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71)
러스트 [RUST]-271
간만에 종일 침대에서 시체 놀이를 한 마루가 기지개를 켰다. 배고프지만 않았으면 더 잤을 텐데, 너무 배가 고팠다.
“김 양은?”
[경계 중입니다.]디아나의 보고에 마루가 입으로 오- 모양을 만들었다. 어쩐 일이래? 진짜 일하기 귀찮아하는 녀석이. 열심히 일한다고 하니, 한 번 가봐야겠다. 안 먹었다고 하면 같이 먹으면 되겠지.
김 양이 경계를 서고 있는 북서쪽 벽에 오르자, 가득한 인파가 보였다. 벌떼처럼 윙윙 울리는 소리.
자동차 경적이 울리고 허공을 때리는 총소리에 어지러울 지경. 어제는 7~8만이더니, 오늘은 족히 그 2배는 될 법했다. 15만은 될 법한 사람들.
“대체 이게 무슨 지랄이야.”
[저쪽 보삼. 저기.]김 양이 말하는 곳은 저 멀리 외곽 쪽이었다. 말다툼하는지, 서로 밀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냥 휘두르는 주먹이 아닌 살의가 담긴 주먹질이 오고 가는 모습.
“저거 잘못하면 죽겠는데?”
[그쪽 말고 저쪽도.]다른 쪽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밀치던 사람들이 서로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이상한 느낌. 갑자기 죽이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니. 기시감이 강했다.
‘어디서 봤지?’
일본? 일본 병원? 간호사를 데려올 때 그 병원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갑자기 분노하며 날뛰던 사람들.
“미친. 이렇게 모여 있는데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고?”
군대가 철수했고 경찰이 도망갔다고 했을 때, 잘됐다고 생각할 게 아니었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를 조기에 종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퍼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감염자를 빠르게 분류 격리했기 때문이었다.
주 정부가 날아간 지금, 군대도 없고 경찰도 없었다. 아무도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경고 방송 틀어. 사람들 사이로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15만이 넘는 사람들이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변종은 얼마나 생기는 걸까? 일본에서 설쳤던 그런 것들이 만 단위로 날뛴다고? 씨발···.
[현재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FUCK YOU!”
“구호품을 내놔!”
“거짓말이다! 또 거짓말이야!”
[시민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해산하시기 바랍니다!]“문을 열라고! 문을 열면 해산할 게.”
“우리도 살고 싶다!”
“Black Lives Matter!”
“아크 타워에 있는 더러운 백인들을 몰아내자!”
그렇게 잔인한 5월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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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차폐된 방호벽 아래, 전략사령부는 안전했다.
“끝을 봐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잔여 방사능이 낮은 폭탄을 썼으니, 상륙 작전 가능합니다.”
장강과 황하를 타고 대륙 안쪽으로 진입. 쓸어버린다는 계획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믿을 수 없었다. 테러리스트들이 핵 보안 코드를 탈취했다고 치자, 정상이라면 핵미사일 기지에 비상 연락해, 기존의 핵 보안 코드를 폐기하도록 하고 무조건 발사금지를 내렸으면 됐다.
최소한 핵 보안 코드를 털린 순간, 핵미사일 시설 보안을 강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뭔가? 내전 때문에 병력이 부족해 핵시설이 털렸다고?
그걸 믿으란 말인가? 핵 보안 코드 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핵이 발사됐다고? 그것도 한두 발도 아니라 스물세 발이나?
그래서 주요 군사 시설과 핵시설을 중심으로 46발을 때렸더니, 미친 것들이 가용 가능한 핵을 전부 발사했다. 핵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한국군 20만에 재편한 주둔군 5만을 더해 25만으로 상륙하면 충분히 승산 있습니다.”
“한국에서 예비대를 소집하면 최소 180만을 더 뽑을 수 있습니다.”
한반도 분단을 시작으로 소비에트 연방과의 갈등이 첨예화됐다.
그런 갈등 속에서 터진 한국전쟁. 연합군의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공산 중국이 한국전쟁에 끼어들었다.
공산 중국의 참전이 소비에트 연방의 참전으로 이어져 3차 대전으로 확전하지는 않을지 걱정한 미국은 중국에 핵폭탄 사용을 주저했고, 그 결과 많은 연합군 사상자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따져보면 이상했다.
미국이 중국에 핵을 사용했어도, 미국 본토가 핵으로 공격받기는 힘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에는 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소비에트 연방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이야기는? 공산 중국이 핵에 맞았다고 소비에트 연방이 갑자기 미국에 핵을 떨군다고?
당시에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 없었던 시대, 핵을 사용할 방법이 폭격뿐이었다. 미국의 방공망을 뚫고 폭격기를 사용해서 미국 본토에 핵을 떨구는 게 가능했을까?
애초에 1950년대 초반, 초장거리 폭격기를 운용해 핵을 투하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핵전력을 제외해도 마찬가지. 소비에트 연방과 3차 대전을 치를지 모른다는 주장도 따지고 보면 객관적이지 않았다.
나치 독일과 피바다를 찍어 사실상 폐허 재건하기도 허덕이는 소비에트 연방이 미국과 전쟁을 한다고?
심지어 한국전쟁은 유엔군이 파병된 전장인데 그곳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밀고 내려온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러니 공산 중국에 핵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당시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핑계였고 미래를 위한 설계였다. 그리고 그 핑계와 미래 설계의 대가를 70~8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받는 것이었을 뿐.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에서 치안확보 중이던 부대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피 완료했다고 하지 않았나?”
“전시에 통신이 끊겼다는 게 말이 되나?”
“EMP 때문일지 모르니, 현장으로 가서 통신부터 복구해.”
핵전쟁 대비는 충분히 하고 있었다. 충분히 했다고 믿었다. 미합중국이 혹시나 터질 핵전쟁에 대비한 시간은 60년이 넘었으니까.
주요 도시에는 핵 방공호가 설치됐고, 부자들은 개인 벙커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다린 시간이 너무도 오래 지났다.
강렬했던 핵전쟁의 공포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공산 중국의 개방과 수교, 독일의 통일을 지나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그 긴 세월 동안 단단했던 핵 방공호는 빈민들의 안식처가 됐고, 마약 중독자들의 피난처가 됐으며, 갱과 카르텔의 근거지가 되고 버려지거나 잊혔을 뿐.
오래된 출판사의 잡지, 유통기한 넘긴 통조림, 안에 뭐가 들었을지 모를 물통까지. 먼지처럼 쌓인 과거가 대피소의 현실이었다.
갑작스러운 중국의 핵 공격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낡은 현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차라리 70년대 80년대가 더 잘 대비하고 있었을 지경.
하나둘씩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전략사령부로 모이기 시작했다.
“서부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 연대가 증발했습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 있는 변종 괴수들이 인근 타운을 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 켄싱턴 지역에서 대규모 폭력사태 발생! 마약 중독자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보고입니다.”
예상을 벗어난 끔찍한 피해. 뉴욕을 비롯한 일부 대도시와 러스트 벨트의 망한 몇 도시를 제외한, 건실한 도시들은 핵 공격에 폐허가 됐다.
모든 것이 예측에서 벗어났다.
그랬음에도.
그럴지라도.
그렇기에. 전략사령부는 모든 것을 전쟁 속으로 갈아 넣기 시작했다.
변종? 그건 주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해.
약쟁이들? 그건 경찰이든 주 방위대든 처리하라고 해.
전략사령부의 목표는 오직 중국.
국방성이 원하는 것은 적의 멸절.
전쟁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전쟁의 용광로에 불을 붙여라.
핏물이 끓어오르고 뼈와 살을 용접하는 불꽃은 피어오르리
그리하여 강철의 복수가 시작되리라!
전쟁.
그리고 전쟁.
마지막에 서 있는 자는 미합중국이리라!
그 첫걸음을 한미연합군이 내디뎠다.
누런 바다를 뚫고 달리는 고속상륙정.
잔류 방사능을 측정하는 계측기가 내는 규칙적인 소리에 병사들은 신경이 곤두선 얼굴이었다.
“작전 목표는 친산 원전이다.”
상하이 인근 친산에 있는 원전을 확보, 정지, 폐기하는 것이 작전 목표였다.
“···알파 팀이 중앙통제실을 장악한 뒤··· 브라보 팀은 주 출입구에서 적의 지원을 차단한다. 원전 폐기 후, 상륙 작전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적 후방을 교란하는 것이 우리 임무다. 이상.”
질문은 없었다. 고속상륙정의 엔진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핵에 맞은 상하이는 처참했다.
중국이 미군 기지를 향해 핵을 날리기 전까지는 미국도 중국 대도시에 핵을 떨굴 생각은 없었다.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 다수가 민간인 거주지역이나 도시 인접인 경우가 많았기에 미군 기지에 대한 핵 공격은, 민간인과 도시에 대한 핵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민간인이고 도시고 신경 쓰지 않고 공격했으니, 미국도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었다. 한 대 맞았으니까 두 대, 세 대, 그냥 계속 두들겨 패기 시작한 미국이었다.
삐이이이-
삐익- 삐익-
방사능 계측기 바늘이 갈팡질팡 흔들렸다.
원전 폐기 팀이 작전을 시작할 무렵, 상하이를 정리하기 위해 투입된 한미연합 부대는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중국군과 교전하느라 정신없었다.
“빌어먹을 핵이 이런 거였어? 다 쓸어버리는 게 아니었냐고!”
“닥치고 쏴! 3시!”
“그냥 융단폭격해버리지 여길 왜 기어들어가라고.”
“놈들이 숨기고 있는 게 있다고 하잖아!”
“아무것도 없으면 이 새끼들이 이렇게 질척거리겠냐? 뭔가 있으니까 이렇게 지랄이지.”
“닥치라고 새끼들아. 3시나 똑바로 쏴!”
타다다다닥!
“이 새끼들 무장이 단단해.”
“유탄발사기 뭐해. 쓸어버려!”
투두두두둥!
중국발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는 비밀 연구소가 상하이에 있었다. 핵에 두들겨 맞고도 지하 연구소가 건재하다는 첩보에, 한미연합으로 구성된 특전단이 시가전을 감수하고 상하이에 투입된 상황.
“입구 확인.”
“진입한다.”
입구에 재빨리 크레모어와 지뢰를 깐 부대원들이 자리를 피했다. 그 뒤를 추격하는 중국군.
“놓치지 마라! 잡아!”
쿡- 바닥을 밟자 공중으로 튀어 오른 지뢰가 폭발했다.
단단하게 감싼 방탄복도 근거리에서 폭발한 지뢰의 파편을 모두 막기란 불가능했다. 삽시간에 분대 병력이 갈렸지만, 중국군 소좌는 바로 병력을 밀어 넣었다.
“시체를 던져!”
쾅!
크레모어가 폭발하며 사방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계속 들어가. 시체를 던지고 들어가라고!”
시체로 지뢰를 제거해가며 추적을 이어간 중국군의 눈앞에 무너진 통로가 드러났다.
“놈들이 지하로 향하고 있다. 둥지를 알아챈 것 같다.”
[치익-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저지하라.]통로 무너뜨리고 들어가는 새끼들을 어떻게 하라고. 무전기를 부수듯 통신을 끊은 소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우회. 모두 전속으로 이동한다.”
찾는 자와 숨기는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미로 같은 지하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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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가슴이 답답했다.
전략사령부를 시작으로 군부가 폭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중국을 공격해야 합니다!’
‘놈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됩니다!’
‘당장 변종들이 습격하고 있는 건 어떻게 합니까?’
‘변이 바이러스 확산도 문제입니다.’
‘핵이 터졌고 지금은 핵전쟁 중이란 말입니다.’
‘놈들이 숨겨 놓은 핵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데, 발사체를 추가로 생산해서 계속 핵을 쏜다면 어떻게 할 거요?’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중국을 밀어버리고 놈들이 숨긴 핵을 찾아 전부 폐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핵을 주고받았음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민간인 인명피해가 작았다. 이에 반해 군 전력 손실은 예상보다 컸다.
‘가용 병력이 없는데 무슨 수로 즉시 공격한단 말입니까?’
‘우리에겐 한국군이 있습니다.’
전략사령부는 생존한 연방군과 주 방위군을 재편 한국군과 연합해 중국 본토 공격에 들어갔다. 그건 좋았다.
다 좋은데, 문제는 국내 상황은 전부 무시하고 중국만 때려잡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
“유럽에서 과격테러단체가 테러를 일으킨다고?”
“사실상 전쟁에 가깝다고 합니다.”
유럽의 지원도 받기 어려워진 상황.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탈리아에 피렌체 지역을 중심으로 기괴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버지니아 유럽 지부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블라디 아크 타워는? 아직도 통신이 연결되지 않고 있나?”
“완전히 끊겼습니다.”
베이징에서 블라디마루가 돌아오면 전략사령부, 군에서 직접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블라디 아크 타워로 향했다는 보고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설마 그 블라디마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리는 없지만, 도통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일을 할 수 없었다.
핵, 변종, 변이 바이러스, 괴수, 전쟁, 테러···.
덴 브라운 과장은 위장약을 생으로 씹었다. 상황이 이러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갱이고 카르텔이고 범죄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약쟁이들까지 덤으로.
미합중국에서 이익을 보던 새끼들이. 미합중국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니까 그 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분리주의자들까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직접 가라고 했잖아! 무전기 들고 직접 가라고!”
“디트로이트에 들어간 요원들은 전부 통신이 끊겼습니다.”
“3번이나 갔지만, 전부 실종됐습니다.”
“과장님. 여기 인공위성 자료입니다.”
디트로이트 블라디 아크 타워 인근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이게 무슨···.”
족히 20만은 될 법한 인파가 블러디 아크 타워를 감싸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근처, 검은색 구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건 뭔가?”
“새떼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새? 조류라고?”
“분석 결과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씨발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