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90)
러스트 [RUST]-290
마루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할까··· 일을 봤더니 웅장함이 느껴지다 못해, 막혀 버린 느낌? 잘 된 것 같은데, 잘된 건 아닌 듯한 미묘한 감각에 머리가 간질간질했다.
“아까 내가 지하로 내려갔던 곳 있지? 대피소라고 했던 곳.”
까악?
“그래. 거기. 거기서 혹시라도 뭔가 기어 나오면 건드리지 말고, 들어가는 게 있으면 막지 말라고 해. 그리고 혹시라도 너희들은 절대 들어가지 말고. 알았지? 전해.”
VX 가스는 지속 잔류기한이 길었다. 거기에 무색, 무취, 무미. 말 그대로 증세가 나타나기 전까지 전조 증세가 없었다.
가스에 오염된 시체를 먹는다면 당연히 까마귀들도 위험할 게 분명했다. 지하대피소에 일절 신경 쓰지 말라는 마루의 말에 까마귀는 즉각 대답했다.
까아악-
“좋아. 장거리 정찰갔다 온 애들 따로 불러. 특식이다.”
까아까아아
그래 까까. 지금 세상에선 꽤 귀한 것이지. 마루는 근엄하게 다양한 과자들이 담긴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본래 소리 없이 조용히 날아오르던 까마귀가 급했는지 푸드덕 소리를 내고 하늘 위에 떠 있는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작게 소란이 일더니, 장거리 정찰을 나갔다가 온 몇 마리 까마귀들이 쭈뼛쭈뼛 기대하는 움직임으로 내려왔다.
“수고했다.”
슥-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자, 한목소리로 까악 대답한 까마귀들이 이것저것 든 봉지를 들고 한쪽으로 가 서로 마음에 드는 걸 나눠 갖기 시작했다.
비닐 봉투를 어떻게 여나 했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슥- 가볍게 찢어 내용물을 먹기 시작하는 녀석들. 서로들 수군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군인들 회식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흠- 어쨌든, 고생했으면 작은 낙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편하게 먹으라고 자리를 피한 마루였다.
“이제는 중간에 제가 끼지 않아도 되겠네요.”
“느낌으로는 대충 알겠으니까.”
대충 느낌적인 느낌으로 대화 아닌, 대화가 되기까지 간호사의 코치가 주요했다. 처음에는 간질거리는 느낌인지라 낯설었는데, 그걸 간호사의 조언대로 감정에 대입해 보니, 어느 정도 까마귀들과 통했다.
마루 자신이야 느낌이나 감각이 예민해서 그런다고 치고, 간호사는 어떤 원리로 까마귀들과 통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까마귀들은 간호사과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지만, 소란도 많이 피웠다.
간호사의 머리핀을 똑 떼어간다든지, 간호사가 들고 있는 간식을(주로 핫도그) 슬쩍한다든지, 악동 같은 짓을 한다고 할까? 그러다가 걸려서 간호사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랬다.
까마귀를 혼낼 때 간호사는 엄했다. 간호사가 애들 교육하듯 혼을 내는 것도 그렇고 혼낸다고 까마귀들이 혼나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기했다.
“아. 맞다. 어제 지하대피소요. 그쪽 관찰하는 애들이요.”
간호사가 까마귀를 부르려고 하는 걸 마루가 막았다.
“부산스럽게 부르지 말고, 무슨 일인데?”
“쥐들이 어제 지하대피소 근처에 많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생태계에서는 부엉이나 올빼미처럼 쥐를 사냥할 필요가 없는 까마귀였지만, 변해버린 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만 단위의 까마귀 무리가 제대로 먹고 힘을 쓰려면 그만큼 만만하고 넉넉한 사냥감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딱 좋은 먹잇감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쥐.
까마귀들에게 있어 변이를 일으켜 덩치가 커진 쥐는 정말 좋은 먹잇감이었다. 문제는 까마귀만 머리가 좋아진 게 아니라 쥐들도 머리가 좋아졌다는 점.
사람을 반쯤 파먹고, 시체로 덫을 놓을 정도로 똑똑한 쥐들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한두 마리씩 외따로 떨어져 사냥하는 까마귀들은 쥐 떼의 역습으로 당하기도 했던 것.
“지하대피소 쪽은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얘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 예. 그럼 수고한 애들한테 제가 따로 간식 줘도 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한마디 덧붙였다.
“애들 귀엽다고 너무 많이 주고 그러지는 말고.”
“···그럼요.”
슬쩍 대답이 느려진 간호사였다. 까마귀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 동안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서는 김 양이 지치고 힘들었던 보상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육즙, 터지는 침샘. 그 맛 직접 경배하라!
어제 열심히 일했던 나를 위한 보상으로 고기고기임. 얼굴에 다 드러나는 표정으로 고기를 불판에 올리는 모습.
강물을 거슬러 초원에 사는 소의 힘을 아는가?
그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꽃등심에 미뢰는 절규하리라, 극강의 부드러움에 자존심은 무너질지니!
고기에 집중하던 김 양이 뭔가를 느꼈는지, 휙- 정확하게 마루와 간호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노리던 젓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추며, 김 양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그 눈초리에 간호사가 화들짝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후다닥 식판을 향해 달려갔다.
“잘 먹다가 말고 간호사는 왜 갈궈.”
“갈군 거 아님.”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응.
“머리는? 이상한 점 없고?”
“괜찮음.”
정신계 능력에 당한지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랐다. 마루의 걱정에 김 양이 한 마디 더했다.
“그런데 그건 내려놓고 말하삼.”
어딜 은근슬쩍 꽃등심에 젓가락을··· 먹을 거면 고기라도 더 가져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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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정신계 능력자인 데릭 코스터를 포함한 12명이 실종됐다.
사실상 데릭 팀 전원이 사망했다고 여겨지는 상황이었지만, 라이저 제약과의 납품 계약은 지켜야 했기에 부담을 무릅쓰고 중대급 인원을 보냈는데···
“전원 실종? 그게 말이 되나?”
한두 팀도 아니었다. 무려 중대급 인원이었다.
“지하대피소에 최소 카테고리 3에 해당하는 쥐들이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1- 단순하게 덩치만 커진 변이. 기존의 본능과 생태는 그대로.
2- 덩치가 변하면서 본능과 생태가 변이. 잡식이 육식으로 변하거나 단독 행동을 하던 개체가 무리를 짓는다거나. 등등.
3- 본능을 넘어서 머리를 쓰기 시작함.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100명이 넘어. 그 숫자가 제대로 신호도···”
변이 괴수들이 다수 뭉치면 이상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이상 현상이 통신 장애. 설마 데릭 팀도 쥐에게 당한 건가?
데릭 코스터는 강한 정신계 능력자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동시에 다수의 정신에 간섭하지 못했다는 것.
강력한 한 마리의 괴수라면 모를까, 쥐가 떼로 몰려들었다면 정신계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이미 사고는 터졌고 앞으로가 중요했다.
“수송선은?”
“시설에 진입한 본대와 교신이 끊기자마자 퇴각했습니다.”
“수송선은 잃지 않았군. 아무리 카테고리 3에 이상 현상까지 겹쳤다고 하더라도 중대병력이야 중대병력. 그 많은 인원이 아무런 소식도 남기지 못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어.”
“아니기를 바라지만, 카테고리 4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3이 본능을 어느 정도 참아내고 영리해진 정도 그러니까 5살에서 7~8살 정도의 지능이라고 한다면, 카테고리 4는 단순한 영리함을 넘어선 단계를 의미했다. 판단력과 사고력을 기준으로 봤을 경우, 사실상 15세 이상 인간의 지능에 필적했으니까.
“카테고리 3에서 4로 추정되는 쥐 떼가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으로선 제일 유력한 가설입니다.”
정보에 따르면 핵전쟁 이전에도 조짐은 있었다. 쥐들이 잡아먹은 디트로이트 인근 마을이 몇 개던가? 전기를 끊고 전화선, 인터넷 케이블도 끊은 것도 모자라 함정까지 팠던 쥐 떼.
블라디 마루의 조언으로 연방군과 주 방위군이 소이탄 계열로 불바다를 만들며 때려잡았다지만, 전멸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쥐들이 디트로이트 지하에서 빠르게 번식, 숫자를 불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면?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가설이 아니라, 라이저 제약 납품 건이었다. 중대병력을 잃었음에도 남은 게 없다는 것. 자재 운송에 실패해, 라이저 제약 납품을 어기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중요했다.
“다른 작전은 잠시 중지하고, 서부와 남부에서 자재를 우선 수급한 뒤, 납품부터 끝낸다.”
“알겠습니다. 회춘의 회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부지역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는 회춘, 유 이사였다. 이쪽도 정상은 아니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이대로 가면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군벌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니, 이미 규모가 작은 군벌로 봐야 했다.
“숫자로 장막을 친다면, 그 장막을 걷어내야겠지. 바쿰 팀에 추가로 제대로 된 애들 붙여서 보내.”
“바쿰 바락입니까? 알겠습니다.”
바쿰 바락은 아프리카계 흑인이 가진 강력한 신체능력에 더해, 일종의 정신계 디버프 능력까지 있는 자였다. 적 다수에게 동시에 공포, 불안, 혼란을 퍼뜨릴 수 있는 강력한 능력자.
그를 보낸다면 군벌 놀이는 단번에 박살 날 것이다. 인의 장막을 없애고 나면? 유 이사의 능력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의미 없었다. 혼자는 한계가 있는 법. 자고로 쪽수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니까.
“디트로이트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분간 손 떼고 감시만 한다.”
카테고리 3~4의 쥐 떼가 들끓기 시작하는 도시에, 까마귀 무리마저 둥지를 틀었다. 모듈원전이든 슈퍼컴퓨터든 발이 생겨 어디로 도망갈 것도 아니고, 우선 회춘부터 회수한 뒤 천천히 요리하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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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놉 힐 인근.
“대장. 여긴 수소폭탄이 터졌나 본데?”
“맞습니다. 이쪽이 완전히 날아간 걸 보면 큰 게 떨어진 게 분명합니다.”
“와우- 저기 봤습니까? 저 앞이 싹 뚫렸는데요.”
부하들의 너스레를 무시한 유 이사가 고개를 까딱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 지형이 제법 있었다. 사이즈가 다르기는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부산이나 성남 언덕이 뻥튀기된 느낌.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언덕 지형인지라, 핵폭발에도 제법 살아남은 건물들이 많았다.
“엉뚱한 것 찾지 말고 식료품 위주로 찾아.”
우선 확보해야 할 건, 식료품.
먹거리는 모아도 모아도 끝이 없었다. 식량을 확보하는 속도보다 먹는 입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푸르르릉-
“그래. 건초도 찾아보마.”
유 이사는 말의 목덜미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개새끼들 전부 죽이려고 미국에 왔건만 지금 이건 뭐하는 짓인가?
다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불쑥 들었지만, 양놈의 새끼들이 자신을 따랐다. 마치, 먼저 뒈져버린 새끼들 마냥.
목숨값을 갚겠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양놈들에게서 문득문득 그 녀석들의 그림자가 보일 때면, 치밀어오르던 광증과 분노가 아련한 무엇으로 변했다.
인종과 문화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달랐다. 그런데 왜 이 덩어리들에게 그놈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건지.
“언덕 만세!”
“대장. 여기 지하 창고는 멀쩡한데요?”
“야- 다 조용히 해.”
“지금 대장 표정 안 보여? 막 빡치기 직전이잖아.”
“우리 대장이 그럴 리 없어.”
병신새끼들. 유 이사가 일갈했다.
“닥쳐! 주둥이로 일 하나? 빨리빨리 안 움직여!”
이 돼지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