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195)
러스트 [RUST]-195
빈 계단실로 진입한 마루가 스프레이를 허공에 뿌렸다. 초록색 레이저 선들이 계단을 채우고 있었다.
[레이저 보안 장치 3초간 정지합니다.]3초 이상 정지시키면 비상 신호가 작동됐기에 멈출 수 있는 시간은 단 3초. 3초 안에 내려가야 했다.
[3] [2] [1]초록색 선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마루의 몸이 붕 떠올랐다. 뛰어 내려가지 않고 점프해, 계단을 스킵해 버린 마루가 공중에서 난간을 붙잡고 몸을 비틀었다.
휘이익-
은신 로브가 펄럭이는 소리.
탁-
다시 단번에 뛰어내린 마루가 비상문을 밀고 들어갔다.
철컥- 삐-
팟-팟-팟-
녹색 빛이 계단실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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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진입한다.]“사만다 준비됐지?”
[레이저 감지기 간섭 준비 완료.]“레이저 보안 장치 3초간 정지합니다.”
[3] [2] [1] [레이저 감지기 간섭 성공. 3초간 정지합니다.]고용주님 3초 만에 주파 가능할까? 할 수 있으니까 시켰겠지. 모니터를 바라보며 후드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타다다다닥-
“사만다. 통제실 제어권 확보했어?”
[87% 확보 중입니다.]“최상층 CCTV는?”
[통제 가능합니다.]이대로만 가면 됐다. 이대로만.
건드리기 힘든 건 건드리지 말고. 확인만 하자. 혹시 모르니까.
“좋아. 별일도 없고. 딱히 이상한 내용도 없어 보이고.”
인공지능 사만다의 보조로 순식간에 파일을 훑어버리는 후드의 눈동자.
당장 이러면 어쩌란 말인가? 설계도 빼내라, 통제실 장악해서 차단해라, 통신 끊어라, 진입로 확인해라. 말만 하면 뚝딱 되는 건 줄 아는 건가? 고용주님 개념 탑재 좀.
사만다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뭘 하려면 최소한 하루나 이틀 정도는 시간을 줘야지, 무슨 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고용주님이 친우분 생각해서 그러시는 건 알겠는데, 남의 집 들어간다면서 이렇게 막 들어가시면 위험하지 않나? 영화만 봐도 잠입 나오면 전 며칠 동안 계획하고 연습도 하고 그러던데.
본디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 아닌가? ‘쇠뿔도 당긴 김에 뺀다.’고 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내용이 뒤섞였다. 그렇게 대충 최상층과 관계된 파일 제목을 훑던 후드의 눈에 하나가 걸렸다.
“어? 잠깐. 사만다. 방금 그거. 최상층 실내공사 그거.”
모니터 한쪽에 뜬 목록을 확인하는 후드.
“전파차단장치? 그딴 걸 왜 최상층에 설치하고 회의실 보안 때문인가?··· 이건 뭐야.”
최상층 실내공사에 들어간 자재 목록들을 읽던 후드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민간 빌딩이었다. 그런데 실내공사를 한다면서 방탄소재를 이렇게 많이 쓴다고?
방탄유리야 그렇다고 친다고 하자, 그럼 벽이나 문짝을 복합장갑으로 발라버리는 이상한 짓은 왜? 회장실이나 옆에 붙은 회의실에서 대전차미사일이라도 쏘는 건가? 회의실에서 무기 시연이라도 하는 거야?
‘여기 제약이 중심인 회사라고 하지 않았어?’
군수산업이 주력인 회사도 이렇게 하지는 않겠다. 후드는 일단 새로 얻은 정보를 마루에게 전달했다.
“최상층. 전파차단장치 있음. 회장실, 회의실 벽과 주요 출입구, 출입문 복합장갑 소재로 확인.”
[삐이이이-]저. 고용주님?
[삐이이이이-]···어 씨발?
아니, 내가 그래서 천천히 하자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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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철컥- 금속음과 함께 열리는 비상문. 두껍고 묵직했다.
‘음?’
20cm는 넘는 두께. 방화문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두껍게 할 이유가 있나? 마루는 천장을 살폈다. 촘촘하게 박혀있는 CCTV. 사각이 없어 보였다.
은신 로브로 숨기고 있으니 걸리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교전이 벌어지면 CCTV에 간섭하는 게 좋았다.
“진입 성공. CCTV 대기.”
[치이이이이-]“진입했다. CCTV 대기해.”
[치이이이익이이—]“······.”
밖과 통신이 끊긴 것 같았다. 분명 진입하기 전까지는 통신이 됐었는데.
‘전파차단기? 보안 때문에 전파차단 시공을 했나? 이러면 여차했을 때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마루는 담담했다. 일본에서 통신 두절은 일상이었다. 이런 정도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었다. 통신이 끊기지 않았으면 편했겠지만,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길게 심호흡한 마루가 감각을 넓게 펼쳤다. 복도를 타고 길게 길게 이어지는 감각.
!!!
??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도난 병원에서도 그렇고 건너편에 살기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KTX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생명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벽 건너편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집중해서 감각을 펼쳤다.
벽이나 문 건너편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느낌이 와야 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다. 복도에서 꺾인 부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됐으니까.
마루는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회장실과 회의실, 복도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서서히 건물 평면도로 변하는 기억. 건물 골조는 기둥식 구조. 가장 일반적인 구조로 내부의 벽은 대부분 가벽.
미묘하게 거슬리는 기분에 마루가 벽을 톡-톡- 건드려 봤다. 벽을 살짝 두들겨 봤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석고보드 위에 실크벽지. 단지 속이 비지 않고 가득 차있는 느낌이라는 것.
이상하고 복잡하면 단순하게 해야 했다. 마루는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하면서 회장실로 향했다.
그 일렁이는 공간을 따라 CCTV가 조용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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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층 복도엔 사람이 없었다.
경호 요원도 없었고 데스크에 있어야 할 비서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텅 빈 최상층.
‘함정?’
마루의 입꼬리가 삐뚜름해졌다. 만약 함정이라면 너무 대놓고 함정이었다. 지금이라도 마루가 포기하고 도망치면 어쩌려고 이렇게 대놓고 비웠나?
‘후드가 확인한 CCTV 영상이 조작된 화면이었다는 소리.’
해킹할 것을 알고 더미 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곧장 회장실로 향한 마루가 문을 열었다.
낮은 금속음과 함께 묵직하게 열리는 회장실 문. 여기도 20cm는 가뿐하게 넘을 것 같은 문이었다. 간접 조명을 사용해 어둑하게 밝힌 회장실 끝에 앉아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왜 이렇게 늦었나? 한참 기다렸네.”
오진 그룹 나오진 회장이 소파에 앉아 반갑게 맞이했다.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마루가 감각을 확장했다. 걸리는 게 없었다. 샬롯 심 회장 경호원처럼 몸을 숨기고 있는 경호원도 없었다.
“지금 이게 몇 년 만이지? 자네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땐가? 아 그래. 자네 중학교 졸업식 때 본 게 마지막이었지. 그래.”
다른 사람이 아닌, 마루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순간 생각이 복잡해진 마루가 가만히 나오진 회장을 노려봤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할 말이 많은데.”
“기순이는 어디 있습니까?”
마루의 무뚝뚝한 말에 나오진 회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사람도 참.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러나.”
“······.”
“광학 은신 장치 자랑하는 것도 그만하고 이리 앉게, 앉아서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세.”
“기순이 어디 있습니까?”
나오진 회장의 서글서글한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예나 지금이나 싹수없는 건 여전하군. 하기야 사람이 바뀌기 쉽지 않지, 특히 싹수 노란 건 나이 먹어서도 못 고친다는 말이 맞는 말이야.”
“······.”
“그래. 힘이 좀 세진 것 같으니 세상이 다 자기 걸로 보이나?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그래? 생각이 있으면 알 거 아닌가?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는 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
나오진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마루는 씹었다.
“그래서. 기순이는 어디 있습니까?”
스르르르릉-
칼 뽑는 소리가 선명하게 흘렀다. 그 소리를 들었음이 분명함에도 나오진 회장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어이없군.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게 기순이 그 친구란 말인가? 친동생도 아니고 친구라. 여동생은 포기한 건가? 후후후-”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하는 나오진 회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칼날이 쏘아졌다.
쩌어어어엉!
나오진 회장의 팔뚝을 향해 뻗은 검은 실선이 중간에 박혔다. 마루의 눈매가 좁아졌다.
짝- 짝- 짝-
천천히 박수 치는 나오진 회장.
“이거 정말 놀랍군. 놀라워. 특수소재인데 여기에 상처를 내다니. 9mm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데 말이야. 믿을 수 없군.”
어두운 조명은 이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나? 감각에 걸리지 않은 이유도 이런 게 가로막고 있어서?
마루가 검을 쥔 팔에 힘을 줬다. 뿌득-
은신 로브 때문에 보이지 않을 텐데도, 나오진은 마치 보이는 것처럼 말했다.
“용쓰지 않는 게 좋아.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쓸데없이 힘쓰다가 녹아내린다? 내장이고 근육이고 말이지. 느꼈을 텐데? 힘을 쓸수록 몸이 망가진다는 걸.”
오버히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렇게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사람이 말로 할 때 말을 들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게 사람인가? 짐승이지? 짐승처럼 대해줄까?”
“······.”
마루가 잠잠하자, 나오진 회장이 두 손을 깍지꼈다.
“이게 참 애비 노릇하기가 쉽지 않아. 그런데 어쩌겠나? 그냥 딸년도 아니고 회사를 일으켜 세운 딸년이 원한다는데 말이야.”
“······.”
“사실 난, 자네가 싫고 자네 집안이 싫었어. 정말 싫었다네. 그래서 즐거웠지, 자네 집안이 망하고 구질구질하게 버둥거리는 걸 구경하는 게 좋았는데 말이야.”
뭘 떠올렸는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는 나오진이었다.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대체 뭘 보고 자네 집안을 집었을까?”
마루는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 많은 사람이 다 아니고 왜 하필 자네일까?”
“다 뒈지고 암에 걸리고 미쳐서 날뛰는데, 자넨 왜 죽지도 않고 그러냔 말이지.”
술도 안 먹고 주정인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샬롯 회장실 CCTV 화면이 떠올랐다. 나카소네 헤세이의 공격을 마고 가스를 통해 사로잡으려고 했던 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막았으니 수면 가스든 마취 가스든 뿌리지 않고.
“··· 기순이는 살아있습니까?”
“차라기 기순이라는 그 친구가 낫지 말이야. 내 딸년이지만 정말···.”
기순이 이야기를 회피한다? 의도적? 그렇다는 건 기순이가 죽었거나. 아니면 잡히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기순이를 이용한 함정이었던가? 낚기 위한 함정?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마루의 말에 나오진이 웃었다.
“원하는 게 뭐냐고? 지금까지 하는 소리 못 들었냐? 이해가 안 돼?”
나오진 회장이 말하는 동안 마루는 조금씩 힘을 모았다.
근육이 팔에서 등 근육으로, 등판에서 허리로 이어진 힘이 코어 근육을 타고 내려가 허벅지에 닿았다, 허벅지에서 장딴지를 타고 발바닥에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힘.
“똑바로 말하든가.”
마루의 대거리에 나오진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까득-하는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긴 자국이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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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가가가각- 팅-
투명한 벽을 가르다 말고 깨지는 칼. 심은영 회장이 준 칼이 중간에 부려졌다. 중간에 부러진 칼을 버린 마루가 미국에서 가져온 칼을 뽑아 베었던 자리를 또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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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리다 만 자리 깊게 들어가는 칼날.
카가가가가가각- 서걱–
투명한 벽이 길게 토막 났다.
“하? 미친.”
나오진은 어이없었다. 저걸 자른다고?
잘린 토막을 발로 걷어찬 마루가 나오진 회장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은신 로브 밖으로 삐져나온 마루의 팔을 본 나오진이 발로 비상 버튼을 밟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천장이 열리며 발칸포 2문이 나왔다.
“죽어! 그냥 죽어 버려!”
광기 어린 나오진 회장의 외침과 함께 발칸포가 불을 뿜었다.
쿠콰카카카카카
투가가가가가각
은신 로브에 스치는 총탄. 파치직- 부분부분 깨져나가는 은신.
문득문득 드러나는 마루의 움직임.
팍- 박차 오른 마루가 허공에서 몸을 돌리자, 검은 실선이 그어졌다.
크카카카카카카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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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붙어 있던 발칸포가 병뚜껑처럼 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