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85)
러스트 [RUST]-285
간호사의 순찰 투입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까마귀랑 의사소통이 잘 된다면, 교대 없는 휴식의 재림. 순찰의 종말이었으니까.
간호사를 바라보는 김 양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1호기 똑바로 한다. 알았지?”
“···예.”
리퍼 슈트를 입은 마루가 칼을 챙기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까마귀들이 체스를 뒀다고 하던데?”
“에-또- 그건. 까마귀 분들이 너무 심심하다고 하셔서요. 게임기는 다룰 수 없고 체스는 부리로 옮길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보라고 몇 번 알려드렸거든요.”
TV는 방송이 끊겼고, 인간들이 나와서 뭔가 하는 건 별로 흥미 없어 보였다. 게임이면 딱 좋겠는데, 까마귀가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게임 패드를 움직이는 건 어려웠다. 카드 게임도 부리로 카드 섞고 돌리는 건 곤란했고. 제일 가능성 있는 게 체스.
“룰은 어떻게 알려줬지?”
“에- 그러니까 몇 번 저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두면서 이 건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알려줬어요.”
“까마귀들과 의사소통이 되는 건가?”
“자세한 건 모르겠고요. 그게 뭐라고 할까. 그냥 그렇다고 느껴져서요.”
“그냥 느껴지는 대로 말하는 거라고?”
“네. 잘못된 건가요?”
마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느낌은 마루도 받았었다. 이를테면 간질간질한 느낌. 까마귀들이 뭐라고 하는 것 같은 감각, 간호사는 그런 느낌을 바탕으로 그대로 말했다는 건데.
“아니, 잘못은 아니지. 까마귀들에게 이야기하면 그것에 반응은 했고?”
“네. 짓궂은 분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잘 이해하는 것 같고 그랬어요.”
어쨌든 간호사가 말하는 걸 까마귀들이 알아들었다는 소리였다. ‘분이라.’ 까마귀를 인격체로 보고 있다는 소리. 확실히 여러모로 신기한 간호사였다.
일단 간호사에게는 오늘 퇴원하는 까마귀와 함께 순찰하라고 했다. 단독 순찰이라고 해놓고는 마루가 근처 있을 생각이었다.
“저. 이게 너무 좀.”
파워로더식 엑소슈트를 안전하게 쓰려면, 전신 방탄복을 입어야 하는데 가슴이 들어가지 않았다. 김 양이 발칙한 간호사를 노려봤다.
“치수 맞는 거 없음?”
“이게 제일 크다고 했는데요.”
엑소슈트를 정비하는 기술자들이 서로 큼큼 헛기침했다. 보다 못한 마루가 이클립스로 전신 방탄복의 가슴 부분만 도려냈다.
“가슴 부분은 방탄조끼 입는 거로 해.”
사이즈가 없다는 핑계로 빠지려고 했었는지, 낙심한 얼굴의 간호사가 주섬주섬 전신 방탄복을 입었다. 마루가 뚫은 부분으로 삐죽 빠져나와 편안하게 흔들리는 바운스.
“오늘은 급하게 나왔으니까 없지만, 다음에는 사이즈 맞게 하나 만들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파워로더식 엑소슈트를 장비한 간호사가 병실로 갔다. 마루는 은신한 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퇴원 예정인 까마귀가 간호사의 엑소슈트를 보곤 푸드득- 경계하는 모습. 당연히 그렇겠지, 마지막에 싸운 적이 엑소슈트를 입고 있었으니.
“헬멧. 헬멧.”
김 양이 옆에서 말하자 그제야 ‘아?!’ 하곤, 간호사가 헬멧을 벗고 얼굴을 보였다. 갸웃갸웃 요리조리 얼굴을 확인한 까마귀가 경계를 풀자,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까마귀 씨 오늘 퇴원이신데요. 저랑 같이 순찰 좀 돌라고 하는데요?”
까악?
마루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느낌은··· 설마 아니겠지. 간호사를 잘 따른다고 했잖아.
하지만 까마귀 소리를 들은 간호사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그래도. 같이 순찰 좀 돌아주시면.”
까악?
김 양이 간호사를 채근했다.
“왜? 뭐라고 하는데. 순찰 어떻게 한데?”
“그러니까. ‘내가 왜?’ 라고 하는데요?”
진짜냐? 마루는 간질간질했던 느낌과 간호사의 해석이 같다는 것에 속으로 놀랐다. 그나저나, 까마귀 녀석 간호사가 치료도 해주고 체스도 알려주고 그랬다는데 ‘내가 왜?’ 이것들 보소.
리퍼 슈트의 은신을 풀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마루와 까마귀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엄청 화들짝 놀란 까마귀가 부리가 바닥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니까 순찰 나가지 않겠다고?”
슬쩍 마루의 눈치를 살핀 까마귀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안 나간다고?”
도리도리. 아니요. 그게 진짜 아니고요.
“나간다고?”
끄덕끄덕. 예. 기쁜 마음으로 나가야죠.
“대답.”
깍-
나가겠습니다. 각 잡힌 울음소리. 간질간질한 느낌이 맞는지 간호사를 봤다.
간호사는 뭔가 비련의 여주인공 표정이었다. ‘저한테는 냉정하게 그러더니, 꼼짝 못 하는 건가요?’ 그런 느낌.
그렇게 퇴원 까마귀 1과 양산형 엑소슈트 간호사가 나란히 순찰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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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에 설치된 크레인을 타고 간호사가 내려왔다.
갑자기 등장한 파워 로더형 엑소슈트에 까마귀들이 경계 태세에 들어간 느낌.
‘모르는 건가?’
마루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는 대충 은신을 하고 있어도 알고 있는 듯해서 걱정하지 않았더니, 지금 저런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알아채는 건 아닌가 보다.
그래도 빌딩에서 나온 것을 봤기 때문인지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기운이 넘실댔다. 그 강한 공격성을 느꼈는지, 간호사가 주뼛주뼛 움직였다.
“저기··· 까마귀 씨 저분들 진정 좀 시켜주실래요?”
까아아악-
“아니 그러다가 큰일 난다고요. 저기 보세요. 잠자던 분들도 다들 일어났잖아요.”
깍?
퇴원한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올라 빙글빙글 도는 까마귀 무리에 합류했다. 잠시 뒤, 긴장하고 경계했던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이어서 근처 빌딩에서 잠자다 깨, 대기 상태로 돌입했던 까마귀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잠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정보 교환.
‘소리가 아니라 일종의 텔레파시를 쓰는 건가?’
어쩌면 인간의 가청범위 밖에 있는 주파수를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퇴원한 까마귀 녀석 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서도 대충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저기까지 간 이유는 뭐지?’
설마 땡땡이? 저렇게 섞여 있으니 자길 찾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건가?
정말 대단했다. 공사 할 때만 되면 말년 병장들이 갑자기 실종 당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까. 마루는 어이가 없었다.
“저기 퇴원한 까마귀 씨. 그렇게 땡땡이치다가 그분이 아시면 위험할 텐데요?”
저 멀리 몇백 미터 상공을 향해 소리 지르는 간호사. 저기까지 들릴까 싶었지만, 간호사가 판 마루의 이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빙글빙글 돌던 원에서 작게 소란이 생기나 싶더니 한 마리가 조용히 아래로 내려왔다.
엑소슈트 어깨에 내려앉아, 도망친 적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깃털을 고르기 시작하는 까마귀. 간호사가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또 도망치면 아시죠? 이거 녹화 기능도 있다고요? 나중에 전부 보실 걸요.”
까악?!
“안 돼요. 순찰이고 정찰이라고요.”
단호한 간호사의 말에 까마귀는 풀이 죽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저거 불쌍한 척 연기하는 것 같았다. 마루는 까마귀가 이런 생물인지 처음 알았다. 정말 초등학생 정도는 충분히 될 법했다.
간호사는 은신 장비를 둘러쓰고 순찰 코스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이기에 너무 먼 곳까지는 시키지 않았다. 이동 거리는 대략 30km, 엑소슈트로 7~8km 기본 속도를 내면 대략 3~4시간 코스.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정도였다.
[까마귀를 날려 보내야지 계속 매달고 다닐 건가?] [에엣. 아니요. 지금 날려 보낼게요. 까마귀 씨. 위로 날아가서 이상한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까아악?
[예? 뭐가 이상한 거냐고요? 막 빨리 움직이는 거, 근처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 생겼다든지, 무장한 인간들,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게 움직이면 알려주세요.]은신 장비가 살짝 열리더니, 그 틈으로 매우 귀찮은 듯한 날갯짓을 한 까마귀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늘을 정찰하는 까마귀와 간호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동을 계속했다. 확실히 까마귀를 이용한 정찰은 효과적이었다.
[저- 에- 그러니까, 근처에 있는 까마귀 분들이 다음 블록 첫 번째 골목 안쪽에 이상한 걸 봤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 확실하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4발 달린 민첩한 동물이라고 해요.] [애매하네.]4발 달린 민첩한 동물이면 잘해야 고양이나 개 아닌가? 디트로이트는 도시였다. 그러니 멧돼지나 늑대, 코요테 같은 건 아닐 듯싶었다.
[일단 그쪽으로 가서 확인해 봐] [네···.]까마귀가 먼저 골목 상공으로 날아갔다.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간호사.
골목을 따라 하늘을 날던 까마귀가 갑자기 방향을 전환하고선,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뭔가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저기 뭔가 있다는데요?]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뭔지 확인해.]‘가까이 가지 말고.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움직였다. 운동신경이 영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켜보니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엑소슈트를 입었다고 해도 움직인 지 1시간이 넘었는데 생생한 것을 보면 체력도 괜찮았고.
김 양의 말대로 호신술의 효과일까? 아니면 김 양이나 마루 자신처럼 뭔가 육체적인 능력이 좋아진 걸까? 간호사는 딱히 분노조절 장애도 겪지 않은 것 같은데.
‘면역? 아니면 증상이 약하게 넘어간 걸까?’
저번에 혈액 검사했을 때는 간호사만 멀쩡했었다. 김 양과 자신이 걸렸다는 걸 알고 참 그랬었지, 분노조절 감정조절 안 돼서 그냥 들이받기만 했던 걸 생각하면 참.
김 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다. 약간 정신연령이 순수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상 범위 안. 나름 마루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씩 정상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루가 잠시 생각에 빠진 동안, 간호사는 오른쪽 어둑한 공간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어엇- 사람이-] [멈춰.]간호사가 급발진하려는 것을 틀어막은 마루였다.
[예?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발목에 상처가 깊어서.] [조용. 영상 보내.]근거리 교신으로 화면이 전송됐다. 인터넷이 끊겨, 직접 전송하는 영상인지라 조악한 화질.
잔상과 잡음이 섞인 화면 속 처절한 몸부림. 멀리서 보기에도 발목 부분에 심각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절절한 화면에도 마루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마치 숨은 그림처럼 영상 주변을 훑어본 마루가 발을 동동 구르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소리 내지 말고 조심스럽게 뒤로 빠져.] [에엣? 저기 저 사람은요?] [진정하고. 발목의 상처를 봐. 발목이 거의 잘렸잖아.] [그러니까 어서 응급치료하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다시 봐. 발목을 자세히 보라고.] [···상처가 깊어요.]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루는 그런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깊은 상처가 생기면 일단 출혈부터 잡아야 한다고 알고 있어. 맞지?] [···예.] [근데 저 사람 이상하지 않아? 발목이 거의 잘렸는데, 지혈한 흔적 있나? 난 안 보이는데?] [에?–] [발목이 거의 잘릴 정도의 상처라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거나, 숫제 기절했어야 정상 아닌가? 저렇게 계속 버둥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에에–]간호사의 감탄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에도 마루는 담담했다.
발목이 잘릴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데, 지혈의 흔적이 없다? 그럼 과다출혈로 뒈진 거 아닌가?
그러니까 저기 발버둥 치고 있는 놈은 이미 뒈진 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 다시 말해 미끼.
뒈진 게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미끼든 간호사가 감당하기엔 힘들어 보였다.
골목 밖으로 나온 간호사와 교대하듯 안으로 들어간 마루는 주변을 살폈다. 골목에 새겨진 흔적. 샷건의 흔적과 9mm 탄의 흔적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근처에 있던 까마귀들은 4족 보행의 민첩한 동물을 봤다고 했다. 그게 뭘까?
그렇게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화면으로 본 사람이 있었다.
절반 이상 뜯겨, 너덜거리는 발목의 상처. 살과 뼈를 갉아낸 상처는 어디선가 봤던 모양이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 자국.
허공으로 팔을 허우적거릴 때마다 기괴하게 울룩불룩 움직이는 가슴과 어깨 밖으로 길게 삐져나온 꼬리.
그게 사람의 가슴을 파먹고 들어가 속에서 팔뼈를 물고 흔들고 있었다.
[쥐?]쥐가 덫을 놨다. 인간의 시신을 미끼로.
[하?]3면이 막힌 골목길.
햇빛이 닿지 않는 구석. 깊은 그림자 속에서 하나둘 안광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은신하고 있어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점차 숫자를 불려 가는 안광들.
“거 참.”
이것들 보소.
리퍼 슈트의 은신을 해제한 마루가 칼을 뽑았다.
미어캣처럼 상체를 곧추세우고 주변을 확인하던 쥐새끼가 찍-소리를 내자, 사방에서 회색의 물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층에서 3층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쥐의 물결.
순간, 마루의 전신에서 강한 살기가 파동처럼 퍼졌다. 마루를 향해 달려들던 쥐들이 전기 맞은 벼룩처럼 쓰러지고,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굳어버린 몸뚱이를 밟고 끝없이 밀려드는 쥐 떼를 향해 마루가 칼을 겨누며 말했다.
“먹어!”
햇빛이 가려지며, 군데군데 밝았던 골목이 순식간에 깜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