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86)
러스트 [RUST]-286
개기일식이라도 된 것처럼 블록 하나가 어두워졌다.
웅- 낮게 진동하는 대기가 하늘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 날갯짓 소리하나 없는 검은 구름이 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퇴원 까마귀 씨 그 빙글빙글 돌았던 게, 저한테 보낸 신호가 아니었던 건가요?] [조용히 하셈.]김 양은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만 마리 넘는 까마귀? 그래 봐야 새 대가리들이라 생각했던 건 오판이었다.
저건 일만이 넘는 검은 칼날이었다. 저것들이 활강하면서 발톱과 부리를 내민다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얇게 저며질 게 뻔했다.
저것들이 머리가 좋다고 하니 더 살이 떨렸다. 혹시라도 복수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라면?
동물들 가운데 어릴 적 부모를 죽인 사냥꾼을 잊지 않고 자라서 복수한 코끼리 이야기라든지, 고래 이야기도 있는 판국인데, 저것들은 체스까지 두고 있는 까마귀들이었다.
마루의 명령에 따르는 척하다가, 자신이나 간호사를 다져버리고. ‘앗 실수. 적인 줄 알았음.’ 이래 버리면 백정이 어떻게 하겠는가?
막말로 전부 깽판 치고 날아서 다른 동네 가버리면 그냥 새 되는 건 이쪽이었다.
백정에게 이런 생각을 말할까 하다가 입을 꾹 다문 김 양이었다. 정말 진짜로 까마귀들이 백정이랑 잘해 볼 생각이거나, 백정의 명령을 따르려고 했는데 나대버린 거라면 회복 불가능하니까. 일단, 입을 다물고 사리는 게 맞았다.
[1호기. 은신 절대 풀지 말고, 엄폐.] [엄폐요?] [거기 옆에 건물 사이로 쏙 숨으라고!] [예-]김 양은 자신의 엑소슈트를 믿었다. 그레핀 소재와 여러 복합소재로 만든 특수장갑. 타워에 있는 연구원들과 기술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수장갑은 경이로운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이 단점일 뿐.
‘까마귀 간나새끼들이 딴 생각하는 것이라면 모조리 불태워 버리갔서.’
바짝 긴장한 김 양이 자세를 잡았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랜스처럼 뾰족하게 내려 찍혔다.
강한 살기가 하늘에서 바닥을 향했다.
마루는 살기의 끝을 읽고 웃었다.
위험? 당연히 위험했다. 말이 통하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통수가 난무하는데, 까마귀가 갑자기 휙 돌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양산형 엑소슈트에 쓰는 전신 방탄복의 방어력과 리퍼 슈트의 방어력은 큰 차이 없었다. 리퍼 슈트의 방어력만 믿고 접근을 허용했는데 통수 맞으면 어려워진다는 이야기.
그래서? 통수를 칠 거라면 후딱 쳐라. 이왕이면 정들기 전 치는 게 좋았다.
‘배신이나 통수는 죽음이지.’
살기는 무한 패시브가 아니었다. 죽인다는 일념이 가장 강했을 때 위력이 제일 컸고, 강한 일념을 발산한 뒤에 나온 살기로는 뇌출혈이나 호흡곤란 전신 마비 정도였다. 거기서 더 시간이 오래 지나거나 거리가 떨어지면 몸이 굳고 서늘함을 느끼는 정도까지.
다시 말해, 살기로 무한히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
그렇다고 해도, 잠시 굳기만 해도 칼질로 멱을 따면 되는 일인지라 효용성은 충분했다. 이렇게 물량전으로 밀고 들어오는 걸 전부 살기로만 처리하긴 곤란하다는 게 문제일 뿐.
마루가 쭉 뻗은 칼끝이 회색 물결을 향했고. 까마귀들은 그 뻗은 칼끝을 향해 급강하했다.
고요한 습격 징벌이 하늘에서 회색 물결을 향해 떨어지자, 붉은 피 안개가 골목을 채웠다.
찍찌이이이익
후두두두우욱
카가가가가각
수천이 넘는 쥐 떼가, 만을 넘나드는 까마귀들에게 분쇄되는 데 걸린 시간은 10초 내외. 칼날 같은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이 변이된 쥐를 말 그대로 다져버렸다.
수직으로 내려꽂혔다가 수직으로 급상승하는 까마귀의 부리와 발톱에는 찢어진 살점이 달려있었다. 검은 날개가 펼쳐져 공기를 밀어낼 때마다, 깃털을 적신 쥐의 피가 안개처럼 뿌려졌다.
골목길이 피로 만든 안개로 가득 찼다.
10여 초.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 까마귀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분쇄 능력에 김 양과 간호사는 할 말을 잃었다.
[저. 위험하지 않을까요?] [닥치고 그 자리에 있어!]김 양이 치익- 네이팜 분사준비를 했다. 짙게 쌓인 피 안개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마루의 그림자가 보였다.
[괜찮음?]끄덕.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머리 위에서 토네이도처럼 회전하는 까마귀들을 바라봤다. 간질간질하는 느낌.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경외, 신뢰, 자부심 그리고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은 건가?
“잘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뜻이 전달됐는지 까마귀들의 움직임이 조금 활발해졌다. 뭔가 칭찬받은 아이들 같은 느낌에 마루가 피식 웃었다.
칙- 네이팜 분사 대기 상태를 해제한 김 양이, 십 년 감수한 목소리를 냈다.
[쟤들 하아- 관리할 수 있겠음?]“알아서 자기들이 찾아 먹고 다니고 그러는데 관리 할 게 뭐 있겠어. 괜찮아.]
끄응- 불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아까 1호기··· 간호사가 하는 말 들어보니까. 쟤들 간호사가 가슴으로 하는 호소도 먹히지 않던데 괜찮겠음?] [에엣? 가슴으로 말하지 않았어요!]“그래?”
간호사와 의사소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간호사의 명령을 듣는 건 별개라는 건가? 그럴 수 있었다. 상관없었다. 어쨌든 까마귀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있었으니까. 마루가 헬멧을 내리고 통신으로 전환했다.
[어쨌든, 말을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조심하고.]끄덕끄덕. 김 양과 간호사가 번갈아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를 미끼 삼아 유인하는 것 봤지? 쥐들도 똑똑해진 것 같으니까. 다른 동물들도 어쩔지 모른다고 생각해. 일본에서 겪은 것보다 더할 수도 있어.] [알겠음.] [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던 말이 현실이 됐다.
[오늘 정찰은 여기까지.]빌딩 수색과 냉전 시대에 건설된 핵 방공호를 돌아보는 건 내일로 미뤘다.
쥐가 도시로 몰려들었다면, 그 쥐를 잡아먹고 사는 고양이, 코요테, 여우 같은 것들도 먹잇감을 따라서 도시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갖출 필요가 있었다.
[나나에가 앞장서] [에? 예! 하- 하잇! 그런데 그··· 퇴원 까마귀 씨는 그냥 두고 돌아가나요?]김 양이 ‘그놈의 에.’하는 목소리로 간호사를 쪼았다.
[걔는 왜? 퇴원했잖음.] [아니요. 그 아까 제가 맛있는 걸 준다고 약속해서.] [약속했으면 지켜야지.]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마루의 말에 간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퇴원 까마귀 씨 오세요. 같이 가도 돼요.]빙글빙글 느릿하게 회전하던 까마귀들이 살짝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마리가 느긋하게 내려와 간호사의 엑소슈트 어깨에 앉았다.
마루를 슬쩍 보더니, 바로 머리를 박고 ‘감사합니다.’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까마귀. 자세가 잡혀있었다.
[앞장서.] [예. 까마귀 씨 집으로 가요. 먼저 뭐가 있는지, 아까처럼 알겠죠?]까악?
[2개요? 어? 그래요. 그럼.]간호사의 어깨에서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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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브라운 부장은 떡진 머리를 뒤로 넘겼다. 제대로 씻지 못해 기름기 가득한 머리카락이 마치 포마드를 바른 것처럼 올백으로 넘어갔다.
산더미처럼 쌓인 파일 앞면엔 붉은색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1급 기밀이랍시고 찍어 놓은 자료들. 컴퓨터 파일로 변환하지 않은 숨겨진 파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양이나 보관 형식은 그렇다고 쳐도,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본과 중국 공산당의 밀월은 2차대전 패전 직후 관동군이 퇴각하면서부터 이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경제 규제를 무산시킨 일본이 왜 그랬는지도, 중국에 기술이전에 가까운 짓을 한 이유도, 중국과 손잡고 한국을 고사시키려고 했던 것도 전부. 미국은 알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아무리 감추려 한들.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여기 이곳에 넘치는 자료들이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당했다?’
무엇 때문에?
증거를 들이밀고 압박하기 위해서 그냥 뒀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굽실거리는 일본 정치인들은 걸린 것을 알고 납작 엎드린 것이었나?
중국에 대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강경발언을 한 것이나, 중국이 일본을 규제한다고 하는 것도 전부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몸부림이었던가?
그건 그렇다고 쳐도 중국의 바이러스 실험실에 투자한 미국인들은 뭐란 말인가? 일본의 비밀 연구에 투자한 미국인들은 또 무엇이고.
전부터 개인 벙커를 넘어 지하 마을,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있던 자들이 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자들이 있었다?’
후–
덴 브라운 부장의 입에서 탄식 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금까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확실한 것은 누군가 또는 어떤 세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중국 공산당과 연결된 자들, 망해버린 일본과 연결된 자들이 미합중국 내부에 있었다.
덴 브라운 부장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지막에 읽던 파일을 다시 펼치자, 변이 바이러스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인위적인 손을 탄 흔적이 있는 바이러스. 그러니까 누군가 계속 변이를 획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
자연적인 변이도 끔찍한데, 누군가 이 혼란을 이용해 변이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왜? 연구원들 의견은 크게 둘.
하나는, 일본에서 회수한 자료에 있는 내용.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추출한 물질이 특정한 약물의 원료가 됐기에 그 효율을 높이려고 할 것이라는 의견
다른 하나는,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변종이 된다면, 특수한 특성이 있는 변종을 인위적으로 생산하려고 할 것이라는 의견.
이를테면 ‘회춘’ 같은 특성이 나올 때까지, 감염 확산과 바이러스 변이를 계속 유도할지 모른다는 가설.
덴 브라운은 읽던 파일을 다시 덮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어쩌면 단순한 바이러스 사태가 아니었다. 바이러스 창궐, 국경 봉쇄, 우크라이나 전쟁, 식량과 에너지 대란, 경제 구조의 붕괴, 동물들의 변이 시작, 감염자들의 창궐, 변종의 탄생. 그리고 핵전쟁까지.
최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과연 전부 우연일 뿐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이걸 계획한 자들은 뭘 노리는 것이지?
지끈.
강한 두통이 송곳처럼 머리를 파고들었다.
끅-
낮게 신음을 참은 덴 브라운 부장이 서랍을 열어 두통약을 찾았다. 그의 손이 서랍 속 약통을 더듬는 순간, 높게 쌓인 서류 더미로 가려진 건너편 소파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
노크도 없었다. 비서의 연락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약통을 더듬던 덴 브라운의 손이 서랍 한쪽에 놓인 비상용 권총으로 향했다.
그걸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소파에 앉은 인기척이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덴 브라운 부장님. 이야기하는데, 총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떻게 들어왔지?”
“제가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얼 이야기할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
서류 더미 틈으로 보인 사내의 얼굴을 눈에 꾹 담은 덴 브라운이 서랍 속 총에서 서서히 손을 뗐다. 그것을 알아챈 듯,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 표시를 했다.
“우리는 덴 브라운 부장님을 예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감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예전부터? 국토안보국 사람을? 이것들 뭐야?
“본래대로라면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닌데, 부장님의 능력이 너무나 아까워서 말이지요. 저도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평범하게 생긴 남성. 백인. 얼굴에 흉터나 여타의 인상적인 특징 없음, 밝은 갈색 머리카락, 파란색 눈동자. 앉은키로 보아 6피트 2에서 3인치 정도의 키(187~190cm). 체중은 대략 200~220파운드 (90~100kg) 근육질 날렵한 몸매. 손을 비롯한 피부 상태를 보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
덴 브라운이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런. 일이 생겼나 보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요.”
사내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좋은 일로 다시 뵙길.”
태연하게 밖으로 나가는 남자를 어째선지 잡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간 그와 교차하듯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미네소타에 있는 11번, 16번 대피소가 쥐 떼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덴 브라운 과장이 손을 들어 직원의 말을 막고, 고갯짓했다.
“지금 나간 사람. 누구야? 따라가 봐.”
직원이 뒤를 돌아보더니,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어떤 사람 말씀이십니까?”
“방금 나간 사람!”
“예? 누구요? 아무도 없었는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