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37)
러스트 [RUST]-237
일본 나가노. 신일본 연합의 근거지.
3월 중하순인데 폭설이 내려 도시가 신음하고 있었다. 계속된 여진과 폭설의 여파로 무너지고 깨진 집들이 넘쳤고, 괴수들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어, 생필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지도를 바라보던 노인, 가다마 신타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붉은색으로 표시한 곳이 뒤로 빠져있었다.
“미국 놈들이 보급기지를 뒤로 물렸군.”
“중국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전진기지가 무너져서 그런가 봅니다.”
나가노에 있던 중국군 경비대와 미군의 퇴각부대를 서로 상잔시킨 뒤, 잔존 중국군을 정리하면서 나가노에 쌓인 막대한 물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리는데 들어가는 생필품은 실로 엄청났다.
중국에게는 중국군은 미군과 교전하면서 전멸. 싸우는 도중 보급물자가 소실됐다고 말해 추가 보급을 요청했고, 미군에게는 피난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보급을 받았지만, 양측 모두 충분한 양을 보내주지 않았다.
미군의 해안감시로 대형 수송선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중국은 나가노에서 손을 떼고 다른 거점 보급도시를 주력으로 삼았고.
미군은 보급을 보냈지만, 몇 번 중간에 끊기자 추가 보급을 포기하고 나가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 서부로 대피하라고 말했다.
양측 모두 나가노를 포기한 것. 미국과 중국 모두 나가노를 살리겠다고 하지 않고 버려버리자, 물자가 부족해진 신일본 연합은 급기야 미군 보급기지까지 털어버리고야 말았다.
“식량이 얼마나 남았지?”
“지금처럼 배분하면 30일 정도 가능합니다.”
“아니요. 15일 버티기도 아슬아슬하다고 봐야 해요.”
가다마 키리코가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매일 피난민들이 집계하기 어려울 만큼 몰리고 있어요.”
피난민이 몰려드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거기에 변종 괴수들이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사실 같고요.”
날씨가 풀어져서 그런지 변종 괴수들의 조금씩 더 넓은 영역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한파가 예상되지만, 이번 눈보라를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봄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었다. 도쿄 인근에 있던 변종 괴수들이 북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
거점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식량은 필요했다. 최소한 이번 가을 추수 때까지는 버텨야 했다.
‘21세기에 추수를 기다린다니.’
노인은 울분에 찼다. 어째서 일본에만 이런 고난이 겹치는가? 어째서 대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무너지고야 말았는가?
계획대로라면 미국을 몰아내고 태평양을 반분했을 것이고, 일본은 조선반도의 절반과 동남아를 아우르는 거대국가가 됐을 것이다.
일중러 동맹으로 미국의 패권을 무너뜨릴 기회가 눈앞이었다. 10년 아니, 5년만 더 있었다면, 복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세계 질서에서 일본은 욱일승천했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됐단 말인가?
“···일본은 다시 일어선다.”
지금은 이럴지라도. 일본은 다시 부흥할 것이다.
아직 하늘이 일본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재난의 끝. 지옥의 밑바닥에서 일본은 신인류의 모태가 되었다. 신체 강화자, 신인류가 제일 많이 탄생하고 있는 곳이 여기. 이곳. 일본이었다.
중국, 미국이 계속 군사들을 밀어 넣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진화의 비밀을 일본이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중국에서 한 제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국 북부전구 소속 특작부대를 일본인으로 위장, 미국에 침입시키는데 협조해 달라는 제의.
“10만 명이 3개월간 먹을 식량을 보내준다면 적극 협력한다고 해.”
“10만이 3개월이요?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닐까요?”
“흥- 15억 중국놈들이 먹는 음식 한 젓가락씩만 모아도 그 정도 분량은 나와. 놈들이 생각이 있다면 보내겠지.”
“미국의 해상 감시를 뚫을 수 있을까요?”
“뚫을 필요 없다.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지원하겠다고 하면 미국이 막을 수 있겠나? 오히려 놈들은 우리에게 식량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원정군 보급품을 대량으로 들여올 기회인데? 뻔히 알면서도 그렇다면.”
사람들이 노인의 입에 주목했다. 가다마 신타는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받으며 말했다.
“중국이 특작부대를 미국 본토에 잠입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미국에 팔아서라도 식량 지원을 유도하면 될 일.”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 건너편에서 어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네.”
어린 여자의 목소리? 아니, 젊은 여자의 목소리인가? 그에 반해 억양이 독특했다. 외국인?
“누구냐!”
대답 대신 창문 샤시가 통째로 뜯겨 나갔다.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사이로 나른한 어투의 목소리가 안으로 흘러들었다.
“내가 말이야. 미국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웬 년이냐?”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꼼짝 마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기를 꺼내 들려는 순간, 5발의 총성이 일순 방안을 흔들었다.
총을 막 뽑으려는 사람, 칼을 조금 칼집에서 뽑았던 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인간들 모두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12.7mm 총탄이 신체강화자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두개골을 부순 결과. 짚단 쓰러지듯 무너지는 사람들.
바닥에 흥건하게 깔리는 뇌수와 파편들 사이로 짙은 혈향과 김이 피어올랐다.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0.3초? 0.4초?
신체강화자들도 언제 총을 뽑았는지, 어떻게 총을 쐈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 진중하게 앉아있던 노인, 비서, 키리코와 남은 몇 명은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팅팅-팅-
거대한 리볼버에서 굵직한 탄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느긋하게 총알을 갈아 넣는 모습을 보고도 노인, 가다마 신타는 칼을 뽑을 수 없었다. 일어설 수도 없었다.
뿌득-
분함이 가득한 표정을 숨길 수 없지만, 노인은 칼을 쥘 수 없었다. 그런 노인을 보고 여자가 어느새 사백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기다려 줄까?”
“네년이······.”
부들부들 떨리는 노인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듯, 키리코가 외쳤다.
“할아버지! 참으세요! 그리고 당신. 원하는 게 뭔가요?”
번들거리는 여자의 눈동자가 키리코를 훑었다.
“내가. 미국에 볼일이 있다고 했잖아.”
미친년.
키리코는 하얗게 웃는 미친년을 앞에 두고 할 말을 잃었다.
미국에 볼일이 있는데 왜 여기서···
휘이이이익
습기 가득한 눈발이 뜯어진 창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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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브라운 과장은 검시 보고서를 보고 눈을 감았다.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은 2명. 개 3마리도 심장마비, 죽지 않은 개 2마리는 전신마비 증세가 풀리자마자 똥오줌 가리지 못하고 미친 듯이 발작해 안락사 처리.
이어진 부상자 현황.
중환자실에서 의식 불명 1명, 원인 모를 뇌출혈로 반신불수 2명, 턱관절이 으스러져 평생 죽만 먹게 생긴 사람 1명, 어금니 포함 치아 7개가 날아가고 유리턱이 된 사람 1명, 갈비뼈 8대가 박살 난 사람 1명, 정강이와 무릎 관절이 갈려 지팡이 신세가 유력한 사람 1명.
그것도 모자라 정신이상 현상을 보이는 사람까지 생각하면···
그런데 이 모든 것이 1분 안쪽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덴 브라운 과장은 후- 뿌연 연초연기를 내뿜으며 원점에서 다시 생각했다.
‘이 새끼 진짜 사람 새낀가?’
저번에도 의심했었지만, 사람 새끼는 맞다. 실제로 얼굴도 맞대고 이야기했고 영상통화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칼도 들지 않고 맨손으로 무장한 성인 남성 4명을 초단 위로 병신 만드는 새끼가 정상인가? 갑자기 심장마비에 뇌출혈은 또 뭔가? 정신이상은?
영화라면 영화라서 그런다고 치겠지만, 이건···
아니. 의학적으로 말이 되는 상황이어야 딴지라도 걸지.
죽으려면 전부 죽든지, 멀쩡하면 전부 멀쩡하든지. 누구는 심장마비, 반신불수, 정신이상 골고루 섞여 버리면 어떻게 그랬는지 뭐가 원인인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상 일으킨 사람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갑갑하네.”
일단 자료는 특급기밀로 처리.
이걸 군부에서 보면 눈이 돌아갈 게 분명했다. 군부가 아니더라도 자료가 풀리면 꼭 병신 같은 새끼들이 나와서 분명. ‘세뇌해서 합중국의 슈퍼 솔저로.’ 이딴 개소리 하다가 장의사들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줄 게 뻔했다.
사로잡는다? 어떻게?
마취제? 제정신인가?
실패하면? 괜찮겠고?
국토안보국에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시뮬레이션한 적도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블라디마루를 최소한의 피해로 잡으려면 폭격과 포격.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서 광역제압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마저도 대도시에서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면 사상자 다수를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 잡자고? 자살하고 싶은 건가? 놓치면? 일본 영상 보고도 그딴 소릴 하나?
갑자기 속이 쓰린 과장이었다.
그래. 이건 모두의 잘못이었다.
해병대, 육군, 국토안보국, 버니지아 4개 기관이 합심해서 일본 영상을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영상을 보고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생각이 모자라도 그렇게 모자를 수 있을지 정말 몰랐다.
집요하기로 유명한 버지나아 놈들도 블라디마루 관련된 일에서는 ‘그냥 좋게좋게 갑시다.’ 이러는 걸 알았으면 적당히 감을 잡아야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버지니아에서 줄 갈아탄 거라 괘씸죄로 건드려 볼 만도 하건만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건. 걔들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잘못 건드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걸.
근데 함량 미달인 것들이 꼭 똥을 먹어봐야 맛을 알겠는지 계속 쑤셔대고 있었다. 그리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었고. 발작하기 전에 애초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발작하는 놈들이 진정됐나 싶더니, 이제는 은근슬쩍 주 정부에서 찔러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도 국토안보국 직원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한 발 걸치려고 대기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사우스 타코타에서 벌어진 일은 우발적인 상황이었지만, 다른 2곳에서는 블라디마루를 노리고 있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블라디마루를 범죄자로 엮어 주 정부에서 잡고 휘두르려고 하는 계획.
대체 어디서 어떤 소리를 들어서 그런 병신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주 정부에서 연방 정부 산하기관 모르게 작업질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개판이야.’
덴 브라운 과장이 다시 연초에 불을 붙였다. 답답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국토안보국은 여러 기관의 하부조직을 통폐합해 만든 기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 기관과의 연결이 유지되고 있어, 다른 기관의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국토안보국 내부의 정보도 다른 기관으로 줄줄 새고 있었고.
물갈이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문제가 터져버렸다.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갈기는 고사하고 있는 요원, 없는 요원 전부 동원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
“과장님 버지니아에서 긴급으로 지원요청입니다.”
“블라디마루 관련이면 현재 작전 중이라 불가능하다고 해.”
“신일본 연합이라 불리는 조직이 본국으로 침입하려는 정황이 보인다고 합니다. 중국 북부전구 특작부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목표는 한국 또는 본국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신일본 연합은 신체능력 강화자들이 주축이 된 친중세력이었다. 미군의 보급기지를 공격해 물자를 강탈하고, 중국군과 연계해 미군을 공격한 정황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본토에 들어온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
거기에 중국군 북부전구도 골치 아픈 놈들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미군과 비공식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는 주요 군벌 세력이 북부전구였다. 그곳의 특작부대의 현황은 주요 경계 대상인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놓쳤다니.
놈들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갔다면 모를까 정말 본토에 침투한다면 위험했다. 국토안보국이 막아야 하는데 인력이 없었다. 빌어먹을 인력이.
덴 브라운 과장이 인력 현황판을 확인했다. 지금 그나마 인력을 쥐어짤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한 곳뿐.
“블라디마루 빌딩에 있는 직원들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복귀시켜.”
“알겠습니다.”
블라디마루 아크 타워에 있는 인력을 빼는 수밖에.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여 보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부터 재팬타운, 차이나타운을 비롯해 일본, 중국 유학생들, 관광객들 전부 관리하도록 한다. 밖에서 들어온 쥐새끼 하나 놓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해.”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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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숲은 그만큼 많은 생명을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루가 있는 숲은 생명의 흔적만 남아있었다. 3월 중하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동면에서 깨어나 먹이를 찾아 분주할 시기.
야생동물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녔는데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이건 이상할밖에.
[영상 분석결과 짐승들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그렇지?”
마루는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나무가 컸고, 태양이 떴음에도 분위기가 어두웠다.
“일단 중계기부터 박자.”
[위치 지정하겠습니다.]HUD(헤드업디스플레이)에 표시가 떴다. 근방에서 큰 축에 속한 나무. 오토바이에서 내린 마루가 발걸음 가볍게 내달렸다.
타다다다닥-
수평으로 찍히던 발자국이 나무를 밟고 수직으로 찍혔다.
이어 옆으로 뻗은 굵은 가지를 밟고 점프, 다시 가지를 붙잡고 회전한 뒤 점프를 몇 번 반복하자, 순식간에 나무꼭대기 언저리에 도착했다.
[중계기를 위치에 고정해 주세요.]도시락통처럼 생긴 중계기를 나무에 박아 넣자, 나무를 파고들어 단단하게 달라붙은 중계기에서 돌돌 말린 태양광 패널과 안테나가 우산처럼 활짝 펴졌다.
[태양광 발전- 양호, 신호 수신- 양호, 동작감지 센서- 양호, 카메라 ?양호. 모든 기능 정상 작동 중입니다.]좋아.
물찬 제비처럼 아래로 향해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마루의 감에 무언가 걸렸다.
“디아나?”
[센서와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습니다.]마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리가···
이렇게 살기가 짙은데?
원초적인 살기가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
스르르릉-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굵직한 무엇이 부엽토를 뚫고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