 사방을 탐색하던 김 양이 마루에게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하고는 다시 진심을 냈다. 순식간에 도넛 7개를 전사시킨 그녀가 8번째 목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에 쏠린 피가 좀 가라앉은 함장이 마루에게 의견을 물었다.
“수고했네. 국토안보국 소속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국토안보국 특수작전부 산하에 있습니다.”
“멀리까지 나와서 고생이 많군.”
이 함장 뭐지? 국토안보국은 국내의 일을 버지니아는 해외를 담당하기로 한 것을 돌려까지 하는 건가? 마루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전술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봤네. 한 번씩 시간이 빈 곳이 많아서 말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과도하게 썰어야 할 판에는 애초에 촬영하지 않고 카메라를 껐다.
“배터리 관리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런가? 영상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은신 장치를 가진 자네와 엑소슈트를 장비한 그녀라면 차근차근 적들을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이 함장 보소? 속으로는 그랬지만, 마루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답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배터리가 문제입니다. 은신 장비든 엑소슈트든 전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한정된 전력으로는 퇴각로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거기에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10분에 한 명씩 죽이면 한 시간에 6명입니다. 1분에 한 명을 죽여도 60명입니다. 근데 확인한 적들의 숫자가 최소 천 단위였습니다. 최소로 잡아서 천 단위.”
“······.”
“설마 총알 피하고 지뢰 피해 가면서 칼질로 천천히 죽이면 천 단위 죽일 수 있어 보이던데, 왜 안 죽였냐고 말씀하신 것이라면.”
마루가 옆에 차고 있던 칼을 쓱 함장에게 내밀며 말했다.
“직접 해보시면 됩니다. 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지.”
“······.”
험. 험. 함장이 헛기침하듯 목에 걸린 소리를 뱉었다. 마루가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지, 우물우물 먹던 김 양이 가득 입안을 채로 눈치를 살폈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네, 자네를 탓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네.”
중간중간 험. 소리를 내며 함장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이대로 가는 것도 적잖이 부담되는 게 사실이야. 가능성이 있음에도 고립된 아군을 구조하지 않고 명령에만 따랐다는 건. 불명예스럽다네.”
“인력이 필요하다면 자원자들을 뽑으시면 됩니다. 저희는 다음 일을 위해 이동해야 합니다.”
함장이 그건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작전이 있었던가?”
“수색 결과에 따라 구출 작전이 될 수도 있어 시간이 촉박합니다.”
마루는 한 점 양심에 가책이 없었다. 연락이 끊긴 기순이를 찾아봐야 했고, 무슨 일이 생겼으면 구출해야 했다.
“한국 부산으로 가는 배가 있다면, 저희 둘은 그쪽으로 옮겼으면 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마루는 함장에게 바로 부산으로 가는 수송선으로 옮겨 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게.”
“감사합니다.”
호위함 8척과 수송선 4척으로 이뤄진 선단 가운데, 수송선 1척과 2척의 호위함이 부산항으로 가는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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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호텔 샬롯
심은영은 앞에 앉은 사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말씀의 요지가 뭔가요? ‘대일본의 재건을 위해 너희가 가진 자료가 필요하니 내놔라.’ 이건가요?”
남자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알아듣는 게 빨라서 좋군. 이제까지 너희가 받은 은혜를 당당하게 갚을 기회다.”
심은영은 남자가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컨셉도 아니고, 연기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미쳤나? 도와달라고 빌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이딴 소리를 한다는 게? 심은영은 가만히 남자를 바라봤다. 번들거리는 눈빛.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당연히 믿고 있는 게 있으니까 저렇겠지? 그럼 믿고 있는 게 뭘까? 단신으로 와서 저렇게 말하고 있다는 건.
‘역시 그건가?’
“그러니까 나카소네 헤세이 씨. 하나 묻겠습니다. 지금 요청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인가요?”
“요청? 정부? 배가 불러 착각하고 있군.”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콕콕 찌르는듯한 살기가 심은영을 향했다.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