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19)
러스트 [RUST]-219
마루의 일방적인 통보.
사람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친 무엇. 그것은 순수한 공포.
“······.”
“······.”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차가운 살기가 허공으로 서서히 녹아내렸다.
마루는 사람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강당 밖으로 나왔다.
붉은 불빛을 깜빡이는 CCTV가 이 상황을 조용히 담고 있었다.
통제실 모니터를 보던 후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모니터로만 봐도 느껴지는 서늘함.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사만다. 얼마나 걸리는 거야.”
항상 함께한 사만다는 슈퍼컴퓨터를 장악하러 갔다. 고작 중고 슈퍼컴퓨터인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이상했다.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장악한다고 해도 며칠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혹시, 들켜서 사만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벌써 몇 년 동안 같이 성장해온 인공지능이었다.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것에 대비해 백업을 해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가 생겼다.
심지어 복사한 사만다는 원본 사만다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사만다는 그래서 하나뿐이었다. 단 하나뿐인 친구이자, 조수이자, 동료.
후드는 사만다의 도움 없이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아마 자신을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뽑을 게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제야 꿈에 한발 다가섰는데. 사만다도 슈퍼컴퓨터에 있는데 쫓겨날 수는 없었다.
CCTV 영상. 모니터 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 당장 나가야 한다고 하니 망연자실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들을 전부 내보낸다면,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있어야 했다. 정확히 어떤 인력이 필요한 거지? 당장 국토안보국과 관련된 사람들도 모조리 내보내고 있는데?
후드는 재빨리 명단을 확인했다. 내보내는 사람과 내보내지 않은 사람을 분류한 기준과 마지노선을 알아야 했다.
내보내지 않은 사람들의 공통점. 성인이면 어릴수록, 나이가 많다면 특수한 경력이나 자격증이 있는지. 자격증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자격증. 현장경력. 나이.’
기술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학 관련자들이나 심리학, 사회학 관련된 자들도 있었다. 다만 이쪽은 국토안보국 요원들이었고 대학 전공이 그쪽이었다.
완성된 쉘터였으니, 유지 보수 인력이면 충분할 텐데, 다양한 분야의 기술직 자격증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모습.
‘다양한 직종? 다양한 자격증? 현장 경험?’
후드의 머릿속에서 점차 윤곽이 잡혔다. 지금 블라디마루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현재와는 다른 어떤 상황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굳이 고작 500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을 분류해서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수만 명이 장기간 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물자를 비축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쉘터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설마?
‘쉘터가 아니라 방주를 만들고 싶은 건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러시아 위에 중국이 쌓이고 그 위로 북한이 덮이고 있었다. 쌓이는 문제, 쌓이는 위기. 그리고 쌓이는 징조.
세계는 절벽에 서 있었다.
살짝 툭 건드리기만 해도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절벽 끝에.
만약 세계가 절벽에서 떨어진다면?
그렇다. 그는 이 빌딩을 방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단순한 요새나 쉘터를 넘어 방주를.
방주에 필요한 건 사람.
단순한 인력이 아닌, 다양한 전문 기술이나 현장 경험이 있는 자들을 모집해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합류할 수 있어야 했다.
블라디마루와 킴이 해결하고 온 일들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컸다.
‘디트로이트 인근 지역에서 뽑으려면 왓츠업 TV부터 넣어봐야겠네.’
지역 방송국은 많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오래된 방송국이 유리했다. 그만큼 역사가 깊다는 건 이런저런 인맥이 있다는 소리니까. 광고도 광고지만 그쪽 라인을 타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왓츠업 TV에 광고를 넣어보고 인력을 확충하지 못한다면, 전국적으로 광고를 넣어야겠지. 대학 취업 센터에도 광고를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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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업 TV는 난리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한 지역 방송국이라 사건에 목말라 있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넘치고 보도할 거리가 한 번에 터져버렸다.
“웨스트 타운에 주 방위군이 대거 이동했다는 제보다. SNS 확인해!”
“주 방위군이 이동한 곳에서 커다란 화염이 치솟았다는 영상 구했어?”
“마을 전체가 실종됐다는 소문. 그쪽은 담당은 누가 하기로 했고?”
“팔뚝 크기 쥐는? 그거 동물 관련 이슈에 넣어야지.”
“지금 쥐가 문제야? 텍사스 연방 탈퇴하겠다고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쪽부터 하자.”
“걔들 그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툭하면 탈퇴하겠다고 징징거리는 거. 걔들보다. 러시아 터진 게 크다. 핵이라고 핵. 알았어? 잘하면 3차대전이라고. 이쪽 특집부터 잡아.”
“개판이군.”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어수선함 속에서 PD가 몸을 일으켰다. 망가지고 부서진 몸이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거의 3주 넘게 걸렸다. 그마저도 수술이 잘됐기 망정이었다.
갱단에게 납치됐던 밤. 분노와 공포는 그를 변화시켰다. 복수심으로 달궈졌던 영혼은 그날 밤 한순간 차갑게 식어버렸다.
담금질에 실패한 쇠가 깨지듯 그의 정신은 깨져버렸다. 결코, 돌이킬 수 없음을 이글이글 타오는 눈빛이 증명하고 있었다.
넘치는 사건 사고 덕에 갱단이 시체로 발견된 사건은 묻혀버렸다. 그리고 PD는 그렇게 묻힐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감춰지지 않은 감정이 고스란히 여직원을 향했다.
“그. 갱단 사건은 이제 오래되기도 했고, 경찰에서도 사실상 수사 종결한 사건이잖아요.”
“흐- 그래. 그렇다고 쳐. 근데 버러지들을 싹 쓸어버린 그 일에 대한 감사는?”
“감사요?”
PD의 번들거리는 눈빛에 여직원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소문대로 정말 이상해 진 것 같았다.
“그래. 감사. 마약, 납치, 살인, 강도, 폭행··· 범죄란 범죄는 죄 저지르고 있는 것들을 싹 쓸어버린 분이 있다는 게 증명됐는데도. 이 사회는 감사란 걸 할 줄 모른단 말이야.”
“······.”
“사회가 감사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뭐지? 언론인이 아니던가? 아무리 떨어지는 돈다발에 꼬리를 흔드는 개가 됐다고 해도 말이야. 개도 고마움을 안다고. 그런데 갱들을 치워준 일에 대해 단 한마디 논평도 하지 않는다? 언론인이?”
“PD님. 제 생각에는 그거 위험한 생각이신 것 같은데요. 사적인 정의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신 거에요.”
“사적인 정의? 아니지. 아니야. 언제부터 단죄가 사적인 정의가 됐지? 마약에 납치에 강도에 그 많은 죄를 저지른 놈들을 풀어줘서 어떻게 됐나? 전과 9범이 전과 10범이 됐을 뿐이야. 전과 10범은 11범이 됐을 뿐이고.”
“······.”
여직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학교 교양 시간에나 이야기할 법한 주제 아니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에 불을 켜는 모습이란.
“그런 놈들이 나를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어. 그날 내가 죽었다면? 한 줌의 잿가루가 됐다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면? 갱들이 노숙자 하나를 범인이라고 넘겼다면? 그 노숙자가 심신미약으로 달랑 5년 살다 나온다면 그건 정의인가? 그건 올바른 건가?”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 맞아. 극단적이지. 근데 결과가 있지 않나?”
“······.”
약쟁이들 범죄자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약쟁이와 범죄자들이 사회의 희생자고 피해자라고? 그럼 그들에게 강도질 당하고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은? 피해자의 피해자란 말인가?
“갱들을 치워버린 일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건 감사였어. 그런데 이 사회는 뭐라고 했지?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으니 범죄자다. 사적인 정의는 불법이다. 하? 보았어도 믿지 않고,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며, 구함을 입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라니.”
“······.”
‘멸망해도 싸지.’ PD의 중얼거림에 여직원은 어쩐지 섬뜩한 느낌까지 들었다.
“마이클 PD님. 광고 건으로 연락이 왔는데요.”
“전화 돌려.”
PD가 전화기를 들자, 여직원은 살았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자리를 비켰다. PD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전부 중요한 걸 모르고 있었다.
신은 실존한다는 사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감사할 줄 모르고 믿음이 없는 세계는 이미 끝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는 보았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분을 그리고 그분이 휘두른 검붉은 선에 닿자 잘려나가는 갱들을. 절단되고 해체되는 것은 인간의 살과 뼈가 아닌, 죄악이었다.
죄악을 썰어버리는 게 죄인 사회라면,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감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그게 지옥이 아니고 뭔가?
“전화 바꿨습니다. 마이클 브레이크 PD입니다. 광고 건 문의하셨다고요?”
[예 구인광고를 넣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음성변조? 기계음? PD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일부 전공자를 찾는 구인광고라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학이나 화공학 전문가를 찾는 광고는 안 됩니다.”
이미 그런 전례가 있었다. 가짜 회사를 만들어 놓고 화학, 화공학 전공자, 약학 전공자를 모집한 뒤 납치, 목줄을 채워 마약을 제조한 사건.
[아··· 그렇습니까? 일단 전문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데요.]“어떤 자격증인지요?”
여자인가? 음성변조로 숨길 수 없는 미묘한 어조가 있었다.
[다양한 영역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거나, 자격증이 있는 분들이 필요합니다.]“너무 모호하군요. 혹시 팩스나 메일로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지금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메일 주소 말해 주세요.]PD가 메일 주소를 알려주자마자,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받았습니다. 바로 확인하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연락처는 메일에 있습니다.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이메일을 열자, PD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잡혔다.
‘?’
목조주택 빌더는 건설업이다. 건설과 관련된 회사라면 당연히 그쪽 사람을 뽑겠지, 그런데 이건 뭔가? 건설업 관련 자격증과 경력자를 뽑는다고 하더니 그 아래에는 전혀 다른 업종과 관계된 자들을 뽑고 있었다.
‘어부? 수산업 관련자까지 구한다고?’
대체로 회사란 전문 영역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룹이라 하더라도 연관 계열이 있는 법이었고.
그런데 지금 이건 계열이고 기준이고 없었다. 말 그대로 전 영역.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업종 전부가 망라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게 뭔?”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뽑아서 뭘 하겠다는 건가?
촉이 간질거렸다. 뭔가 있다.
어디 보자. 이런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곳이.
‘마루타워? 아? 거긴가?
증축과 개축을 한 빌딩. 밤낮으로 요란하게 공사를 한 건물이 떠올랐다. 컨테이너를 쌓아 성벽처럼 두른 것도 모자라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해서 요새처럼 만든 곳. 마치 좀비 영화나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빌딩이었다.
?
아포칼립스?
PD의 눈동자가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광고.
이거 설마.
PD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눈으로 봐야 했다.
“왓츠업 TV 마이클 PD입니다. 메일 확인했습니다. 광고 관련해서 직접 뵙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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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는 사람들 내보냈더니, 후드가 알아서 필요한 사람들 채워 넣겠다고 일을 추진했다. 그런 걸 보면 받아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일 처리를 해서 다행이야.’
마루는 연장을 펼쳤다.
앞에는 냉장 해동된 소가 고리에 걸려있었다. 참치도 그렇지만 소고기도 어떻게 얼리고 해동하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제법 있었다.
“해동은 잘 됐고.”
며칠 진득하게 빌딩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내놓는 요리를 먹어보고 평가해야겠다. 실력이든 경력이든 별로인 요리사면 갈아치워야지. 소도 못 잡아서 건물주가 잡아야겠나?
흠-
이거 참. 느낌이 새롭네.
간만에 소 잡는 칼을 쥐었더니, 월드 축산과 일본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푹-
뾰족한 칼이 쑥 들어가더니 앞다리가 깔끔하게 분리했다. 단 한 번의 칼질. 뼈와 근육을 발라버리는 칼질.
쑤욱- 뒷다리도 한 번에 떨어졌다. 칼이 이렇게 저렇게 지나갔을 뿐인데 달랑 몸통만 남은 소를 번쩍 들어 올린 마루가 작업대 위에 올렸다.
왼손은 자리를 잡고, 오른손은 따르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슥- 슥- 고기와 뼈의 결. 근육과 힘줄 지방이 얽힌 부분이 손끝에서 해체됐다. 부위별로 분리되는 덩어리.
까득-
칼날이 뼈를 갈랐다.
“······.”
마루는 칼질을 멈췄다. 뼈를 었다.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당연히 소를 잡을 때는 생으로 뼈를 자르지 않았다. 관절과 이음매를 깔끔하게 분리할 수 있는데 힘으로 잘랐다.
마루는 칼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언제부터였지? 힘과 속도에만 의존해서 자른 게?
그게 편했으니까. 강력한 힘과 빠르기로 토막 치는 건 쉬웠으니까.
“······.”
[왓츠업 TV에서 광고 건으로 마이클 PD가 왔습니다.]작업실에서 나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 앉아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그 갱단?
여기 처음 왔을 때 설치던 갱단 정리하면서 구해줬던 사람이었다. 마루가 가까이 다가서자 부르르 떠는 PD.
이런. 소를 잡다가 바로 오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살기가 조금 샜나 보다. 마루가 머쓱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라고 합니다.”
마루의 내민 손을 바라보던 PD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륵-
이 아저씨 갑자기 왜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