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292)
러스트 [RUST]-292
보통사람처럼 보이게, 일반인들과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나주연의 이야기에, 흡- 순간적으로 호흡이 흐트러진 기순이었다.
알아챘다?
어떻게?
어디서 걸린 거지?
기순의 당황함을 읽은 것처럼 나주연이 설명을 이어갔다.
[칼도 박히지 않고, 총탄도 권총까지는 먹히지 않더군요. 그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지금도 보세요. 당신 얼굴을 가리고 있잖아요.]“하나만 묻지. 지금 따개비 사태. 네 손을 탄 건가?”
기순의 질문에 나주연이 드물게 코웃음 쳤다.
[– 따개비는 자연 발생했습니다. 아? 자연 발생은 아니군요. 인간 이기심의 결과라고 할까요? 바이러스 사태 자체가 그렇지요.]“좋아. 관련 없다는 소리지? 알겠어. 그럼 날 어떻게 치료한다는 거지?”
따개비를 만든 게 아니라면,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거지?
[바다에 퍼진 따개비를 구제하는 약은 이미 만들었어요. 다만 그걸 어디에 얼마나 쓸지 결정하는 건 저랍니다.]“말 돌리지 말고. 구제하고 말고 그딴 건 지금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본론으로 가자고 날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거지? 순순히 따라오라는 개소리는 하지 말자고 서로 피곤하니까.”
기순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장난이라면, 대가를 치르게 해주리라. 이제껏 조용히 도망친 이유가 뭐였던가?
부르르륵- 기순의 감정을 대변하듯 후드 안쪽이 불룩불룩 꿈틀거렸다.
[중국 남부 해안지역에서 희귀한 케이스가 나왔어요. 따개비와 사람이 공생하는 케이스죠. 변종 따개비에 감염되면 대부분 죽었지만, 공생하는 케이스는 다르더군요.]나주연이 영상통화 화면에 짧은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 속에 있는 인물은 여자였다. 머리카락이 말미잘 촉수처럼 흐느적거리고. 몸에 비늘 같은 껍질이 돋아나 있었다.
비늘 부분을 확대해 보니, 비늘 하나하나가 변형된 작은 따개비였다. 기순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다 아는 비밀이지만, 중국에도 특수한 부대가 있습니다.]그러니까 미국에는 51구역이라는 장소가 있고, 그곳을 담당하는 알려지지 않은 부대가 있다는 비밀처럼, 중국도 마찬가지 비밀이 기관이 있었다.
통칭 749국.
일반적인 명칭은 중국 국방과학 기술 공업 연구회 또는 연구국이라 불리는 기관. 주요 업무는 초능력이나 초상능력 특수능력에 관한 연구, 유전자 변이에 따른 특별한 능력 발현에 관한 연구, 나아가 빙의나 주술, 이계, 인외, 괴물, 신화와 관련된 연구까지 폭넓은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그 기관에서 오진그룹의 치료제를 수입하는 대가로 다양한 연구자료를 넘겼다. 그 속에 있던 연구 가운데 하나가 따개비와 융합한 사례였다.
나주연은 749국에서 연구한 자료와 동봉한 따개비 융합 샘플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쪽과의 거래에서 예상외로 많은 걸 얻었죠. 그래서 당장 완전히 치료하는 건 힘들어도 일반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데 힘들지 않을 정도로의 약이라면 이미 만들었습니다.]“원하는 게 뭐지? 미리 말하지만, 친구 팔아먹으라는 소리라면 거절하지.”
약을 이미 만들었다고? 순간 무장해제가 될 뻔한 기순이었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팔아먹으라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그저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그 사람이 저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 오직 그뿐입니다.]“······.”
기순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답답했다. 정말 마루를 사랑한다면, 최소한 실험체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어야지. 그래 놓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하악-하악- 이건 내 거야. 나만의 완성품. 마이 프레셔스. 마루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은 기순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미친년의 사고구조가 아니라 치료 여부와 대가였으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정확하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고. 날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건지 말해봐.”
기순은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749국에서 보낸 샘플을 이용해 여러 실험을 한 결과, 제법 쓸만한 것들이 나왔습니다. 따개비 융합을 완화하는 약도 그 가운데 하나고요. 사례가 워낙 적어, 기순 씨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말이지요.]“결국, 날 가지고 생체실험을 하겠다는 소린가?”
[그럴 리가요.]나주연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마루지 기순이 아니었으니까.
[약은 미리 드리죠. 제대로 완성된 약은 아니기도 하고, 기순 씨의 샘플로 확인해 보지 않아서 약효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분명 있을 겁니다.]“약을 먼저 준다고?”
[예. 노파심에서 한마디 한다면, 효과가 있다고 약을 복제해서 쓰려고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감당하기 힘들어 질 겁니다. 아시겠죠?]“···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약을 먼저 주고, 약의 문제점까지 미리 알려 주는 것을 보면 약으로 장난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희망 사항이겠지만, 기순은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약효가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잠시라도 효과가 있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을 테니.
[간단합니다. 이쪽에서 확인한 결과 일본에서 뭔가 특이한 실험을 했다더군요. 내용이 너무 당혹스러워서 믿지 않고 있었는데, 중국 749국에서 확보한 자료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자면, 이계와 관련된 실험인데. 일본 도쿄 인근에 있는 비밀실험실에 제단이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기억났다. 마루가 했던 이야기, 정신파 공격을 한 괴물이 있고, 제단이 있다고 했었다.
[제단을 파괴해 주세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중국 749국의 자료가 사실이라면 지금 일본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마루가 널 다시 생각하게 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 않았나? 이상한 제단을 파괴하는 것과 그 기회가 무슨 상관이지?”
기순은 나주연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루와 잘해보겠다면서 기회를 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주연의 목소리에 작게 열기가 피어올랐다.
[오해를 풀어야지요.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전 나쁜 사람이 아니랍니다.’ 하는 듯한 나주연의 표정.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기순은 나주연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애초에 중국에서 미국 51구역 비밀 연구소처럼 그런 기관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고, 일본에서 제단이니, 주술이니 하는 것도 어이없었다. 비과학적이지 않은가?
2차대전 독일이 오컬트에 심취했고, 일본은 주술, 주력에 심취했다는 이야기가 음모론자들이나 오컬트 매니아들 사이에서 떠돌았지만, 말 그대로 그건 가십(gossip)거리 아니었던가?
[믿지 않으시는군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요. 많은 정보를 드릴 수는 없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길 권해 드려요.]“역으로 생각하라고?”
뭘? 세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걸? 어이가 없군. 그 근처에 마루를 포획하려는 덫이라도 깔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기순의 뼈를 때리는 나주연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증거.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증거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답니다. 당신이 증거 그 자체니까요.]“······.”
[바이러스 사태를 일으킨 자들은 거기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자기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유전자조작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방사능이 어떤 변이를 촉진할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섞이면 어떤 혼돈이 벌어질지 말이죠.]나주연의 달뜬 목소리엔 서늘한 광기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랍니다. 작은 구멍을 처음에 막지 않으면, 계속 커지겠죠. 물리법칙이 다른 세계와 연결된 것을 그냥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그게 마루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세계 평화를 위하려면 차라리 미국이나, UN 아니면 차라리 한국 정부에 알려서 해결하는 게 맞지 않아? 마루를 보내서 해결하라고? 너 꿍꿍이가 뭐냐?”
대놓고 말하는 기순이를 보고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리는 나주연이었다.
[꿍꿍이요?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죠. 하지만 그건 기순 씨가 알 필요는 없고요. UN? 미국? 아니면 한국 정부에 현재 상황을 알려줘라? 이계와 관련됐을지 모르는 정보를요?]“······.”
[UN이든 미국이든, 하다못해 한국 정부에게 현재 상황과 정보를 알려주면 해결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알고 있었다. 없애기는커녕, 그런 게 있다면 확보해서 통제하려고 하겠지. 어떡하든 그걸 써먹어 보겠다고 하겠지. 알고 있었기에 기순은 침묵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죠. 이 상황에서 문제를 깨끗하게 없애 버릴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염자와 변종, 변이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일본에 가서,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굴까요? 저는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은데.]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본 관동지역으로 들어가 변이 괴수, 감염자, 변종, 이계의 영향력, 정치권력, 경제적 이익 그 모든 것을 전부 무시하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기순이 생각해 봐도 마루를 제외하면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기순이 했던 질문의 답은 될 수 없었다. 이런 정보를 준다고 마루가 나주연을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할까?
어린 시절이었다면 혹시 모를까, 지금 자본주의에 호되게 당한 마루를 보자면 나주연의 바람은 힘들어 보였다.
[물론, 제 제안을 거절하셔도 됩니다. 약은 제 이야기와 상관없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실장님. 드리도록 하세요.]앞길을 막았던 사내가 가방에서 담뱃갑 크기의 작은 은색 케이스를 꺼내, 기순에게 내밀었다.
딸깍.
케이스를 열자, 마치 군용 독가스 해독제 주사기처럼 생긴 것이 들어있었다. 정말 있는 건가? 진짜 치료될 수 있는 거였나?
“빌어먹을···.”
탁-
기순은 은색 케이스를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기대. 흥분을 지나, 걱정. 불안이 피어올랐다. 잠시 숨을 고른 기순이 입을 열었다.
“네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결정은 마루가 하는 거야. 난 이야기만 전달해 주겠어.”
[그것이면 됩니다. 다만, 마루 씨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금 건네드린 약이 전부가 되겠군요.]“좋아. 그렇게 하지.”
나주연은 미국에 있는 마루와 연락할 수 있도록, 위성 전화기를 넘기며 말했다.
[약은 쓰지 않으십니까? 바로 쓸 줄 알았는데.]깊게 눌러쓴 후드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순의 목소리.
“혹시라도 마루가 오지 못할 상황이거나, 일본에 가지 않는다고 하면 내가 해결해야지 않겠어?”
만에 하나, 정말 일본 비밀연구실에서 오컬트적인 실험이 있었다면, 그게 인류 전체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면, 누군가는 가서 그것을 끝내는 것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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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는 상태가 좋으면서도 나빴다.
핵에 맞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핵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빴다.
핵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도시가 거의 멀쩡하다는 점은 좋은 점이었다. 멀쩡한 만큼 생존자들이 많았고, 마찬가지로 멀쩡한 식료품과 생필품이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나쁜 점은 전술핵이든 전략핵이든 떨어진 곳은 감염자나 변종, 변이 괴수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든 데 반해, 핵이 떨어지지 않은 디트로이트는 감염자와 변종, 쥐 떼 같은 변이 괴수가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변이 괴수들 가운데 박멸하기 까다로운 쥐가 번식한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쥐를 잡아먹는 고양잇과 괴수들이 들어오고, 그런 고양잇과 괴수들과 경쟁하는 늑대나 코요테 같은 것들도 도시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잡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쥐였다.
“지하대피소를 잘 이용하면 쥐들을 싹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마루가 지하대피소의 개미지옥화를 이야기하려는 찰나, 디아나의 보고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위성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버나드 그린, 김기순의 연락입니다. 연결하시겠습니까?]“당장 연결해.”
잠시 뒤, 잡음과 함께 기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별일 없냐?]별일? 이 새끼가 사람 걱정하게 하고는 별일? 반가움을 감추지 않은 마루의 입에서 욕부터 나왔다.
“야 미친 새끼야. 별일?”
이 새끼가 사람 걱정하게 해놓고