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54)
러스트 [RUST]-254
마루는 엉클 샘으로 변한 미합중국의 사고방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 일본 관동지역을 날려 버린다고요?”
중국 정부, 북부전구, 러시아, 신일본 연합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일본 관동지역을 날려 버리자는 결론이 나와?
[···명분이 충분합니다.]화산재와 지진, 방사능 유출로 엉망이 된 일본 관동지역. 돌연변이, 변종 괴수들이 넘치고, 그 환경 속에서 신체능력 강화자를 비롯한 다양한 특성을 보유한 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신일본 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군 보급기지를 털기도 했고, 이번 시애틀 폭탄 테러와 EMP 테러와 연관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신일본 연합이라는 테러 단체를 쓸어 버리는 것과 동시에 관동지역에 있는 중국 놈들도 같이 날려 버릴 기회니까요.]단순하게 열 받았다고 일본 관동지역을 날릴까? 제일 무섭게 눈이 돌아간 놈은 냉정하게 눈이 돌아간 놈이었고, 그게 지금 미합중국이었다.
일본 관동지역.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에 방사능까지. 자연재해와 인재가 겹쳐진 지옥에는 꿈에도 그리던 ‘회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회춘의 흔적과 진화의 파편을 두고 미군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중국군 정예부대도 10만 넘게 일본 관동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
그걸 다 무시하고 미국이 관동지역을 날려 버리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어떻게 될까?
중국계와 일본계를 쳐내고 있지만, 중국, 일본 돈을 먹는 놈들이 누군지 전부 밝혀지지 않은 지금. 일본을 날려 버린다는 이야기는 새기 마련. 그렇게 새면?
놈들은 도주하기 위해 북서부 항구도시로 몰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증발하겠지. 덴 브라운 과장은 이렇게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는 이름으로 시민권을 얻은 자가, 일본계가 아니라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뿐이었으니까.
마루는 덴 브라운 과장이 묘하게 말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을 튀겨먹든 일본을 쪄먹든 그러든가 말든가. 군대니 어쩌니 지랄하지 않고 빌딩에만 손대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예. 그렇군요. 제 신분 확인은 됐죠?”
[···됐습니다. 하지만 계속 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그럴 수밖에. 일본인이라고 알고 시민권 줬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이라네? 그럼 처음 일본인 신분은? 이중국적인가 싶어서 확인해 보니까, 그냥 순도 100% 한국인이네? 일본인 신분은 가짜였다는 말.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가짜 신분으로 미국 시민권 받았다는 이야기. 신분 세탁을 세탁? 심지어 미국 시민권으로? 이것에 풀로 분노하는 기관들이 있었다. 대체 미국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세탁 신분으로 시민권을 따느냐는 것.
딴에는 분노를 핑계로 마루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속셈이었고. 이걸 막느라 덴 브라운 과장은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일본인으로 신분 세탁한 이유가 뭡니까?]“······.”
덴 브라운이 확인해 본 결과 마루의 범죄 이력은 깨끗했다. 근데 왜 일본인으로 신분 세탁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러신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대답하기 참 그런 이야기에 마루는 침묵을 택했다.
월드 축산 이야기부터 하는 건 웃기는 소리였고,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모르고 월드 그룹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그랬다고 하기도 참 그랬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짜 힘들게 신분 세탁했는데 말이다.
[···이 일은 두고두고 앞으로 걸림돌이 될 겁니다. 이걸 빌미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마루가 눈을 곱게 휘며 대답했다.
“제가 크게 파티를 한 번 열 테니, 초대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관계된 분들 전부. 직접 얼굴 보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회의할 때 절 불러 주셔도 좋고요. 그분들이 여는 파티에 초대해 주셔도 좋고요.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루가 유순하게 말했다.
[큼- 그건 조금. 나중에 말씀드리지요.]덴 브라운 과장의 대답에, 부드럽게 휘었던 마루의 눈썹 끝이 씰룩 움직였다.
김 양은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백정의 진심 어린 ‘갈!’이나 ‘살!’ 한 방으로 우수수하는 걸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러고 남은 것들은 대가리로 불꽃놀이 시켜주고.
[제일 좋은 방법은, 과거를 덮는 대신 복무하는 것입니다. 5년을 이야기했지만, 한국에서 2년 복무했다는 이야기에 지금은 3년까지 이야기가 됐습니다.]마루가 헛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자기도 모르게 봉산탈춤 얼굴이 아니라, 동산탈출 표정이 됐다. 자대가 있던 작은 동산이 뇌리에 떠올랐다. 탈출하고 싶었던 그 시절 그 동산.
스멀스멀 검게 피어오르는 기운을 느낀 김 양은 재빨리 도도독 피했다. 분명히 보이지는 않아도 느껴졌다.
막 가슴이 조이는 느낌. 밖으로 도망치고 싶은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궁금은 하고. 김 양은 호기심과 무서움에서 갈팡질팡했다.
일단 백정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진정시키지? 저거 눈 돌아갔는데.
일단, 주위를 돌려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반사적으로 ‘살!’ 당해버릴 수 있으니까, 그럴 위험 없는 방법.
생각나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김 양은 구석에서 점프했다.
폴짝!
흐흐흐- 빡침에 더해지는 마루의 눈동자에 올록볼록 튀는 게 들어왔다. 김 양이 개구리 뛰듯 폴짝거리는 모습.
‘뭐하는 짓이지?’
마루와 눈이 마주치자, 더 열심히 점프하는 모습.
폴짝- 포올짝-
미쳤나? 어? 정말 미친 거야? 살기에 맞아서 정신 나간 케이스도 있었잖아. 순간 당혹스러움에 마루의 스멀스멀한 군대 기운이 사라졌다.
그걸 느꼈는지 김 양이 늘어졌다.
존나 피곤해.
‘빡치지 말고 이야기 끝내삼.’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진정. 진정. 몇 차례 심호흡한 마루가 덴 브라운 과장에게 말했다.
“군대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비상시국입니다. 다른 기관의 노림수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군대입니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면 모병이 시작되고, 이후 징병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모병에 징병까지 고려한다고? 일본 터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잖아? 진짜 중국 쓸어버릴 생각인 거야? 그거 아니라면 모병에 징병 이야기 나올 이유가 없었다.
[모병에 참여하지 않으면 애국심을 의심받을 것이고, 그걸 핑계로 규제하려고 하겠지요. 징병에 응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하고요. 그럴 바에야 미리 자리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개-씨- 열이 머리끝까지 뻗치려는 순간, 마루를 보던 김 양이 폴짝 뛰었다.
흐흐흐- 크크-
빡! 빡! 빡!
금속으로 된 테이블에 주먹 자국이 박혔다.
후우-
좋아. 그래. 천조국 군대는 한국군이랑 좀 다르다고 했으니까. 호흡을 가다듬은 마루가 머리를 풀로 돌렸다.
“당장 전쟁 나는 건 아니지요?”
[큰 전쟁은 터지기 전, 준비 기간이 길어지기 마련입니다.]최소한 올해 말이나 내년은 돼야 윤곽이 잡힐 거라는 것. 그전까지는 여론전을 비롯해 전자전, 경제규제를 비롯한 다양한 일들이 있을 것.
“그렇다면 1년 뒤에 들어가는 거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1년 뒤요?]마루는 풀로 머리를 돌렸다. 지금 예상으로는 문제가 터져도 언제 터질지 몰랐다. 그러니까 최대한 뒤로 미룬다.
“그리고 제가 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다시 병장으로 들어가는 건 웃기지 않겠습니까? 제 능력에 일반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에 따라서 제대로 된 계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확실히 그렇군요.]블라디마루 정도 되는 초인을 병장이나 하사 달아 놓고 굴리는 건, 덴 브라운 과장이 보기에도 아니었다.
지금 편제하고 있는 초인 부대를 생각해도 그랬다. 다른 육체 능력자들보다 월등한 살상 능력을 보유한 블라디마루를 낮은 계급에 두는 건 실이 많았다.
[알겠습니다. 생각 잘하셨습니다. 정식입대를 1년 정도 늦추는 것과 계급 문제는 군부와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1년 뒤에 입대. 계급 문제. 군경력도 있으니까 초급 장교 정도는 충분히 해낼 것이다. 부족하면 주중이나 주말에 몰아서, 군사 교육을 속성으로 시키는 방법도 있고. 일단 군 소속으로 찜 해놓으면, 다른 기관에서 더 찌르진 못하겠지.
욕심 같아서는 국토안보국 소속 요원으로 하고 싶지만, 상황이 긴박하게 변하는 만큼 국토안보국보다 군 소속이 안전했다. 전쟁 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군 소속을 찔러댈 미친 기관은 없을 테니까.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가지 않고 듣고 있기를 잘했다. 응.
이렇게 백정이 군대로 떠나는구나.
1년 뒤에 입대? 군 생활 기본 3년이라고? 36개월?
어쩐지 광대뼈가 움찔거리는 느낌.
참아야 해. 웃으면 안 됨.
크흐으응- 크으흐응-
근데 군대란 게 다 그렇지 않던가?
3년이라고 해놓고, 일이 터진다거나 전쟁이 길어진다거나 그러면 제대 못 하고 계속 구르는 거. 김 양이 매우 안타로운 눈빛으로 그윽하게 마루를 쳐다봤다.
빌딩은 내가 잘 관리하고 있겠음. 마음 편히 다녀오도록 하삼.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크-으-냥?’
그런 미묘한 눈빛 사이로, 화면 속 덴 브라운 과장이 말했다.
[···그럼 미스 킴도 그런 조건으로 이야기해놓겠습니다.]어?
나? 내가 왜?
당황한 김 양을 향해 마루가 썩소를 날렸다.
‘넌 신분 세탁 안 했냐? 웰컴 투 군대다.’
아-
김 양의 눈빛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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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야마츠키 제약 본사 입구.
넓은 공터엔 헬기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본사 입구에는 깨진 흔적과 짙은 탄매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노인 가다마 신타는 주변을 살폈다. 화산재와 연기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썼지만, 냄새까지 완전히 막아주진 못하고 있었다.
“냄새가. 지독하군.”
3월 중하순까지 폭설이더니 이제는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 버렸다. 순식간에 녹아버린 눈과 얼음. 그 밑에 감춰졌던 재난의 흔적들이 부패해 올라오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일본은 깨져버렸다. 그렇게 썩어버린 잔해들은 죽음의 냄새를 피워올릴 뿐.
쿠직- 짓밟히는 미끄덩한 무엇에 노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문어?”
썩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문어 다리 비슷한 기다란 것의 토막이 굴러다녔다. 쯧- 혀를 찬 노인은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흔적. 검객이었기에 알아챌 수 있는 흔적이 있었다.
철근 콘크리트에 남겨진 흔적. 강력한 찌르기의 흔적. 쏘아지듯 찔렀고, 깊이 박힌 칼을 뽑기 위해 좌우로 흔들었다.
“하- 이런-”
상하가 아니라 좌우. 칼날을 수평으로 해서 찌르고. 박힌 칼을 뽑기 위해 흔들었다? 노인 가다마 신타의 머릿속에 다양한 유파의 검술이 떠올랐다.
일본의 고류 검법부터 서양의 롱소드 검술까지. 그런데 이딴 찌르기와 움직임은 기억에 없었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고 깜빡깜빡한다지만, 이건 확실히 기억에 없었다.
‘대체 뭐지?’
주변을 살피니, 깨진 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깨진 조각과 흔적을 연결해서 보니, 당시의 상황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찌르기를 했다. 습격에 당한 사람은 그 맹렬한 찌르기를 막았지만, 검이 깨졌다. 그리고 다음 찌르기를 흘려버렸다.
그러니까 찌르기가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철근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는 건데. 이게 인간의 신체로 가능한 움직임인가?
검이 깨질 정도의 위력, 철근 콘크리트에 박힐 정도의 위력을 가진 찌르기라고? 어떻게? 초인들끼리 격돌했나?
“엘리베이터를 살렸습니다.”
“흐음- 일단 내려가지.”
가다마 신타가 경호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서버 자료가 남았을 리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드 자체를 떼어갔겠지요.”
노인은 경호원들을 향해 흐릿하게 웃었다.
“서버에만 자료가 보관됐으리라 생각하나?”
“연구자료라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백업도 대부분 백업 서버에서 관리할 테고요.”
“그런가? 내려가 보면 알겠지.”
가다마 신타는 흐릿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환풍기가 고장이 났는지 썩은 냄새와 참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복도. 이곳에 왔었던 적이 있었기에 흔적 하나하나가 눈에 밟혔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올라가시지요.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저기 저쪽을 보게.”
경호원들이 노인이 짚어주는 곳을 살폈다. 썩은 흔적. 팔뚝만 한 쥐의 사체. 이상한 것은 벌레가 없다는 것. 지하라서 아직 냉기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서늘한 느낌에 경호원들은 긴장을 감추지 않았다. 통제실에 들어서자 연구원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시체.
무언가. 그건 인간의 시체가 아닌 무언가였다. 머리가 여럿. 촉수 같은 게 돋아난 무엇이 썰려있었다. 잘리고 토막 난.
다른 시체들의 부패가 진행된 데 반해. 이 괴기스러운 생명체는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가다마 신타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괴물이 된 여자의 시체, 아는 얼굴이었다. 샬롯 그룹의 아이였지. 자이니치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어중간한 것들.
‘그랬던가··· 신의 힘을 담으려고 했던 건가?’
“멍청한 것.”
일본의 신을 함량 미달 주제에 탐한 어설픈 최후였다.
“저 시체는 잘 챙기게.”
노인은 시체의 가치를 알았다. 경호원들이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이곳저곳을 살피던 그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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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마 신타는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치매였나? 치매로 인한 환청인가? 정신이 가끔 혼미해지는 것 같다는 소리를 손녀에게 들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었다.
가다마 신타의 처절함을 알기라도 하듯. 뇌리에서 계속 울리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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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냐? 어떤 놈이냐!”
비통하고 한탄하는 무엇의 절규가 뇌리에 박히는 것 같았다. 그 원통함과 분함이 꼭 자기의 감정과 비슷해서. 노인은 그 목소리에 대답하고야 말았다.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