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7)
러스트 [RUST]-27
이번 일로 확실하게 조직에 찍혔다고 봐야 했다.
부모님도 나루도 조직의 타겟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 일본으로 가는 게 맞았다.
마루가 한국에서 증발했는데, 마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 뭔 의미가 있겠는가? 협박하든 뭘 하든 그 대상자가 한국에 없고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딱히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심증이 발가락 끝을 간지럽힌다고 마루 가족 붙잡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조직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발가락이 가렵다고 수세미로 박박 닦을 일도 아니고.
한 형사는 이번 일로 마음의 빚을 졌을 것이다. 그러니 마루가 가족을 부탁한다고 하면서 조직이 마루의 가족을 노릴지 모른다고 언급하면 알아서 감시할 것이다.
여기에 총기 난사로 조폭들이 떼죽임당해 경찰들 신경이 바싹 곤두선 상태, 경찰특공대와 대테러 진압부대까지 ‘걸리기만 걸려라.’ 하는 상황에서 조직이 마루 가족을 건드린다?
한 형사가 신변 보호를 하고 있는데? 만약 조직이 마루 가족에 손을 댔다가는 벌통을 들쑤신 꼴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한 형사를 이용해서 가족을 간접적으로 보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루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조직이 작심하고 건드린다면 마루가 부모님을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경찰에도 끄나풀이 있고 그 윗선에도 선을 깔아 놓은 조직이 아니겠는가?
수천억을 태울 정도로 치밀한 놈들이었다. 심지어 택시를 탔더니 납치 감금형 택시였다. 그놈들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은 정상일까?
마루는 인정했다. 가족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걸.
그렇다면 복수는?
그건 자신 있었다. 얼마가 걸리든, 방법이 무엇이든 복수는 자신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나 나루에게 해를 끼친다면, 놈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모조리 정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마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김 양이 있는 위치로 향했다.
한국관 숯불한우
여기 비싼 곳 아닌가? 코로나 전에는 예약해야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막 맛슐렝 그런 별 받은, 유명한 거기 아닌가?
근데 사람들이 빙 둘러서 휴대폰 카메라로 뭔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뭐지?
마루는 다시 위치추적 앱이 표시한 곳과 사람들을 봤다. 확실히 맞았다.
한국관 숯불한우, 그리고 큰 창문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젊은 사람부터 지긋하게 연세가 있는 사람들까지 휴대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야 참 복스럽게 먹네.”
“와 진짜 입맛 돌게 먹네.”
“진짜 천천히 먹는 것 같은데 벌써 8인분”
“레알? 투쁠 꽃등심 1인분 150g에 8만 원, 갈빗살은 180g에 6만 원인데 8인분?”
“반반으로 먹었다고 해도 꽃등심 4인분 32만 원, 갈빗살 4인분 24만 원 잡으면 총 56만 원임. 한 끼에 혼자서 56만 원 태움.”
“근데 방금 2인분 더 시킴.”
“그럼 10인분.”
“미친. 돈도 돈인데, 꽃등심이랑 갈빗살로 1,65kg 먹었다는 소리임.”
“여자가? 미쳤다.”
“프로 먹방러 아님?”
“뉴투브 먹방에는 저런 사람 없던데요?”
“진짜 잘 먹는다. 무슨 고기를 경건하게 먹어. 먹는 걸 보는데 은혜받을 거 같아.”
“꼭꼭 오물거리는데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 한국관에서 한우 투쁠에, 10인분을 혼자서 먹으면 저 정도 아우라는 보여줘야지.”
마루가 밖에 몰려든 인파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깔끔한 가게였다.
밖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곳을 보니 익숙한 단발이 보였다.
살짝 흘러내린 단발을 착- 귀 뒤로 넘기면서 오물오물 씹는 모습. 느릿하게 씹는대도 고기가 녹아서 없어지는 건지, 물 마시듯 꿀떡 넘어가는 폼이 무슨 마술 같은 느낌이었다.
하? 하! 하?
마루는 김 양이 고기를 마시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김 양 전담으로 직원이 붙어서 숯불 관리, 석쇠 교체, 고기 굽기까지 해주니 김 양은 그저 젓가락을 놀려 입으로 고기를 부지런히 옮길 뿐이었다.
확 열불이 뻗쳤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화낼 일이 아니었다. 당장 마루에게 끌린 어그로를 김 양이 가져가는 거 아닌가?
‘좋은데?’
먹방 아닌, 먹방을 찍고 있으니 저게 뉴투브 영상으로 올라가면 조직이 김 양의 위치나 행동반경을 예상하고 조일 것이고, 당장 현재 위치가 노출된 김 양을 노릴 게 분명했다.
저 사람들이 김 양을 찍는 것도 김 양이 허락했든, 암묵적으로 동의했든, 했으니까 찍는 거 아닌가?
마루는 어쩐지 답답했던 속이 쏵 내려가면서 배가 고파졌다. 마루도 지금까지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여기 숯불갈비 특대 5인분하고요. 갈비찜도 특대자 하나, 공기밥도 같이 주시고요.”
마루는 김 양의 단발머리 뒤통수를 보며 느긋해졌다.
‘그래, 많이 먹어라. 넉넉하게 많이. 힘내서 후회 없이, 런-하려면 많이 먹어야지.’
마루도 슬슬 식사에 들어갔다.
‘여기 진짜 맛집이네. 찐이다.’
한국관 숯불한우가 엄청 유명하다고 하더니 숯불 소갈비도 그냥 깡패였다.
우걱우걱
쌈 싸서 먹고, 그대로 기름장 찍어 먹고, 마늘 올려서 풋고추랑 같이 먹고,
갈비찜도 별미였다. 이곳은 특이하게 감자, 밤호박, 당근, 연근, 호두, 잣, 은행, 밤, 고구마까지 들어있었다. 그렇다고 고기양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6~7인분은 넉넉하게 될 만큼 컸다.
마루도 후루룩 갈비찜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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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먹는 와중에 마루는 뭔가 불편했다.
한우 맛은 최상이었다. 왜 불편할까?
‘김 양이 먹는 걸, 안 먹어서 그런가?’
그래서 김 양이 먹는 꽃등심도 2인분 추가 주문해서 먹었다. 그래도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김 양이 어그로를 끌어 줄 걸 생각하니 분명히 편해야 하는데, 뭔가 계속 불편했다.
마루는 나중에 주문한 꽃등심을 천천히 먹으면서 이유가 뭘까 고민했다. 김 양을 어그로용 고기 방패로 써먹어서 그런가? 너무 양심에 털 난 짓인가? 양심?
당장 김 양이랑 오늘 점심쯤 서로 ‘네가 죽어라. 너만 죽어라.’ 하면서 총알과 사시미를 주고받던 사이 아니던가?
김 양도 돈이 엮이지 않고, 조직과 엮이지 않았으면 당장 언제든 마루에게 총알을 박아 넣을 여자였다. 그러니 어그로 넘긴다고 이렇게 불편할 이유는 없는데.
마루는 뺨을 긁적이고. 꽃등심을 먹었다. 맛있다. 맛은 있는데 마루 입맛에는 갈비찜이나, 숯불갈비가 입에 더 달았다.
‘씨- 뭐가 이렇게 불안하지. 찜찜하고. 더럽고.’
뭔가 느낌이 더러웠다. 문득 김 양이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 젓가락질.
김 양과 싸웠던 장면이 떠올랐다. 오른팔에 사시미를 박아 뒤틀었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루의 눈동자가 김 양의 오른팔로 향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깁스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 분홍색 깁스.
‘그러니까 저 깁스, 조직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오른팔 치료를 했지?’
총상이나 칼로 깊게 찔린 자상 같은 경우, 일반 병원에서는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직이 운영하는 병원 가서 치료한다고.
더러웠던 기분이 꿈틀거렸다. 심장이 두근두근, 뭔지 찝찝했던 농도가 강해졌다.
회사. 병원, 깁스에서 이어지던 연상이 갑자기 택시, 위치추적, 안 형사로 이어졌다.
김 양이 상처를 입고 조직의 병원에 갔다.
조직에서 김 양을 그냥 치료해줬다고 하지만, 그 뭐 같은 조직이 그냥 잘 치료하고 끝났을까?
멀쩡하던 김 양이 반쯤 팔 병신 돼서 왔는데? 경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마루의 연상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안 형사. 위치추적기.
“씨발!”
마루는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CCTV의 위치. 좋아. 내 뒤통수만 찍혔어. 들어올 때 찍힌 건 어쩔 수 없다.
마스크에 뿔테 안경까지 꼈으니 마루라고 특정하긴 힘들었다.
마루가 냅킨에 적기 시작했다.
-내가 헌팅하는 것처럼 할 테니까-
-넌 헌팅 당한 거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냥 따라 나와-
-내가 뭐라고 하든 고개를 끄덕여. 계산은 내 것까지 네 카드로 해-
-현금 말고 카드로 해-
-제발, 시키는 대로 해. 묻지 말고. 일단 나가서 말해.-
-냅킨은 읽고 바로 주머니에 넣어-
-아니면 난 그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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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그저 행복했다.
생의 생생한 감동. 그래 이 맛이야.
열이 뻗쳐서 백정 마루에게 쏘아붙였다.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털어내니 얼마나 상쾌한지.
거기에 한우 투쁠의 위로까지 더해지자 꿉꿉했던 기분이 싹 풀어졌다.
갑자기 들이밀어 진 냅킨을 보기 전까지는.
‘간나 새끼가 밥 먹는 데까지 찾아와서 뭐가 어째?’
심지어 자기 밥값도 내란다. 카드로. 묻고 따지지도 말고.
잘 먹고 즐거웠는데 기분이 잡쳤다.
김 양이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 냅킨을 내민 마루를 노려봤다.
무심한 눈빛. 그냥 무심했다. 아니면 말고 하는 눈빛.
김 양은 다시 냅킨을 봤다. 그냥 간다는 말이 마지막에 있었다.
‘백정 새끼지만 능력은 있는 새낀데.’
그냥 간다는 말은 여기서 째지자는 소리였다.
그럼 돈은? 돈이야 좀 아쉽지만, 꼭 당장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더럽지만 중국으로 가서 일하면 먹고 살 만큼은 벌 거고, 회사가 쫓든 말든 일단 미국으로 가서, 멕시코로 넘어가, 신분 바꾸고 남미로 넘어가 버리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근데 백정 마루 놈은 자기랑 달랐다. 신분 만드는 곳도 모르고, 가족들 신분까지 만들겠다고 했던 놈이 갑자기 째지자고? 나 말고 다른 끈이 있다는 건가? 일반인이었는데?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걸까?
현금 가지고 나온 게 없나?
근데 왜 카드로 계산하라는 거지?
까짓것 내 달라면 내주지, 간나 새끼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었겠어.
이런저런 생각이 샘솟듯 솟았지만, 김 양은 ‘난 쿨한 여자니까.’ 하는 마음으로 마루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김 양은 다소곳하게 살포시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저 사람 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주인 할아버지가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저분 것까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195만 원 나왔습니다. 5만 원 에누리해서 190만 원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네? 195만 원? 190만 원?’
김 양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내가 얼마 먹었지? 10인분, 아니 12인분 먹었구나.
“손님께서 꽃등심 6인분 48만 원, 갈빗살 6인분 36만 원 해서 84만 원에, 같이 계산하신다고 하신 분이 숯불갈비 1대에 350g짜리 특대로 5대, 50만 원, 갈비찜 6~7인분 특대 45만 원, 꽃등심 2인분 16만 원 해서 111만 원, 두 분 합하면 195만 원인데 5만 원 에누리해서 190만 원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김 양이 멍한 표정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삑- 소리와 함께 주인 할아버지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두 손으로 공손히 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 네.”
김 양도 공손히 카드를 돌려받았다.
마루는 김 양과 주인 할아범의 콩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냅킨에 글을 적었다.
아직 추측이지만, 김 양의 깁스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놈들이 위치추적기만 달았을까? 한 형사만 하더라도 도청기, 위치추적기, 카메라 3종을 달았는데?
씨발.
카드를 받으며 꾸벅 인사하고 ‘이게 현실?’이라는 표정으로 영수증까지 두 손 공손하게 받는 김 양에게 냅킨을 줬다.
-저 앞에 스타박스에 들어가서 음료 하나 시켜 놓고 기다려-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지금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아무 말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탈출하고, 전화는 말고 문자로만 연락해-
냅킨의 글을 읽고 아방했던 김 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송글송글 촉촉하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