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83)
러스트 [RUST]-283
동생이야 주연이랑 같이 산다고 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다만, 암 전문 요양병원과 마약,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잊고 살려고 해도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한국에서 오순도순. 집안이 잘 나갔을 시설 행복했던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 좋았을까?
갑자기 퍼뜩 든 생각.
그랬으면 동원으로 군대 끌려갔겠지?
?!
중국전선 투입 확정?
하?
순식간에 촉촉했던 감정이 바싹 말라버렸다.
‘그랬겠네.’
생각해 보면 나주연 걔도 참 이상했다. 어쨌든 그쪽에서 마루네 집을 망하게 했고. 마루는 오진그룹 회장 나오진을 본사 빌딩에서 벴다.
한쪽은 집안을 박살 내 콩가루로 만들었고, 다른 한쪽은 부친을 썰어 버린 원수 집안이 됐는데. 무슨 약혼자 드립.
‘어쨌든 한국에 있었으면 100% 동원됐겠지.’
중국 전전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처럼 뭔가 변했으려나? 어쩌면 이렇게 되기 전에 총 맞고 죽었을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했다. 수많은 죽을 고비가 없었다면, 버지니아, 국토안보국과 엮이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이런 빌딩을 구하지 못했을 테니. 세상은 참 이상했다.
그나저나, 기순이가 동생도 부모님도 찾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월드 그룹에서 도망치던 중이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몇 년 지나서. 잠잠해지면 그때쯤 연락하면 되지 않을까? 그랬는데, 핵이 터질 줄이야.
[제니아 로든과 잭 니스 박사 모두 생명에 이상 없다고 합니다.]“어? 다행이네. 바로 움직일 수는 있고?”
디아나가 두 사람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 하루는 진정하고 추이를 살피는 게 좋다고 합니다.]“그래.”
살기를 강하게 벼리는 것도 자제해야 하려나. on/off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울컥하면 완전 ‘죽인다.’ 살기는 아니더라도 기운 같은 게 샜다. 근데 살기를 계속 쓰고 하니까 전보다 위력이 좋아진지라 찔끔 새는 것도 위험했다.
[의료진들이 정밀검사를 했지만,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가 높아졌을 뿐 다른 원인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의료진들도 연구주제 하나 잡아서 파고 싶은 본능이 발동됐는지, 후드와 박사를 통조림 할 기세라고. ‘갑작스러운 돌연사와 스트레스 호르몬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정도가 되겠다는데, 그런 연구는 이미 많이 있음에도 통조림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후드랑 박사 할 일이 많으니까 통조림은 불허 한다고 해.”
[전했습니다.]“흠. 저번에 잠깐 언급했던 중화제. 그리고 버서커 폴과 크리스털 샘플을 확보할 테니까, 일본에서 가져온 자료랑 해서 한 번 파볼 사람 있으면 서류 올리라고 하고.”
[전투자극제, 보조제로 알려진 버서커 폴, 크리스털의 샘플 제공. 일본에서 확보한 연구자료 열람허가. 부작용 완화제인 중화제 샘플 제공. 연구원 모집으로 올렸습니다.]“기한은 3일 준다고 하고. 모집인원은 6명으로 하지.”
[정리했습니다.]마루가 디아나와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김 양은 간호사에게 역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을 감추지 못하는 간호사.
‘이 애미나이가 왜 이러는 거?’
김 양이 손을 뿌리지며 한소리 하기 직전, 간호사가 먼저 말했다.
“뭐죠? 알죠? 그거 팔에 소름이 오도독 돋은 거.”
“알면 어쩌려고?”
“그거 뭐죠? 입원한 두 사람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널뛰었다고요. 그러니까요. 동물 실험에서 죽기 직전이나 도축 직전에 보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죠? 네?”
소심한 간호사가 김 양의 팔뚝을 붙잡고 늘어졌다. 괘씸한 언덕이 김 양의 팔뚝을 계곡으로 구속하는 그 미묘한 감촉.
“아- 이거 놓으셈!”
“알잖아요. 알려주세요. 두 사람이 왜 그런 건지.”
어쩐지 호기심인지 탐구심이 MAX를 찍은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간호사였다. ‘대체 그게 왜 궁금한 건데?’
백정이 ‘살’까지는 아니고 ‘갈’ 정도 했다고 그렇게 된 걸 어떻게 설명하라고. 그러는 동안 김 양의 팔뚝이 골짜기에서 언덕으로, 언덕에서 골짜기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가슴. 아. 가슴!”
“에에? 가슴이요? 심장 말인가요?”
에잇!
‘이 파렴치한 년이.’
김 양이 힘을 줘, 간호사에게 잡힌 팔을 비틀어 빼려고 하자, 미묘하게 돌려 빼는 쪽으로 회전하며 몸을 움직이는 간호사.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김 양의 힘이 약한 건 아니었다. 그 무거운 저격총을 들고 뛰어다닐 정도. 서울에서는 자기 몸통보다 더 큰 짐도 들고 다닌 김 양이었지만, 이렇게 온몸으로 비비면 그걸 쌩 힘으로 어떻게 하긴 난감했다. 적이라서 죽일 것도 아니고.
‘바운스 따위가 반항?’
김 양이 힘을 한 번에 줘서 붙잡힌 팔을 뽑으려고 했다. 힘을 온전히 쓰기도 전,
덜컥-
간호사의 한쪽 팔이 김 양의 팔꿈치를 접고, 다른 손이 김 양의 손목을 안쪽으로 꺾어, 비틀어 빠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어?”
“에?”
‘에? 니가 이래놓고 넌 왜 놀라는데?’
김 양과 간호사의 눈빛이 허공에서 만났다.
“지금 이거 뭐임?”
“에-또- 그게 아니고요.”
화들짝- 엮었던 팔을 냉큼 풀어내는 간호사였다. 그런 간호사를 보는 김 양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방금 그건. 호신술? 관절기? 그런 느낌이었다.
“너 뭐야?”
“간호산데요.”
지금 말장난? 김 양의 눈빛이 순간 흉흉하게 빛났다.
“이런 거 할 줄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까지 숨김?”
“아니요. 저번에 인질 잡혀서, 그래서 호신술을 배웠거든요. 근데 반사적으로 나와서··· 그게 아닌데.”
인질 잡혔었다고? 아? 저번에 병원에서 인질 잡혔다고 했었던 때? 그래서 호신술을 배웠다? 그렇다면야.
김 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 풀었는지 모르게 풀었던 권총의 안전장치를 다시 잠갔다.
여차했으면 머리에 구멍 뚫릴뻔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호사가 김 양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스톱.”
“예?”
김 양의 단호한 차단에 간호사가 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서늘한 거··· 그거 무슨 기운 같은 거죠?”
“나도 모름.”
김 양도 몰랐다. 백정이 진심으로 ‘죽이겠다.’ 마음먹으면 진짜 죽일 수 있다는 건데. ‘살!’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더구나 조금 전 같은 경우는 ‘살!’이 아니라 ‘갈?’ 그 정도였다. 울컥했다고 여차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보내는 걸 뭔 수로 설명하나? 그냥 경험하다 보면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그래서 인정과 이해를 같이 보는 경우가 많고, 이해한 뒤에야 인정하는 경우는 더 많았다. ‘난 인정 못 해.’ 이 말은 ‘난 이해 못 해.’와 너무도 가까이 붙어있다는 것.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인정 찾고, 이해 찾다가 십중팔구 죽는다는 것을 김 양은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백정은 백정이다. 그걸 왜 인정 못 하는가?
이해할 필요 있나?
간단하잖아. 백정이 살! 하면 곤란해진다. 그러니까 그럴 조짐이 보인다 싶으면 일단 거리를 벌린다. 쉽죠?
그걸 넘어서 ‘살’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했다가 골로 갈뻔하지 않았던가?
김 양의 생각과는 달리 간호사는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니까 그런 거죠? 맞죠?”
뭐가 맞음? 맞고 싶음?
김 양은 조금씩 두 손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호신술을 얼마나 배웠는지, 한 번 볼까?
“영화에서 있었잖아요. 데스 로이더가 후욱후욱하면서 이렇게 냉엄하게 쳐다보니까 사람들이 막 숨도 못 쉬고 그런 장면 있었잖아요. 맞죠? 그런 거죠?”
어? 살포시 주먹을 쥐었던 김 양이 갸웃했다. 그런가? 듣고 보니 혹했다.
“데스 로이더의 힘이라니.”
간호사가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묘한 웅장함이 김 양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거 어디서 봤지? 그래 방송국 사람, 간호사가 그 Pd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에비- 일단 자리를 피한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욱후욱. 살! 이거란 말이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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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LA가 훤히 보이는 산.
둥근 쌍안경이 간간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를 향했다.
사람들과 자동차로 바글바글했던 도로는 비척거리는 감염자들로 채워진 모습. 빌딩에 세로로 길게 늘어진 천에는 식량과 식수를 요청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창문마다 다닥다닥 붙인 SOS들. 부유했던 도시는 약탈당하고 짓밟힌 것처럼 너덜거렸다.
그런 도시를 살피던 여자가 카우보이모자를 고쳐 쓰며 몸을 뒤로 돌렸다.
‘많네.’
여기저기 흔적을 보니 생각보다 생존자들이 많아 보였다. 근처에 핵이 터졌으니까 다들 도망치지 않았을까 했더니, 어째선지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저벅-찰칵
저벅-찰칵
승마 부츠를 신은 여자가 매끈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마다 찰칵이며 핑그르르 도는 금속 박차가 너무 자연스러워, 19세기 서부개척 시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허리에서 내려온 홀스터가 허벅지에 고정된 모습. 2kg이 훌쩍 넘는 Rsh-12.7mm 5연발 리볼버가 양쪽에 꽂고 있었다. 그리고 총알이 장식처럼 달린 벨트 어림, 대각선으로 걸쳐진 검푸른 빛 권총은 콜트 파이슨이었다.
히이이이잉-
자기를 반기는 말의 목과 갈기를 쓰다듬던 여자가 훌쩍 올라앉았다.
“어떻게 할까요?”
“2중대 언덕에서 대기. 3중대는 옆으로 돌아서 감염자들 처리한다. 식인병자들에게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유 이사는 1중대를 끌고 외곽으로 빠졌다.
뜨겁게 달궈진 도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고작 6월 중순인데 7~8월 만큼 뜨거운 태양.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뭄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스프링클러를 이용한 자동급수 시스템은 진작 망가진 상황. 그렇다고 물차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하는 것도 어려웠다. EMP로 고장 나, 농기계나 자동차를 수리할 부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가뭄인데 급수가 어려워졌으니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그 넓은 농경지가 순식간에 누렇게 죽어버렸다. 인근에 유명한 포도농장도, 싱그러웠던 농경지도 전부 말라 비틀어진 폐허가 됐다.
유 이사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는 곳마다 이런 상황이었다. 지금이야 저장 식품도 있고 총탄도 넉넉하다만, 그게 언제까지 갈까?
히잉-
히이이잉-
갑자기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워- 워-”
“사주경계.”
각자 탄 말을 진정시키며, 익숙하게 총을 뽑아든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6시! 변종!”
농장 창고 벽면을 부순 변종이 철문을 방패처럼 들고 달려들었다.
탕탕탕!
투다다다다닥!
쇳덩이로 만든 문짝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금속 문짝을 뚫고 총알이 박혔는지 변종이 크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구멍 뚫린 철문을 집어 던지려고 하는 변종의 목구멍과 입안에 12.7mm 탄알이 틀어박혔다. 쫄깃한 혓바닥과 폭신한 입천장을 꿰뚫고 인후부를 헤집는 굵직한 총알.
느껴보지 못한 끔찍한 고통에, 본능적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는 변종.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성형 작약 탄두가 달린 창이 변종의 몸뚱이에 틀어박혔다.
쾅!
가슴에 큼직한 구멍이 뚫린 채, 주저앉은 변종을 유 이사가 탄 말이 짓밟았다.
“주변을 수색한다.”
푸르르르- 콧김을 씩씩 뿜어내는 말 위에서 태연하게 명령을 내린 유 이사가, 변종이 나온 창고로 느릿하게 말을 몰았다.
잠시 뒤, 창고에서 터진 괴성이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