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25)
러스트 [RUST]-225
휴런 호수 인근, 산책로와 도로가 보이는 곳으로 재빨리 이동한 김양.
자리 잡은 곳은 커다란 바위 위쪽.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휴런 호수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옆으로 가면 산책로와 자동차 도로가 있었다. 탈출에 용이한 곳이었다.
공수에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자마자, 드론들을 조작해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현재 위치. 확인.”
[치익- 위치 확인됐습니다.]“수색지역 인근. 실종 신고 있는지 확인 바람.”
[삐- 수색지역 인근 실종 신고 확인합니다.]후드의 음성 변조가 오늘따라 유독 듣기에 까슬했다.
오래 걸려. 느려.
슬슬 거슬리는 김 양이었다. 2호기. 개념 없는 2호기.
전신을 꽁꽁 싸맸다?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식을 거부하다니, 그것도 한우 투쁠 회식을 거절하다니.
자고로 고기도 같이 못 먹을 놈이라는 말이 있다. 게다가 채식이란다. 제정신일까? 김 양이 생각하기에 채식은 정신병이었다.
인류의 유전인자 속에 도도히 흐르는 본능. 고기를 향한 본능을 거스르는 게 정신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모르는 척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역시나 채식이가 숨기는 게 있었다. 녀석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사만다’라는 인공지능을 어쨌는지, 언제부터인가 사만다를 찾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사만다인지 인공지능 있었으면 벌써 일 처리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기다리게 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일 처리를 빨리할 수 있는데, 쓰지 않는다? 그럼 그 인공지능은 어디로 갔을까? 그 인공지능으로 뭘 할까?
생각을 많이 했더니, 두통이 생긴 김 양이 미간을 찡그렸다.
착한 생각. 고기 생각. 금괴 생각.
지끈 쑤셨던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채식이. 이번에 돌아가면 한 번 까봐야겠음.’
2호기가 될지, RIP. 2탄이 될지는 까보면 알겠지.
[치직- 해당 위치에서 서남, 7km 위치에 있는 마을에서 실종자 3명, 서북 8km 위치에 있는 마을에서는 5명의 실종 신고가 있었습니다.]“CCTV···. 두 마을과 근처 공원 CCTV 최근 일주일, 야생동물이 출몰했었는지 분석해서 보냄.”
[삐- ···일주일 분량이요?]“인공지능 쓰면 금방 아님? 저번에도 그랬잖음? 후딱 분석해서 보내셈.”
이게 이제 대답도 안 해? 좋아. 돌아가서 보자.
4드론의 고도를 높이고 사방 1km 밖을 정찰하게 한 김 양의 HUD(Heads Up Display)에 뭔가 스쳐 보였다. 상당히 빠른 속도라 슬쩍 지나간 것처럼 보인 무엇. 거의 1.5~2km 밖에서 보이는 놈이었다.
김 양은 확인을 위해 드론에 목표 지역을 설정하곤 영상을 느린 화면으로 재생했다.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그림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상당히 빨랐다. 100m 정도 이동하는데 4초 정도? 동물의 세계에서야 치타나 톰슨가젤이 저 속도가 나온다고 하지만, 그건 전력 질주 상황에서나 그랬다. 근데 영상 속의 동물은 전력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그랬다.
“영상 분석 언제?”
[······.]“야··· 근처 동물원 가운데 사고 난 동물원 있나 찾아봐. 인명 사고도 좋고, 탈출한 동물이 있다는 것도 좋아. 빨리.”
[······.]김 양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오시면 나에게는 백정이 있지.’
바로 백정 콜을 날리는 김 양.
???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다. 안테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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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실
머리카락이 조금 안타까운 사람이 마루의 앞에서 활짝 웃었다. 저번에 봤을 때도 안타까운 머리숱과 늘어진 다크서클로 인상 깊었는데, 여전했다.
“트리아는 어떻습니까?”
인사고 뭐고 없이 슈퍼컴퓨터의 안부부터 묻는 박사였다. 계속 안타까운 이유가 뭔가 했더니, 생각보다 젊은 나이로 보였다.
멀리서 보거나 힐끗 봤을 때는 40대가 넘었을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눈가에 주름이 없었다. 목주름도 없었고. 그러니까 30대 초반?
그래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었구나. 남의 머리카락에 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는지 원인을 알게 된 마루가 후드를 봤다.
슈퍼컴퓨터 초기화니, 최적화니 그런 소리를 했으니, 후드가 알겠지.
마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박사가 전신을 꽁꽁 싸맨 후드를 보곤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잭 니스입니다. 우리 트리아 어떻습니까?”
[··· 최적화를 진행···]“뭐? 최적화? 최적화아아! 지금 트리아에게 손을 댔단 말입니까? 당신 뭡니까? 당신 뭐 하는 사람인데 우리 트리아한테 무슨 짓을?”
흥분한 박사가 후드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짤짤짤- 앞뒤로 흔들리던 후드가 갑자기 멱살을 잡은 박사의 팔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호신술이라도 배운 것처럼 생각보다 깔끔한 동작.
훅- 팔이 내리 꺾여, 몸이 앞쪽으로 기울어진 박사의 얼굴에 후드의 머리통이 닿았다. 뻑- 박치기 소리와 함께 박사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크흡!
코를 감싸고 후드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박사. 코를 감싼 손가락 사이에서 핏방울이 질질 새 나왔다.
“다··· 당신. 미쳤어? 트리아에게 뭔 짓을 한 거야? 어?”
매도당한 후드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빽 소리를 질렀다. 음성 변조기가 낼 수 있는 고음을 넘어섰는지 스피커 찢어지는 소리.
[트리안지 뭔지 그 개떡 같은 똥 컴!]“또. 또. 똥컴? 트리아를 모욕해? 너. 당신···.”
[똥컴이지! 우리 사만다가 최적화시키려고 갔는데. 얼마나 개똥컴이면 아직도···]“사만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딴 게 우리 트리아를 건드려? 뭐가 됐든, 지금쯤이면 갈려 나갔겠네. 하- 아주 꼴좋다.”
‘그게 컴퓨터든 프로그램이든 트리아를 건드린 순간 끝났지 그냥.’ 박사의 이죽거림에 후드가 폭발했다.
[끝났다고? 갈린다고?]그 빌어먹을 슈퍼컴퓨터에 뭔 짓을 해놨으면 저딴 소리를 하는 거지? 사만다가 갈려? 거기에 뭔 짓을 해놨으면.
[죽어어어어!!!]엉거주춤 일어나는 박사를 향해 후드가 태클을 걸었다. 한 손으로는 피 흘리는 코를 막고 일어서던 박사와 후드가 뒤엉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진짜. 사람이 옆에 있는데 개 쌍 마이웨이? 마루는 어이없었다.
뒤엉킨 두 사람을 뜯어놨지만,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지금도 마루가 없었으면 육탄전을 벌일 기세.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 생사를 걸고 싸울 대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러니 골치 아팠다.
“그깟 인공지능으로 우리 트리아를 통제하겠다고? 이러니까 철학이 없고 사상이 없는 애들이 꼭 사고를 친다니까.”
[그 병신 같은 똥컴. 우리 사만다가 아주 박박 긁어서 쥐어짠 뒤에도 그딴 소리가 나오는지 두고 보겠어.]“···트리아가 왜 3개로 이뤄졌는지 아나? 그 구조 자체에 함의된 의미가 뭔지 알기나 하고 그러나?”
[함의는 무슨. 똥컴 만드는 놈들 생각이야 뻔하지. 일본 애니나 보고 흉내 낸 거 아닌가?]“이래서 기본 소양이 없는 것들은 무식하다니까. 트리아의 본체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도식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한 설계란 말이다.”
[왜? 3개가 아니라 한 30개를 때려 박지?]“···그러니까 어떤 프로그램이든, 트리아를 해킹하든 장악하든 하려면 동시에 3곳을 점령해야 하는데, 애초에 접속 케이블은 한쪽에만 연결되어 있으니, 어떻게 되겠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안에서 어떤 짓을 하든 2:1이 된다는 소리고. 큭- 큭- 결국 갈려서 트리아의 양분이 될 뿐이라는 결과다. 알겠냐?”
[소양? 변증법? 포장은 잘해요. 우리 사만다가 뭔지 알아? 스스로 보완하고 진화하는 인공지능이라고. 2:1? 흥- 고작 쪽수로 사만다를 찍어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야. 당신 말대로 그 똥컴이 자체적으로 완벽한 구조라면 진작 우리 사만다는 사망다가 됐지 않았겠어? 근데 현실은 어때? 이제 곧 사만다가 비루한 트리아를 완벽하게 조교해서 노예로 쓸 거야.]“조. 조교? 노예? 천박한!@@%$^&$&^$”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던 마루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인공지능 사만다를 슈퍼컴퓨터에 넣었다는 소리?’
그것도 제법 오래된 것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이 건물은 마루 자신의 것이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전부.
모듈 원전이든, 슈퍼컴퓨터건 모조리 자신의 것이었다. 근데 인공지능을 슈퍼컴퓨터에 설치했다? 최적화를 시킨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까는 거였어?
‘인공지능을 깔아서 최적화를 하려고 했다고 하려는 건가?’
마루의 눈동자가 후드를 훑었다. 그간 정말 열심히 일해줬다. 도움도 많이 됐고, 제법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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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이 끊겼어도 김 양은 당황하지 않았다.
통신 장애의 원인이 후드의 농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이었다.
백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인지, 김 양의 집중력이 끝없이 올라갔다. 작은 반응도 놓치지 않는 모습.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드론이 뭔가를 포착했다. 역시나 흐릿하게 찍힌 모습. 영상을 분석해보니 늑대일 확률이 90% 이상. 디트로이트 북쪽은 마치 반도처럼 호수로 둘러싸인 지형이었다.
북쪽에든 동쪽에서든 늑대가 넘어올 수 있는 지형은 아니라는 의미. 그럼 늑대는 어디서 왔을까? 늑대가 과연 한 마리뿐일까?
들개도 무리를 지어 다녔다. 근데 늑대가? 촉이 좋지 않았다. 1.5~2km 거리를 두고 알짱거리는 놈. 분명히 이쪽을 알고 있었다.
‘덩치가. 커.’
‘괴물 고양이도 덩치가 엄청나게 컸었는데.’
뚜렷하지 않은 영상으로 대충만 봤음에도 엄청난 덩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은 마치 이쪽이 자기를 알아채길 바라는 것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
‘저거 드론이 뭔지 아는 건가?’
김 양은 드론을 조종해 놈이 있는 상공으로 이동시켰다. 위이잉- 낮은 모터음에 놈의 귀가 쫑긋하며 제자리에 멈췄다.
드론이 찍은 영상과 머릿속이 하나로 이어진 것만 같은 느낌. 12.7mm 기관총의 총구가 1.7km 밖에 있는 목표물을 향했다. 탄종은 고폭소이철갑탄 60불짜리.
귀를 쫑긋거리며 드론을 보던 놈이 고개를 돌려 김 양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순간.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투두두두두둑
순식간에 12발을 쏟아낸 총구. 엑소슈트의 단단함이 반동을 억제했기에 올곧게 날아가는 총알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처럼 놈이 도망치려고 했지만, 총알이 더 빨랐다.
퍽-
일단 한 방 맞자, 놈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퍼-퍼퍼퍼퍼퍽-
전신을 두들긴 12.7mm 고폭소이철갑탄이 불꽃을 피워올렸다. 풀썩 쓰러져 고기 타는 연기를 피워올리는 놈을 본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12.7mm. 고폭소이철갑탄을 맞았는데 형체를 유지?’
대충 사람이 맞으면 산산 조각나는 총알이었다. 아무리 덩치가 큰 늑대라고 해도 갈려야 정상인데, 박살 나지 않았다. 확실히 변이된 괴물 맞았다.
이동해야 할까?
통신이 끊겨, 위험해도 백업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
‘이상하면 바로 퇴각하라고 했음. 그러니까 이건 내 잘못 없음.’
탈출로를 확인하기 위해, 드론으로 주변 선행 정찰하는 김 양. 호수로는 도망칠 수 없고, 수변 산책로를 따라 디트로이트 방향으로 달리는 게 최단 코스였다.
HUD에 지도를 펼쳐 놓고 탈출코스를 확인하고 있는데, 붉은 점이 하나 떠올랐다.
삑-
삑삑- 삑삑삑-
붉은 점으로 표시된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숫자는 여섯. 엄청난 속도. 100m를 2~3초에 주파할 정도의 속도. 2km 전쯤 파악했는데 순식간에 1.8km까지 접근한 놈들.
인식과 동시에 눈이 뜨거웠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에 머리가 타오를 것만 같았다.
드론이 보내준 영상과 머릿속에서 떠오른 총탄의 방향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목표와 총구를 실로 연결한 것 같은 느낌.
김 양은 홀린 것처럼 가상의 선에 총구를 일치시켰다. 자연스럽게 당겨진 방아쇠.
투다다다다닥-
굵직한 탄피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팅 티디딩- 탄피가 바위에 튕기는 것처럼 엎치락뒤치락 달려오던 늑대 2마리가 꼬꾸라지며 엉켜 튕겨 올랐다.
1.2km 3마리.
투다다닥.
2마리. 800m
지그재그로 회피기동을 하는 놈, 엄폐물을 이용해 최단 거리로 달려드는 놈. 한 놈을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총구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타다다당 600m
남은 건 한 마리.
달아오른 총신, 화끈화끈한 눈, 뜨거운 머리. 고통이 아니라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총과 드론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느낌. 총을 쏘면 총알이 어떻게 날아가서 어디에 맞을지 뇌리에 직접 떠올랐다.
드론이 찍은 영상이 꼭 자신이 직접 보는 것 같았다. 생생한 현장감.
하아-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달뜬 숨을 내쉬었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마지막 한 마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순간.
뚝. 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