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69)
러스트 [RUST]-269
드드드-
기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핵폭발로 치솟은 먼지 구름 때문에 엔진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었다.
[핸더슨 공군기지까지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도착하는 것도 문제였고, 핸더슨 공군기지가 그대로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핵은 주로 군 시설에 떨어지는 것이니까.
“그래도 멸망은 아니군요.”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설마 영화에서처럼 핵탄두 한 방에 도시가 증발하고 땅이 녹아서 사라지고 그런 것을 생각했습니까?]“······.”
그랬다. 영화에서 보면 도시가 가루로 변하고, 강산이 무너지고, 주변을 증발시켜 버리는 게 핵으로 묘사되지 않았던가? 핵미사일이 백 단위로 오고 갔는데 이 정도면, 영화가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
[전략핵과 전술핵은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술핵은 작은 핵, 전략핵은 큰 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그건 알고 있지. 나도 군대는 다녀왔다고.’ 마루는 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종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유하고 있는 핵을 100발이라면 가정하면 대부분 전술핵의 숫자입니다. 전략핵이 아니고요.]상호확증파괴 논리라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뒤, 최근까지 러시아와 미국은 계속 핵을 감축하고 있었다.
[전술핵이라고 해도 무시할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위력을 조절해서 필요한 범위에만 타격하기 위함이지, 폭발력을 조정하면 히로시마, 나가사키급은 뛰어넘을 수 있는 것들이죠.]아무리 작은 핵이라고 하더라도 핵은 핵이라는 소리.
그렇기에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은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핵 공격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핵 공격을 막으려는 시도가 더 큰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고.
생각해 보라. 상호확증파괴로 찾은 평화 ‘서로 조심.’이었는데, ‘나는 막을 수 있으니까, 이제부터 너만 맞아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쨌든, 소비에트 연방과 미합중국은 다사다난한 위기 속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살았다. 지금 상황을 보면 중국은 그렇지 않았지만.
[20~30%는 요격에 성공했을 겁니다. 어쩌면 더.]극초음속 미사일로 적을 타격하는 것만 생각하겠나? 비밀리에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도 연구하고 있었을 거다.
대체로 무기는 공개된 것 이상의 시스템이 있기 마련이었다. 미사일과 미사일 요격 시스템은 창과 방패의 관계처럼 서로 자극하고 성장하는 것이니까 더 그렇고.
[그런데도. 이렇게 핵 여파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전략핵이 떨어졌다는 소리.
거기에 미국 서부지역 대도시들이 문제였다. 전에 터진 EMP 테러의 여파로 방송, 인터넷, 통신이 끊긴 지역인지라 제대로 된 대피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피 방송하고 바로 빠진다.’
‘정말 대도시에 핵을 떨어뜨릴까요?’
‘전략핵이라면···’
‘신이시여.’
약탈, 폭동을 막고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투입된 병력을 빼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대체로 전략핵은 미리 목표를 정해놓기 마련. 중국이 가용 가능한 핵미사일을 전부 쐈다면 대도시들도 타겟이라고 봐야 했다.
참상은 중국에서 발표한 핵미사일의 사양을 너무 신뢰해 벌어졌다. 미국은 중국의 미사일 기술을 러시아 다음으로 보고 있었다.
중국이 달에 도달한 것을 보면 중국의 로켓 분야를 무시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당연히 중국의 미사일이 지정한 목표에 떨어지리라 판단했을 뿐.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중국의 핵 공격 목표로 설정됐을 확률이 높은 대도시에서 벗어난 텅 빈 공터. 미 연방군과 주 방위군이 대피한 황량한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질 줄이야.
‘우연’이든 대륙의 ‘실수’든 졸지에 연방군과 주 방위군이 녹아버렸다. 그 많은 병력. 2개 기갑 연대를 비롯해 숫자로 따지면 군단급 병력이 증발했다.
로키산맥과 서부지역 국립공원에서 변이 괴수를 척살하던 병력. EMP가 터져 약탈, 폭동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던 병력. 그 많은 병력과 물자가 사라졌다.
그렇게 중국의 핵은 무엇이 목표인지 불분명하게 떨어졌다. 심지어 애매하게 떨어진 곳도 많았다. 그 어중간함이 오히려 피해를 극대화 시켰다.
드드드드-
다시 기체가 진동했다. 엔진이든 어디든 무리가 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공군기지가 아니더라도 일단 착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극비리에 만든 기체였다. 아직 공개하지도 않은 기체를 민간 공항에 착륙시킨다는 것은 부담스러웠던 조종사가 마루의 말을 무시했다.
“이대로 추락하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닙니까?”
드드드드-
점점 잦아지는 진동에, 조종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거의 다 도착한 마당에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밀워키 국제공항, 제너럴 미첼 국제공항이었다.
조종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에 하나 비상착륙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미시간 호를 이용해 기체를 최대한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테니까.
혹시나 했었던 미첼 공항은 역시나 엉망이었다. 활주로에는 불붙은 비행기가 그대로 방치된 채 있었고, 관제탑과의 통신도 연결되지 않았다.
[······.] [······.]인근 도로와 고속도로도 엉망이었다. 도망치려는 차들과 사고 난 차들로 뒤엉킨 모습. 도로를 이용한 비상착륙도 불가능했다.
[미시간 호수에 비상착륙하겠습니다.]부드럽게 수면에 내려앉은 검독수리에서 형광 주황색 비상용 고무보트가 볼록 튀어나왔다. 내리자마자 바로 런 하려는 마루를 향해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말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복귀하시는 겁니까?”
“구조신호를 보냈으니 곧 구조대가 올 겁니다.”
오래 걸려도 반나절이면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마루는 악수를 청했다. 어쨌든 이들의 도움 덕에 미국까지 잘 돌아왔으니까.
“여기서 헤어지죠. 고맙습니다.”
“예? 구조대를 기다리지 않고요?”
마루는 구조나 복귀라는 이름의 목줄을 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빌딩에 들어가서 부상을 핑계로···. 아니 조종사랑 부조종사가 봤으니 부상이 아니라 병을 핑계로 눌러앉을 생각이었다.
‘빌딩은 어떻게 됐을까.’
어느 순간부터 디아나와 연락이 끊긴 것을 보면, 핵이 터지면서 생긴 EMP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인지라 걱정스러운 마루였다.
“복귀하지 않으십니까?”
“집이 근처라서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도 되고요.”
밀워키에서 디트로이트 정도면 근처 맞았다. 마루는 당당했다.
“아···. 그렇군요.”
조종사는 마루가 가족이나 친지에게 간다고 생각한 듯했다. 조종사들과 헤어진 마루는 바로 밀워키 인근 선착장으로 갔다.
‘도로는 엉망일 거고 쓸데없이 엮일 가능성도 커.’
상황이 상황인지라 뱃길을 이용하는 게 좋았다. 안타깝게도 모터보트들은 EMP 때문인지 작동되는 게 없었다.
“젠장. 빌어먹을 EMP.”
다행히 삼각돛이 달린 멀쩡한 요트를 하나 건질 수 있었다. 그래도 카타마란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 경험이 있는지라, 요트를 움직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디아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방사능, 생화학전에 대비해서 공사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콕 집어서 EMP 대비하라고 했으니까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텐데.
‘통신망이 나갔나?’
그러고 보니 선착장에 사람이 없었다.
‘하긴 핵이 터졌으니까. 대피했던 사람들이 벌써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겠네.’
사람들이랑 드잡이질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하얀 삼각돛을 크게 부풀린 요트가 고즈넉한 미시간 호수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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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진동이 빌딩을 흔들었다.
꺅-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랑살랑하는 간호사를 감상하는 연구진들은 미혼, 기혼할 것 없이 얼굴이 풀려있었다. 어쩐지 훈훈해진 지하대피소의 분위기.
‘아주 좋단다. 좋아.’
엑소슈트를 장착하고 완전무장한 김 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그래도 다들 패닉에 빠져서 날뛰거나, 간호사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껄떡대지 않는 것을 보면, 괜찮은 사람들로 뽑았네.’
그러고 보면 은근 광신도랑 백정이 사람 보는 눈은 있는 거 같았다. 어느 정도 능력 있고 대충 믿을 만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니까.
중국, 동남아, 일본에서 작업하면서 많은 인간 군상들을 겪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모인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것을.
싹수가 노랬으면 대피하는 순간부터 정치질 들어가고 껄떡대기 시작했을 거다. 그러면 문답 무용 초장에 조지려고 엑소슈트에 완전무장까지 했는데, 쓸데없이 총알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는 김 양이었다.
[연락 없음?] [통신이 끊겼습니다. 핵폭발의 영향으로 중계기가 고장 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까지 왔는데?] [마지막 통신은 미국 서부 인접한 태평양 상공이었습니다.]그게 그렇게 빠른 비행기라고 했으니까 늦어도 1시간? 2시간? 그쯤이면 근처에 도착하려나? 아니다. 핵이 터졌으니까 공항에 내린다고 해도 이동수단이 없겠구나.
‘차를 보내려고 해도 도로가 엉망일 거고. 전기 오토바이를 보내면 좋을 텐데.’
[전기 오토바이 자율주행으로 보낼 수 있음?] [현재 위치를 알지 못하면 어렵습니다.]위치를 안다고 해도 GPS 상태가 좋지 않아, 근처까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어쨌거나 연락이 돼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기다려 볼 밖에.
[자동 포탑은 괜찮고?] [수리가 필요한 포탑이 3개. 외부 센서와 CCTV를 합해 17개입니다.]EMP 대비한다고 했는데도 더럽게 많이 고장 났네.
작게 투덜거린 김 양이 빨리 수리하라고 흐뭇한 표정인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핵폭탄은 어디 떨어졌고?] [랜싱과 털리도 인근에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하긴, 디트로이트는 망한 도시니까 굳이 폭탄 낭비할 생각은 없었겠지. 랜싱이야 미시건 주의 주도니까 목표였을 테고 김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탄두 미사일에서 분리된 자탄이 빗나가 털리도를 털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됐다.
밤. 전기가 끊겨 어둠에 잠긴 디트로이트가 총성으로 시끄러워졌다.
“MMMMM-”
탕탕탕!
“핵이다!”
투다다다닥!
“핵이 터졌다!”
콰아아앙!
‘경축 핵 터짐.’
축제가 열린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거리.
“핵인데?”
“어라?”
근데 왜들 다 멀쩡하지?
영화에서 보면 핵이 터지면 다 날아가는 거 아니었어?
열심히 허공에 총질하던 놈이 고개를 갸웃했다.
“병신아. 옆 동네가 날아갔으니까 그렇지.”
“우리 동네는?”
“이미 다 터진 동네에 뭔 핵을 쏘겠냐?”
“오오오오!”
“이미 터진 동네!”
“핵도 버린 도시!”
그렇다. 그런 기분으로 털러 가자!
“오오오오오! 털자!”
“큰 데, 큰 거 털자.”
“핵이다!!!”
핵이 터졌는데 경찰이고 나발이고 어쩔 건데?
그렇지 않아도 핵이 떨어진다는 소리에 한 번 털렸던 마트와 매장이 2차 약탈에 휩쓸렸다. 순식간에 너덜거리는 껍데기만 남은 상점들.
“Fuck! 늦었네.”
“젠장. 여기도 털렸어.”
“저번에 우리 사촌이 새로 공사했다는 빌딩 털러 갔었는데 말이야.”
“아 거기, 새로 벽 쌓고 거기?”
“거기 벽이 그냥 벽이 아니라 MTF 컨테이너라더라.”
“컨테이너?”
“코스트코랑 월마트에 가는 컨테이너로 벽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빈 게 아니라?”
“오오오- 물건으로 빵빵하겠네.”
약탈자들 사이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HOLY F.J. 급으로 물건 많이 쌓여있다는 빌딩 들어봤냐?”
“알아 거기. 무슨 종말에 대비한다고 광고도 때렸던 거기 말하는 거 아니야?”
“나도 들어봤어. 모든 게 다 있다는 광고.”
“종말에 대비한다고 했지.”
디트로이트 시의 인구는 65~70만 사이였다. 이 가운데 미국 기준 빈민층이 30%에 육박했다. 거의 20만에 달하는 빈민층을 시작으로 블라디 아크 타워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