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78)
러스트 [RUST]-278
마루는 사선으로 조각난 시체를 살폈다.
꾸물꾸물 잘린 단면이 살아서 파르르 떠는 모습. 혈관에서 삐져나온 혈액이 서로 뭉쳐 촉수처럼 흔들렸다.
‘이건.’
가다마 노인장과 샬롯 심회장의 그림자를 죽였을 때와 비슷했다.
그들에 비하면 확실히 약하지만, 일반적인 변종의 생명력은 아니었다. 갈비뼈와 심장을 포함해 여러 장기가 잘렸음에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장기.
크어어억!
절단의 충격으로 잠시 기절했었던 듯 머리통이 입을 벌렸다.
쿠직-
그대로 목을 자른 마루가 찝찝함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날개를 활짝 펼친 새들이 조용히 회전하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이 마루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체를 줘. 먹이를 줘. 어서 줘.
까마귀가 떼거리로 날아다니는데, 부엉이나 올빼미라도 된 것처럼 조용했다. 아마 변이를 했거나 뛰어난 머리로 소리를 죽이는 방법을 찾았겠지.
그런데 왜 먹겠다고 덤비지 않지?
전에 한 번 갈린 걸 기억하고 있어서?
이걸 먹으면 식인병 걸리지 않을까?
먹겠다고 하는 걸 보니 먹어본 가락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새들 생각을 알게 뭔가, 마루가 백 팩에서 네이팜이 담긴 화염병을 꺼냈다. ‘대충 이상한 놈들은 죽이고 태운다.’ 이게 기본 공식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네이팜 화염병이 뭔지 아는지, 느릿하게 빙글빙글 돌던 까마귀들이 허둥지둥하는 느낌. 간질간질 어디선가 느껴본 감각이 다시 일었다.
그러지 마. 먹이를 줘. 시체를 줘.
생각해 보면 이것들이 외부에서 빌딩으로 접근하는 드론이나 무인기, 헬기 따위를 알아서 처리해주고 있었다. 시체도 깨끗하게 치워주고 있었고.
100만에 육박하던 새 떼는 어느새 흩어져 몇만 단위로 줄었다. 그 가운데 까마귀 숫자는 1만 언저리. 그래도 말이 1만이지, 만 단위의 까마귀들이 소리 없이 태풍처럼 회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근데, 저 숫자가 이거 하나 먹겠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새들이 먹지 못하게 꼬장 부리겠다는 건 아니었다. 전부터 새 떼가 시체 처리하는 걸 그냥 뒀었으니까, 따지자면 ‘풍장’ 했다고 치면 되는 일.
마루는 시체를 태워버리려고 꺼냈던 네이팜 화염병을 다시 가방에 넣고 자리를 피했다.
이것저것 주워 먹고 간이 부어서 덤벼도 좋고, 머리가 똑똑한 것 같으니 내가 준 걸 알고 적당히 공생하면서 살면 더 좋고.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지자, 둥그렇게 회전하던 까마귀들이 스프링처럼 길게 늘어져 시체를 향해 활강하는 모습.
후두두둑-
까마귀들이 일렬로 스치듯 날아간 뒤, 시체의 흔적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블러디 아크 타워에 빡빡하게 몰려있던 감염자들을 분산시키는 계획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적당한 숫자를 떼어 유인하기를 반복하는 지루한 과정.
식인병자들이 감염자들을 물어 대는 걸 처리하고, 깨끗한(?) 감염자들을 목표지점까지 유인하는 것인데, 요즘 유독 식인병자들이 자주 보였다.
‘대체 어디서 계속 퍼지는 거야?’
감염자들은 방어 토템이나 경보기처럼 쓸 수 있었다.
근데 식인병자들은 쓸데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사람 같았다. 본능적인 식욕을 참고 기회를 노리는 영악함까지 있었다.
탕! 탕!
투다다닥!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묵직한 총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감염자들이 소리를 듣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굳었던 관절과 근육이 조금씩 경련하며 풀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
‘아오. 누구야? 기껏 여기까지 유인해 왔는데.’
은신한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디트로이트에서 움직일 생각이면 대구경이든 뭐든 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은신 장비를 구했어야지.
[3시 방향. 군복 애들 접근.] [15명.] [감염자 무리와 교전 시작]탕! 탕! 탕!
투다닥! 투다다닥!
크어어어-
크아아아아-
총소리가 나는 정확한 위치를 찾았는지 감염자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총소리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불타는 냄새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네이팜 냄새까지 나는 걸 보면 화염방사기가 있나 본데···.’
근방에 있는 것들만 해도 수천은 넘었다. 소리로 계속 모여들고 있을 테니, 15명의 화력으로는 결과가 뻔했다.
[움직임, 무장 좋음.] [중무장. 양산형 엑소슈트 장비.] [지원? 정리?]중무장과 양산형 엑소슈트를 말하면서 톤이 살짝 높아지는 김 양이었다.
“그냥 둬.”
[알겠음.]군복이라. 이쪽과 연락되지 않으니까 직접 사람을 보냈나 본데. 마루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는 것으로, 15명의 명복을 빌어줬다.
“걸어서 온 건 아닐 테고, 지원 차량이나 장갑차 그런 게 보여?”
[여기선 안 보임.]“뚫고 도착해도 열어주지 말고 외벽 넘으려고 하면 경고해. 무시하면 처리하고.”
[괜찮음?]“뭐가?”
[새 떼가 하늘을 빙빙 돌고 있음.]까마귀들이 아직도 머리 위를 배회하나?
마루가 살짝 하늘을 보자, 느릿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먹을 것 먹었으니, 알아서 갈 줄 알았는데.
“괜찮아.”
때 되면 가겠지. 총소리가 잦아든 도시를 뒤로 마루가 복귀했다. 그 뒤를 까마귀 떼들이 조용히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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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왔음?]김 양이 엑소슈트를 입은 채 마루를 반겼다.
“교대 시간 아니야?”
[혹시 몰라서.]군인들이 근처까지 왔다가 몰살당했으니, 혹시나 싶어 대기하고 하고 있다는 소리. 순간 무언가 느껴졌다.
!
!!
마루가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김 양도 총구를 겨눠 자세를 잡았다. 살기가 있었다면 진작 느꼈겠지만, 살기가 없었다.
[느꼈음?]“그래.”
외벽을 따라 설치한 CCTV에는 열감지 기능이 있었다. 그걸 피해서 올라왔다는 소리.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양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려졌다.
“잠시···”
투웅!
커다란 소음기가 달린 김 양의 저격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은 빗나갔지만, 화들짝 놀라 일렁이는 공간이 느껴졌다.
“미친!”
“사격중지!”
내지르는 목소리를 무시한 김 양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퍽!
핏방울이 투명한 공간을 붉게 물들였다. 모두가 김 양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마루의 칼날이 사방을 훑었다. 검붉은 실선이 그어진 공간이 조각조각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만! 아군이다!”
“멈춰! 아군이라고!”
김 양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김 양의 총탄을 피해 조금이라도 급하게 움직이면 그걸 감지한 마루의 칼질이 뿌려졌다.
반격? 살기를 품는 순간, 마루와 김 양의 집중 공격이 쏟아졌다. 삽시간에 외벽 한쪽이 도살장으로 변했다.
“항복!”
“제발!”
핏방울이 여기저기 튄 공간이 일그러지며 모습이 드러났다.
[헬멧 벗어.]공포에 질렸는지 한 사람이 헬멧을 벗지 못하고 비척거리자,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김 양.
투웅!
헬멧에 12.7mm 작열소이철갑탄이 박혔다. 둥그렇게 뚫린 구멍 사이로 지글지글 타오르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
[개수작 부리지 말고 벗어.]옆에 있던 사람이 바르르 헬멧을 벗자, 김 양이 총구를 까딱했다.
[헬멧 저쪽으로 던져.]휙- 날아간 헬멧이 공중에서 토막 났다. 헬멧이 두부처럼 잘리는 모습에 움찔했던 사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같은 편이라고 했잖아!”
[대가리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닥치셈.]같은 편? 아군식별코드도 뜨지 않게 은신하고 들어와 놓고 같은 편? 심지어 이것들 백정이 입고 있는 리퍼 슈트를 입고 있었다. 특수부대라는 말.
[무기 내려.] [리퍼 슈트 벗어.]김 양이 항복한 놈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는 동안, 마루는 은신을 유지한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기를 갈무리할 줄 아는 놈들이라.’
살기를 품자마자 썰었더니, 그걸 금방 알아채고 살기를 숨긴 것들이었다. 베테랑이라는 소리. 얼마나 기다렸을까? 핏물이 치덕치덕한 바닥이 살짝 흔들리는 모습. 이어 붉은 발자국이 하나 찍히는 순간, 마루가 움직였다.
크지지직-
깔끔하게 목을 썰려고 했는데, 덩치가 작은 사람이었는지 칼날이 코언저리를 자르고 지나갔다. 코를 기준으로 얼굴이 상/하로 잘린 시체가 쓰러졌다.
“디아나. 동작감지기 작동.”
[동작감지기 작동 시작합니다.]화면으로 잡히지 않고 열 영상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당장 쓸 수 있는 건 동작감지기뿐이었다.
“비상경보 울리고 차단벽 내려.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움직이면, 발견 즉시 사살해.”
[격벽 차단 시작. 방어 시스템 작동.]상황을 정리하고 보니, 이것들 마루와 김 양을 포위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은신한 채 포위한 뒤, 무장을 해제시키려고 한 것 같았다.
살기가 없었으니 죽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데,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포위하려고 했으면서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해봐야 웃기는 소리였다.
[그래서 왜 왔음?]“블라디마루 칼린 대위와 야니아 킴 중위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 씹- 김 양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아군식별코드는 왜 껐음?]“연락이 끊겼으니까.”
[연락이 끊기면 아군식별코드를 끔?]“···놈들이 이곳을 장악했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양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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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김 양, 결과가 좋았다.
“그러니까 식인병 걸린 놈들이 설치기 시작해서 여기가 점령됐는지 확인하려고 온 거라고?”
“응.”
“인공위성으로 보면··· 아- 새 떼가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확인하기 어려웠겠네.”
“그래서 직접 온 거라고 했음.”
마루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퍼 슈트를 장비한 특수부대를 3팀 15명이나 보낸 것을 보면, 여러모로 미련이 많은 듯했다. 만약 타워가 식인병자들에게 먹혔으면 청소하고 장악하기 위해서, 멀쩡한데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경고의 목적으로.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과도 연락을 끊었더니 밖에서 무슨 이야기가 도는지 알기 힘들었다. 각 기관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보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해킹하는 것도 리스크가 커졌고.
“식인병에 걸렸는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서 그냥 뒀다고 왕창 퍼진다는 거지?”
“응. 스텔스 식인병이라고 했음.”
자각 증세가 없는 것도 피곤한데, 우두머리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행동하기도 해서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은? 전쟁상황은 어떻데?”
“중국에서도 미친 새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버드 스트라이크 손실이 늘기 시작했다고 함. 식인병이랑 변이 바이러스 피해도 점점 커지고 있고.”
그래서인지 버나드 르메이 장군의 주장, 모조리 태워버리자는 작전이 시작됐다고 했다. 폭격이 힘들어지기 전에 쏟아붓자는 이야기.
“보급이 문제겠네.”
“그래서 한국에 군수공장 생기고 장난 아니라고 함.”
한국이 중국 전쟁의 군수 보급창이 되면서, 동남아나 호주에서 자원수출 금지니, 제한이니 하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중국과 전쟁하고 있는데 군수공장 한국에게 수출규제? 자살하고 싶은 건가? 어쨌든 한국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아- 맞다. 그리고 오진 제약 미친년이 약혼자 찾는다고 했음.”
“오진그룹? 나주연이 약혼자? 약혼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
“아니. 약혼한 사람을 찾는다고 했음.”
“그래서 누구랑 약혼했다는데?”
일본 사람이랑 했을까? 그래서 지진 때문에 약혼자와 소식이 끊겨 약혼자를 찾는 건가? 아니면 중국사람이랑 했나? 핵전쟁 터져서 중국에 있던 약혼자가 실종된 거지. 그런 생각하는 마루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김 양이었다.
‘왜 그런 눈?’
‘몰라서 물음?’
작게 한숨을 내쉰 김 양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약혼자를 찾아주면 변이 바이러스 치료제 레시피를 준다고 했다 했잖음.”
“그거 3상하고 있다더니.”
“긴급사용승인 떨어졌다고 했음.”
“돈방석에 앉겠네. 근데 그 레시피를 준다고? 대단하네.”
나주연이 살짝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위해 통 크게 쓰는 걸 보니. 여러모로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 마루를 향해 김 양이 툭 말했다.
“뭔 남의 일처럼 그럼?”
“무슨 소리야.”
“진짜 모름? 진짜?”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이거 다 꿈이다.
뇌내 망상을 돌리는 마루를 향해 김 양이 쐐기를 박았다.
“애타게 찾는 약혼자 이름이 하마루라고 함.”
“뭐?”
마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친··· 그걸 꼭 말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