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03)
러스트 [RUST]-203
경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텅 빈 거리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마루가 밥을 먹다 말고 창밖을 보고 있자, 김 양이 물었다.
“왜 그럼? 뭐 있음?”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 말에 김 양은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갸웃 한 번 하고는 다시 식사에 몰두했다. 마루는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김 양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곤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가?’
예민했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일본 작업장에서 도주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서 월드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위화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해도 손가락 끝에 박힌 가시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텅 빈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들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포크를 내려놓은 마루는 휴대폰으로 지난 뉴스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살인 사건 발생. 사망자 3명. 총격전 끝에 경찰이 범인을 생포.] [범인 혐의 부인. ‘기억이 나지 않아.’ 주장.] [마약에 신음하는 도시. 저가 마약 중산층으로 퍼지고 있어.] [진통제인가? 마약인가? 중국산 진통제 마약 성분 함유 논란.] [위험한 마약. 과량 복용으로 사망자 속출] [변종 바이러스 감염 확산 우려.] [폭력 사건 증가의 원인. 마약 때문인가? 코로나 블루 때문인가?] [하락하던 디트로이트의 범죄율 다시 급격하게 증가. 경찰, 폭력 범죄 강력 대응 시사.]일본에 다녀오는 동안 가장 많이 반복된 키워드는 마약과 폭력 범죄였다.
‘어젯밤 소란이 단순한 게 아니었단 건가?’
간호사를 주웠던 일본 병원이 생각났다.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 사람들. 점차 치매처럼 기억력 감퇴가 진행, 단순한 판단이나 기억도 하지 못한 채, 폭력 좀비처럼 변한다.
변이를 일으키면 사람의 심장이나 뇌를 파먹고 이성을 되찾기는 하지만, 그때는 이미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무서운 것은 변이 바이러스가 단순히 인간에게만 작용하는 게 아닌, 동물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일본으로 가던 도중 만났던 새떼나 물고기를 생각하면 확실히 위험했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미국도 안전하지 않았다. 어젯밤 총소리도 그렇고 경찰들이 이렇게 많이 순찰하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때문이라면, 확산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공사 마무리까지 25~30일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어렵지 싶었다. 인부들이 감염되어 폭력사태가 터지기 시작하면 그대로 끝.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 자원이었다. 인력을 2배로 투입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면 줄이는 게 좋았다.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보안을 담당해 주는 건 좋기는 한데.’
그쪽 애들이니만큼 주워들은 게 있으니 자살하겠다고 덤벼들지는 않겠지만, 이쪽도 체급을 어느 정도 불려 놓는 게 좋았다.
체급을 불리려면, 식량 확보가 기본이었다. 별일 없이 넘어간다면 스마트 팜을 이용한 농산물업체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니, 일단 시설을 늘리는 게 좋았다.
[예? 그러니까 스마트팜을 더 많이 설치하자는 말입니까?]“생각해 보니, 규모가 너무 작아서 말이죠.”
모듈 원전이 들어온다고 해서 처음보다 늘리기는 했는데, 조금이 아니라 대폭 확충하는 게 맞았다.
[그래도 계획보다 10배 규모로 확대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스마트팜 농산물 회사를 차린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골치가 아팠다. 일본에서 보여준 성과가 있으니까 해주는 건 가능하기는 한데.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검토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2교대 공사를 하든 3교대 공사를 하든 인력을 더 투자해서 최대한 빨리 공사를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별일은 아닌데, 그냥 조금 느낌이 좋지 않아서 말이지요.”
과장은 마루의 말을 허투루 듣고 넘기지 않았다.
[좀 더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죠.]“처음에 보고서에 적었던 이야긴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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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생각에 잠겼다.
일본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현재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 사건의 증가를 비교한 이야기. 블라디마루는 디트로이트 지역 뉴스만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국토안보국에는 전국의 정보가 모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실시간 현황판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여 놓은 대형 패널에 붉은 점이 계속 연속적으로 찍히고 있는 곳.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 동부 뉴욕.
삑- 조건을 코로나 감염자 숫자로 바꾸자, 녹색 점으로 변한 표시가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뉴욕과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감염이 퍼지고 있었다.
삐빅- 폭력 사건과 코로나 감염을 동시에 표시하자, 둘이 놀랍도록 비슷한 추세. 과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긴급회의 소집해.”
[회의 주제는 무엇으로 할까요.]과장은 블라디마루의 말이 떠올랐다. 폭력 좀비라고 했던가? 정확하게 좀비와 같은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과는 비슷했다. 공격, 감염, 확산. 물리지 않아도 공기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었다.
“8888-101 상황이라고 해.”
[···8888-101 상황 말입니까? 알겠습니다.]국방부 전략사령부와 질병통제센터를 포함한 주요 기관에 8888-101 코드로 긴급회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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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조금 소란스러워졌을 뿐, 큰 사고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국토안보국에서 의욕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빌딩 공사가 어느덧 마무리되고 있었다.
태양광 발전 필름 공사를 비롯한 외부공사가 말끔하게 마무리됐고 주요 핵심 시설들도 설치 완료됐다. 모듈 원전이 시험 가동에 들어가 안전성 체크를 시작했고, 대규모로 증설된 스마트 팜에서도 시험 재배에 들어갔다.
음머— 음머—
화물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소들이 길게 울어대는 모습을 보며 현장 감독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빌딩에서 축산업이라. 만들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방벽 공사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쪽도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말입니다.”
설계도를 살핀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컨테이너를 기초로 쌓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길어야 3일 정도 잡으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양으로 바꾼 이유가 있습니까?”
가로로 쌓는 것이 아닌, 세로로 쌓는 방식. 40ft 컨테이너 4개를 펼치고 옆에 20ft 6개를 놓기를 반복, 위에서 보면 ‘성벽의 치’처럼 보이게 쌓는 방식이었다. 성형 요새 느낌도 있고.
처음과 비교하면 쌓은 단수도 높인 상황. 하이 큐빅으로 4층까지 쌓으면 높이만도 10m가 넘었다. 어떻게 봐도 과하다 싶은 설계.
마루는 현장 감독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추가 요구를 이야기했다.
“외측을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하고 내측은 H빔으로 보강하고 싶은데, 오래 걸리겠습니까?”
“철근 콘크리트로 컨테이너를 외측과 상부를 덮는다는 말입니까?”
“예, 바깥쪽과 윗부분을 덮고 내측 방향으로 컨테이너 문이 열리게 말이죠.”
“철근 배근이야 인력만 충분하면 금방 끝나는 작업이지만, 콘크리트 양생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괜찮겠습니까? 노출 콘크리트는 보기에는 견고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고 외벽은 따로 더 하죠.”
그렇게 빌딩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빌딩 현장은 분주했다. 버지니아에게 요구한 물자는 엄청난 양이었다. 40ft 컨테이너와 20ft 컨테이너를 합하면 거의 1만 3천 개가 넘는 양이었다.
여기에 꽉꽉 채운 물자를 생각하면 3차 대전이 터져도 만 단위 인력이 십여 년은 넉넉히 버틸 물량이었다.
컨테이너에 채운 물량도 어마어마한데, 빌딩 지하에 들어간 냉동창고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육류와 향신료를 비롯한 다양한 식료품들이 진공 포장된 채 냉동창고에 쌓였다.
해병대와 육군에서 보내준 무기와 탄약도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물량을 보내면서 별일 아니라고 하는 말에 마루는 기가 질렸다.
하긴 남는 비행기가 너무 많다고 대충 사막에다 던져놓는 애들인데 총기와 탄약이야 넘치겠지. 김 양은 그저 다양한 총기류 가운데 소장용을 고르느라 행복해했다.
그렇게 호텔에서 빌딩으로 숙소를 옮긴 2월 말, 국제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작은 중국 남부해역이었다. 변종 따개비의 확산으로 남해함대가 사실상 가동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외신 보도가 터졌다.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변종 따개비의 확산으로 사실상 중국의 남해함대가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대만 상륙작전을 위해 비밀리에 수송 선단을 모으고 있었던 정황이 밝혀져··· 변종 따개비의 확산으로 수송 선단이 막대한 피해를··· 사실상 남해함대는···] [중국 남동부 해안에서 퍼지기 시작한 변종 따개비 때문에 중국 정부가 해안 도시 봉쇄에 들어갔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변종 따개비에 대한 영상과 SNS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잠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배에 달라붙은 거대한 따개비, 주먹만큼 큰 따개비를 중국인 어부가 갈고리로 떼어내려 접근하자 촉수 같은 것이 쫙 뻗어 어부의 얼굴을 때리는 영상이었다.
“저거. 그거 아님?”
김 양이 입맛 떨어진다는 듯, 들고 있던 과자를 내려놨다.
“그게 맞을걸.”
촉수가 사실 따개비 그거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영상만 봐도 호러였다.
이어지는 화면. 달라붙은 따개비로 인해 홀수선 아래까지 가라앉은 배들이 항구에 발이 묶인 장면을 시작으로. 항구와 방파제에 따개비들이 빼곡하게 달라붙은 모습까지.
“저거 사람한테도 붙잖음?”
“그렇지.”
근데 그런 영상은 없었다. 항구가 저렇게 됐을 정도면 사람들에게도 붙었을 텐데.
웅- 웅-
한창 대학원 수업 시간일 텐데 간호사의 전화.
“네. 여보세요.”
[저··· 전데요.]불안하게 떨리는 간호사의 목소리.
“무슨 일 있습니까?”
[저기. 그 전에 말씀했던 일 말이에요.] [그 폭력 사건으로 환자 들어왔을 때···.] [진정제나 수면제 일반 분량 투약해도 소용없는 특이환자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셨던 거.]“그런 환자가 들어왔습니까?”
[네. 지금 응급실에 그런 환자들이 많아져서. 인력이 부족하다고.] [간호 자격증 있는 사람 급히 도와달라고 하는데. 군인들이 막 오고 그래서.] [지금 빨리 응급실로 가라고 하는데.]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응급실 가지 말고 바로 돌아와. 아니다. 내가 지금 갈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어.”
[여기요? 그냥요?] [여기 군인들이 돌아다니는데요?]탕!
휴대폰 스피커에서 울리는 총소리. 꺅! 간호사의 비명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