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38)
러스트 [RUST]-238
쩍 벌어진 주둥이를 피한 마루가 스치듯 칼날을 내밀었다.
까다닥- 금속 마찰음도, 가죽 베는 소리도 아닌 소음이 칼날에 타고 내렸다.
칼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에 마루는 힘을 슬쩍 흘렸다.
각도를 비틀자. 미끄러지듯 비늘 사이를 빠져나온 칼날.
쉬이이이익-
몸통이 굵직한 줄무늬 뱀이 마루를 노려봤다.
[개체판별완료.] [가터(Thamnophis elegans vagrans) 뱀으로 확인됐습니다.] [옐로우 스톤 공원 전역, 습기가 많은 곳에서 서식하는 뱀입니다.] [크기는··· 오류입니다.]굵기만 봐서는 길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마루는 칼을 역수로 잡고 정면에서 살짝 비켜섰다.
샛노란 뱀의 눈동자가 마루를 살피는 모습. 냉혹한 눈빛에는 의아함과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떻게 막았지? 비늘이 따끔거리는데 이거 위험한 걸까? 그러는 느낌.
쉭-쉭- 거리는 위협적인 소리 그리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살기.
‘이놈 말고 살기가 둘? 아니··· 셋.’
이것들 보소.
일본에서는 고양이들이 파티 플레이를 하더니, 이젠 뱀 새끼들도 파티 플레이였다.
“어이- 숨어있는 거 다 걸렸어. 간들 그만 보고 들어들 와.”
뱀도 고기니까 잡아다 주면 김 양이 좋아하겠지? 덩치도 제법 큰 게, 먹을 것도 많아 보였다. 가죽도 튼실해 보이고 색깔도 예쁘네.
좋아. 살살 대가리만 따자. 마루의 결심이 살기로 변했다.
뭉클 피어오르는 마루의 살기에 반응하듯 쉬익- 쉭- 쉭- 사방에서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마루의 뒤통수를 향해 쏘아지는 무엇!
“거기냐!”
대가리만- 마루가 역수로 잡은 칼을 활짝 펼치며 몸을 회전시켰다. 낮은 절삭음과 함께 허공에서 토막 나는 굵직한 덩어리.
팔로는 썰면서 눈으로는 주변을 살폈지만, 동시에 공격하리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반응이 없었다. 거의 동시에 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 고기를 자를 때와 전혀 다른 느낌.
‘넝쿨.’
두툼한 넝쿨이 잘리며 마른 잎사귀가 흩날렸다. 그 사이로 뱀도, 살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것들이 도망을?
“디아나!”
[···동작감지 센서,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디아나의 침묵에 마루가 역수로 잡았던 칼을 휙 돌려 바로 잡으며 말했다.
“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다 센서가 후져서 그렇지 뭐. 주변에 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동작감지 센서, 카메라에 잡힌 움직임은 없었습니다.]“그래? 아까 가터 뱀이라고 했던가? 걔들 습기 많은 곳에 주로 서식한다고 했지? 여기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야?”
[화면에 표시하겠습니다.]HUD에 지도와 화살표로 방향이 떴다.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마루는 방향표시와 전방을 확인한 뒤, 나무 위로 올라갔다.
“중계기 설치해야 하면 미리 표시해.”
[알겠습니다.]팍- 나무를 박차 올라 다음 나뭇가지에 안착한 마루가 다시 몸을 날렸다.
‘가죽이 괜찮았지.’
처음 덮쳤던 공격을 흘려냈을 때 제법 손맛이 좋았다. 아무리 슬쩍 베었어도 사람이었으면 댕강 잘릴 칼질이었는데, 그 정도로는 비늘을 자르지 못했다.
9mm나 샷건은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여기 들어온 수색대들 무장이··· 일반 보병은 5.56mm 기본 소총, 엑소슈트는 7.62mm 기관총, 기갑병은 20mm 벌칸으로 무장했다고 했으니까.
‘기본 소총은 몰라도 엑소슈트나 기갑병 화력을 버티긴 힘들어 보이는데.’
일단 은밀 기동에 이은 기습으로 수색대와 교전이 벌어졌다면 사방에 흔적이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럼 뭘까?
문득 김 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머리 쓰는 늑대를 잡았다며 의기양양 이야기했던 내용.
‘그것들이 유인했음.’
‘유인?’
‘한 마리가 막 다리를 저는 것처럼 해서 매복지점까지 유인한 뒤. 기습했음.’
HUD에 표시된 영역에 도착한 마루가 나무 위로 높이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강과 습지가 얽힌 장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강변, 수풀이 뒤엎어진 곳이 있었다.
보통 군인들이 저런 지형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심지어 쫓고 있는 대상은 동물이다. 아무 생각 없었겠지. 근데 저 수풀이 뒤엎어진 곳이 함정이었다면? 저게 함정의 흔적이라면?
설마 뱀이 함정을? 그렇게 간과하기엔 마루가 겪은 일이 너무 많았다.
집단 사냥하는 고양이, 전력을 차단하는 쥐새끼, 매복하는 늑대, 짱돌로 원거리 공격하는 원숭이 그리고 정신파를 사용하는 괴물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뱀들이 마루를 잡으려고 파티플레이 하지 않았던가? 찔러 보곤 위험하다 싶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놈들이었다.
‘일단 가보자.’
마루는 짐승이라고 방심할 생각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나무와 나무를 타고 공중으로 이동했다. 땅은 아무래도 뱀들이 알아채기 쉬울 테니까.
한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종아리에서 허리춤까지 오는 수풀로 뒤덮인 곳. 뱀들이 몸을 숨기기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가까이에는 큰 나무도 없어 확인하려면 내려가야 했다.
‘이거 시작부터 더러운데?’
함정과 매복을 생각하고 살펴보니, 확실히 지형이 더러웠다. 일본 비밀연구실에서 쥐새끼들 만난 뒤로 항상 최루탄 몇 발은 가지고 다니는 마루였다. 김 양에게도 항상 들고 다니라고 했고.
“디아나. 이거 뱀한테도 효과 있겠지?”
[파충류에게 사용한 실험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습니다.]최루탄은 클로로피크린이나 클로로아세토페논 제재를 주로 사용했고, 어느 쪽이든 동물의 점막에 유의미한 통증을 일으켰고 구토를 유발했다.
[뱀은 혀로 냄새를 맡아··· 특히 뱀에게 혀는 굉장히 중요한 기관입니다. CS탄은 뱀의 혀에 강한 자극을···]디아나의 설명을 들으며 CS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일단 하나만.
팅- 클립이 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수풀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잔잔한 바람을 타고 수풀 아래로 깔려 흩어지기 시작한 가스.
반응이 없나?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한 건가?
두드드드득-
나무뿌리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솨하아아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퍼지는 연기. 연기가 흐르자 마른 수풀이 살아있는 것처럼 소리 내는 풍경.
쉬이이익-
허벅지 굵기의 뱀이 수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허공을 향해 갈라진 혓바닥을 내밀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뱀이 온몸을 뒤틀며 바닥을 뒹굴었다.
한 마리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뱀들. 수풀이 뭉개지고 뱀들이 발광했다.
■■■■■■!
■■■■!!
꿈틀거리던 뱀 가운데 몇 마리가 강으로 들어가 도망쳤다.
“뱀도 수영하냐?”
[···네.]징그럽게 꿈틀거리던 뱀 가운데 하나가 쿠에에엑- 입을 벌려 구토했다. 철퍼덕-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사람이 나왔다.
피부가 소화액에 녹아, 껍질이 뜯긴 소시지처럼 변한 시신.
주둥이를 뻐금거리며 발광하던 뱀 새끼들이 하나둘씩 시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바닥이 칙칙한 소화액과 시신으로 채워졌다.
이 새끼들이었다.
사람 맛을 본 놈들은 또 그런다지? 마루는 놈들이 강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강 쪽에 CS탄을 던져 넣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처벅- 물먹은 스펀지처럼 쑥 들어가는 바닥.
스르르릉-
발목까지 들어가는 바닥을 딛고 마루가 뱀들에게 다가섰다. 끔찍한 고통과 더 끔찍한 살기에 몸부림치는 뱀들.
콱-콱-
비늘이 깨지고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이 수풀과 흙으로 물컹물컹해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기 때문.
생각보다 더 단단한 비늘과 가죽. 심지어 근육도 코요테 같은 것보다 조밀했다.
“왜 이렇게 질겨!”
콰지지지직-
짜증에 받혀 칼질하자, 톱으로 썰어 버린 것처럼 뜯겨 잘린 단면에 마루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힘으로만 하지 말자고 해 놓고서는 또 금방 흥분해서는 힘으로 썰다니.
‘그래. 어디 한 번 진득하게 썰어보자.’
쿠직- 콰직-
부서지던 칼질 소리가 서서히 매끄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뱀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마비된 감각 때문에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고 산 채로 절단당했다.
쿠식- 카식-
···
···
서거걱-
석-
수십 마리의 거대 뱀이 도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얀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최루탄의 독한 냄새가 빠진 수풀엔 비릿한 혈향이 넘쳤다. 사방에 널린 머리 절단된 뱀들. 머리를 잃은 채, 배배 뒤틀고 있는 몸뚱이에 칼집을 내곤 그대로 가죽을 벗기던 마루가 말했다.
“디아나. 여기 위치. 상황실로 보내고. 시신 다수 발견했으니까 헬기를 보내든 운구팀을 보내든 하라고 해.”
[전했습니다.]대가리를 잘랐는데도 제법 오래 발버둥친지라 사방이 엉망이었다. 가죽을 벗기면서 생각했지만 이상했다.
괴수 고양이를 잡았을 때보다 칼질이 안 먹힌 것까지야 비늘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7.62mm 기관총이나 20mm 벌칸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기관총과 벌칸으로 무장한 엑소슈트나 기갑병은 어디로 갔을까?
보병들이 먹히는 걸 보고 도망쳤을까? 아군에게 오발사고 날까 싶어 쏘지 못하고 당한 건가? 김 양이 쓰는 갑옷형 엑소슈트가 아니라, 파워로더형 엑소슈트라 뱀들이 휘감아 죽일 수 있다고 쳐도 기갑병은?
뱀 가죽과 부산물을 한쪽에 가지런히 쌓아 놓은 뒤, 나무 위에서 봤던 수풀 뒤엎어진 곳으로 향하는 마루. 바람의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었는지 이쪽으로는 피비린내도 최루탄 냄새도 없었다.
근처로 가까이 다가서자 푹- 갑자기 무릎까지 쑥 들어가는 다리. 발끝으로 아래를 더듬어 보니 앞쪽은 더 깊이 빠질 수도 있었다.
칼을 뽑아 아래를 쭉 찔러보자. 걸리는 게 없었다.
구덩이?
두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호탄을 쏘셔야 합니다.]“그래? 위치 보냈는데?”
[정확한 위치는 신호탄을 쏘셔야 합니다.]“영 찝찝한데.”
칼을 뽑아 늪처럼 쑥쑥 빠지는 흙바닥을 쿡쿡 찔러보던 마루가 몸을 뒤로 빼곤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유성처럼 올라간 신호탄이 폭발하며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까이 접근한 헬리콥터들이 선회하며 착륙할 지점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공비행을 하며 수풀 앉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헬기들에서 병사들과 위생병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루는 병사들과 위생병들을 시신이 있는 공터로 인도했다. 참혹한 모습에 말을 잊지 못하던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우욱-
녹아내린 시신을 들어 올리다 살이 뭉개져 떨어지자, 참지 못하고 구토하는 병사. 수십 마리의 뱀이 그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을 삼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마루는 미간을 찌푸렸다. 헬기 소리, 구토하는 병사, 지인의 시체를 찾았는지 흐느끼는 사람. 복수하겠다고 살기를 뿌려대는 병사들까지. 시끄럽고 엉망이었다.
쯧-
챙겨놓은 뱀고기와 가죽을 둘둘 챙긴 마루가 자리를 피하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5대의 헬기 가운데 2대의 헬기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3번째 헬기가 하강해 사람들을 내리려는 순간, 거대한 뱀이 수풀에서 튀어나와 헬기의 꼬리 부분을 휘감았다.
끼이이이익-
으아아악
쇠가 구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꼬리 부분이 뒤틀리며 주저앉은 헬기. 사방에서 터지는 아우성에 짐을 내팽개친 칼을 뽑아들었다.
저공비행하고 있던 2대의 헬기에 굵은 나무토막들이 날아가 처박혔다. 프로펠러가 휘어져 휘청이며 추락하는 헬기를 덮치는 뱀들.
그 모습에 시신을 수습하던 병사들과 위생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몇 명이 그렇게 도망치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는 병사들.
“병신들아! 뭉쳐!”
폭발하는 살기와 도망치던 몇 명이 풀썩 주저앉았다.
“도망치면 죽는다. 모여!”
“모여서 쏴. 대가리를 노려. 눈. 입. 알았나?”
“CS탄. 최루탄은 없나?”
절래절래 고개를 흔드는 병사들
“씨발. 도망치지 말고 쏴.”
부들부들 떨며 총을 든 병사들을 뒤로하고 마루가 뱀들을 향해 내달렸다.
사람들을 휘감아 비틀어 죽이고 목을 물어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던 뱀들이 달려든 마루를 향해 입을 벌렸다.
캬아아아-
서걱-
대가리 하나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