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17)
러스트 [RUST]-217
덴 브라운 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한계였다.
국토안보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 버지니아나 연방수사국을 비롯한 행정부처 전체가 한계에 달했다.
향후 정국의 주도권에서부터 그 때문에 파생될 경제적, 정치적, 환경적 문제까지 엮여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그것도 계속해서.
러시아, 중국, 사우디,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는 폭력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고 옆구리 터진 일본은 블랙홀이라도 된 것처럼 미군과 물자를 빨아먹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적대 부족 전멸 민속놀이를 시작했고 난민들은 유럽으로 몰려가 유럽을 곱창 내버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때문에 에너지 가격은 하늘 높이 승천한다고 난리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으로 유럽은 원전을 폐쇄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러면 유럽 에너지 문제는 어쩌라고.
금융 시장도 폭발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찍어낸 돈이 넘쳐 인플레이션인데, 에너지 가격 상승을 시작으로 줄줄이 터질 조짐이 보이는 중.
이렇게 혼란한 틈을 타 마약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손을 얹은 남미 카르텔에 흑인 갱단까지 발광하는데, 체포하다 사망자라도 생기면 폭력진압 반대시위가 순식간에 약탈, 폭동으로 넘어가는 상황. 난리도 이런 생난리가 아니었다.
여기에 변이 바이러스까지 터지는 건 너무 가혹했다. 분노조절장애도 심각한데, 뇌와 심장 파먹는 변종까지 등장하다 못해 짐승들도 변이를 시작하다니.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이렇게 한 번에 덮치면 도리가 없었다. 당장 살아야 했으니 눈앞의 손해를 줄일 생각을 할 수밖에. 그러니 무리수에 떡수가 넘쳤다.
여유가 있었다면 좋은 대응책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최악을 피하기도 급급했으니까.
덴 브라운 과장은 위장약을 들이켰다.
그런 과장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는 계속해서 팩트를 박아 넣었다.
“옐로우 스톤 공원에서 변이한 곰과 늑대의 머리가 좋아졌다면. 공원으로 들어간 사냥꾼들은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합니다.”
쥐새끼가 했던 걸 곰과 늑대가 못할까?
쥐떼만 해도 난이도 조절 실패인데, 변이한 그리즐리 베어와 그레이 울프면 이미 들어간 사람들은 포기하고,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
“매복이나 기습, 몰이 사냥은 집단으로 사냥하는 동물들이 하는 거라 상관없지만, 전선을 끊거나 함정을 파는 건. 단순하게 머리가 좋아졌다고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토안보국이나 다른 정부기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급 비상사태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각 기관은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군부에서 독가스를 써서 밀어버리자고 한 이유도 그래서였고.
[군부에서는 독가스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독가스요? 항공지원은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사일을 쓰거나. 항공 손실을 각오하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요.]그만큼 옐로우 스톤 공원에서 변이를 일으킨 곰과 늑대가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독가스 사용.]대화가 잠시 끊기고 침묵이 이어졌다.
독가스 사용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독가스에 내성이 생길 일 없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았다. 바퀴벌레들이 살충제에 전멸하던가? 모기나 파리는?
제초제를 아무리 뿌려도 죽지 않는 잡초가 생겼듯, 실험실에서 99~100% 효과 있었어도 현장에서는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만약 독에 내성이 생긴 것들이 나온다면? 정말 위험한 순간에 써야 할 카드를 허무하게 날리는 꼴이 될 수 있었다.
군부에서는 반대로 생각했다. 아끼다 똥 된다. 변이가 어떻게 될지 알고. 무조건 빨리 죽이는 게 남는 거다. 독가스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내성이 생기지 않으면?
내성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숫자를 왕창 줄여 놓으면 정리하기 쉬워지지 않나? 그러니까 화끈하게 뿌리고 정리하자. 이게 군의 생각이었다.
덴 브라운이 마루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붉은색 점멸. 긴급통화였다.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끊겠습니다.]“예. 수고하세요.”
[그럼 나중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마루가 선배드에 몸을 뉘었다. 햇빛이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이야기 들었죠? 우린 국토안보국이랑만 일하니까. 다른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문 열어주지 마십쇼.”
“예? 네.”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좀 편하게 하나 싶더니, 다시 또 이랬다. 원래 이런 타입인가? 그래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다 하는 게 좋았다.
“저기··· 그리고 소고기가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소고기가?”
그게 무슨 말인가? 40kg은 가져왔을 텐데? 실컷 먹었어도 30kg은 남아야 정상 아닌가? 후드의 말에 마루는 수영장을 봤다. 물 위에 동동 시체놀이를 하는 김 양.
고기 타령을 하더니··· 아무리 고기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30kg 넘게 먹는 건 불가능한데. 3kg 정도면 모를까 30kg을 먹는 건 불가능하지 않아?
마루가 김 양을 보자, 그게 아니라고 부연 설명에 들어간 후드.
“아? 한국에서 가져온 소고기인 줄 모르고 여기 직원들이 음식 할 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양이 많아 식당 대형 냉장고에 넣어뒀었다. 그래서 써도 되는 거로 생각하고 쓴 건가?
어제 자기 전에 간단히 먹고 잘 게 아니라, 김 양이랑 같이 고기를 먹을 걸 그랬다. 한우는 이제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냉동창고에 비축해둔 고기가 있을 텐데.”
냉동창고마다 식자재를 가득 채웠다. 물량 되는 대로 때려 넣어서 넉넉한 게 고기일 텐데 무슨 소리?
“정형 경험이 있는 요리사가 없어서. 그쪽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육점에 추가 주문이 필요하다고.”
냉동창고에 쌓아 놓은 건 부위별로 정형하기 전 통짜였다. 요리사들은 그쪽 할 줄 모르는 건가? 그나저나 냉장고에 있던 소고기가 다 떨어진 건 의외였다.
빌딩에 있는 인원만 500명이 넘었으니, 500명 잡고 3끼와 간식 돌아갔으면 푹푹 줄어들겠지.
‘500명은 너무 많아.’
많기도 많지만, 다수는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다.
3교대로 모듈 원전 지키는 인력이라든지, 서버실, 슈퍼컴퓨터 보안요원들과 보안요원을 감찰하는 애들과 그 가족들, 애인이나 그런 애들 밥을 공짜로 먹여주는 건 웃기지 않나?
일이 바빠서 대충대충 넘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싹 한 번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스파이도 한 번 정리했겠다, 식충이들도 싹 청소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일단 고기류 넉넉하게 다시 채워 넣죠. 예상보다 소비가 빨라서 그쪽 대비도 해야겠습니다.”
당장 동물들 변이가 시작됐으니, 변이의 원인을 모르는 이상, 방목하는 소들은 언제 영향을 받을지 몰랐다. 그 전에 물량 챙겨둬야지.
“그리고 여기 입주한 사람들 신원, 특기 같은 것 전부 확인해 주시고, 필요 없는 사람들 일없이 식량만 축내는 사람들 따로 분류해 주세요.”
마루의 말에 ‘알겠습니다.’, ‘예. 그러죠.’ 고개를 끄덕이던 후드가 따로 분류하라는 말에는 반문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아이들은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요?”
“아이들이요?”
퇴직한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빌딩 공사할 때 보안을 도왔다. 그리고 빌딩 공사가 끝날 무렵 입주를 채울 때 그들은 가족들까지 데려왔다. 일반 국토안보국 요원들도 근처에 집이 있는 자들은 빌딩으로 이주했고.
‘아- 씨- 복잡하네.’
앞으로가 문제였다. 인원 정리를 하려고 하니까 아이들은 어쩌나? 또 데려온 가족들 가운데 외부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다른 기관들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 차단하라고 했으니 출퇴근 불가능한데.
단순히 정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블라디마루 타워는 하나의 쉘터이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마을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과 분배에 대한 원칙이 필요했다.
‘마을이니까 촌장? 그런 역할 할 사람이 필요하겠네.’
집사? 관리인? 그런 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후드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킬 게 아니라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알아서 잘할 사람이.’
문득 덴 브라운 과장이 떠오른 마루였다. 그 사람이 하면 입주자 절반은 국토안보국 관련자들이니까 자잘한 문제까지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은데.
‘어렵겠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들어와서 집사를 하라고 하면 하겠나? 그래도 국토안보국 과장인데?
‘기순이 놈은 언제 연락하려나.’
기순이 놈이 있었으면, 관리는 알아서 잘했을 텐데. 생각이 많아지는 마루였다.
“일단. 인사 자료부터 정리해 주세요. 오늘 저녁에 입주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자리를 좀 마련해 주시고요.”
“예? 입주민들과 직접 만나신다고요? 입주민 전부 말입니까?”
“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알겠습니다.”
어쨌든 말이 나온 김에 정리하긴 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어떻게 운영될 건지. 무엇보다 이 빌딩의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줘야 했다. 쓸데없이 칼질하는 일 생기지 않게.
일하러 가는 후드의 모습. 전신을 꽁꽁 싸맨 후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루의 시선이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저 둥둥- 멍하니 표류 놀이로 힐링하는 김 양이 눈에 들어왔다. 근심 걱정 따윈 전혀 없는 아방한 표정.
“야- 푹 쉬어라.”
“?”
앞으로 바빠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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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의 일 처리는 나름 깔끔했다. 정보 쪽을 다루는 애라서 그런지, 요청했던 인물 프로필 정리도 보기 좋게 잘했다.
“오늘 저녁에 자리를 만드는 건 어렵겠습니다. 밖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500명이 넘는다고 했는데, 프로필을 보다 보니 350명 정도만 있었다.
“프로필 숫자가 적은 것 같은데요?”
“그 밖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다른 기관에서 온 사람들과 군에서 온 사람들은 자료가 없었습니다. 해당 기관에서 찾아볼까요?”
해킹하겠다는 소리.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고요.”
꼬투리 잡히는 건, 정중히 거절하겠다.
“일단 국토안보국 관련자들 말고는 전부 내보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네? 어떻게요?”
“···아닙니다. 일단 그쪽 사람들도 얼굴 볼 때 전부 모이라고 해주세요.”
“네.”
저쪽을 싹 빼려면 역시, 국토안보국 빽으로 가는 게 제일 좋았다. 마루는 덴 브라운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지금은 회의 중입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더니 정말 일이 많은 것 같았다. 마루는 민원을 넣는 기분으로 문자를 남겼다. 저번에 다른 기관 사람들 치워준다고 하지 않았냐? 빨리 해결해 달라.
마루는 프로필을 하나씩 확인했다. 국토안보국 쪽은 그러니까 다들 공무원에 가까웠다. 첩보 가능한 전문 인력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 전문 자격증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하다못해 나중을 대비한 직종도 없었다. 그러니까 용접, 배관, 타일, 전기, 목공 같은 쪽 일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관리하려고 보니, 입주민들부터 문제가 많았다. 이걸 어쩌나? 입주민 모집 공고라도 내야 하나?
우우웅-
덴 브라운 과장으로부터의 문자.
[TV 속보 확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